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신록 아름다운 내장산, 백암산 종주

모산재 2016. 5. 4. 22:55


지난 주말에는 강원 북부 곰배령을 다녀왔으니, 메이데이를 맞이하는 이번 주말엔 남쪽으로 가고 싶어졌다.



마침 모 산악회에서 내장산 백암산 연계 산행을 한다 하여 도전해 보기로 한다.


20대 청춘 시절의 어느 늦가을, 대학 스승 님과 선후배 제자들이 모여 백양사에서 내장사까지 트레킹을 했던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곳... 하지만 그건 백양사 앞 야산을 넘고 들판을 가로지르다 주막을 만나 막걸리도 마시며 걷던, 그야말로 혈기방창한 문학 청년들의 낭만 충만한 집회이자 행진이었던 것!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러 문학에 대한 열정은커녕 낭만적 감성조차 증발해 버린 피폐한 영혼을 다스리기 위해 이 산 저 산의 생명과 정령을 찾아 헤매고 있는 나는 과연 그 시절의 나와 같은 사람일까...?



눈에 익은 장성호를 지나자, 차창에 백암산과 내장산이 한 폭의 그림처럼 들어 앉는다.





오른쪽이 내장산이고 왼쪽이 백암산!


오늘 산행은 두 산 사이의 골짜기에 자리잡은 대가 마을에서 출발하여 오른쪽 내장산 최고봉인 신선봉에 올라 반 시계 방향으로 돌며 오른쪽 백암산 능선을 타고 그 너머 쪽 백양사로 하산하게 된다.



차창으로 바라보는 백암산 능선과 최고봉 상왕봉





대가 마을 입구, 대가제라는 저수지 제방 옆에서 차는 멈춰 섰다.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내장산의 최고봉인 신선봉(763m). 거기서부터 흘러내린 화개산(617m)이 제방 옆에 우뚝 솟아 있는데 싱그러운 신록이 드리운 저수지의 물빛도 온통 초록빛이다.  






산행은 바로 대가제 안쪽, 정면으로 보이는 신선봉을 오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대가제 풍경






순창군 복흥면 봉덕리 대가 마을.


말이 마을이지 저수지 입구에 두어 집, 저수지 안쪽에 두어 집 정도의 민가가 있을 뿐이다.





대가마을에서부터 신선봉까지는 1.8km. 정상을 향해 오르막길만 이어지는 깔딱고개라 한 시간 정도 숨을 몰아 쉬며 치고 올라야 한다.





내장산 백암산 산행 안내도



산행코스 : 대가 마을 - 내장산(신선봉) - 까치봉 -소등근재 - 순창 새재 - 백암산(상왕봉) - 백학봉 - 백양사 (약 14.5km)




대가 마을에서 신성봉으로 가는 길






분홍 빛이 도는 금창초의 변종인 내장금란초를 처음으로 만난다.


금창초와 나란히 피어 있는 걸 보면 이 지역에서 유난히 분홍색 변종이 자주 나타나는 모양이다. 조개나물 군락 속에 붉은조개나물이 종종 발생하듯이...





신선봉 정상에 이르는 오르막길 내내 눈길을 끌 만한 풀과 나무가 없다. 정상 부근에 이르렀을 때 흰 꽃을 피운 쇠물푸레나무들만이 보일 뿐...






정상 가까운 바위 위에서 바라본 대가 마을과 대가제, 그리고 백암산 전경





신선봉 정상 부근 오르막길 





조망 바위 위에서 바라본 화개산과 대가제, 백암산





동쪽 골짜기에는 화양제





내장산 최고봉 신선봉 정상(763m)






신선봉 정상 표지석은 인증 사진 찍는 사람들이 둘러 싸고 있어, 그냥 가던 길을 재촉하기로 한다.




능선길 주변엔 잎 모양으로 보아 일월비비추이거나 산옥잠화로 보이는 비비추들이 무리지어 자라는 모습이 흔하게 보인다.






철쭉꽃이 환하게 피기 시작했다.





정금나무도 흔한데 이제 깨알 같은 꽃차례를 달기 시작하는 모습...





