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

눈보라속 제주 올레 4코스(표선-남원포구) 걷기

모산재 2016. 12. 29. 13:56


S형 집에서 새벽 두 시까지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잠에서 깬 아침 주먹만한 눈발이 펄펄 나부끼며 내리고 있다. 


오늘 저녁은 또 L형네로부터 초청을 받아 H와 함께 올레 제4코스(표선 해비치해변-남원포구)를 걸어서 가기로 한다. 이곳 세화리에서 의귀리까지 직접 걸어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눈 오는 날 길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중산간 길을 걸어가는 것이 위험할 듯도 싶어 해안을 따라 올레길을 걷기로 한다.




눈 내리는 S형 집 풍경





아침 식사를 하고 늦이막이 집을 나선다. S형이 제4코스 출발점인 표선 해안까지 픽업을 해 준다.



제4코스는 23.6km로 제주올레 중 가장 길고 지루한 코스로 알려져 있다. 이 중 이곳 해비치호텔에서 가마포구(가마리개 또는 가는개) 쉼터까지 5km 구간은 장애인들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휠체어 구간으로 지정되어 있다. (제주올레 23 코스 중 휠체어 구간은 중10개 코스의 일부에 지정되어 있는데, 전체 구간 총38km로 제주올레 약10% 정도이다.)



멀리 해비치호텔을 뒤로 하고 눈발 속으로 출발...





꽃을 피우고 있는 갯쑥부쟁이





15분쯤 걸어서 불턱 GH를 지나고...





하얀언덕 GH 앞 중계탑






그리고 이내 와하하 GH도 지난다. 올레 초창기부터 있었다는 GH...






와하하 GH를 지나 해양수산연구원 앞 해안, 갈매기떼들이 날아다닌다.





갑자기 함박눈이 펄펄 날리기 시작하고 ~







바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펑펑 쏟아지는 눈발~~







표선 해녀의집 식당을 지난 해안에는 시야를 가릴 정도로 하염없이 폭설이 쏟아진다.






같은 방향으로 눈보라속 올레길을 걷는 사람은 오직 이 중년의 남자 한 사람을 만났을 뿐이다.





먼저 출발하여 걸어가는 사나이의 뒷모습을 좇으며 해안길을 걷는다.







가마리(세화2리) 가마포구 해녀의집 식당이 모습을 보이고... 





해녀의집 맞은편에 자리잡은 생거리 남당이라는 신당을 만난다.




생거리남당 안내문




안내문에 따르면, 이 신당의 시초는 약 200여 년 전 이곳 가마포구(생거리포구)에 어선들의 출입항에 편의를 주기 위하여 점포를 마련한 것이 시초로 아래와 같은 전설로부터 신당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150여 년 전 안씨, 홍씨, 김씨 세 하르방이 고기를 잡으러 갔는데, 낚시를 하던 중 낚시 바늘에 먹돌이 올라와 처음에는 무의미하게 버렸는데, 세 번씩이나 같은 먹돌이 낚시 바늘에 걸려 올라와 세 하르방은 이를 이상히 여겨 포구내로 먹돌을 가져와 며칠을 고민하다가 신성하게 모셔야겠다는 생각에 굼부리(마을 뒷산)에 가서 좋은 돌을 골라 집 형상의 상판이 되는 돌을 정성껏 다듬어 먹돌을 상판 안에 모시고 가마포구(생거리) 주변 공터에 모시게 되었다 한다. 이것이 시초가 되어 어부들의 연중 무사안녕을 비는 남당으로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다.



고기를 잡다 같은 돌이 여러번 걸려들어 신으로 모신다는 이런 전설은 홍도에도 전하고 있어 흥미롭다.


현재의 신당은 2008년에 보수하였다는데, 콘크리트 건물 내부는 안쪽에 그리 별스런 특징이 없는 먹돌을 모셔 놓은 모습만이 눈에 띌뿐 단순 소박하기만 하다.





함박눈 내리는 가마포구 풍경






가마포구가 끝나는 곳에서 눈보라 속으로 진행하다 해안으로 이어지는 올레길을 놓치고 직진하면서 1132번 큰도로로 들어서 버리고 만다. 올레길은 저 아래 가마리개를 가로질렀어야 했는데...



가마교에서 돌아본 가시천 하구, 가시리에서 흘러내리는 이 하구를 가마리개라 부른다.





세화2리 마을회관 앞을 지나 걷는길, 가로수 먼나무 붉은 열매





샤인빌럭셔리리조트를 지난다.





큰도로 아래 호젓한 사잇길로 걷다가...





사잇길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해안 올레길로 접어든다.





S형으로부터 전화가 와 L형이 점심을 같이 먹자는 연락을 받았다며 의사를 묻는다. 저녁에 만나기로 하고 집을 향해 걷고 있는데, 점심까지 또 같이 하자니... ㅎㅎ 분위기 파악도 못하는 사람...


올레 제4코스 중 유일하게 해안을 벗어나 토사봉(토산봉)으로 들어서는 구간 직전에 멈추는 바람에 토사봉 코스는 생략되고 만다. 



어쨌든 그러자 하고 길을 멈추고 '남쪽나라횟집'이란 식당에서 몸을 녹이며 차를 한잔 마시며 픽업 오기를 기다리다, 4km 이상 건너 뛰어 서쪽 태흥포구로 가서 점심을 먹는다. 제주도 올 때마다 몇 번이고 들렀던 식당에 L, S, J 부부가 모두 모였다.





