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

인도 (8) 카주라호 서부사원, 비슈누를 모신 락슈마나 사원

모산재 2016. 1. 14. 10:29

 

 

인도 북부 마디야프라데시 주, 찬델라왕조의 수도였던 카주라호! 야자란 뜻의 '카주'와 갈림길이란 뜻의 '라호'가 합성된 지명이라고 한다.

 

예습을 하지 않고 여행에 나선 나는 처음 이 이름을 듣고 인도가 자랑하는 아름다운 호수 이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조용하고 한적한 이 작은 시골 동네에 도착해서 만난 것은 호수가 아니라, 인도의 성애 교범이라 할 카마수트라를 그대로 구현한 듯한 에로틱한 조각들로 가득한 힌두사원들!

 

 

카주라호 사원은 라지푸트 일파가 세운 찬델라왕조의 전성기인 950년부터 1050년에 건립되었다. 찬델라 왕조는 달의 신 찬드라의 후손이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전설에 따르면, 달의 신 찬드라는 미모의 과부 헤마바띠와 사랑을 나눈 후 낳은 아이가 왕이 되었고, 헤마바띠가 신탁을 받고 찬드라의 곁으로 가기 위해 찬드라와 나눈 사랑을 새김으로써 카주라호사원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앙코르와트 사원이 그랬던 것처럼 카주라호 사원도 20km나 떨어진 야무나강 지류 켄강 부근에서 사암을 가져와 조성했다고 한다. 이 거대한 사암 덩어리를 누가 어떻게 옮겨왔는지, 사원의 설계자는 누구인지, 저 정교한 조각을 새긴 장인들은 또 누구인지, 복 또 봐도 놀라울 따름이다.

 

대부분의 사원은 야소바르만(Yashovarman)왕과 당가(Dhanga)왕의 재위 기간에 건축되었는데, 락슈마나 사원은 야소바르만 왕, 비슈바나타 사원은 당가 왕 때, 가장 큰 사원 칸다리야 마하데바 사원은 간다(Ganda)왕 때 지어졌다.

 

 

 

락슈마나 사원 측면

 

 

 

 

 

 

카주라호 사원은 30년 전인 1986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사원들은 대부분 힌두교의 상징인 원형 또는 사각의 만다라를 기본으로 설계되었으며, 힌두 사상을 나타내는 화려하고 정교한 조각으로 장식되었다. 남녀의 성적 결합을 표현한 인도의 조각이나 회화를 미투나(mithuna)라고 하는데, 카주라호 사원의 대부와 외벽에는 노골적인 성애 장면을 부조로 새긴 미투나상이 장식되어 있다. 원초적 본능, 동물적인 본성은 반인반수적(半人半獸的)인 힌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비슈누신을 모신 락슈마나 사원(Lakshmana Mandir)!

 

처음에는 락슈미 사원 곁에 있어서 비슈누의 배우자 락슈미와 관련된 이름인가 했는데, 나중에야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에서 비슈누의 화신인 라마의 이복 동생 '락슈마나'가 생각났다. 라마와 함께 고행에 나서고 함께 형수 시타를 구출하기 위한 랑카와의 전쟁에 나섰던 인물.

 

하지만 사원의 이름이 왜 하필 락슈마나인지는 아직도 알지 못하겠다.

 

 

락슈마나 사원은 비교적 이른 시기인 야쇼바르만왕 통치기인 930년에 시작하여 954년에 완성되었다. 카주라호의 전형적 사원 건축 형식을 갖추고 있는 최초의 힌두교 사원으로, 높은 기단 위에 중앙 신전을 두고 네 모서리에 작은 신전을 배치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건물 기단의 몰딩 장식과 중간에 띠를 형성해 만든 조각장식이 아름다우며 기단 모서리 4개의 소사당 건물이 완전히 잘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사원이다. 4개로 구성된 주건물은 각각 지붕이 높은 탑으로 구성되었으며 안쪽으로 가면서 점차로 더 높이 솟아 올라가 매우 장엄한 건축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 락슈미나 사원 평면도

 

 

 

출처 : 네이버지식백과(윤장섭, 인도의 건축, 서울대출판부, 2002)

 

 

 

힌두 사원은 크게 북인도 양식과 남인도 양식으로 나누는데, 북인도 양식은 비마나(본전)를 높은 탑 형식으로 올린 시카라(śikhara) 양식이며 남인도 양식은 웅장한 탑문을 둔 고푸람(gopuram) 양식을 보인다.

