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다시 찾은 김유정 생가와 문학촌

모산재 2015. 11. 20. 21:56

김유정역에서 강촌역까지 레일바이크와 낭만열차를 타고 보슬비가 내리는 늦가을 풍경 속으로 1시간 30분의 여행을 즐기고 신남면 실레마을 김유정 생가와 문학촌으로 돌아온다.

 

 

불과 4년만에 다시 찾았는데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에 콩과 수수 등이 자라던 너른 밭은 주차장이 들어서고, 야학을 펼치던 움막집이 있던 자리는 야외무대와 전시관 등 낯선 시설물들이 빼곡히 들어섰다.

 

예전의 그 널널한 공간에 소박하게 서 있던 건물들을 왜 지워 버렸는지... 그나마 새로 들어선 건물들도 초가를 흉내내긴 했으나 너무 현대식으로 변형되어서 초가집 특유의 푸근하고 정감있는 풍경과는 너무도 멀어져 버려 시선을 불편하게 한다. 

 

 

 

 

※ 김유정 생가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 남춘천 실레마을 김유정 생가, 김유정 문학촌

 

 

 

 

 

김유정 생가와 문학촌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김유정 작품의 무대인 금병산(金屛山)이다.

 

실레마을 남동쪽,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 아늑한 품을 가진 산이지만 정상 높이는 652m쯤이다. 비단 병풍을 둘러친 듯 아름다운 데서 유래했다고도 하고 임진왜란 때 원호 장군의 군대가 왜군을 격퇴할 때 주둔한 데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실레마을 김유정 문학촌과 금병산(652m)

 

 

 

 

 

김유정이 말하는 실레마을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 리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닫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 같다 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집이라야 대개 쓰러질 듯한 헌 초가요, 그나마도 오십 호밖에 못 되는, 말하자면 아주 빈약한 촌락이다.                                     -김유정 수필 '오월의 산골작이'에서

 

 

 

 

 

김유정 생가 앞에서 바라본 실레마을과 금병산

 

 

 

 

금병산은 김유정 작품에서 빠질 수 없는 무대! 

 

유정은 23세이던 1931년에 이곳 금병산 아래 실레마을로 내려와 야학을 연다. 야학당 이름도 금병산에서 따와 <금병의숙>이라 짓고 농민운동을 펼치고 고향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그려 냈으니, 그것이 바로 <봄봄> <동백꽃> <산골나그네> <산골> <소낙비> <만무방> <금 따는 콩밭> <총각과 맹꽁이> <솥>... 등이다. 

 

이를 기리기 위하여 금병산에는 김유정의 작품 이름을 딴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다.

 

 

 

 

생가 맞은편에 있는 어느 대형 식당에서 닭갈비로 점심을 먹는다.

 

 

 

왼쪽은 식당, 오른쪽으로 야외무대와 멀리 초가지붕을 얹은 생가가 보인다

 

 

 

가을걷이를 하지 않고 내버려둔 콩밭.<금따는 콩밭>분위기를 위한 것이려나...?

 

 

 

 

 

점심을 먹은 뒤 야외무대로 이동하여 해설사로부터 김유정과 문학에 대해 해설을 듣고 독서퀴즈 대회를 잠시 가진다.

 

 

 

 

 

 

 

그리고 잠시 독서퀴즈대회...

  

 

 

예를 들면...

 

1. <봄봄>에서 '나'와' 점순이'의 나이 차이는 몇 살?

 

2. <봄봄>에서 "임마, 봉필일 모판에다 거꾸로 박아 놓지 뭘 어떡해?", "밤낮 일만 해주구 있을 테냐?", "남의 일이라두 분하다. 이 자식, 우물에 가 빠져 죽어."라고 '나'에게 훅닥이는 친구의 이름은?

 

 

1. 작품 속에  "나보다 십 년이 아래니까 올해 열여섯인데 몸은 남보다 두 살이나 덜 자랐다."란 구절이 나온다.

2. 뭉태('솥'이란 작품에도 나오는 이름이다)

 

 

 

 

 

 

그리고 생가로 이동하여 기념 사진을 찍은 뒤 전시실을 돌아보고 생가와 문학촌 전시실을 돌아보는 것으로 문학기행은 끝난다.

 

 

야외무대 바로 앞에 김유정 생가가 자리잡고 있다.

 

 

 

 

 

 

생가 앞에서 기념 사진

 

 

 

 

전시실 내부

 

 

 

 

김유정 동상과 생가

 

 

 

지나치게 높은 대 위에 책을 든 입상을 세워 계몽가나 선각자 같은 인상을 주는데 김유정의 작품 세계와는 그리 어울리지 않은 모습이다. 주변 건물과도 조화되지 않는데, 야학당인 금병의숙과 지나치게 관련시킨 듯하다.