점심식사 후 태흥포구로부터 올레길 계속~.



태흥2리 옥돔마을





태흥 해안 풍경







패랭이꽃






이건 뭐지...?





모르는 사이 잠시 하늘이 환하게 개고 멀리 바다의 수평선이 말끔히 모습을 드러낸다.





건너편 태흥1리 쉼터, 뒤편으로 '어부와해녀마을' 식당이 어슴프레 보인다.






의귀리에서 흘러내리는 의귀천 하구, 태흥교가 가로지르고 있다.





의귀천





태흥1리 쉼터, 어부와해녀마을 식당





쉼터를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벌포연대~.





연대(煙臺)는 돌탑을 쌓아 올려 그 위에 불을 피워 연기로 이웃 연대와 교신하는 시설이다. 고려말과 조선초에 극심했던 왜구의 노략질로 인해 제주 해안 전역을 잇는 38개 연대가 생겨났다고 하며, 해안으로 침입하는 적을 발견하면 불 또는 연기를 피워 수군이 있는 곳까지 릴레이로 알리는 역할을 했던 곳이다. 연대의 높이와 너비를 각 10자로 되어 있다.


제주도 내 연대중 제주목에 소속된 연대는 18개소, 정의현에 소속된 연대 11개소, 대정현에 소속된 연대 9개소로 모두 38개소이다. 제주목에는 두모연대배령연대마두연대죽도연대우지연대귀덕연대애월연대남두연대조부연대↔수근연대별도연대조천연대왜포연대함덕연대무주연대좌가연대입두연대남두연대↔정의현의 오소포연대와 상응한다. 정의현에는 오소포연대↔협자연대↔말등포연대↔천미연대↔소마로연대↔벌포연대↔금로포연대↔우미연대↔보목연대↔연동연대↔변수연대↔대정현의 마희천연대와 상응한다. 대정현에는 마희천연대↔대포연대↔별로천연대↔당포연대↔산방연대↔무수연대↔서림연대↔우두연대제주목두모연대와 상응한다.  <출전 :  제주디지털문화대전>




태흥1리 해안 풍경






남태교를 지나 남원포구가 가까워질 무렵...





드디어 남원읍 도착





남원읍 통합마을 안내도





남원포구 풍경






먼나무 열매





올레 제4코스는 끝나고 1118번 도로를 따라 의귀리로 가는 길,

햇살조차 환하게 비치며 하늘은 거짓말처럼 파란 얼굴을 보인다.





서중천을 건너고...





환하게 맑아진 풍경 속 대로를 걷는다.





그 길 곁, 들여다본 귤밭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과잉생산으로 이 많은 귤들이 팔리지도 못하고 보상금이라도 받기 위해 귤밭에 버려져 있다.





변화무쌍한 제주 날씨,

환하게 개었던 하늘이 금세 얼굴을 바꾸고 천지를 구분하기 어려운 눈발에 가려진다.





교통은 거의 끊기다시피하고 엉금엉금 기어가는 자동차 한 대...





마침내 의귀리가 눈앞에 모습을 보이고...





어디고 무사한 곳이 없었던 중산간마을, 4.3 당시 의귀리의 아픔을 기록한 안내문이 먼저 발길을 붙든다.





의귀리는 1926년까지 서중면사무소가 있었던 남원읍의 중심마을이었다고 하는데, 의귀초등학교는 1948년 말 제2연대 1대대 2중대가 주둔했던 곳. 희생자는 25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토벌이 본격화되면서 이들은 매일같이 주변 수색에 나섰고 숨어 있는 주민들을 발견하면 즉시 총격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부상을 입거나 잡힌 사람들, 살려준다고 하여 귀순한 사람들은 학교 창고에 수용되었다. 하지만 1949년 1월10일 젊은 청년들 30명이 1차 총살되었다. 이들 주민을 구출하려는 것이었는지 1949년 1월12일 무장대가 주둔지를 습격하였지만 대패하고 말았다. 이날 교전 중에 군인 4명이 죽고 무장대 수십 명이 희생되었다. 그 보복으로 학교에 수용됐던 주민들 80여 명이 군인들에 의해 집단 총살되었다. 한 주민은 "채 이름도 짓지 못한 생후 15일 된 어린 동생이 어머니 품에서 같이 죽었다."고 증언했다. 군인들은 그 사건 직후인 1월 20일 이곳에서 철수하여 태흥리로 이동했다고 한다.






오후 4시 30분경 L형의 집에 도착.


세화리의 S형 부부와 홀로 자전거 일주 여행에 나선 L형, O형도 모두 모이기로 했으나 폭설로 도로가 마비되면서 오지 못한다. L형 집에 머물던 J 부부와 함께 L형 부부가 차려 놓은 산해진미에 술잔을 주고 받으며 새벽녘까지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다 잠이 든다.

 


이 날부터 내린 쉬지않고 계속 쏟아진 폭설로 제주도는 지상 교통은 물론 공항조차 마비되어 관광객들이 수일간 공항 대합실에서 대기하며 과일박스를 깔고 잠을 자야 하는 초유의 대혼란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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