 

 

카주라호 사원들은 대개 시카라 양식으로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츨처 : 위키피디어

 

 

 

사원은 동쪽을 바라보고 앞에서 뒤로 네 개의 공간을 이루며 길게 이어지는데, 지붕은 뒤로 갈수록 높아지는 장엄한 구조를 이룬다. 성실에 이르는 앞의 세 공간은 현관(ardha mandapa), 만다파(mandapa), 마하만다파(maha mandapa)로 나뉘어지고 맨 뒤의 공간은 높이 솟은 시카라에 신상이 안치되어 있는 본전인 비마나(vimāna)이다.

 

비마나는 산스크리트어로 '신을 태우는 차'라는 뜻을 가진 본전. 비마나에 주존을 모신 성실(聖室)을 '태방(胎房)'이라는 뜻의 가르바그리하(garbhagriha)라 부른다. 가르바그리하는 정면에만 입구가 있으며 가르바그리하를 둘러싸고 순례하는 공간을 프라닥시나파타(pradaksinā-patha)라 하며 요도(繞道)라 번역하기도 한다. 프라닥시나는 힌두교에서 성스러운 존재를 오른쪽에 모셔 두고 천천히 시계방향으로 도는 것으로 남인도 시바신의 화신이라는 성산 아루나찰라를 도는 프라닥시나가 유명하다. 티베트 불교의 코라도 이와 기원을 함께 하는 순례 양식으로 보인다.

 

시카라는 카일라스산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는 듯하다. 카일라스는 티베트불교에서 수미산으로 여기는 성산이자 힌두교, 자이나교, 티베트 본교 등에서도 성산으로 경배하는 산이기도 하다.

 

 

 

하지만 관광객들은 힌두 사원의 이런 기본 구조보다는 사원 안팎을 빼곡히 장식하고 있는 조각상에 관심을 쏟을 뿐이다. 짧은 시간에 조각상 살펴보는 것만으로 벅차다.

 

 

 

락슈마나 사원에 오르면 왼쪽 담 밖으로 깃발이 나부끼는 마탕게슈와라 사원(Matangeshwara)이 바로 보인다.

 

 

 

락슈마나 사원 전경

 

 

 

 

 

마탄게슈와라사원은 카주라호 사원들 중 가장 초기인 900년에서 925년경에 건설되었으며 조각 장식들이 없다고 한다. 현재도 신도들이 참배하는 사원으로, 시바신을 상징하는 대형 링가(linga, 높이 2.5m, 직경 1.1m)가 지름 약 6m의 요니(yoni) 위에 높이 솟아 있다고 한다. 

 

 

 

락슈마나 사원 입구

 

 

 

 

 

 

현관(ardha mandapa) 천장

 

 

 

 

만다파(mandapa) 천장

 

 

 

 

마하만다파(maha mandapa) 천장

 

 

 

 

마하만다파에서 바라보이는 비슈누 신상

 

 

 

 

가르바그리하 입구

 

 

 

 

 

가르바그리하 안에는 3개의 머리와 4개의 팔을 가진 비슈누 신상이 있다. 

 

얼굴의 정면은 사람이지만, 양 측면의 모습은 비슈누의 10가지 아바타 중 멧돼지(바라하)와 사자(나라심하)의 머리로 조각되어 있다.

 

 

 

 

 

성실에 모신 주신의 조각임에도 규모가 작다 싶을 정도로 아담하고 얕은 돋을새김인데다 주변의 장식적인 조각이 그리 정교하지 않은 느낌...

 

 

 

가르바그리하의 천장

 

 

 

 

 

성실(가르바그리하) 주변에는 에로틱 미투나상들이 곳곳에 새겨져 있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가장 내밀한 공간, 그 곳은 바로 자궁이자 태방인 가르바그라하. 태아방은 신들이 거하는 카일라스산을 상징하는 시카라의 첨탑과 이어져 있다.

 

그 내밀하고 거룩한 공간에 남녀가 질펀하게 교합하는 미투나상이라니...

