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

인도 (23) 바라나시, 부처가 처음 설법한 사르나트의 물라간다쿠티 비하르

모산재 2016. 3. 16. 20:19

 

바라나시에서의 둘쨋날이 밝았다.

 

오늘은 석가모니가 처음으로 설법했다는 사트나트를 다녀오고 저녁에는 메인가트에서 푸자의식을 관람하기로 되어 있다.

 

 

8시에 일어나 호텔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9시에 불러둔 오토릭샤를 타고 사르나트로 향한다. 왕복 요금은 300루피.

 

 

사르나트까지는 약 10km.

 

이곳도 마찬가지여서 릭샤는 차선이 따로 없다. 중앙분리대가 있음에도 역주행해서 달리는 이 릭샤를 보라. 백미러에 담긴 릭샤왈러의 눈빛은 또 어떻고! 빈틈이 있으면 아무데나 파고들어 달린다. 마주오는 차와 아슬아슬 피해갈 때 절로 비명소리가 새어나오지만, 습관처럼 "노 프로블럼"이라 외칠 뿐이다.

 

 

 

 

10시 30분 좀 넘어서 사르나트에 도착!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은 부처는 사르나트에서 자신을 찾아온 다섯 명의 수행자들에게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처음으로 설법하는데, 이를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 한다. 마하라자가 사슴을 풀어 놓은 곳이라고 하여 경전에는 '녹야원(鹿野園)'으로 전하는 땅 사르나트는 석가가 탄생한 룸비니, 도를 이룬 보드가야, 열반한 구시나가라와 함께 불교의 4대 성지로 꼽힌다.

 

이곳에는 아쇼카왕의 석주, 다메크 스투파, 다르마라지카 스투파, 물라간다 쿠티 비하르 사원 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사르나트의 사원 유적은 아쇼카왕과 사캬(Saka)와 쿠샨(Kushan)왕조의 후원 아래에 번창했던 사원이 12세기 이슬람의 침공으로 파괴되고 오랜 세월 묻혀 있다 1834년 영국의 고고학자 알렉산더 커닝햄(Alexander Cunningham)에 의해 발굴되어 그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다.

 

 

 

사르나트에서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물라간다쿠티 비하르(Mulagandhakuti Vihar)라는 사원.

 

 

 

 

1931년 스리랑카에 본부를 둔 대각회(大覺會 : Mahabodhi Society)가 옛 사찰 터에 건립한 현대적인 불교 사원이다.

 

'대각사(大覺寺)'라 불리기도 하는 이 사원은 보드가야의 대보리사(마하보디 사원)를 모방하여 건축했는데, 사원 입구에 일본이 기증한 큰 종이 있고 내부에는 일본인 화가가 석가의 생애를 그린 프레스코 벽화가 있어 '일본사(日本寺)'라 불리기도 한다. 고대 물라간다 꾸티 비하르 사원은 사르나트의 벽돌 유적에 둘러싸여 흔적만 남아 있다.

 

 

 

 

측면에서 본 물라간다쿠티 비하르

 

 

 

 

뒤에서 본 물라간다쿠티 비하르

 

 

 

 

 

주변에는 스리랑카 콜롬보 출신으로, 자취를 감춘 인도 불교를 되살리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한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Anagarika Dharmapala, 1864-1933) 입상을 조성해 놓았다.

 

 

 

 

다르마팔라는 '진리의 수호자'라는 법명대로 13세기 초 불교의 중심 거점이 이슬람 군대에게 유린당한 이후로 끊어진 인도 불교의 명맥을 잇고 부활이라는 문고리를 열어젖힌 선구자로 평가된다. 그의 가족은 매우 신심이 깊은 싱할리족 불교도 집안이었다. 대학 때까지 학창 시절 내내 제국주의적인 크리스천 교육을 받았지만 이상적인 진리를 불교에서 발견하고 붓다의 다르마를 수호하는 독신 수행자로 살기로 선언하고, 적극적으로 열정을 다해 불법을 포교하기 시작했다.

1891년 7월 15일 다르마팔라는 인도 보드가야(Bodh-Gayā)에서 불교가 사라진 지 무려 7세기 만에 다시 불교기(佛敎旗)를 세우기에 이른다. 당시 보드가야의 마하보디 사원은 힌두교 시바파가 점유하고 있었다. 그는 붓다가 깨달음을 얻었던 성지를 회복하기 위해서 1891년에 콜롬보에서 대각회를 창설하고 다음해 사무소를 인도의 캘커다로 옮기고 <마하 보디 저널 Maha Bodhi Journal>을 발간(1892년 5월 창간)하여 불적(佛蹟)의 부흥 운동을 전개하고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범 세계적인 불교 구심체를 이루는 데 성공했다.

1920년에는 대각회 최초의 사원을 콜카타에 건립하고 1932년에는 사르나트에 물라간다 쿠티 비하라를 세웠다. 다음해 1월에 비구가 되고 3개월 후 사르나트에서 입적하였다.

