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섬 여행

흑산도 일주 여행(진리 지석묘-진리 당산-상라산전망대-지도바위-정약전 유적지-칠형제바위)

모산재 2017. 2. 27. 11:12


어제에 비해 오늘은 바람이 많이 잔잔해졌다.


동행들이 멀미약을 먹겠다고 하지만 흑산도까지 30분밖에 안 걸리니 웬만하면 참아 보라고 권유할 만큼 파도가 높지 않은 편이다. 물론 아침 유람선에서 겪은 바람과 파도는 대단했지만 대형 여객선에서는 그리 부담이 될 정도는 아니니까...




11시 20분 무렵에 흑산도 예리항에 도착. 예리항은 홍도항의 정동쪽에 자리잡고 있다.





배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는데, 어제 아침 숙소에서 만났던 흑산도에서 일주여행 택시 관광 가이드를 한다며 명함을 주었던 분을 만난다.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듯 호객을 하다가 우리가 인사를 하자 그제서야 자신이 안내하겠다며 공식 요금이 6만원이지만 5만원만 달랜다.


이 분이 안내해 주는 식당에서 14000원짜리 비싼 갈비탕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흑산도 일주여행에 나섰다.






지난 2005년 2월에도 일주 여행을 한 일이 있는데, 당시에 비해 도로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흑산도 일주도로는 1984년 임도로 도로 개설이 시작된 이후  26년이란 긴 기간의 공사 과정을 거쳐 2010년에 완공되었다 한다. 총 25.4km, 모두 11개 마을을 이어주는 흑산도 간선도로다.



홍도 흑산도


출처 : 네이버 지도



출처 : 신안군청 홈페이지




가이드 기사는 박복광 씨. 시원시원하게 우리가 원하는 곳은 차를 세워주고 살펴보고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해 준다. 차를 몰면서도 교과서를 외듯이 상세하게 해설해 준다. 




흑산중학교 부근 일주도로변에 자리잡은 진리 고인돌무덤(지석묘)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 지역에서 청동기시대의 무덤이 발견된 것에 의의가 있다. 가장 큰 것은 길이 2.25m, 너비 1.57m이고 6기의 고인돌 중 3기에서는 덮개돌을 지탱하고 있는 작은 받침돌이 확인되었다. 발굴조사를 통해 흑갈색 민무늬토기와 회갈색 토기 조각이 발견되었는데, 인근에서 발견된 선사시대의 조개더미와 함께 신석기∼청동기시대에 사람들이 거주하였음을 알려주는 자료가 된다.





진리마을의 팽나무. 두 그루의 나무 가지가 맞닿아 연리지처럼 보인다.







배낭기미해변에 이르기 직전, 바닷가 작은 산 언덕 숲속에는 당산이 자리잡고 있고, 한 때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던 초령목(招靈木)이 고사한 자리에 새끼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당신(堂神)을 모신 당집으로는 마을의 번영을 비는 진리당(鎭里堂)과 풍어를 비는 용신당(龍神堂)이 있는데, 흑산도에만 15개, 흑산면 전체에 22개나 존재하는 당집의 본당인데, 길가에 보이는 당집이 상당(上堂)인 진리당이고 솔숲 안쪽, 바닷가에 있는 것이 하당(下堂)인 용신당이다.






진리 마을의 당제는 음력 정초부터 3일간 치러졌는데 성대한 규모로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상당에는 당각시(소저아기씨)를, 용신당에는 총각화장을 모시고 있다.


이 신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유래담이 전한다.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원형백과)


<당각시 이야기>
처녀, 총각이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 남편이 고기 잡으러 갔다가 죽었다. 각시가 목을 매어 죽었다. 주민들이 각시가 죽은 자리에 당을 지어 원혼을 모셨다. 그리고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했다.