 

 

티베트 불교가 그러했던 것처럼 찬델라 왕조의 힌두교도 800년 전후에 형성된 탄트리즘(밀교)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정통 밀교는 다라니(주문)나 만트라(진언)를 욈으로써 마음을 통일하여 정각에 이르고자 하는 사상이지만, 차츰 현세의 행복과 쾌락을 추구하면서 성적 황홀경 속에서 해탈을 얻으려는 좌도밀교(左道密敎)로 나아가게 된다.

 

좌도밀교에서는 인간의 욕망은 충족됨으로써 그 위로 솟아나 극복된다. 좌도 밀교에서 깨달음은 지혜와 자비의 합일을 통해 도달하는데, 지혜는 여성이요 자비는 남성으로서 불보살은 여자를 껴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는 샤크티(shakti, 性力 : 우주 창조의 여성적 에너지)를 숭배하는 힌두 사상과 결부되어 성적 욕망의 충족, 남성성과 여성성의 합일이 생명과 우주를 창조하는 신성한 에너지이자 깨달음에 이르는 지름길로 여겨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탄트라는 크게 구분하여 인도에서 발전해 온 힌두 탄트라와 티베트에서 발전해온 불교 탄트라로 나누어진다. 힌두 탄트라에 의하면 절대자로서 신은 원형적인 남성 원리로서 쉬바(shiva)와 변화를 나타내는 여성 원리로서 샥티(shakti)라는 불가분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쉬바는 순수한 존재이며 무시간적 완전으로서 로고스(Logos)인 반면에 샥티는 시간적 변화의 세력이고 창조의 에너지이며, 자기실현의 기쁨과 사랑을 나타내는 에로스(Eros)이다. 그러므로 샥티는 영원한 완전성과 부단한 시간의 진화를 중재하는 세력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유한자(有限者) 속에서 무한성(無限性)을 드러내보이고 반대로 무한성 가운데서 유한자의 자기충만을 실현케 하는 매개이기도 하다.이 세계는 에너지의 표상으로서 끊임없는 지속의 과정이며 영원한 흐름으로 파악되는데 이것은 이 우주의 창조적 에너지인 샥티로부터 솟아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샥티는 모든 개체인간의 근원에 깃들어 있는 정신 및 육체적 힘의 구심점이 된다. 따라서 탄트라 수행자가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는 내재하는 샥티를 통해서 무시간의 시바와 결합하는 일이다. 이것은 남성적 <존재>와 여성적 <변화>의 신비스러운 결혼(Mahamaituna)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결합은 경전 가운데서 성적 결합으로 상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섹스는 수행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출처 : 탄트라, 아지트 무케르지, 동문선 1995>

 

 

 

 

노골적인 성애를 표현한 미투나 상은 사원 안팎에 가득 새겨진 조각상들 속에 묻혀 있고 대부분의 조각상은 힌두신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천녀(天女)인 수라순다리(Surasundari) 상이다.

 

정교하게 조각된 수라순다리의 풍만한 가슴과 관능적인 자태도 카주라호 사원의 매혹적인 볼거리다. 

 

 

 

 

 

 

물의 요정이자 춤의 요정인 압사라(Apsara)와 함께 수라순다리는 신들이 우유의 바다를 휘어저 불사의 영약 '암리타'를 만들 때 태어난 천녀(天女)이다. 

 

 

 

 

 

 

 

사원 외벽에는 보다 정교한 조각들이 돋을새김되어 있다. 사암이라 재질이 물러 조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마치 비누를 다루듯 섬세하게 새긴 솜씨에는 감탄이 절로 난다.

 

이 거대한 사암 덩어리를 어떻게 20km 밖에서 옮겨 왔는지, 그리고 그 덩어리 속에서 어떻게 유기적인 조각을 입체적으로 구현해 냈는지... 1000년 전 찬델라 왕조의 장인들이 집단적으로 작업하는 장면이 그림처럼 자꾸만 떠오른다.

 

 

 

 

가네샤(Ganeśa)와 코끼리 부조

 

 

 

 

인간의 몸에 코끼리 머리를 가진 힌두 신. 시바와 파르바티 사이에 태어난 첫 번째 아들로 파르바티가 자기 몸의 때를 빚어서 만들어냈다고 한다.