큰조개나물로도 불리는 자란초는 아직 꽃을 피울 생각이 없는 듯...





맨 앞장을 섰다는 생각으로 식생을 살피며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신선봉을 다 내려선 안부에 도착한다. 그런데 그곳에 서 있는 이정표를 보고서야 엉뚱한 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깨닫는다.


신선봉 정상에서 좌회전했어야 했는데, 살피지 않고 직진하면서 연자봉과 장군봉, 내장사 방향으로 들어서 버린 것이다. (등산 안내도에는 연자봉 앞에 문필봉을 표시해 놓았는데 문필봉이라 보이는 봉우리는 없다. 다른 산행 안내도에는 신선봉과 까치봉 사이에 문필봉 표시가 되어 있으니 혼란스럽다.)




황급히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 하니 맥이 쑥 빠진다. 다시 급한 오르막길로 오르니 숨조차 턱턱 막히지 않는가.



그 렇게 죽을 둥 살 둥 신선봉에 도착하니, 신선봉은 텅 비어 있다. 그 덕에 신성봉 정상석은 온전히 내 차지가 되었고, 이런 깨끗한 정상석 인증 사진을 얻게 되었다.





다시 정상에 서니 마음은 느긋해졌다. 아까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지나쳐 갔던 정상 풍경을 돌아볼 여유도 생겼다.


나중 된 자 먼저 된다는 성경 말씀이 맞아 떨어졌구나!  졸지에 맨 꼴찌가 되었지만 이제는 한동안 내리막길만 기다리고 있은니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다.

 


내장사를 북쪽에서 둘러싸고 있는 망해봉 - 불출봉 - 서래봉 능선. 바로 앞의 암봉은 영취봉인 듯...





이정표를 보니 가야 할 까치봉과는 반대 방향으로 갔던 것...





이 즈음의 계절에 꽃보다도 더 아름다운 것이 바로 숲을 연초록 융단처럼 꾸미고 있는 애기감둥사초.





까치봉으로 향하는 능선길에서 바라보는 신선봉-연자봉-장군봉 능선





일월비비추가 참 흔하게 자라네요~.





까치봉을 향하는 길목의 계단





돌아본 신선봉(763m)-연자봉(675m)-장군봉(696m)





헬기장을 지나고...





그리고 까치봉 삼거리에 도착한다.




까치봉 조망 바위





까치봉(717m), 연지봉(671m), 망해봉(676m)으로 이어지는 내장사 북쪽 능선





북쪽으로는 불출봉(622m)과 서래봉(624m) 능선이, 남쪽으로는 신선봉-장군봉 능선이 둘러싸고 그 사이로 영취봉 능선이 흘러내리는 교합 지점에 내장사가 자리잡고 있다.


영취봉에 묻혀서 내장사는 전각의 극히 일부 지붕만 보일 뿐인데,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서래봉 아래에 백련암은 보인다. 바로 아래 골짜기는 금선계곡.




왼쪽 멀리 서래봉(624m), 가운데에 솟은 영취봉, 오른쪽 장군봉(696m), 바로 아래는 금선계곡





쇠물푸레나무 꽃





그리고 순창새재까지 내리막길이 대부분인 비교적 평탄한 능선길인 소등근재로 접어든다.


'소등근'이란 말의 뜻이 뭔지... 어떤 산행 안내도에는 '소죽음재'라고도 되어 있는데...




소등근재로 내려서면서 되돌아본 까치봉 능선





각시붓꽃은 대부분 지고 있는 상태...





미나리냉이의 계절인데, 흔한 꽃이라 지나치다 한 번 눈길 준 것이 노출 실패...





그리고 곳곳에서 지루한 조릿대(산죽)밭 길이 이어진다.





다시 돌아서서 신선봉-까치봉 능선을 바라본 풍경




신선봉-화개산 능선





백암산 상왕봉-백학봉 능선





은분취 어린풀





꽃을 피우기 시작한 땅비싸리





오돌토돌 짧은 가지가 특징적인 대팻집나무도 만나고...





순창새재로 향하는 대가제의 상류 계곡은 뻐국나리가 대규모로 자생하고 있다.






