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

인도 (6) 기차를 놓치고... 밤새워 카주라호로 달리다

모산재 2015. 12. 22. 19:22

 

인도 (6) 카주라호 행 기차를 놓치고... 밤새워 봉고차로 달리다

 

2012. 01월 03일(화) 저녁 ~ 01월 04일(수)

 

 

 

 

델리에서 레드포트와 국립박물관 등을 돌아보는 하루 일정을 보내고 카주라호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니자무딘(Nizamuddin) 역에 도착한다. 

 

니자무딘역은 뉴델리의 남쪽, 후마윤능 근처에 있다. 기차 출발 시간은저녁 8시 15분. 카주라호로 가는 하루 단 한 차례의 기차다.

 

 

 

아직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역 앞마당에 있는 '컴섬(COMESUM)'이란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는다. 롯데리아나 맥도널드와 같은 이 패스트푸드점은 인도철도에서 공인된 패스트푸드점으로 케이크, 피자, 스파게티, 볶음밥, 만두 등 여러 가지 메뉴의 음식을 판다. 우리는 볶음밥과 만두와 피자를 주문하여 먹는데, 패스트푸드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리 입에 맞지는 않아서 먹는 둥 마는 둥 한다.

 

 

 

8시 5분, 역사로 들어선다.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일행들...

 

 

 

 

 

바로 곁에 들어와 정거하고 있는 이 기차가 카주라호로 가는 기차가 아닐까 싶은데... 가이드 성모 씨는 카주라호 가는 기차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무작정 기다린다. 그런데 카주라호로 가는 기차 출발 시간이 다 다가오는데도 이 기차가 출발하지 않는다. 우리가 탈 기차는 어디에 선단 말인고...?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성모 씨는 인도 기차는 연착 연발이 잦다고 하니 믿을 수밖에...

 

 

 

 

 

주변 사람들을 태우고 정거하고 있던 기차는 이내 출발하였다.

 

 

우리가 타고 갈 기차가 도착하길 기다리는데, 2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출발역인데 이렇게 대책 없이 연발일 턱이 있나? 그때서야 성모 씨가 알아보고 오더니 난감한 표정으로 방금 떠나간 기차가 카주라호 가는 기차가 맞다고 전한다. 아고라행 기차로 적혀 있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카주라호행 기차와 결합되어 있었던 걸 미처 몰랐다는 것이다.

 

 

 

어쩌나... 예상하지 못한 상황인데도 우리는 이내 평정을 되찾는다. 가이드 성모 씨는 어쩔 줄 모르고 얼굴이 새패래졌지만 우리는 성모 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멘트를 날린다. 괜찮아, 너무 마음에 두지 마. 오히려 재미있는 여행이 되겠는데... 

 

개인적으로로 이런 경우를 두어 번 겪지 않았던가! 실트로드 여행에서는 둔황역에서 가이드가 기차를 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였고 방콕에서는 라오스행 비행기를 놓치기도 하였던 것... 그런 상황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예상치 못한 새로운 상황의 전개, 그것이 있어서 여행이 즐거운 것이 아니겠는가?

 

 

일정에 다소 차질이 생기긴 하겠지만, 우리 모두 성모 씨를 위로하며 차분하게 대처해 주기를 당부한다. 성모 씨는 여행사에 전화를 해서 차편을 긴급 수배한다.

 

 

 

다시 컴섬(COMESUM)으로 자리를 옮겨 커피, 오렌지주스, 소주 등을 마시며 기차 대신 타고갈 차량이 오기를 기다린다.

 

 

 

 

 

 

 

봉고 1대와 택시 1대가 왔다.

 

11시 경, 카주라호까지 600km에 이르는 기나긴 야간 여정이 시작되었다. 

 

카주라호까지 10 시간쯤 걸린다고 하였는데, 출발부터 도로 체증이 심하다. 그리고 어느 시간부터인지 창 밖은 짙은 안개로 덮이고, 포장도로로 달리나 싶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비포장도로로 달리고 있다.