<총각화상 이야기>
진리에 총각화상이 옹기를 파는 배를 타고 왔다. 총각이 피리를 불면 바다가 잠잠하고 고기가 많이 잡혔다. 옹기 장수 일행이 출발하려고 하자 당각시가 풍랑을 일으켜 못 떠나도록 방해를 했다. 당각시를 달래기 위해 총각을 섬에 떼어놓고 옹기배가 출항했다. 총각화상이 혼자 남아 피리를 불다가 죽었다. 주민들이 총각을 당각시 옆에 모시고, 용신으로 믿고 기원한다.



상당은 두 겹의 돌담으로 둘러쳐져 있다. 당집은 제기와 취사도구들을 넣어 놓은 문간방들을 돌담으로 잇고 있다. 일제시대인 1938년에 지어진 것을 헐고 지금의 기와집으로 새로 지었다고 한다.






당산에는 초령목(招靈木)이 자라는데, 귀신을 부른다 해서 '귀신나무'라고도 불렸다. 천연기념물 제369호로 지정된 약 300살의 노거수가 있었는데 당시 높이 20m, 줄기 가슴높이 둘레 3.1m나 되었던 나무는 1994년 태풍으로 피해를 입고 고사되어 사라졌고 현재 고사목 주변에 어린 나무 43주가 자생하고 있다고 한다. 노거수의 고사로 천연기념물은 해제되고 자생지는 전남기념물 222호로 지정되어 있다.



목련과의 이나무는 1속 1종의 상록교목으로 제주도에 자생하며 함소화()로도 알려져 있다. 찾아보니 어린 나무들이 보인다.




함소화 꽃


출처 : jnuri





석위





큰족제비고사리





신당 바로 너머 흑산도 최고의 해수욕장인 배낭기미해변을 지나면 이내 열두 굽이 고갯길로 접어드는데, 상라산 고개를 오르기 전 해안에 자리잡은 흑산도의 가장 오래된 진리 읍동(고을기미) 마을 바로 뒤에 무심사터(无心寺址)가 나타난다.



팽나무 노거수 아래에는 삼층석탑과 석등이 보인다. 통일신라시대 선종 계통의 절이었다고 한다.







읍동마을에서 상라산까지 오르는 열두 굽이 고갯길은 흑산도의 가장 멋진 풍광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고개 위에는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가 서 있는데 기사는 주차를 하고 상라산 전망대를 다녀오라고 한다.





어린 시절 이미자의 노래로 귀에 익어 있는 가사를 보자 이내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흑산도 아가씨'는 1969년에 개봉한 동명의 영화 주제가이기도 하다.



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물결은 천번 만번 밀려오는데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당시 흑산도는 어업 전진 기지로 조기, 고등어 파시가 큰 규모로 열렸던 곳. 외지인들이 몰려들었던 흥청대던 식당과 술집에는 육지에서 온 종업원 아가씨들만 수백 명이나 되었다 한다. 돈을 벌기 위해 검은 섬 흑산도에 갇혀 지내는 아가씨들의 뭍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이 표현된 것이 이 노래가 아닐까 싶다. 먼 곳까지 조망이 좋은 고갯마루에 이 노래비가 서 있으니 그녀들의 맘이 더욱 실감나게 다가오는 듯하다. 


노래비는 1997년에 세워졌고, 입구에는 이미자씨가 2012년 흑산항에서 콘서트를 하면서 남긴 핸드프린팅이 설치되어 있다.




상라산 전망대를 오르면서 바라보는 장도, 소장도, 내망덕도. 멀리 홍도가 보인다.




상라봉에는 해상왕 장보고가 쌓았다는 상라산성의 흔적이 보인다, 반달 모양을 이루고 있어서 반월성이라고도 한다.




상라산 정상( 230m)





상라산 줄기, 오른쪽으로 열두 굽이 고갯길, 아래는 읍동(고을기미) 마을






바로 앞 칠락산(272m,) 능선, 뒤로 보이는 깃대봉(382m), 문암산(405m) 능선




북동쪽의 대둔도, 대물도





푸른잎을 단 채 여우눈 같은 종자를 내 보이는 여우콩





고갯길을 내려서 마리(모듸미) 마을과 비리(전듸미) 마을 사이의 해안 도로에서 차는 다시 서고 한반도 모양의 구멍이 있는 지도바위를 구경한다. (* 흑산도의 마을 고유 이름은 거의 모두 '-미'라는 접미사가 붙어 있는 형태여서 눈길을 끈다.)





