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괴산 연풍, 새재에서 흘러내리는 가을 수옥폭포

모산재 2016. 10. 18. 22:13


수안보에서 연풍으로 가는 국도 중간 지점, 원풍리 골짜기에는 수옥폭포(布)라는 아름다운 폭포가 있다. '옥으로 헹구는' 폭포라는 뜻이니 조령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옥이 되어 떨어지는 폭포라는 의미이겠다.




수옥폭포 입구. 왼쪽 공터 위로 수옥정이라는 정자가 살짝 보인다.





높이 20m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는 울창한 숲속에 자리잡고 있다.


폭포수의 물줄기는 조령 제3관문에서 흘러내리는 계류, 3단 폭포라는데 상류에 깊은 소를 이루고 있는 작은 폭포가 자리잡고 있다. 


폭포 암벽의 중간에는 수평으로 깊게 패어져 있어 떨어지는 폭포수 물줄기를 뒤편에서 감상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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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 앞에 있는 수옥정은 원래 1711년(숙종37년) 연풍 현감으로 있던 조유수라는 분이 숙부인 조상우(1640~1718)를 기리기 위해 지은 것이라 한다. 조상우는 숙종 때 우의정을 지낸 분으로 경사()에 밝고 글씨와 그림에 뛰어났다.


예전의 정자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1960년 지역주민들이 괴산군의 지원을 받아 팔각정을 세웠다.









조선 후기의 문신 임수간이 1711년 막부의 제6대 장군 도쿠가와 이에노부(宣)의 습직()을 축하하기 위해 통신부사로 일본을 다녀온 사행기 <동사일기(東槎)>에는 수옥폭포에서 풍류를 즐겼던 기록이 남아 있는데, 수옥폭포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수옥정은 깎은 듯한 석벽이 삼면에 둘렀고 고목이 울창하게 뒤얽혔다. 공중에 달린 폭포는 10여 길이 넘고 가루분처럼 튀는 물방울을 보니 마치 눈이나 서리 같고, 폭포수는 절구질하듯 돌항아리에 그대로 쏟아져 내려 조그마한 못을 이루었다. 그리고 바로 곁에 조그마한 정자가 있으니 이것은 조의중(, 조유수의 )이 창건 한 것이다. 못가에는 판판하고 널찍한 반석이 있어 마치 궁중의 무대 같고 족히 백여 명은 앉을 수 있다.




고려 말기에는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해 이곳으로 피신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수옥정(玉亭)' 등 새겨진 글발들 






암벽에서 바라본 폭포수





놀랍게도 절벽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 가는잎향유가 물줄기 너머로 보인다.







폭포 위







상단의 2단 폭포 중 아래쪽 폭포





3단폭포 중 맨 위의 폭포






사실인지 알 수 없으나 이곳 상류의 깊은 소는 조유수가 사람을 시켜 물을 모아 떨어지게 하기 위하여 파놓은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암벽에 핀 구절초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