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일기

애기송이풀 만나러 간 계곡에서의 야생화 산책

모산재 2016. 4. 18. 22:36


계획을 가지고 떠나는 여행은 만족도가 떨어진다. 들바람꽃 만나러 간 하루가 그랬다.


그저 좋은 산이나 섬 트레킹을 하다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생명들을 만나는 그런 기쁨을 즐겨왔다. 특별히 무슨 꽃을 만나러 잘 나서지 않는 편인데 또 애기송이풀 만나겠다고 새벽같이 집을 나섰다. 짐작되는 목적지까지 정해 놓고 대중교통편까지 미리 알아보았으니 이렇게 정성 들인 나들이는 일찍이 없었지 싶다.



처음 계획은 토요일 출발하려는 것이었는데, 오후에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하루 늦춰 출발. 자고 일어난 아침 하늘은 잔뜩 성난 얼굴인데 바람도 거세다. 


동서울에서 출발,  승객은 겨우 몇 명뿐인데 도로는 뻥 뚫려 가평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예정시간보다 20여 분이나 빠르다.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를 기다리려니 50여 분이나 남아 제법 멀리 떨어져 있는 가평역으로 걸어가기로 한다. 버스가 출발하는 곳이 그곳이기 때문이다.







도착한 지 얼마되지 않아 목적지로 가는 버스가 오는데, 글쎄 고지된 출발 시각을 10분이나 당겨서 출발해 버린다. 차 시간표만 믿고 그 사이에 오는 사람들은 어쩌자고 이러나...





어쨌거나 깊은 골짜기로 차는 달리고 달린다. 꼬불꼬불한 시골길이지만 고속도로 달리는 듯 시원하기만 하다.



차창 밖으로 신록이 짙어가는 산들이 자꾸 눈길을 끈다. 산벚들이 물감을 풀어 놓은 듯 풍경을 화사하게 물들이고 있다.


엊저녁 이곳엔 비가 엄청 내린 듯 계곡물이 힘차게 요둉치며 흘러내리고 있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한 시각도 예정에 비해 20여 분 빠르다.



아, 그런데 작은 동네 앞에 도착한 그곳은 예상과는 달리 막막하기만 한 풍경이 펼쳐진다. 마을 쪽은 물론 건너편을 보아도 내가 찾는 그 꽃이 존재할 듯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구름이 잔뜩 낀 어두운 날씨에다 깊은 골짜기이어선지 공기가 차가워 윈드자켓을 입었는데도 오들오들 떨릴 정도다. 동네를 중심으로 감이 가는 곳을 찾아 두어 번 왕복을 해 보지만 짚히는 곳이 없다. 오늘 정도면 꽃을 찾아 오는 사람이라도 있을 법한데 그런 사람조차 전혀 보이지 않는다.



동네 주민에게 물으니 뭐 꽃 이름조차 알지 못해 설명을 하니 나물로 먹는 것 아니냐고 한다. 그리고는 계곡 건너편으로 들어서 보라는 것이다.



 

계곡물이 차올라 제비꽃이 물 속에 잠겨 버렸다.


그런데 태백제비꽃인 줄 알았는데, 잎 모양이 아주 낯설다. 이게 무슨 제비꽃이냐?






군락을 이뤄 왜소하게 자란 꿩의바람꽃은 꽃의 흔적조차 보기 어렵고...





들바람꽃도 벌써 꽃이 져 버린 모습이다.






이곳의 큰개별꽃은 무슨 까닭으로 꽃잎 하나를 잃어버리고 죄다 6개의 꽃잎을 가졌느뇨?





홀아비바람꽃은 꽃봉오리를 단 채 싸늘한 날씨에 고개를 푹 숙이고 떨고 있다. 





피나물도 마찬가지, 햇살이 비춰주기만 기다리고 있다.






금붓꽃만이 폭우를 견뎌낸 꽃잎을 펼친 채 환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고대하던 애기송이풀을 만난다.