 

차창 밖으로 차량들이 굉음을 내며 비켜가는데 한 도로에서 왼쪽 오른쪽 방향도 없이 역주행하며 내달리는 차량들! 중앙선도 의미 없는 도로, 그저 앞에서 달려오는 차량을 피해 달릴 뿐이다. 중앙 분리대가 있는 곳에서도 역주행하며 달려오는 차량들! 화물 차량들이 왜 이리 많나 싶은데 차량 앞면이 절벽을 이룬 대형 트럭들이 덮칠 듯이 달려오다 스쳐 지나갈 때는 정말이지 모골이 송연하다. 나도 모르게 앞 좌석 등받이를 꼭 붙들고 있다. 겁먹은 우리들의 신음 소리에 기사는 "노 프로블럼!"을 연발한다.

 

이게 잠시라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목적지까지는 기약 없는 길인데, 맞은편 짙은 안개 속에서 괴물처럼 불쑥불쑥 나타나 덮쳐오는 화물트럭들을 헤쳐가는 차 속에 앉아 있자니 줄을 이어 달려 오는 저승사자를 맞이하는 듯 으시시하다. 혹시 기사가 잠시라도 한눈 팔거나 졸음에 빠진다면 그냥 끝이다. 

 

 

자정을 넘어서는 시간부터는 기온이 급강하한 듯 아랫도리가 차가워지고, 사막 체험을 위해 가져온 침낭을 꺼내 추위를 달랜다. 그러나 밀려오는 잠을 어쩔 수 없어 까무룩 잠에 빠져들었다, 스쳐가는 차 소리에 놀라 깨기를 반복한다.

 

 

 

새벽 2시 37분. 달리던 차가 멈추었다.

 

기사들이 잠시 눈을 붙였다 가겠다고 한다. 아무 사고 없이 왔다는 데 안도하며 바깥으로 나와 각자 볼일을 본 뒤에 모두들 멈춰 선 차 안에서 잠에 빠져 들었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잠시 눈을 붙인다.

 

 

 

 

 

 

두어 시간쯤 눈을 붙이고 차는 다시 시동을 걸고 출발한다.

 

 

중간중간 잠이 깨긴 했지만 날이 밝을 때까지는 비몽사몽간 잠에 취한 채 차는 달리고 있다.

 

 

어쨌든 개 한 마리 깔린 것 외에는 교통사고를 만나지 않았으니 천만다행이다. 우리가 기사에게 들은 유일한 말은 "노프로블럼!" 우리에겐 역주행하는 차량들이 인도인 기사들에겐 정상적인 운행이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운전자들은 걸핏하면 내뱉는 욕설이나 운전자들 간의 분쟁은 볼 수 없다. 그 점이 우리에게 너무도 신기한 일이지만 그들에겐 당연한 일이다. 보니 왼쪽 차선과 앞선 차량이 우선이고, 원하는 대로 길을 선택하고, 양보하는 것이 체질화된 것이다. 단언컨대 세계 최고의 운전 실력자는 인도의 운전자들이다.

 

 

 

7시 무렵부터는 눈을 떴다. 바깥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짙은 안개로 가득하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고 아마도 아그라를 지나 잔시를 향해 가고 있는 듯 싶다.

 

 

7시 10분. 자욱한 안개가 차량 앞유리를 솜처럼 덮고 있다.

 

 

 

 

 

낯선 여행길 위에서 맞이한 아침 풍경에 대해서는 우택 형이 보내준 기행기 일부를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언제나 무던하고 푸근한 모습을 보이는 형의 섬세한 감수성과 관찰력이 참으로 놀랍다. 

 

다섯 시가 조금 지나서였을까. 부석거리며 일어난 운전기사가 시동을 건다. 2시간 가량 눈을 붙이고 아직 안개가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차를 몰아도 되는 것인가. 두렵다. 그러나 차는 다시 쌩쌩 달리기 시작한다. 찻길 위에서 날은 밝아오고 있었다.

마을을 지나간다. 사리(인도 전통 여성복)를 입은 사람들이 하나, 둘 길을 따라 걸어가는 것이 보인다. 조금 더 가니 무리를 지어 걸어가고 있다. 날이 밝으면서 자전거와 릭샤들이 번거롭게 움직인다. 오토릭샤를 타고 가는 교복을 입은 초등학생들은 부끄러운 듯, 반가운 듯 웃으며 손을 흔든다. 마주 손을 들어주면 곁에 있는 아이들도 손을 흔들며 즐거워한다.

