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섬 여행

다시 찾은 홍도, 대밭목에서 깃대봉 넘어 홍도2구 마을까지

모산재 2017. 2. 22. 13:39


목포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모텔을 나서는데, 모텔 주인장이 인기척 소리에 나와서 홍도에서 숙소를 정해 놓았는가를 묻는데, 마침 우리와 같은 시각에 나오는 중년 남녀가 흑산도에 산다며 흑산도 일주를 하게 되면 연락해 달라고 명함을 건네 준다. 나중 이 양반의 안내로 흑산도 일주 여행을 하게 된다.


부근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여객선터미널에서 홍도로 가는 첫 배를 탄다. 흑산도 행 배는 하루 4번(07:50, 08:10, 13:00, 16:00)이지만 홍도까지 가는 배는 이 중 두 번(07:50, 13:00)이고, 08:10 배는 가거도 행으로 하루 한 번 있다.


바람이 많은 날씨여서 혹시나 싶었지만  다행히 배는 출항하였다.




섬으로 둘러싸인 내해를 비교적 잠잠하게 달리던 배는, 비금도 도초도를 잇는 대교를 지나 망망대해로 들어서면서 요동친다. 나를 제외한 세 사람 모두 멀미약을 마시고 뒷자리에 앉은 덕에 흑산도를 지나 홍도까지 두 시간이 넘는 뱃길에도 무사.



<홍도의 위치 : 다음 지도 스크랩 편집>



10시 35분경 홍도에 도착한다.


쨍하니 맑은 날씨에 홍도는 그림 같은 풍경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다들 처음 만나는 홍도의 모습에 탄성을 지른다.


눈 앞에 보이는 마을은 홍도 1구 죽항마을. 홍도는 누에고치나 땅콩 모양으로 생겼는데, 1구 마을은 섬 전체의 3 분의 2쯤 되는 북동부(오른쪽)와 3 분의 1밖에 안 되는 남서부(왼쪽)가 좁은 대밭목으로 이어져 있어서, 마치 두 섬이 붙은 것처럼 보인다.







11년 전에는 없었던 여객선 터미널. 2010년에 착공하여 2012년에 준공되었다 한다.







등대가 있는 바위섬, 노적봉






남서쪽의 최고봉 양산봉(232m)





사암과 규암으로 이뤄진 홍도는 일출 무렵이나 일몰 무렵 섬 전체가 붉게 물들어 '붉은 섬'이라는 뜻의 '홍도(紅島)'라는 이름을 얻었다. 1965년에 6.5km2(약 190만 평)에 달하는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제170호로 지정되었는데, 뒤이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독도(제336호)·차귀도(제421호)·마라도(제423호) 등의 섬들 중 최대 면적의 천연보호구역을 자랑한다. 흑산도 등과 더불어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도 속하며 특이한 지질구조, 육상·해양식생 등에서 한반도 서남단 섬을 대표하는 덕분에 살아있는 자연박물관으로도 불린다.



홍도의 자연 환경은 뛰어나게 아름답다. 해발 368 m나 되는 제일봉의 재에 올라서 내려다보는 바다도 좋지만, 파도가 자는 날을 골라 섬을 일주하면서 보는 풍치는 더욱 좋다.


연안(沿岸)의 절벽은, 기둥과 문과 탑과 주름치마를 쌓아 올린 듯, 빨강, 분홍, 파랑, 연두, 순백색 들로 수를 놓았고, 그 위를 장식하는 상록수까지 천연의 조화를 돕는다. 바다에서 솟아 나온 수많은 크고 작은 바위들도 이와 경연이라도 하는 듯이 형상과 색채를 자랑하고 있다. 개뿔여, 녹섬, 돔바위, 제빗여, 딴옷섬, 탑여, 높은여, 아랫여, 긴여 등 그 어느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뜨는 해에 비췬 홍도, 지는 해에 부각(浮刻)된 바위와 숲은 참으로 아름답기만 하다. 안개가 해면을 길 때에는 녹섬과 개뿔여가 머리만 내게 되어 홍도는 완전히 꿈나라로 바뀐다.


나폴리와 모나코에서 본 지중해도, 한산도의 제승당에서 본 바다도 아름다운 에메랄드빛이었지만, 홍도의 바다처럼 선명하게 맑고 아름답지는 못했다. 어찌나 바닷물이 맑은지, 파도가 없는 맑은 날이면 배 위에서 10여 m의 깊이까지 들여다보인다.


