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

인도 (20) 오르차, 고대 신화와 근대 역사가 벽화로 공존하는 락슈미나라얀 만디르

모산재 2016. 2. 19. 19:52

 

락슈미나라얀 사원으로 가는 오르차의 마을길은 정겹다. 마을을 벗어나 산언덕으로 이어지는 1km쯤 되는 시골길이니 쉬엄쉬엄 편하게 걸으며 사람 사는 모습도 볼 수 있고 이름다운 자연 풍경도 즐길 수 있다.

 

걷다 보니 길가의 집들은 키 높이밖에 안 되는 낮은 지붕인데 널빤지를 얹은 너와집들이 흔하다. 그리고 그 지붕 위엔 으레 빨래들이 널려 있다.

 

 

빨래를 널어 놓은 너와 지붕, 집 벽 앞에 쉬고 있는 소들

 

 

 

낯선 외국인들에게 순박한 웃음으로 손을 흔들어 주는 동네 꼬마들

 

 

 

너와지붕집 앞에 앉아서 한가롭게 정담을 나누는 어른들

 

 

 

넓은 공터에서 노는 아이들

 

 

 

엉겅퀴처럼 가시 많은 멕시코양귀비(Mexican poppy), Argemone mexicana 중국 이름 蓟罂粟

 

 

 

하교하는 아이들

 

 

 

 

10 분쯤 걷자 낮은 구릉 위에 자리잡은 힌두사원 락슈미나라얀 만디르 (Lakshmi Narayan Mandir)가 나타난다.

 

 

 

 

락슈미나라얀 사원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원 앞 안내판에는 그냥 락슈미 사원(Lakshmi Temple)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름 그대로 비슈누 신의 배우자 락슈미에게 바쳐진 사원이다. 락슈미는 '부와 행운의 여신'으로 인도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 받는 신이다.

 

나라얀은 우주를 유지하고 보존하는 역할을 하는 비슈누 신을 가리킨다. 불교에서는 나라연금강으로 수용된 신으로 '태초의 바다에서 온 자'라는 뜻의 나라야나(Narayana)에서 나온 말이다. 혼돈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천 개의 목을 가진 용(나가) 아난타(Ananta) 위에서 쉬고 있는 우주의 창조자 비슈누, 힌두교도에게는 구원을 베푸는 자비로운 신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신이다.

 

 

 

 

 

이 사원은 분델라 왕조의 전성기인 1622년 비르 싱 데오에 의해 세워졌다. 아름다운 건축물이지만 유지가 잘 되지 못해 1793년 마하라자 프리트비 싱(Prithvi Singh, 1735-1752)에 의해 개수되었다.

 

 

사원 구조는 한눈에 보아도 독특하다. 하늘에서 내려보면 정사각형 구조로 각 모퉁이마다 보루의 형태를 두었는데 출입구는 현관을 두어 형태를 변형하였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높은 첨탑을 올렸다. 사원 양식에 성을 양식을 혼합한 듯한 독창적인 건축 스타일을 보이고 있다.

 

 

 

 

 

사원 앞에서 바라보는 오르차 전경. 멀리 오르차성(제항기르 마할과 라자 마할), 람 라자 만디르, 차투르부즈 만디르, 세노타프들이 흐릿한 안개 속에 모습을 드러낸다.

 

 

 

 

 

사원의 입구

 

 

 

 

 

사원을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것은 사면 벽과 천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다양하고 정교한 그림들...

 

 

이곳의 벽화는 힌두교의 대서사시 '라마야나'를 소재로 한 것은 물론, '잔시의 여왕'으로 알려진 라니 락슈미바이(Rani Lakshmi Bai)가 세포이 항쟁에 참여하여 영국군과 전투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17세기 사원이 처음 지어졌을 때는 라마야나를 그렸고 이후 19세기 영국 식민지 시대를 맞아 신화의 주인공이 된 한 여인을 벽화로 추가하게 된 모양이다.