 

 

 

사원 내부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데, 신발 지킴이가 있어 몇 루피를 주어야 한다. 인도 화폐를 미처 준비하지 못해 주지 않으려 했더니 화를 낸다. 내부 사진 촬영비도 20루피 기부...

 

 

사원 내부에는 실물 크기로 설법하는 모습의 황금 부처상이 있는데, 부처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다. 고고학박물관의 불상을 본뜬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벽에는 부다의 생애, 팔상도를 프레스코화로 그려 놓았다.

 

 

 

 

불전 입구에는 열반에 이르는 수행 방법을 제시한 안내도와 함께 사르나트 유적에 대한 역사를 소개한 작은 안내문을 새겨 놓았다.

 

 

 

 

'Nibbana'는 산스크리트어 열반(Nirvana)의 팔리어로 생사의 윤회와 미혹의 세계에서 해탈한 깨달음의 세계를 나타내는 불교의 궁극적인 실천 목적이다. 마음챙김의 4가지 기초(four foundations of mindfullness)는 아마도 열반에 이르는 수행 방법을 일컫는 말인 듯한데, 팔리어 '사티파타나(satipaṭṭhāna)'를 영역한 말로 '사념처(四念處)'라 일컫는다.

 

 

 

 

사티파타나는 '사티'와 '파타나'의 합성어로 사티(sati)는 '기억하다 (samsarati)' 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어근에서 파생된 명사로 과거를 기억하는 기능이라기보다는 '마음의 현전(現前), 현재에 대한 주의 집중, 분명한 알아차림'을 의미한다고 한다. '파타나(paṭṭhāna)'라는 말은 '긴밀하고, 확고하며, 흔들리지 않는 확립'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티바타나는 '관찰 대상에 대한 긴밀하고 확고하며 흔들리지 않는 알아차림의 확립'을 의미한다.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황금불상

 

 

 

 

우리나라 사찰의 팔상도와 비슷한 벽면의 부처님의 생애도는 일본인 화가 고세츠 노스(Kosetsu Nosu)가 그린 것이라고 한다. 마야부인의 꿈에 흰 코끼리가 걸어들어 오는 장면부터 싯다르타가 태어나자마자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는 장면 등이 보인다.

 

 

 

 

그리고 악마의 무리와 여인의 유혹을 물리치는 장면...

 

 

 

 

도를 깨치고 설법하는 장면...

 

 

 

 

열반에 드는 장면...

 

 

 

 

 

그리고 또 다른 공간에는 초전법륜을 기념하는 조형물을 조성하여 놓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석가가 모니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우람한 인도보리수(보나무)가 큰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이 나무는 아쇼카 왕의 아들 마헨드라(Mahendra)와 딸 상미트라(Sanghmitra)가 불교를 전하기 위해 보드가야의 나무에서 묘목을 채취해 스리랑카의 아누라다뿌르(Anuradhpura)에 심어 키웠는데, 거기서 다시 묘목을 얻어 이곳에 심은 것이란 한다. 그러니까 부처님 때의 보리수 나무 손자인 셈이다.

 

 

부처님이 다섯 비구를 향해 처음으로 설법하는 장면을 형상화해 놓은 조형물

 

 

 

 

우리말로 새겨 놓은 전법륜경

 

 

 

 

 

석가모니는 보드가야에서 득도한 후 걸어서 라지기르에서 그를 버렸던 다섯 제자를 찾아 250㎞ 떨어진 이곳에 오게 된다. 그러다가 바라나시 외곽에 있는 녹야원에서 그들을 만나서 그들을 상대로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 등 여러 깨달음을 설법한다. 이를 초전법륜(初轉法輪, Dharmachakrapravatana)이라 부른다.

 

 

※ 사성제 = 고(苦, dukkha), 집(集, samudaya), 멸(滅, nirodha), 도(道, magga)를 가리키는 것으로 괴로움을 소멸하려면 팔정도(八正道)를 행하여 욕망과 갈애를 제거해야 한다는 가르침

※ 팔정도 = 불교 수행의 8가지 올바른 길. 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념(正念)·정정진(正精進)·정정(正定)

 

 

 

 

 

정원의 모퉁이에 피어 있는 풀꽃

 

 

 

 

 

 

물라간다쿠티비하르를 돌아본 다음 이슬람의 침공으로 수백 년 동안 폐허가 되었다 발굴된 불교 유적지로 향한다.

 

 

그 길에서 손을 벌리며 따라 붙는 어린 아이들...

 

 

 

 

 

그리고 유적지를 찾은 인도 학생들 무리를 만나기도 한다.

 

 

 

 

 

까만 눈동자의 귀여운 인도 꼬마.

 

사진이 잘 찍히도록 자세를 잡아주는 아빠의 표정에 아이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