일월비비추





참꿩의다리 어린풀





순창새재로 오르는 골짜기에는 벌써 참회나무 꽃이 피었다.






애기감둥사초가 만드는 싱그러운 풀밭의 매력에 자꾸 빠져들어 자꾸 렌즈를 겨눈다.





골짜기는 온통 뻐꾹나리 새싹들로 가득...






그리고 순창 새재에 도착한다.


순창새재는 내장산과 백암산을 잇는 해발 505m의 비교적 낮은 고개인데, 널리 알려진 서쪽의 장성 새재(276m)에 비해서는 아주 높은 편이다.




여성 산악대장 로즈 씨는 코스를 설명하면서 실수로 문경새재라 말했지만, 이곳 순창 새재는 '새가 넘는 재'라는  뜻의 조령(鳥嶺)인 문경 새재와는 뜻이 다른 '갈대가 많은 재'라는 노령(蘆嶺)이다.


어릴 적 지리 시간에 배운 노령산맥은 바로 이 새재의 이름을 딴 것...


추풍령에서 시작하여 금산 대둔산(大芚山, 878m), 완주 운장산(1,126m), 진안 마이산(667m), 김제의 모악산(母岳山, 793m), 정읍 내장산(763m), 영광 불갑산(516m) 등으로 이어지는 저산성 산맥이다. 순창 새재의 서쪽으로 정읍과 장성 사이를 넘는 장성 노령(蘆領, 276m)이 원래의 새재이다.




순창 새재에서부터 백암산 정산으로 향하는 완만한 능선길이 지루하게 이어진다.





참으로 지루한 산길이다.


호남의 비교적 낮은 산지여서 처음 출발할 때는 다양한 식물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부풀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흔한 족도리풀 하나 만나지 못하고 개별꽃 종류조차 거의 보이지 않는 등 풀꽃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쇠물푸레나무와 철쭉만 보일 뿐...



이 지점에서 대장 로즈 씨와 한동안 대화를 나누며 걸었는데, 뜻밖에도 로즈 씨조차 이보다 지루한 길은 없을 거라 말한다. 풍경도 지루하고 길도 변화가 없어 지루하단다. 가을 단풍 때도 먼지만 날리는 곳이란다. 그런데 어째서 이 코스를 대장이 되어 왔단 말인가요... 설명해 보소!


다른 코스들은 대부분 희망자가 없어 취소되었는데 이 코스에는 두 대의 차가 왔으니 도대체 이 산의 매력이 뭐란 말이지?




노루발은 이제 꽃대를 올리고 있는 중...





서울에서도 꽃을 보았던 노린재나무는 아직도 꽃봉오리 상태...





철쭉





병꽃나무





순창새재와 상왕봉의 중간 지점을 지나고...





뜻밖에 비목나무꽃이 달려 있어 놀란다.


비록 철을 지나긴 했지만 오래도록 비목나무꽃을 만나지 못한 터라 너무 반가워 꽤 시간을 들여 이 녀석과 논다.  






노루발





백암산 정상 상왕봉 부근에서 돌아본 건너편 내장산 주릉(까치봉-상왕봉-장군봉)과 그 아래 대가제 저수지






쇠물푸레나무 꽃





서울 우리 집 앞 대모산에도 이미 활짝 핀 팥배나무 꽃을 겨우 이 한 송이 만난다.





린재나무, 비목나무도 그랬지만 팥배나무까지 이런 걸 보면 올해의 날씨는 참으로 종잡을 수 없고 혼란스럽다.


3월에 20도를 넘는 날씨가 계속되기도 했고 4월에 30도를 육박하기도 했고 중부지방이 남부지방보다 따뜻한 날도 적지 않았으니 풀과 나무들도 계절과 지역과 무관하게 혼란스럽게 피는 듯하다.  




오후 3시 20분경, 백암산 정상 상왕봉에 도착.




백암산의 정상 상왕봉(741m)




이곳 역시 많은 사람들이 진을 치고 돌아가며 인증 사진을 찍고 있어 그 장면을 담고 백학봉으로 직진한다.