네 개의 팔이 있고 배는 나와 있으며, 한 쌍의 어금니 중 하나가 없다. 수려한 인간의 용모였지만 목욕을 하던 어머니 파르바티의 명에 따라 욕실로 들어가지 못하게 아버지 시바 신을 막다 목이 잘리는데 파르바티가 이를 알고 불같이 화를 내자 당황한 시바가 지나가던 코끼리의 머리를 베어 붙여주어 살아가게 했다고 한다.

거대한 머리는 모든 영적인 지혜, 길고 굵은 코는 진리와 거짓을 식별하는 능력과 상황에 적응하는 유연한 지성을 의미하며 불뚝 나온 큰 배는 마음의 만족을 의미한다. 세 손에는 집착이 속박임을 의미하는 밧줄, 그 속박을 끊는 것을 의미하는 도끼, 무한한 지고의 기쁨인 자유를 의미하는 스위트 등을 들고 있고, 펴고 있는 한 손은 축복의 표시를 하고 있다.

툭 내민 배에 뱀으로 띠를 두르고, 가장 무거운 신이면서도 쥐를 타고 있다. 쪼그리고 앉아 있는 쥐는 욕망으로 흔들리는 변덕스러운 마음을 의미한다. 쥐와 가네샤의 대비는 유한한 마음과 무한한 영적 지혜의 대비라고도 할 수 있다.

군중을 지배하는 신이자 지혜를 성취시키는 신으로 숭배된다. 또한 새로운 시작의 신이자 장애를 제거하는 신으로 믿어져서 힌두교도들은 모든 예배나 의식은 물론 사업 시작, 여행, 집짓기 등과 같은 중요 세속사를 할 때도 가네샤에 대한 예배로 시작한다.

 

 

 

마하만다파의 베란다 외벽의 관능적인 수라순다리 조각들

 

 

 

 

 

 

 

시카라와 성실 베란다 주변의 정교한 조각상들

 

 

 

 

남녀 교합의 성애를 표현한 조각상과 주변의 수라순다리 상들

 

 

 

 

 

 

시카라와 외벽의 섬세한 조각, 관능적인 수라순다리 상

 

 

 

 

 

 

 

 

마하만다파와 성실 사이 북쪽 외벽의 조각들

 

 

 

 

 

 

 

 

비슈누상

 

 

 

 

 

본전 네 귀퉁이에 자리잡은 작은 신전

 

 

 

 

 

 

 

 

 

 

사원 앞에 놓아둔 사자상. 여인을 어르고 있는 사자상은 다음에 볼 칸다리야 마하데바 사원에도 있다.

 

 

 

 

 

 

마지막으로 사원 기단 벽에 새겨진 부조상을 살펴보기로 한다.

 

기단을 띠처럼 두르고 있는 벽에는 말을 탄 병사와 코끼리, 보병과 군악대 등이 행진하는 모습들이 돋을새김 되어 있다. 혹시나 힌두사원에서 흔히 새기는 <라마야나>일까 하고 살펴 보지만 그렇게 볼 만한 장면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 속에는 이 사원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가장 에로틱한 조각들이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다. 이성 동료나 가족과 함께 보기에는 낯 뜨겁고 민망한 다양한 체위의 남녀 교합상...

 

 

 

 

 

 

 

최고의 주목을 끄는 것은 바로 말과 수간(獸奸)하는 이 조각상!

 

뒤에서 두 손으로 얼른 눈을 가리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바로 이 장면을 낯 뜨겁게 바라보는 여행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 성스러운 사원의 기단에까지 이런 야한 조각을 새기다니...

 

성력(샤크티)을 숭배하는 힌두 탄트리즘이 당시 찬델라왕조 시대에는 세속에서 보편화되었던 듯하다. 샤크티는 모든 개체의 근원에 깃들어 있는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의 구심점, 육체는 즐거움과 영원성을 획득할 수 있는 원천! 탄트라 수행자는 내재하는 샤크티를 발현하고 충족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시간성을 초월한 시바와 결합될 수 있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힌두 사상의 깊이를 이해하기 어려운 여행자에게는 이 야한 조각상들은 저마다의 야릇한 성적 판타지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북회귀선>의 작가 헨리 밀러가 말했다지. "섹스는 환생해야 할 아홉 가지 이유 중의 하나다 … 나머지 여덟 가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락슈마나 사원을 돌아본 다음 칸다리야 마하데바 사원으로 이동한다.

 

 

 

칸다리야 마하데바 사원으로 가는 도중 돌아본 락슈마나 사원 북쪽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