녹조, 갈조, 홍조가 밀림처럼 우거진 사이를 형형색색의 어족들이 유유히 헤엄치며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투명체로 된 넓은 도화색(桃花色)의 해파리떼가 단백광(蛋白光)을 내며 조용히 오르내리는 광경도 이채로웠다. 해저에는 불가사리, 해삼, 성게, 전복, 소라 들이 붙어 있고, 울긋불긋한 산호류까지 조류와 함께 밑바닥에 자라고 있어 한결 풍치를 돋운다. 구미 각국의 인공 수족관을 꽤 많이 보았지만, 이만큼 훌륭한 것은 볼 수 없었다. 이것은 그대로 천연 수족관이었다.


물이 나면 바위에 밀생한 새까만 흑따개비들을 볼 수 있으며, 수많은 거북손들이 바위 틈으로 머리를 내민다. 암반의 여기저기에는 조호(潮湖)가 생겨서 각양 각색의 말미잘들이 일시에 화려한 꽃을 피운다.


- 최기철, <홍도의 자연>





여객선터미널





그 옛날 중국 산둥반도로 향하던 배는 이곳에서 동남풍이 불기를 기다려, 홍도는 '대풍도(待風島)'라 불리기도 했단다. 일제 강점기에는 매화꽃처럼 아름다운 섬이라 하여 매가도()라고 부르다가 광복 이후 홍도라는 명칭이 정착되었다고 한다.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지 뚜렷하지 않지만, 1480년 김태성이라는 김해 김씨가 고기 잡으러 왔다 정착했다고 하는데 후손이 남아 있지 않고 1678년 제주 고씨가 들어와 살며 후손들이 남아 있어 입도조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11시에 가까워진 시각이라 일단 숙소를 정하고 점심 식사를 한 뒤 섬 트레킹에 나서기로 한다.


선착장 바로 뒤편 언덕 위 숙소 단지에 도착했는데, 식당들은 문을 닫았고 모텔 주인들도 보이지 않는다. 오늘 바람이 심해 배가 뜨지 않아 관광객들이 들어오지 않을 것으로 알고 공무를 맡은 사람들 빼고 홍도 주민들이 모두 육지로 나갔다고 한다. 


총각 혼자 지키고 있는 섬사랑모텔에 숙소를 잡고 뒷 모텔 식당에서 뽈락구이와 갈치조림으로 점심 식사를 한다. 후박나무껍질로 끓인 물이 참 맛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섬 바로 트레킹에 나선다.   






※ 홍도 안내도


네이버 지도 편집




대밭목 죽항마을 뒤편에는 흑산초등학교 홍도분교가 자리잡고 있다.






홍도 분교에서 바라보는 홍도 탐방로. 섬이 고치를 닮아서인지 고치산이라 부르는데 최고봉은 깃대봉(367.8m)으로 홍도2구(석촌) 마을까지 탐방로가 이어진다.





탐방로를 오르며 바라본 남서쪽 양산봉(232m)





홍도 선착장, 멀리 홍도 제1경인 방구여(남문바위)가 보인다.





홍도 2구로 넘어가기 전, 먼저 홍도 앞바다를 바라보며 바닷가 기슭을 가로지르는 오솔길을 돌아나오기로 한다. 길은 내연발전소까지 이어진다.




양지바른 언덕에 자라는 갯쑥부쟁이 근생엽





홍도2구 마을 풍경





마삭줄





산유자나무. 호자나무와 비슷해 보이지만 잎에 톱니가 있는 점으로 구별된다.





구실잣밤나무가 터널을 이룬 해안 기슭 오솔길





구실잣밤나무





절벽으로 난 오솔길, 홍도 방파제와 방구여 풍경이 아름답다.





상록수 숲속에 잎 지는 나무, 소사나무가 넓은 포엽에 담긴 열매를 단 채 군락을 이루고...





홍도항 방파제와 홍도 제1경 방구여(남문바위)





좀굴거리나무






모새나무





좀굴거리나무






큰족제비고사리





가는쇠고사리





홍도항 방파제와 홍도 제1경 방구여(남문바위)





밀사초





홍도항과 양산봉(232m)




H가 사진 찍는 내 뒷모습을...