 

묘하게도 봉헌된 신의 이름도 락슈미, 벽화의 주인공도 락슈미! 그래서 고대 신화와 근대 역사가 벽화로 공존하는 락슈미사원!!

 

 

 

 

 

먼저 만나는 벽화는 아마도 힌두 서사시 라마야나를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 천정 벽화이다.

 

 

 

 

더보기

'라마 왕의 일대기'라는 뜻의 대서사시 라마야나(Ramayana)는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되었으며, 7편 2만 4천 송(슈로카)으로 되어 있다.

북부 인도의 코사라 국의 수도 아요디야는 다사라타 왕의 치하에서 번영하고 있었으나, 왕에게는 왕위를 계승할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왕자를 얻게 해 달라고 신에게 빌었다. 그 결과 세 왕비에게서 네 명의 왕자가 출생했고, 비슈누 신이 라마 왕자로 태어났다. 라마는 활을 쏘는 재주가 뛰어났다. 그는 비레하 나라의 시타 공주를 아내로 맞아 국민의 신망을 한 몸에 지니고 있었다. 다사라타 왕은 연로했기 때문에 왕위를 라마에게 물려주기로 했다.

드디어 날이 새면 라마 왕자의 태자 즉위식을 올리게 되었다. 아요디야 거리는 아름답게 꾸며지고, 이웃 나라 왕들도 즉위식 축하를 위해 서울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날 밤 바라타 왕자의 어머니는 시녀의 충동을 받아 왕에게 억지를 부리게 되었다. 라마를 14년 동안 숲에 추방하고, 바라타 왕자를 황태자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왕은 이제 와서 그럴 수 없다고 했으나, 바라타 왕자의 어머니는 계속 억지를 부렸다. 이 사실을 알고 라마는 시타와 동생인 락쉬마나를 데리고 단다카 숲으로 들어갔다. 다사라타 왕은 슬픔으로 해서 세상을 떠났고, 바라타 왕자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형인 라마가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라마를 모시러 갔으나, 라마는 부왕의 명령이라고 하며 듣지 않았다.

바라타는 서울로 돌아가 라마의 신발을 왕좌에 놓고, 자기는 그 곁에서 나라를 다스리기로 했다. 라마는 숲에서 악마들을 퇴치했기 때문에 랑카 섬(현재의 실론 섬)에 사는 악마의 왕 라바나는 노발대발했다. 그는 하늘을 날아서 라마가 사는 단다카 숲으로 갔다. 악마의 왕은 고행자로 변신하고 자기 부하는 황금색 사슴으로 변신시켜, 라마와 락쉬마나가 그 사슴을 쫓고 있는 새에 시타를 유괴하여 랑카 섬으로 돌아갔다. 라마는 시타가 유괴된 사실을 알고 동생과 함께 시타를 찾기 위하여 여행길에 나서 사방을 방황했다.

이윽고 두 사람은 팜파 호숫가에서 원숭이의 왕 수그리바를 만나게 되었다. 원숭이의 왕은 라마의 은혜를 입은 일이 있는 터라 부하를 사방에 풀어 시타의 행방을 찾게 했다. 원숭이의 영웅 하누마트는 마침내 시타의 거처를 알아내게 되었다. 그는 혼자 랑카 섬에 스며들어가 상황을 살펴보고 돌아와 라마에게 시타가 무사하다는 사실을 알렸다. 라마는 크게 기뻐하여 원숭이 대군을 이끌고 해안에 이르렀으나 바다 건너에 있는 랑카 섬에 건너갈 수 없었다. 라마는 바다의 신에게 기원하고, 원숭이 군대의 힘을 빌어 닷새 동안에 랑카 섬까지 다리를 놓아 악마군의 성을 공격했다. 원숭이 군대와 악마 군대는 격전을 벌여 악전 고투 끝에 라마는 라바나를 퇴치하여 시타를 되찾았다. 그는 아요디야에 개선하여 왕위에 올랐다. 
- 출처 : 라마야나 (세계문학사 작은사전, 2002. 4. 1., 가람기획)

 

 

 

그리고 안으로 이동하자 근대식 복장을 한 군대의 전투 장면이 나타난다. 1857년 세포이 항쟁을 다룬 듯하다.

