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일기

솔나리 꽃 피는 괴산 이만봉의 여름 풀꽃나무 산행

모산재 2016. 7. 14. 01:01


갑자기 솔나리 꽃이 보고 싶어져 집을 나섰다.


솔나리를 대면해 본 지 꼭 10년! 높은 산이 아니면 만나볼 길 없는 꽃, 문경 새재가 멀지 않은 이만봉을 가기 위해 동서울 터미널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하는 충주행 버스를 탄다. 열대야 수준은 아닌데도 잠을 설쳐 버스에서 잠깐 졸았는가 싶은데 충주에 도착했다. 



8시 50분, 10분쯤 기다리니 연풍을 경유하는 문경행 버스가 들어선다. 수안보를 지나 9시 50분을 좀 지난 시각에 문경 새재를 넘기 전 연풍 정류소에 도착해 나와 어느 젊은 아주머니만을 떨어뜨리고 휭하니 사라져 버린다. .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들어선 듯, 버스정류소 건물 한 채만 덩그러니 서 있는 풍경이 강렬한 인상으로 눈동자에 들어선다. 일제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격자식 유리 창문... 명색이 면소재지이건만 정류소는 마을에서 동떨어진 외진 장소에 자리잡고 있다.






일단 택시를 잡기 위해 면소재지 중심가로 걸음을 옮긴다.



경작지 주변에 가시상추가 상추와 거의 다름없는 노란 꽃을 피우고 있다.





연풍면사무소를 지나고...





연풍중학교 앞을 지나 얕은 고개를 내려서니 연풍 향교가 모습을 보인다.




지금은 면소재지로도 작아 보이는 아주 작은 시골마을로 퇴락했지만 조선시대의 연풍은 동헌과 향교를 둔 엄연한 독립 고을이었던 곳. 정조 때(1792~1795) 단원 김홍도가  현감을 지낸 고을이기도 하다.




택시를 타고 분지 저수지 아래에 도착하니 10시 15분.


야생화 탐사를 온 것으로 보이는 차량들이 여러 대 서 있고, 몇몇 사람들은 산행 준비를 하고 있다.






저수지 제방 언덕 곳곳에 타래난초와 패랭이가 꽃을 피우고 있다.





지금 오를 이만봉은 해발 989m의 산, 괴산과 문경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백두대간 소백산맥의 주능선을 이루는 백화산(1063m)과 희양산(999m) 사이에 솟아 있다. 7월에 피는 솔나리꽃으로 유명한데, 나로서는 첫 산행이다.



산길로 들어서서 제일 먼저 만난 일월비비추





땅딸이와 길쭉이랄까, 털대사초와 지리대사초가 기묘한 대조를 이루며 곳곳에서 자라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각시원추리





아직 꽃이 남아 있는 꼬리진달래





타래난초





몹시 무더운 날씨...


기온은 30도를 훌쩍 넘어 햇살은 따갑게 내리쬐는데 바람은 없고 습도는 높아 숨이 턱턱 막힌다. 시루봉까지 거의 직선으로 능선을 타는 오르막길,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이 자꾸만 눈으로 드니 따가워 눈을 뜰 수 없는 지경이다.


면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훔치며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긴다.




깃동잠자리, 날개 끝에 검은색 무늬가 특징이다.





이 산엔 유난히 산조팝나무가 흔하다.





등로 아래 숲으로 보이는 이 나무는 짝자래나무 수그루지 싶다.





메마른 등산로는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조금씩 습해지고 공기도 시원해진다.




병아리난초가 모습을 보이고...





시루봉 삼거리에서 멀지 않은 곳 작은 절벽에서 처음으로 솔나리를 만나 뒤태를 구경하고...





좀더 싱싱한 꽃을 보이는 꼬리진달래도 만난다.





전체가 쿠키처럼 다갈색이고 자루가 늘씬한 이 버섯...


고동색우산버섯이지 싶다.





산수국도 흔하게 보인다.





궁금한 사초 하나...


열매의 부리가 뾰족하게 긴 것 등 전체 모양이 개찌버리사초와 비슷한데, 암꽃이삭이 고개를 숙인 모습이 낯설다.





정오 직전, 시루봉과 이만봉 갈림길에 도착





꽃을 피우기 시작한 흰여로






산수국





말나리





뜻밖의 곳에서 두메닥나무를 만난다.




한눈에 서향을 연상시키는데, 같은 팥꽃나무과에 속하기 때문이다. 열매가 안 보여 수그루인가 했는데, 집에 와서 보니 녹색의 열매 두 개가 사진 속에 자리잡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비로소 백두대간 능선길로 오른다.





이곳 바위 위에 앉아 허기를 달래기 위해 요기를 하고 있는데,

조흰뱀눈나비로 보이는 나비가 주변을 바쁘게 날아다니며 눈길을 끈다.




이로부터 능선길 내내 솔나리와 함께하는 조흰뱀눈나비를 마주치게 된다.




작은 바위능선 위에 흐드러지게 핀 바위채송화 찰칵하고 돌아서는데...





발 아래 절벽에는 솔나리꽃이 기막힌 장관!




