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일기

고산 능선에서 만난 변산바람꽃

모산재 2017. 3. 20. 23:44


참으로 오랜만에 주말 산행에 나섰다.


사실은 어제 나서기로 했건 것인데 자고 일어난 아침 두꺼운 구름에 가린 세상이 너무 우울하게 느껴져 머뭇거리다 포기하고 말았다. 정오 무렵부터 해가 쨍쨍 났지만, 어쨌든 출발할 기분이 아니었으니...


그래서 오늘 나선 것인데, 아침부터 맑은 햇살이 화창할뿐더러 4월의 봄날처럼 온화하다. 나 혼자일 거라 생각하며 목적지인 ㅂ마을에 도착했을 때 안면이 있는 분도 만나 같은 목적지로 향하는 사람이 모두 다섯 명이나 된다.




영상 15도가 넘는 따듯한 날, 계곡을 오르면서 산바람이 서늘하게 다가오긴 해도 드러난 피부에 닿는 햇살은 제법 따갑다. 근 닷새 정도 계속된 온일이어서 골짜기에는 봄빛이 그득하리라 예상했는데 풀한 포기의 푸른 풀조차 보이지 않는다. 높은 산이어선가? 내일이 춘분이라는데, 응당 개별꽃이나 제비꽃 정도는 만날 줄 알았는데 뭐 그냥 겨울 풍경 그대로다.






그래도 볕이 잘 드는 낮은 골짜기는 얼음이 대부분 녹아 졸졸 거리며 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처음으로 만난 푸른 풀은 양치식물인 나도히초미 종류!


포자낭이 가장자리에 가깝게 배열된 걸 보니 참나도히초미로 보인다.






오르면서 녹지 않은 얼음이 보이기 시작한다.






명지산 골짜기에서 종종 만나게 되는 그물 모양의 이 벌레집. 주인공은 누구?






능선 정상에 가까워지자 눈과 얼음이 그대로 남아 있는 미끄러운 길로 접어든다.






그리고 드디어 변산바람꽃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애기복수초도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의 복수초는 천마산의 것보다 더 작아 보이는 것이 복수초의 고산형 아종인 애기복수초로 보아 무방할 듯하다.





무더기로 꽃을 피우고 바람에 꽃잎이 하늘거리는 모습에 현기증이 일어나는 듯...






애기복수초





오랜만의 등산이라 가뿐할 줄 알았는데, 꾀가 생기지 뭔가... 애초 명지3봉을 거쳐 귀목봉을 지나 귀목으로 내려서려고 했던 것인데 명지3봉으로 향하다 까마득히 높아보이는 봉우리를 바라보다 그만 발길을 돌리고 만다.


바로 귀목으로 내려서는 길로 들어섰는데 얼음이 그대로 있는 급경사길은 좁고 위험하기만하다. 그저 위험한 길만 이어질 뿐 기지개를 키는 생명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으니 후회스러운 선택이 되고 말았다.




다만...


계곡으로 내려서자 나도히초미 종류가 많이 보인다. 이 녀석은 소우편이 아래쪽으로 갈수록 작아지는 모습이 뚜렷하며 포자낭이 중축으로 몰리고 인편이 아래쪽으로 쏠리는 걸 보니 좀나도히초미로 보인다.







할미밀망 열매





내려오는 계곡, 오늘 하루 내린 햇살만로도 어제까지 겨울이었던 계곡이 봄의 계곡으로 바뀌었을 법하다.





오전에 오르던 계곡에서는 뿔나비가 자주 보이더니,

내려가는 계곡에서는 네발나비가 하늘거리며 길 안내를 한다.





거의 다 내려선 산발치는 가평다운 잣나무숲





고사리 종류밖에 보이지 않은 단조로운 산길을 거의 벗어난 곳에서부터 푸른 새싹이 조금씩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까실숙부쟁이 새잎





산괴불주머니와 뱀딸기 새삭들





무덤가 낙엽 아래서 월동한 듯한 털장대 로제트





예상한 것보다 하산길이 볼 것이 없는 계곡이어서 너무 빨리 내려와 버렸다. 제비꽃조차 만날 수 없었던 메마른 길이니 그냥 하산하기가 빠빴으니...





게다가 교통편도 아주 불편. 마을버스는 1시 30분 다음에 4시... 귀목봉으로 돌아왔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한 시간도 더 기다려야 할 상황이라 일단 그냥 걷기로 한다.



귀목 마을과 명지산





현리까지는 약 15km, 오후의 따듯한 봄볕을 마음껏 받으며 인적도 드문 길을 호젓이 걷는다. 상판리회관에 이르러 귀목발 4시 버스가 들어오는 걸 보고 멈춰섰는데, 마침 승용차 한 대가 다가와 서며 "현리 가느냐" 묻는다. 위례 신도시에서 횟집을 개업했다는 청년, 아직 입주가 제대로 되지 않아 주말에 고향을 다니러 온 모양...


현리에 도착하자마자 청평터미널 가는 버스가 도착하고, 청평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동서울행 버스가 이어진다. 오랜만의 산행, 봄기운 가득 받은 기분 좋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