 

원래는 경춘선 전철이 완공되면 김유정역 앞에 이전하기로 하고 세운 것이라 하는데, 김유정역 새 역사가 선 지 벌써 5년이 지났다.

 

 

 

 

 

초가이기는 하지만 김유정 생가는 규모가 대갓집의 풍채를 보인다.

 

바깥에서 보면 'ㅁ 자'형집인데 가운데에 역시 'ㅁ'자형 마당이 들어 있는, 추위를 막기 위한 강원도 특유의 주거방식이다.

 

 

김유정은 가난으로 폐결핵에 걸려 요절했지만 유정이 어린 시절만 해도 대지주로 서울에도 백여 칸 되는 집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부호였다. 유정의 10대조는 대동법을 실시한 김육, 9대조는 숙종의 외할아버지였을 정도로 명문가. 고조부 때 춘천 실레 마을로 이주하고 조부는 춘천 의병 봉기에 재정 지원을 한 배후 인물로 알려지고 있으며 6천석 추수를 하는 대지주였다.

 

하지만 유정이 일곱 살 때 어머니가, 아홉 살 때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집안을 책임지고 있던 큰형이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가세는 급속히 기울기 시작한다. 

 

 

 

봄봄의 한 장면을 표현한 동상

 

 

아 성례구 뭐구 기집애년이 미처 자라야 할 게 아닌가ㅡ?"

"그것두 그래!"

"그래 거진 사 년 동안에도 안 자랐다니 그 킨 은제 자라지유? 다 그만두구 사경 내슈ㅡ."

"글쎄 이 자식아! 내가 크질 말라구 그랬니? 왜 나보구 떼냐?"

"빙모님은 참새만 한 것이 그럼 어떻게 앨 났지유?"

 

 

 

 

외양간과 디딜방앗간

 

 

 

 

 

 

 

디딜방앗간 내부에 전시된 농가 생활용구들

 

 

 

 

 

 

관람객들의 쉼터로 조성한 연못과 정자

 

 

 

 

생가 맞은편 김유정 문학촌 입구, <솥>의 마지막 장면을 표현한 인물상

 

 

 

작품 내용에 비해서 인물상이 지나치게 나이들게 표현된 듯하다.

 

 

 

<솥>의 줄거리

 

아내에게 빌붙어 사는 근식은 역시 빌붙어 사는 남편과 석 달 전에 갈라서고 아기와 사는 들병이 계숙이에 빠져 농민회 총회가 있는 날 아내 몰래 함지박을 들고가 술집에 있는 계숙을 찾았다가 계숙이 농민회에서 떠나라고 해서 내일 떠나게 되었다고 하는 말을 듣는다. 근식은 계숙과 함께 마을을 떠나기로 하고 아내가 자고 있는 틈을 타 자신의 집 부엌에 숨어들어 솥을 훔쳐 나온다.

 

계숙과 잠을 자다 깨어 계숙의 남편이 돌아온 것을 보고 놀라는데, 계숙의 남편은 태평하게 근식이 가져온 솥과 짐을 꾸려 지고서 함께 떠나자고 재촉한다. 근식이 어정쩡하게 서 있는 사이에 근식의 아내가 달려와 계숙과 솥을 두고 몸싸움을 벌인다. 근식은 우리 것이 아니라며 아내를 뜯어 말리고, 아내는 분에 복받치어 그만 눈 위에 털썩 주저앉으며 울음을 놓는다.

 

 

김유정의 작품에는 유난히 들병이가 많이 등장한다. <솥> 외에도 <소낙비> <산골나그네> <안해> <정조> <총각과 맹꽁이>등의 작품에서 남편 있는 여인이 시골 주막으로 돌아다니며 술과 몸을 팔며 생계를 유지하는 들병이로 나온다.

 

 

 

 

 

※ 실레 이야기마을 작품 지(출처 : 김유정문학촌 홈페이지)

 

 

 

 

 

<1코스> 김유정역 - (김유정 문학촌)- 금병의숙 - 소와리골 - 만무방길 - 능선 4거리 - 산골나그네길 - 금병산 정산 - 봄·봄길 - 원창고개(3시간 소요)

<2코스> 김유정역 - 김유정 문학촌 - 산국농장 - 금따는 콩밭길 - 능선 4거리 - 산골나그네길 - 금병산 정상 - 동백꽃길 - 산국농장 - 김유정문학촌(2시간 50분 소요)

<3코스> 김유정역 - 김유정 문학촌 - 금병의숙 -소와리골 끝집 - 만무방길 - 능선 5거리 - 금따는 콩밭 - 제 2광장 - 동백꽃길 - 산국농장 - 김유정문학촌(3시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