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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2024년, 첫눈 오신 날

by 모산재 2024. 11. 27.

 

  눈은 나리네

 

이 겨울의 아침을

눈은 나리네.

 

저 눈은 너무 희고

저 눈의 소리 또한 그윽하므로

내 이마를 숙이고

빌까 하노라.

 

님이여, 

설운 빛이

그대의 입술을 물들이나니

그대 또한 저 눈을 사랑하는가.

 

눈이 나리어

우리 함께 빌까 하노라.

 

 

 

 

2024. 11. 17.

 

 

엊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아직 잎을 다 떨구지 않은 숲을 하얗게 뒤덮었다. 한낮이 지나면서 주먹 같은 함박눈이 펄펄 날리며 춤추고 있다. "117년 만의 눈", "서울 역대 11월 최다 적설량"이란다. 

 

강아지가 뛰어다니고, 아이들 눈싸움 소리로 시끄러웠으면 좋겠는데... 아파트 단지는 조용하기만 하다. 갑자기 떨어진 기온 탓인지 다니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 나 또한 책상 앞에 앉아서 유리창 너머로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볼 뿐.

 

100년 전 불행한 시대의 불행했던 한 청년 시인의 근대적 감성에 잠시 젖어 본다. 

 

 

 

 

 

 

 

 

 

 

 

● 이장희(李章熙) 1900∼1929 


호는 '고월(古月)'. 대구에서 12남 9녀 중 셋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 슬하에서 자랐다. 일본 교토 중학 졸업하고, <금성(金星)>지 동인으로 1924년 2호에 <실바람 지나간 뒤> 등 4편의 시를 발표하여 문단에 등장하였다.

섬세한 감각과 깊은 감성의 소유자로 자존심이 무척 강했으며 속물적인 사람들과 가까이 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이러한 비사교적 성격과 결벽증은 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12남 9녀라는 대가족에서 빚어지는 불화와 함께, 중추원 참의로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협조하는 친일파 아버지와의 갈등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극심한 신경쇠약에다 병적 환상이 겹쳐 두문불출하다 음독으로 29세의 삶을 마감하였다.

1920년대 초기 시단의 감상적이고 퇴폐적인 풍조에 물들지 않고, 청신하고 섬세한 감각을 바탕으로 상징적 수법으로 심미적 이미지를 창조하려고 하였다. <봄은 고양이로다> <하일소경(夏日小景)> <청천의 유방> 등이 그 대표적인 시 작품이다. 여러 잡지에 30여 편의 시를 발표하였다. 베를렌의 시를 가장 좋아했으며, 보들레르의 <악의 꽃>,  예이츠, 두보(杜甫), 하기와라(萩原朔太郞), 변영로를 좋아했다. 시집은 없으며 1951년 백기만이 유작을 묶어 편찬한 <상화(尙火)와 고월(古月)>에 <금붕어>라는 표제로 1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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