내려서서 담아본 솔나리 모습








절벽 한켠에는 병아리난초





나벌이난초





100mm렌즈로 바라본 건너편 조령산 주흘산 방향







열매를 단 선백미꽃





능선을 따라 흔하게 보이는 솔나리






도막으로 내려서는 갈림길





솔나리





개박달나무 열매





회목나무의 꽃과 열매 동시 패션~





돌양지꽃






일월비비추





바위채송화





회목나무 꽃





조록싸리





열매를 단 산앵도나무





꽃대가 잘려진 나리난초.


슬픈 일이다. 정신에 장애가 있는 못난 사람의 이런 흔적을 곳곳에서 만난다.





꽃을 피우기 시작한 꽃며느리밥풀





메마른 능선의 바위 틈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 병아리난초







흰여로





참 만나고 싶었던, 참배암차즈기가 꽃을 피운 모습





솔나리





볕이 드는 풀섶에도 병아리난초가 꽃을 피우고...





깃동잠자리가 자주 눈에 띈다.





외면했던 개갈퀴의 모습을 결국 담아본다.





산꿩의다리





그리고 마침내 이만봉 정상에 이른다. 오후 2시 17분.





솔나리





꽃며느리밥풀





솔나리





흡밀하는 팔랑나비





조흰뱀눈나비





나비연구에 큰 업적을 남긴 조복성 박사에 헌정한 이름인 조흰뱀눈나비는 바로 이 계절인 7월 중순이 전성기라 한다.




곰틀봉 능선에는 자주꿩의다리가 지천이다.






솔나리






곰틀봉 능선에서 바라본 풍경



돌아본 이만봉과 시루봉 능선






왼쪽은 백화산 오르는 능선, 오른쪽은 뇌정산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봉암사 





꽃이 져버린 나나벌이난초





병아리난초






조흰뱀눈나비





원추리





11송이의 꽃을 단 킹왕짱 솔나리를 마지막 순간에 만난다.





3시 20분경 사다리재 도착.


한 무리의 야생화 탐사객들이 음식을 먹으며 쉬고 있다.



안말로 내려서는 등로는 한동안 너덜길로 이어진다.





헛꽃을 달지 않은 산수국 꽃도 다 있구나...





중간 무덤이 있는 개활지에서 하늘말나리가 꽃을 피우고 있었지만 패스!




계곡을 만나 땀을 씻고 잠시 휴식을 취하다 길이 거의 사라진 계곡을 더듬어 내려온다.




뾰족한 열매를 단 개다래




벌레가 기생한 열매도 보이는데, 이를 말린 것을 한방에서 목천료자(木天蓼子)라 한다. 거풍·통기의 효능이 있어 중풍이나 안면신경마비, 산통이나 요통, 통풍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복분자딸기는 아직도 이런 모습... 가을이 되어야 까맣게 익을 것이다.






계곡을 다 내려온 시점에 시원한 계곡물에 땀을 훔치려다 핸드폰이 물에 빠지는 불상사...



안말이 모습을 드러내고...






계곡 입구 구멍가게를 열고 있는 집에서 캔 음료수 하나 마시고 택시를 부른다.



10분도 지나지 않아 도착한 택시를 타고 출발하는데, 하산길에 앞서거니 뒷서거니 했던 어느 부부가 마침 걸어가고 있어 태워주려 했더니 기사는 거부한다.


"요즘 손님이 없어 먹고 살기 힘든데 저 손님도 따로 택시를 불러 이용해야 한다."며 거부하고 쌩~ 달려 버린다.


참 삭막한 인심이다.




연풍버스정류소에 도착하니 문이 열려 있는데, 안에서 한 아저씨가 나오더니 어딜 가느냐 묻는다. "충주"라고 했더니 4천원을 내란다. 뜻밖에도 이 아저씨가 정류소에서 매표소 운영을 하고 있는 거였다. 


손님이 별로 없어 때론 문을 닫기도 했지만 쭉 운영을 해 왔다고 한다.





원래 문경이 고향이었는데 부친이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청년 시절 이후부터 이곳 정류소 부근에서 살며 정류소를 운영하게 되었다 한다. 






이용하는 손님이 거의 없는 외진 정류소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적적할 것인가. 묻지도 않은 정류소에 얽힌 이야기를 듣느라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른다. 창틀은 일제시대에 소학교에 쓰던 창을 가져와 달았던 것이고, '연풍직행정류소'라는 커다란 간판은 낡은 건물 벽의 페인트 칠을 하기 위해 내려서 벽 옆에 세워두었는데 고물장수가 싣고 가 버린 모양이라고 못내 아쉬워 한다. 혼자서 들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것인데, 라는 말을 세 번이나 되뇌며...



그러구러 4시 45분 충주행 버스가 들어오고 있어 아저씨와 작별 인사를 나누며 손을 흔들어 세우는데, 버스 기사는 힐끔 쳐다보고 속도를 줄이는 듯하더니 무슨 일인지 다시 속도를 내고 휭하니 달아나 버린다. 세상에 이런 황당한 일이 다 있을까!


지켜보던 정류소 아저씨도 뭐 저런 놈이 다 있나! 하고 혀를 찬다. 



다음 버스를 타려면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는데... 망연자실하고 있자니 수안보행 완행버스 하나가 금방 들어선다. 수안보에 가서 서울행 버스를 타자는 생각이 들어 버스를 세워 탄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4천원을 지불한 충주행 버스표는 그냥 날려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