왼쪽 높이 솟은 대장도는 숲이 우거진 유인도이지만 오른쪽 소장도는 무인도. 




앞바다에는 전복 양식장이 있고, 또한 전복을 먹여 살릴 다시마 양식장이 있다. 전복 양식장을 둔 마을은 다시마 양식장을 둔 마을에 비해 부자라 한다.




대장도가 정상부에 넓은 습지가 발달되어 있는데, 안정적인 수분 공급으로 마을이 들어서고 숲이 우거질 수 있었다. 




장도 습지는 이탄층이 발달돼 있어 수자원 저장 및 수질 정화 기능이 뛰어나고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어 대암산 용늪, 창녕 우포늪에 이어 2005년 국내 3번째로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었다.


대장도(약 7.5km, 30분 거리))에는 예리 선착장에서 소형 여객선이 1일 2회(흑산항 출발 10시, 15시, 장도 출발 9시, 2시 20분) 있지만 출항 시간 때문에 1박 2일이라야 여행이 가능하다. 


더보기

(우리나라는 람사르협약에 1997년에 가입하여 대암산 용늪, 창녕 우포늪, 신안 장도 습지, 순천만 갯벌, 제주 물영아리, 태안 두웅습지, 울산 무제치늪, 무안갯벌, 강화도 매화마름 군락지, 오대산 습지, 제주 물장오리오름 습지 등 19개소가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어 있다.


람사르번호

습지 이름

위치

면적

(㎢)

특징

지정 일자

0898

대암산용늪

강원 인제군 대암산

1.06

희귀야생 동·식물이 서식하는 국내 유일의 고층 습원

1997. 03. 28

0934

우포늪

경남 창녕군

8.54

큰부리큰기러기, 가시연꽃 등 다수의 멸종위기 동·식물 서식하는 국내 최대의 자연늪

1998. 03. 02

1458

장도습지

전남 신안군 흑산면

0.09

멸종위기종 서식하고 이탄층이 잘 보전된 도서지역 산지 습지

2005. 03. 30

1594

순천만·보성갯벌

전남 순천, 벌교

35.5

멸종위기종 흑두루미의 국내 최대 월동지이며 수산자원 풍부

2006. 01. 20

1648

제주 물영아리오름습지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 수령산 일대 분화구

0.309

물장군과 맹꽁이 등 멸종위기종이 서식하고 독특한 식생경관을 지닌 화구호 습지

2006. 10. 18

1724

두웅습지

충남 태안군 원동면 신두리

0.065

희귀야생 동·식물 서식하고 해안사구 배후에 형성된 사구습지

2007. 12. 20

1725

무제치늪

울산 울주군 삼동면 정족산

0.04

끈끈이주걱, 꼬마잠자리 등 희귀 야생 동·식물 서식하고 이탄층이 잘 발달된 산지 습지

2007. 1.2. 20

1732

무안갯벌

전남 무안군 해제면·현경면 일대

35.89

생물다양성 풍부하고 지질학적 보전가치가 있음

2008. 01. 14

1846

강화 매화마름군락지

인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0.003

매화마름, 금개구리 등 멸종위기종이 서식하고 국내 최초 람사르 논 습지

2008. 10. 13

1847

제주 물장오리오름습지

제주 제주시 봉개동

0.628

팔색조, 삼광조 등 멸종위기종이 서식하고 이탄층 발달한 산정 하구호 습지

2008. 10. 13

1848

오대산 국립공원습지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소황병산늪,질뫼늪),홍천군 내면(조개동늪)

0.017

멸종위기종 서식하고 이탄층 잘 발달된 산지 습지

2008. 10. 13.

1893

제주 1100고지습지

제주 서귀포시 색달동·중문동~제주시 광령리

0.126

멸기위기종 및 희귀종이 서식하고 독특한 지형에 발달한 고산습지

2009. 10. 12.