그런데 이뿐! 주변엔 이보다 덜 자란 애기송이풀이 군데군데 자라고 있긴 했지만 꽃봉오리조차 매단 녀석을 볼 수 없다.


애기송이풀을 찾아 헤매면서 눈에 띄는 다른 풀들을 건성으로 담아본다.




물가에는 돌단풍들만 흐드러지게 피었다.





서울족도리풀





태백제비꽃






회리바람꽃





복수초





몇 송이 꽃을 피운 꽃잎은 엊저녁의 비바람에 져 버린 모습...





돌단풍






산괴불주머니





결국 그곳에서는 꽃을 피운 애기송이풀은 찾을 수 없었다.


나중에야 아까 동네 주민이 말한 '나물'이라는 게 얼레지라는 걸 깨달았다. 얼레지가 아주 흔한 모습이었지만 꽃의 색깔이 어두워 특유의 화사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다. '붉은 꽃'이라고 말에 얼레지를 떠올렸을 뿐 애기송이풀을 떠올린 것이 아닌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 골짜기의 상류 쪽 풍경






무슨 버섯이 이런 모양으로 변한 걸까...?





민가 주변에 핀 매발톱꽃





이곳은 아닌가벼...!






그래서 이번에는 아래쪽으로 탐사하기로 하고 처음 출발 지점으로 되돌아가는데, 가평군산림조합인가 뭔가 하는 이름이 박힌 자켓을 입고 카메라를 든 사람을 만난다.


그런데 이 분 말씀은 보다 위쪽에 꽃이 있을 거라고 한다. 하지만 난 일단 더 아래쪽을 탐사하기로 한다.



삿갓나물 대군락






연복초 군락





또 애기송이풀을 만난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꽃봉오리가 보인다.  






꽃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더 아래쪽으로 이동한다.



어느 사이 정오에 가까워지며 날씨가 조금 환해졌다. 하지만 바람이 심하게 분다.




피나물.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어 꽃들이 흔들린다.








고깔제비꽃







띄엄띄엄 보이는 회리바람꽃





돌단풍과 함께 한 이 사초, 애기감동사초인가...?





나중에 알아보니 꼬랑사초라는 게 있다.


애기감동사초와 아주 닮았는데 잎과 화경에 털이 없는 점이 다르단다.


그런데 털 유무를 확인 안했으니...





돌단풍






띄엄띄엄 나타나는 애기송이풀, 하지만 꽃봉오리조차 없다.






그 한쪽, 잎이 뜯긴 송이풀에는 몇 개의 꽃봉오리가 달렸다.





주변에 남산제비꽃의 변이, 단풍제비꽃 몇 개체가 보인다.





금붓꽃





미치광이풀






이곳에서 만난 최고 미녀 얼레지!


날씨 탓인지 많이 움츠러든 모습이다.






점현호색도 아주 간혹 보이는 정도...





낙엽송 암꽃과 수꽃







아래쪽을 상당 구간 탐사했지만 역시 꽃이 핀 애기송이풀은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마지막 희망으로 아까 만났던 분이 말한 상류 구간을 탐사하기로 하고 내려왔던 길을 다시 올라간다. 꽃을 보려고 이렇게 정성을 다 바치는 내 모습, 내가 봐도 내가 낯설다.




그렇게 상류 구간으로 이동하는데 그곳 건너편 계곡에 누군가가 꽃을 탐사 중이다. 꽃이 있느냐고 소리를 지르는데, 시끄러운 계곡물 소리에 서로 알아듣지 못한다.



건널 곳이 마땅히 없어 등산화를 벗고 계곡을 건너는데, 세상에... 겨울물인들 이렇게 시릴까 싶다. 나중에 다시 어떻게 건너나 싶게 시린 통증이 발목에서부터 척수를 타고 오른다!



그렇게 해서 이 분과 함께 탐사를 하게 되었다.

 




깽깽이풀은 아직 덜 핀 모습





애기송이풀 군락은 훨씬 넓은데, 꽃봉오리조차 발견할 수 없다.  






