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태백산사고가 있었던 태백산 각화사

모산재 2023. 9. 5. 09:59

 

백두대간수목원 백두산 호랑이를 구경하고 트레킹을 즐긴 다음 점심 식사를 하고 가까운 곳에 있는 각화사(寺)에 들렀다. 주소를 보니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 태백산에서 30리 남쪽에 있는 각화산(1,202m)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686년(신라 신문왕 6)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정조 즉위 년(1777년)에 태백산사고를 지어 왕조실록을 수장하며 3대 사찰의 하나로 번창하였지만 1910년 사고와 절이 소실되었다.(1913년 의병을 공격하기 위하여 일본군이 사고와 절을 불태웠다고 하며, 혹은 1945년 광복 후 소실되었다고도 한다.)

 

사찰 건물은 복원된 지 얼마되지 않은 모습이다. 조계종 제16교구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각화산 각화사'가 아니라 '태백산 각화사'. 부석사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주봉 태백산을 이름으로 쓰고 있다. 누대의 이름은 '월영루'.

 

 

 

대웅전

 

 

 

공양간

 

 

 

요사

 

 

 

대웅전

 

 

 

주존 석가모니불과 후불탱화

 

 

 

탱화

 

 

 

월영루 한쪽 뜰에 3층탑이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태백산사고 옛 모습

 

 

 

사고지는 서운암 부근. 처음에는 선원각(璿源閣)만이 방삼간(方三間) 2층의 기와집이고 다른 건물은 단층이었으나, 고종 때 실록각(實錄閣)이 2층으로 개축된 듯하다. 각화사의 주지가 수호총섭()을 맡고 수호군이 25인이었는 기록이 있다. 

 

1910년 일제의 침탈 이후 태백산사고의 실록은 규장각도서와 함께 종친부(宗親府) 자리에 설치한 총독부 학무과 분실로 옮겨 보관하다가, 1930년 규장각도서와 함께 경성제국대학으로 이장(移藏)하였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1955년부터 1958년까지  태백산사고본 실록을 저본으로 축쇄영인본 48책을 간행해 학계에 보급하였고, 태백산사고본 실록은 1985년 부산 정부기록보존소에 옮겨져 보존되고 있다.

 

 

 

절이 있는 석현리와 인접한 서동리의 춘양고등학교에는 각화사의 전신인 남화사지(覽華寺址)가 있다. 원효는 각화사를 창건한 뒤, 옛 절인 남화사를 생각한다고 하여 '각화사'라 하였다는 설이 전한다. 남화사지에는 보물로 지정된 봉화서동리삼층석탑 2기가 있으며, 2기 가운데 동탑에서 사리병과 99기의 소형 토탑(土塔)이 둘려 있는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