1925

서천갯벌

충남 서천군 서면, 유부도 일대

15.3

다수의 멸종위기종 조류 및 전 세계 물떼새 개체수의 1%이상이 서식 (검은머리물떼새)

2009. 12. 02

1937

고창·부안갯벌

전북 부안, 고창군

45.5

다수의 멸종위기종 조류 및 전 세계 물떼새 개체수의 1%이상이 서식 (흰물떼새)

2010. 02. 01

1947

동백동산습지

제주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0.59

지하수 함양률이 높고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곶자왈 지역

2011. 03. 14

1948

운곡습지

전북 고창군 아산면 운곡리

1.797

생물다양성이 풍부하고 멸종위기종 수달 등 서식

2011. 04. 07

1974

증도갯벌

전남 신안군 증도면 증도 및 병풍도

31.3

국제적인 보호 조류가 서식하는 연안 습지

2011. 09. 01

2050

밤섬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밤섬

0.27

대도시 속의 습지로 그 의미가 큼

2012. 06. 26

2209

송도갯벌

인천광역시 연수구 송도동

6.11

멸종위기종인 저어새, 검은머리갈매기 등 주요 철새 도래지이나 개발 위험 상존

2014. 07. 10

2225

숨은물뱅듸

제주시 애월읍

1.175

한라산 980m 고지에 드물게 발달한 고산습지. 자주땅귀개, 두견 등 490종 이상의 야생생물 서식

2015 05. 13

2226

한반도습지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 옹정리

1.915

수달,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돌상어 등 14종의 보호종을 포함해 980여 종 서식

2015. 05. 13









그리고 절벽에 교각이 없이 만들어진 하늘도로를 만난다. 




300여 m 벽면에는 지도바위 등 흑산도의 명물과 문화유산을 나타내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일주도로는 문암산 깃대봉에서 내려오는 절벽 때문에 선반을 달아 놓은 듯 시공하여 '선반도로'라고도 한다.




곤촌(곤듸미) 마을을 배경으로 솟아 있는 흑산도 최고봉 문암산(405m), 왼쪽의 깃대봉(382m)







동백나무 군락지인 해안도로를 돌아서자 차창 밖으로 심리(기푸미) 마을 계단식 축대 위로 아름드리 후박나무 노거수들이 어울려 있는 풍경이 지나간다.




그리고 이내 앞을 가로막은 높은 산줄기를 거슬러 꼬불꼬불 가파른 고개를 오르기 시작한다. 한다령이란 고개!


상라봉을 내려선 만큼 오르는 고개는 땀 흘리며 올라야 하는 고개여서 한다령(汗多嶺)인 줄 았았는데, 무슨 한이 그리 많은지 한다령(恨多嶺)이 되었다. 정상에 오르자 일주도로 완공을 기념하는 천사상이 나타난다. 


날개 달린 녹색의 천사상은 밋밋한 가슴을 벌리고 두 손을 아래 위로 내뻗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중성적인 이미지가 낯설다. 1004개의 섬을 가졌다는 신안군을 상징하면서도 일주도로의 수호신이자 흑산도를 오가는 선박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조형물로 설치된 것이다. 



한다령 고개를 넘으며 기사님은 시를 쓰기를 좋아한다며 자신이 썼다는 시를 낭송한다. 시를 낭송하고는 작년에 면 단위로 전국 최초로 발행되는 흑산신문에 실린 자신의 시를 보여 준다. 흥과 끼가 많은 분이다.




차는 어느새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의 유배지 마을로 널리 알려진 사리(모래미) 마을로 들어선다.



작은 시골마을임에도 정약전 유적지 조성의 일환으로 물고기 솟대를 설치해 놓은 쌈지공원이 먼저 눈길을 끈다.







정약전이 제자를 가르치고 <자산어보>를 집필하던 사촌서당(沙邨書堂)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고, 그 옆에는 유배문화공원임을 알리는 종합 안내판이 서 있다.