 

 

 

 

성의 맨 위층에 있는 사람이 잔시의 여왕 락슈미바이

 

 

 

이것은 영국군들로 보이고 ...

 

 

 

이것은 영국군과 맞선 세포이들로 보인다.

 

 

 

 

여기서 잔시의 여왕, 락슈미바이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공부하기로 하자.

 

 

라니 락슈미바이(1828~1858)는 미모와 카리스마, 지략까지 갖춘 불세출의 여걸로 '인도의 잔다르크'로 숭앙 받는 인물이다. 작은 토후국 잔시의 왕비였지만 영국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다 30살의 꽃다운 나이로 전사한다.

1828년 인도 중부의 작은 왕국 잔시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14세 때 잔시 왕과 결혼한다. 아들을 낳았으나 일찍 잃었고 25세 때 남편마저 죽자 영국 동인도회사는 후계자가 없다는 이유로 잔시 왕국을 복속시킨다. 락슈미바이는 이에 단호하게 저항하고 스스로 잔시의 여왕이라 일컬으며 주민들을 이끈다. 1857년 영국군 용병이었던 세포이들이 독립전쟁을 일으키며 항쟁이 인도 북부로 번져 나가고 이에 락슈미바이는 거병한다. 용병과 의용군을 모아 영국 편을 드는 주변 영주 군대를 격퇴했다. 그러나 1858년 잔시가 영국군에 점령 당하자 변장하고 괄리오르로 피신하여 세력을 규합하고 영국군을 공격하다가 6월 18일 영국군 기병의 총격을 받고 전사했다.

 

 

 

 

 

여기서부터는 다시 라마야나를 다룬 그림들...

 

 

 

 

락슈미에게 봉헌된 사원이지만 성실로 보이는 곳에는 락슈미 신상은 사라지고 없다.

 

 

 

 

내부에는 너른 뜰이 있고 옥상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중앙의 첨탑

 

 

 

탑에 그려진 벽화

 

 

 

 

 

지붕의 둘레는 성가퀴와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사방으로 탁 트인 오르차의 전망! 최고다.

 

 

 

 

 

당겨서 보는 제항기르 마할, 라자 마할, 람 라자 사원, 차투르부즈 사원 풍경

 

 

 

 

 

다시 사원 밖으로 나와서 돌아보는 사원 주변 풍경

 

 

 

 

 

오르차로 이어지는 길, 그리고 오르차 전경

 

 

 

 

 

무슨 꽃일까...?

 

 

 

 

 

 

제항기르 마할에서도 보았던, '소돔사과(Sodom apple)'라 불리는 칼로트로피스 프로체라(Calotropis procera)의 꽃

 

 

 

 

 

 

이 사원의 입구에서 3개월이나 혼자서 여행 중이라는 23살의 여대생을 만난다. 일주일 뒤에는 또 태국으로 갈 것이라는데 참 대단하다. 수년 전 터키를 여행할 때도 저녁 늦은 시간 카파도키아에 홀로 도착해 숙소를 찾아 다니는 여성을 본 적이 있는데, 우리 나라 여성들 참 용감한 듯...

 

 

입장료를 아끼느라 사원 주변만 돌아본다고... 가슴이 먼저 뜨거워지는 우택 형은 점심도 안 먹었다는 이 친구를 위하여 먼저 식당을 찾아가고...  

 

우리는 오르차에서의 마지막 여정, 베트와 강과 그 주변 언덕에 있는 분델라 왕들의 기념탑인 세노타프를 향해 언덕길을 따라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