지루한 등산로에 오로지 화사하게 핀 철쭉만이 마음을 환하게 달래준다.





산행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벌깨덩굴.


다른 산이었다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텐데 귀한 손님 만난 듯 반갑게 모신다.





거대한 바위 암벽을 돌아가는 길.


이 바위 봉우리를 기린봉이라 표기해 놓은 것도 있고 도집봉이라 기록해 놓는 곳도 있다.


하지만 도집봉은 사자봉 능선의 끝자락에 솟아 있는 봉우리로 기록한 것이 일반적이니 기린봉으로 부르는 게 좋을 듯하다.






어린 죽대 군락





윤노리나무도 아직 꽃봉오리 상태...





선밀나물 꽃도 귀하게 만나고...





각시붓꽃을 또 만나니 반갑고나 !





몇 걸음 앞에 앉았다 다가서면 팔랑팔랑 날아가버리는 얄미운 멧팔랑나비.


요 녀석은 결국 내 끈질긴 파파라치 스토킹 덕에 결국 덜미를 잡혔다.





백암산에서 가장 멋진 전망터라 할 수 있는 소나무 전망터 





사자봉(722,6m)-도집봉 능선과 뒤쪽의 가인봉(677.4m)





그리고 바로 앞에 보이는 729봉.


왜 이 봉우리에는 이름이 없을까...





실청사초





꽃을 피운 애기장구채






 729봉 이정표 





어찌된 일인지 상왕봉에서 백학봉, 그리고 백양사 약사암까지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줄곧 나 혼자 걷는 길이 되었다. 아마도 상왕봉에 비슷한 시간에 도착한 이들은(대장 포함) 상왕봉을 통과하여 사자봉을 거쳐 백양계곡으로 바로 내려선 모양이다.


그 덕에 아주 호젓한 나만의 산행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이제 꽃차례를 달기 시작한 죽대





헬기장을 지나고...






평탄한 내리막길





구암사로 가는 삼거리를 지나 백양계곡과 백학봉 갈림길에 이른다.






그리고 능선의 마지막 봉이리인 백학봉(651m)






돌아본 729봉






드디어 오늘 산행의 종점 백양사 골짜기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곳에서부터는 가파른 내리막길.


등산로의 대부분은 수직에 가까운 가파른 나무 계단으로 되어 있어 아찔하다.





이 구간은 낙석과 낙빙으로 사고 위험성이 커서 해빙기(2월~3월)에는 출입을 제한한다고 한다.








뜻밖에 이곳에서 남서 해안지역에서 만나는 큰천남성을 만난다.









모습을 드러내는 백양사






그리고 또 계속되는 계단길...






결실한 나도물통이





그리고 백양사 경내로 내려선다.



영천굴 영천수









산행하면서 비워 버린 두 개의 페트 병에 달고 시원한 영천수로 가득 채우고 약사암으로~. 






약사암







광대수염





약사암, 백학봉과 백양계곡 갈림길





백양사 본전으로 들어서는 극락교





백양사 천왕문






백양사에서 바라보는 백학봉






초파일을 앞두고 법당 마당에는 연등이 가득 걸려 있어 대웅전의 전경을 담을 수 없다.





쌍계루 앞 아름다운 계곡 풍경





주차장 옆 계곡 연못의 그림 같은 풍경 




저 건녀편에서 두 여인이 무슨 촬영을 하고 있는 모양인지 연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즈넉한 늦은 오후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백학봉





종착점인 백양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후 5시 20분.


주어진 시각보다는 20분 빨리 도착하였다. 상왕봉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 먼저 와 있는 걸 보니 사자봉을 지나 백양계곡으로 바로 내려선 듯...


신선봉을 지나쳐 되돌아 오느라 16km가 넘는 지루한 코스를 6시간여만에 주파한 셈이다. 게다가 수백 컷이나 되는 사진까지 찍으며 예정된 코스대로 완주했으니 만족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아름답기로 유명한 단풍철이라 해도 이 산을 다시 찾을 마음은 생기지 않을 듯하다.





내장산, 백암산 등산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