흑산도는 가히 유배의 땅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유배객들이 왔는데, 고려 의종 2년에 정수개가 최초로 흑산도에 유배되어 온 이래 조선조까지 그 수가 무려 130여 명에 이른다. 퉁계에 따르면 제주, 거제, 진도에 이어 네번째로 빈도수가 높은 유배지라고 한다. 


특기할 만한 것은 정순왕후의 오빠 김귀주. 정조가 노론벽파 세력들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김귀주는 정조의 친모 혜경궁 홍씨에게 문안을 드리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이곳 흑산도로 유배되었는데, 이 사건으로 정순왕후와 정조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틀어지게 되었고, 정조가 승하하자마자 이듬해(1801년) 정순왕후와 노론 세력의 신유박해로 정국은 대반전이 일어나게 되고 약전 형제는 각각 강진과 흑산도로 유배된 것이다.





마을길로 들어서자 흙을 사용하지 않고 돌로만 쌓은 강담이 눈길을 끈다.


바람이 많은 섬 지방에 흔히 보이는 양식인데, 예전에 가옥이 철거되면서 담장만 남아 밭 경계를 이루는 곳은 높이가 낮다. 새마을운동에도 사라지지 않고 비교적 잘 보존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이 마을 강담은 2006년에 등록문화재 제282호로 지정되었다.





공원은 유배의 세 가지 유형인 본향안치, 위리안치, 절도안치 등을 차례로 소개하며 비슷비슷한 여러 건물들을 배열하여 세워 놓았는데, 돈만 들였지 추상적이고 산만하여 그리 의미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냥 마을의 모습을 그대로 두고 정약전의 흔적만 고증하여 사촌서당과 거주지를 복원하고 그의 삶과 <자산어보>에 대한 내용에 집중하여 꾸몄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유배공원의 한 마당에서 바라본 사리(사촌)마을 풍경










천주당 공소





맨 뒤에 자리잡은 사촌서당.


대문에는 '복성재(復性齋)'라는 현판이, 서당 본채에는 '사촌서당(沙邨書堂)'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서당 마루에 앉으면 오른쪽으로 모래미 해안의 평화로운 바다가 보인다.





※ 정약전의 유배에 대하여


정약전에게는 두 동생이 있었는데 각각 두 살씩 터울지는 정약종과 정약용이다. 유독 네 살 아래인 막내인 정약용과 친하게 지냈는데, 실학자 성호 이익의 학맥을 이어받고 천주학에 빠지기도 했으며 그로 인해 유배를 갔던 운명도 비슷했다.


1784년 두 형제는 이복 맏형인 정약현의 처남 이벽에게 천주교 교리를 듣고 그에 심취하게 되었지만 뒤에 거리를 두게 되었으나, 정치적으로 남인 계열로 대립하던 노론파들은 1800년 6월 정조가 승하하자 이듬해 초 수렴청정하던 정순왕후의 신유박해로 정약전과 정약용은 모진 고문을 받고 각각 신지도와 장기현으로 유배되었다. 도교에 심취해 있다 가장 늦게 천주학을 받아들인 정약종은 참수를 당했다.


그런데, 신유박해로 많은 천주교도가 처형되자 큰형 정약현의 사위인 황사영이 북경에 있던 프랑스 주교에게 프랑스 함대를 파견해 조선 정부에게 압력을 가하는 것이 좋겠다는 편지, 이른바 '황사영백서(帛書)'가 탄로 나면서 11월 황사영은 처형당하였고, 두 형제는 이로 말미암아 서울로 압송되어 심한 국문을 받고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이배(移配)되었다.


귀양길을 함께 떠난 두 형제는 한겨울인 음력 11월 21일 나주성 북쪽 율정(밤남정)주막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이별한다. 그리고 이 이별은 살아생전의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만다. 약용은 이별의 심정을 <율정별(栗亭別)이라는 시에 담아두었다.