상류지역이어선지 들바람꽃은 아직 꽃을 달고 있는 것이 남아 있다.





개감수도 몇 보인다.





깽깽이풀





터리풀 속의 들바람꽃






금괭이눈






좀목이버섯도 만나고...





이건 나무이끼이겠지...





이렇게 더듬어 올라갔건만 여기까지가 한계다. 더 이상 애기송이풀이 존재할 것 같지는 않다.





엊저녁 몰아치 비바람으로 떨어져 있는 꽃을 주워 보니 고로쇠나무.


대개 잎이 자라면서 꽃을 피우는데, 이곳의 고로쇠나무는 잎이 덜 자란 상태에서 꽃을 피웠다.







다시 그 시린 계곡을 건너느라 뼈저리는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그리고 시내버스가 들르는 시각까지는 시간이 꽤 남아 있어, 동행하게 된 분과 함께 걸어내려가면서 애기송이풀을 찾아보기로 한다.


H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분, 봄엔 꽃을 찾고 여름엔 계곡을 찾고 가을엔 산을 찾는단다.



한참을 걸어 내려가다 보니 더 이상 애기송이풀이 자생할 듯한 풍경이 아니어서 나는 발길을 되돌린다. 그냥 떠나기엔 너무도 아쉬워서, 다시 다음 주나 그 다음 주에 찾아오기가 억울해서 미심쩍은 곳을 찾아보자는 생각이 든 것이다.


멀찌감치 먼저 내려가던 H 님께 내가 돌아서는 모습을 보이고 함께 돌아서기를 기대했는데, 그러지 않고 그냥 내려간 모양이다.




되짚어 와서 아무래도 의심스러운 곳이 있어서 그 쪽으로 내려섰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찾은 흔적이 나타난다.



올해 처음 각시붓꽃을 만나고...





그리고 조금 더 내려서니 그곳에 꽃을 피운 애기송이풀이 있을 줄이야!






그런데 아쉽게도 엊저녁 심한 비바람에 꽃이 많이 상한 모습이다.







그런데 이렇게 비교적 싱싱하게 핀 꽃도 있지 않은가!







참으로 다행스럽게 천신만고 끝에 꽃을 만나기에 성공하였다. 두 주 전 들바람꽃 만날 때도 그러했는데 이번에도 막판에야 발견하였으니...!!!




어쨌든 꽃을 만난 즐거운 맘으로 풍경도 즐기고 꽃과 나무들도 만나며 길을 따라 걷는다.







덩굴별꽃 어린풀









꽃망울을 터뜨리는 귀룽나무






이 골짜기엔 금낭화도 유난히 많다.




H 님이 아까 말하길, 명지산 아재비고개 부근 골짜기에는 금낭화가 야생으로 대군락을 이루고 있다고 하더니...




자작나무 꽃이 심하게 불어대는 바람에 춤을 춘다.





어느 민가에서 약용으로 쓰려고 심어 놓은 듯한 벌나무.


정식 명칭는 산겨릅나무이다.






이곳에서 들어오는 버스를 만나 되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다 탄다.





먼저 내려간 H 님은 삼거리에서 버스에 올랐다.


애기송이풀 꽃을 만난 사실을 이야기했더니 몹시 아쉬워 한다. 함께 앉아 서로 정보를 나누고 헤어질 때 전화번호까지 교환했는데, 좀 있다 문자 메시지로 홈페이지 주소를 알려주어 나도 내 블로그 이름을 알려 주었더니 많이 방문한 블로그였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다는 답 문자가 와 나를 쑥쓰럽게 한다.



하루종일 꽃 하나 보려고 골짜기를 헤매었는데, 등산을 한 것도 트레킹을 한 것도 아니고 다소 허무하게 많은 시간을 보낸 느낌이 든다. 그래도 온라인에서 스치며 지나던 사람을 우연이지만 오프라인에서 만난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집에 도착하니 벌써 어두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