서오릉을 산책하다 창릉(昌陵) 앞의 소나무들이 아름다워 사진을 담아 보았다.
창릉은 조선 제 8대 임금인 예종과 그의 부인 안순왕후의 능이다. 서오릉에 조성된 최초의 왕릉이다.(예종의 형 덕종의 무덤이 먼저 들어서기는 했지만 왕릉이 아닌 당시는 세자의 무덤이었다)
예종은 1468년 부왕 세조가 승하하자 19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지만 불과 1년을 겨우 넘긴 13개월만에 승하하였다. 1453년 계유정난을 통해 어린 조카 단종을 제거하고 즉위한 세조, 하지만 1457년 의경세자(덕종 추존)는 20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그 아우 예종도 왕위에 오르자마자 똑 같이 20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만다. 단종의 원혼이 두 아들을 거두어간 것이 아닐까 싶다.
2024. 11. 03. 고양 서오릉
입구에서 보면 예종의 능은 왼쪽(서쪽) 언덕에, 안순왕후의 능은 오른쪽(동쪽)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예종 능침
안순왕후 능침
창릉은 조선 제8대 예종과 안순왕후 청주한씨의 능으로 예종릉은 서쪽 언덕, 안순왕후릉은 동쪽 언덕에 동원이강형(同原異岡形)으로 따로 조성되었다.
예종의 형인 덕종(의경세자)의 무덤인 경릉(敬陵) 너머 북쪽 산릉에 조성되어 있다. 조선왕릉 조성 시 우상좌하(右上左下)의 원칙을 따랐으나, 덕종 경릉, 숙종(肅宗, 1661~1720 재위 1674~1720) 명릉(明陵)처럼 서로 다른 언덕에 조성할 경우 문제삼지 않았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왕비인 안순왕후는 청주부원군 한백륜(韓伯倫)의 딸이다. 원래는 한명회(韓明澮)의 딸이 세자빈에 책봉되었는데 1년만인 1461년 병사하게 되자 1462년 세자빈에 간택되었고 1468년 예종이 즉위한 후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이듬해 예종이 병사하자 25세의 나이로 청상이 되었다.
예종이 승하하자 대비가 된 세조비 정희왕후는 한명회와 결탁하여 세자인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은 어리다는 이유로, 덕종(의경세자)의 맏아들 월산군은 허약하다는 이유로 배제하고 둘째 아들 잘산군을 즉위시키니 곧 제 9대 임금 성종이다.
창릉의 아름다운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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