일엽초





보춘화




춘란(春蘭)이라고도 하는 보춘화는 홍도에서는 아주 흔한 식물이었다고 하는데, 최기철 박사는 <홍도의 자연>에서 섬 사람들은 춘란을 비옷이라고 부르며 이엉을 엮어 지붕 덮거나 해산물을 묶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이곳에서 바다를 끼고 걷는 해안 기슭의 오솔길은 끝난다.






오솔길 끝자락에서 내려다보이는 홍도 열병합발전소






이제 왔던 길을 되짚어 나와 깃대봉을 지나 홍도2구 마을로 갈 차례!



홍도2구까지는 줄곧 산길이다. 깃대봉까지는 상록수림속을 걷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깃대봉에서 잔시 평탄한 능선을 걷다 다시 홍도2구 마을까지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안내도에 따르면 총 3.6km 105분이 걸리는데 식물 탐사를 곁들이니 시간은 거의 두 배로 걸린다. 거기까지 같다 다시 되돌아 와야 하니 최소 5시간은 걸릴 듯하다.





양지바른 언덕에 홍도원추리 새싹이 자라나고 있다.





고치산을 오르며 내려다보는 홍도1구 풍경







동백꽃





고도를 높이자 섬 풍경이 보다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상록수림이 울창한 가파른 산허리를 올라서 선 지점, 홍도의 독특한 신당인 청어미륵이 눈길을 끈다.







아담한 크기의 매끈한 바윗돌 한 쌍을 여자미륵과 남자미륵으로 모신 신당인데, 어느 해 계속된 청어 출어에도 고기가 잡히지 않고 매번 둥근 돌 2개만 그물에 올라와 그 돌을 이곳 전망 좋은 곳에 제단을 만들고 모시자 풍어를 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단다. 홍도에 청어파시가 형성된 영험한 미륵으로 현존하고 있다.


어촌에서는 이와 비슷한 전설이 전하는 신당이 있는 모양인데, 제주도 가마포구 생거리남당이란 신당에도 낚시바늘에 걸려나왔다는 먹돌을 모시고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참고 => http://blog.daum.net/kheenn/15858506)





상록수림 속으로 이어지는 탐방로





그리고 나타나는 구슬잣밤나무 연리지





부부의 금슬, 남녀의 사랑을 상징하는 이 연리지에서 작명한 것인지 울창한 상록수 숲길에는 '연인의 길'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다. 대낮인데도 컴컴한 숲길이라 연인들에겐 더없이 멋진 코스일 듯 싶다.




비늘고사리





열매를 단 좀딱취도 만난다.





섬 전체가 상록수림에 덮인 작은 섬 홍도에는 식물이 545종이나 분포한다고 한다. 보춘화는 물론 나도풍란, 풍란, 석곡, 새우난초, 무엽란 등의 난초류가 자생하고 섬 이름이 붙은 홍도원추리와 홍도까치수염은 물론 영주치자와 흰동백 등의 희귀식물이 자라고 있다. 특히 '설풍녀계곡' 해발 95m의 연못가에 흰동백이 단 한 그루 자생하고 있다는데 그곳이 어느 곳인지...




제2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제3전망대를 지나 정상 깃대봉을 향하는 능선 고갯길에는 땅속 깊이 구멍이 뚫려 있는데 '숨골재'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옛날 한 주민이 절구공이감으로 쓸 나무를 베다 실수로 이곳에 빠뜨렸는데 다음날 고기잡이를 하러 간 곳에서 발견하여 바다 밑으로 뚫려 있는 굴이라 하여 숨골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땅속으로 지하동굴이 이어져 있음을 의미하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울릉도에도 전하는데, 현포리 송곳산 너머 진등대라는 곳의 큰 수직동굴에 빠진 염소가 태하등대 부근 대풍령 바닷가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풍혈이나 다름없어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나오고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나온다고 하는데, 보행로를 위해 일부가 메워진 모습이란다.



일엽초





콩짜개덩굴과 일엽초의 동거. 크고 긴 잎은 일엽초, 작고 긴 잎은 콩짜개덩굴의 생식엽







거목을 덮은 콩짜개덩굴





노적봉으로 흘러내리는 능선 전경





벽옥처럼 아름다운 열매를 단 맥문아재비





숯가마터가 나타나고...




깃대봉 중간 주변에 18기나 있었다는 홍도의 숯가마터. 일제시대까지 숯을 굽던 곳으로 참나무 숯을 구워 식량과 소금을 샀다고 한다. 1925~1935년 사이에 정숙이란 사람이 숯을 구웠다하여 이 가마터를 '정숙이숯굴'로 부르고 있다.