 

茅店曉燈靑欲滅 초가 주점 새벽 등불 깜박깜박 꺼지려 하는데

起視明星慘將別 일어나서 샛별보니 아! 이제는 이별인가

脉脉嘿嘿兩無言 두 눈만 말똥말똥 나도 그도 말이 없이

强欲轉喉成嗚咽 목청 억지로 바꾸려니 오열이 되고 마네

黑山超超海連空 흑산도 머나먼 곳 바다와 하늘뿐인데

君胡爲乎入此中 그대가 어찌하여 이 속에 왔단 말인가


세월이 흘러 1814년 약용이 유배에 풀려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소식을 듣고 약전은 안개 낀 밤 몰래 육지에서 가까운 우이도(도초도 부근)로 떠났는데 이를 안 흑산도 사람들은 그를 쫓아가 만류하여 다시 흑산도로 데리고 갔다. 1년이 지나 약전은 이웃들에게 호소하여 겨우 우이도로 갔으나 아우를 다시 만나지 못하고 이듬해 우이도에서 눈을 감고 만다.




대문 앞 계단 돌틈에 자라고 있는 봉의꼬리




한겨울에 왜제비꽃이 피고 있고...




진고사리?





칠형제바위 조망점에서 바라본 사리마을. 선유봉과  한다령 아래 아늑한 골짜기에 안겨 있는 풍경이 평화롭다.





사리포구에는 칠형제바위가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고 있다. 솔섬, 두령여 등 크고 작은 섬들이 자연 방파제를 이루고 있어 수많은 어선이 정박하고 있다. 가까운 바다에 홍어 어장이 형성된다.


홍도의 슬픈여 칠형제바위와 이름이 같고 비슷한 전설이 있다. 어느 해 큰 태풍이 불어와 어머니가 바다에 나가 물질을 하지 못하게 되자 아들 7형제가 바다가 들어가 두 팔을 벌려 파도를 막았는데 그대로 7개의 작은 섬들로 굳어 버렸다는 다소 상투적인 전설이다.







묵령 고개를 넘어 해안도로를 달리자 동쪽으로 흑산도에 딸린 가장 큰 섬인 영산도가 시야에 들어선다. 영산화가 많이 핀다는 영산도... 그리고 길고 좁은 골짜기에 자리잡은 소사리(잔모래미)를 거쳐 흑산도 제2의 해수욕장이지만 한적한 삿개해수욕장을 지나친다. 부근의 천촌리에 있는 면암 최익현 적거 유허비도 그냥 통과...



천촌(여티미)에서 청촌(청재미) 사이 해안도로에서 바라보는 구문여(구멍바위)


파도가 거세게 몰아칠 때 구멍으로 분수처럼 물을 뿜는 풍경이 장관이라고...





그리고 가는게 해수욕장을 지나 칠락산 줄기가 흘러내리며 예리항과 이어지는 목을 이룬 곳에서 영산도를 배경으로 풍경을 담아 본다.






다시 예리항으로 돌아오니 세 시가 다 되었다. 대개 2시간 정도를 끝내는 일주 여행을 거의 세 시간에 걸쳐서 널널하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다.




3시 30분에 출항하는 목포행 여객선이 결항되어 4시 20분 배를 타게 되어 자산문화전시관을 관람한다.


2층으로 된 전시관 1층은 관광정보실로 정약전의 일대기, 사촌서당 조형물과 자산어보 필사본, 어류 검색코너 등이 있고, 2층은 인공수족관, 해양도서실, 흑산도의 옛 생활도구들을 전시한 향토관 등이 있는데, 예리항 풍경을 담은 옛 사진들과 생활도구들 정도가 내 눈길을 끈다.











어두워진 다음 목포에 도착하여 먼저 내일 일정인 추자도 배편을 확인한다. 전에 운행했던 핑크돌핀호는 노후화하여 목포에서 출항하는 추자도 배편은 사라져버렸고 진도 부근 우수영에서 2시 30분에 떠나는 배가 생겼는데, 셔틀버스가 운행되니 시간 맞춰 오라고 한다.


숙소는 첫날 머물렀던 모텔로 다시 정하고 모텔 주인이 추천하는 아구찜 식당(영해아구찜)에서 푸짐하고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한다. 내일 출발 시각까지 널널했지만 여행이 피로한 탓인지 다들 일찍 잠자리에 들고 R과 맥주를 마시다 잠이 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