깃대봉 직전





홍도의 최고봉 깃대봉(367.8m)






깃대봉에서 바라보는 풍경



북쪽 능선 방향




동쪽 삼실계곡, 슬픈여 방향




북서쪽 아랫여·독립문바위·외도, 띠섬, 탑섬





동쪽으로 보이는 흑산도. 홍도에서 22km 거리에 있다.






애기일엽초






석위






산부추 열매와 씨앗





홍도2구 석촌마을 앞 섬들과 등대가 조망되는 능선의 봉우리에서 세 명의 동행은 발길을 돌리고 나 혼자 홍도2구 마을로 향한다.





이 등대는 1931년 일제가 대륙 침략에 참여하는 자국 함대를 위해 설치한 것이라 한다.





홍도2구로 내려서는 능선 전경





흑산도






홍도2구로 향하는 능선길로 내려서는데 눈발이 살짝 비치기 시작한다.




능선에서 마을로 내려서는 길은 갈짓자로 이어지고...





곰비늘고사리가 종종 눈에 띄고...






홍지네고사리 군락도 심심찮게 보인다.







마을이 거의 가까워진 골짜기에서 만난 식나무 열매





마침내 홍도2구 마을에 시야에 들어선다.





계곡 주변에는 남오미자가 군락을 이루고 자생하고 있다.






나도히초미





도깨비쇠고비





대풍리(대핑이)로 불렸던 홍도2구 석촌마을로 들어선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외로운 섬, 여느 섬과 마찬가지로 바람이 많은 섬이라 옛집들은 높은 돌담으로 둘러쳐져 있다.




지금은 모두 근대식 재료를 사용한 지붕으로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띠로 지붕을 인 초가집들... 최기철 선생의 <홍도의 자연>이란 글에는 다음과 같이 이색적인 풍경이 표현되어 있다.


10여 명의 부인이 밭에서 김을 매는 광경을 보았다. 출렁거리는 바닷물을 등지고, 산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가파른 비탈밭에서 일하는 그들의 모습은 고스란히 한 폭의 풍경화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들이 가꾸고 있는 것은 감자도, 보리도, 채소도 아닌 띠였다. 담수(淡水)가 없어서 벼농사를 할 수 없는 이 섬에서, 띠는 지붕을 이는 귀중한 재료이다. 띠는 벼보다도 광택이 있어서, 가는 새끼로 곱게 얽은 띠 이엉의 지붕은 무척 아름다웠다. 앞으로 홍도가 아무리 발전되더라도 이것만은 영구히 보존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을로 들어서는데도 인기척조차 없이 고요하다. 갑자기 개 한 마리가 사납게 짖으며 달려오는데 날카로운 이빨까지 드러내고 침입자에게 으르렁대며 노려보는 눈초리가 아주 살벌하다. 그야말로 개무시가 상책이라 생각하고 본체만체하며 내 갈길을 가는데, 이 녀석 끝까지 따라 붙는다. 그러다 내가 돌아서면 움찔하면서도 사나운 모습은 변치 않는다. 마을 안으로 한참 진입한 뒤에야 어느 집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소동은 끝난다.







홍도2구 풍경









방파제에서 바라보는 홍도 서쪽 해안절벽 풍경





멀리 홍도에 딸린 가장 큰 섬인 딴옷섬(단오섬)이 보인다.







홍도2구 전경









앞여와 뒤에 가려진 아랫여와 독립문바위, 외도






홍도 2구 해안을 돌아보는 사이 해가 뉘엿뉘엿 서쪽바다 너머로 지고 거의 5시에 가까운 시각이 되어간다. 되돌아갈 때는 길만 재촉하면 되지만 4km쯤 되는 산길이니 한 시간으로는 벅찰 것이다. 마을 뒤 숲길로 들어서니 벌써 어둑어둑하여 무섬증까지 들고 오라막길로 바쁘게 오르자니 숨이 찬다.



후박나무 겨울눈





능선길에서 만난 장구밤나무 열매





깃대봉 능선길





줄사초일까...






다시 깃대봉. 5시 30분 무렵...





모람





가는쇠고사리






6시 조금 넘은 시각에 먼저 돌아와 식당에 자리잡고 있는 동행들과 만나 저녁 식사...





저녁 식사 후 숙소에서 가볍게 맥주 한 잔 나누며 여행 둘쨋날밤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