길거리 이발소도 보이고 재봉틀을 길가에 놓고 옷을 수선하는 사람, 길거리 자전거포, 긴 날을 마주잡고 나무를 톱질하는 목수들, 정과 망치로 돌을 쪼고 있는 석공, 손수레 음식점, 감자 오이 토마토를 길가에 늘어놓고 파는 노점상, 아주 오랜 옛날 수공업 시대의 가난한 풍경들이 있고 우리들의 어린 시절 풍물을 연상하게 하는 장면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거리를 돌아다니는 지저분한 개, 시궁창을 뒤지는 돼지들, 도로 위에 눕거나 거닐고 있는 소들이 도로나 길가에 사람처럼 움직인다. 퀭한 눈을 하고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동물들의 모습은 가난한 사람들처럼 불쌍하다. 그러나 사람들의 모습이라고 해서 별반 다름이 없다. 인간과 동물의 질병과 빈곤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결코 신비롭지 않은 생물들의 비참한 삶이 인도의 적지 않은 부분을 지배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길은 길이 아닌 곳으로 들어선 듯하였다.

 

기사와 말이 통하지 않으니 상황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내비게이터가 있는 차량도 아니어서 새벽의 어둠과 짙은 안개 속에서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닌가 싶다. 좁은 시골길로 들어섰나 했는데 진흙구덩이 개울을 비틀거리며 겨우겨우 건너간다. 그리고 오프로드하듯 유채꽃밭 속으로 달린다.

 

 

8시 50분, 진흙탕 개울을 건너는 앞 차

 

 

 

 

 

 

그리고 다시 화물 차량들이 달리는 큰 도로로 들어서 30여 분을 달리다 아침 식사를 위해 어느 작은 동네의 간이음식점 앞에서 차는 멈춰 섰다.

 

 

 

 

 

라씨를 주문하여 한 잔씩 마시고, 식사는 커리와 로티. 밤새 달려오느라 시장한 탓도 있었겠지만 맛있었다.

 

 

음식점 옆 공터에서 노는 인도 꼬마들

 

 

 

 

공터에서 만난 돼지풀아재비. 운남의 웬양에서도 만난 적 있다.

 

 

 

 

 

 

 

오후 1시 17분, 잔시로 짐작되는 한적한 거리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거리 이발소

 

 

 

 

 

 

1시 40분 잔시를 벗어난 들판에는 노란 유채꽃이 피었다.

 

 

 

 

 

 

그리고 두 시간을 더 달려 오후 3시 40분, 마침내 카주라호 라마다호텔에 도착한다. 10시간 걸린다더니... 델리에서 출발한 지 무려 16시간 30분만이다.

 

 

 

 

 

 

밤새우며 머나먼 길을 수고한 기사에게 따로 500루피를 팁으로 준다. 다시 델리로 돌아가야 할 기사들 얼마나 힘들까...

 

 

 

 

저녁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일단 오토릭샤를 불러 서쪽사원 쪽으로 이동한다. 카주라호 사원들은 내일 둘러 보기로 하고 카주라호 거리를 산책한다. 

 

 

전통복장 사리를 입은 인도 여성들

 

 

 

 

남성들은 거의 서양식 복장이다.

 

 

 

 

 

거리에서 박시시(구걸)하고 있는 사람들. 아주 흔하게 보인다.

 

 

 

 

 

팔자 좋은 인도의 소들. 시바신이 타고 다니는 신성한 동물이라 누구도 건드리거나 구속하지 않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존재다.

 

 

 

 

 

 

인도에서 소는 신격화되어 브라흐마 신과 같은 날에 태어난 것으로 믿어지며, 또 소의 각 부위에는 여러 신들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예를 들면 가슴에는 스칸다(Skanda) 신이, 이마에는 시바 신이, 혀에는 사라스바티(Sarasvati) 신이 살고, 소의 똥에는 락슈미 여신이, 우유 속에는 여신 강가가 살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전체 소의 3분의 1이 버려진 소라 할 정도로 길거리를 배회하며 쓰레기장을 찾는 소가 많다고 하니 팔자 좋다고 부러워할 일은 아닌지도 모른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인도 소녀들. 자전거가 대세인 듯...

 

 

 

 

 

 

카주라호는 우리의 면소재지 정도의 작은 시골마을... 얼마 되지 않는 거리 구경을 하다 식사를 하기로 한다. 일행이 모두 들어갈 만한 식당이 안 보여 이탈리아 식당과 인도식당으로 끼리끼리 나뉘어 저녁 식사...

 

 

 

거리의 카페엔 저녁 불빛이 켜지고...

 

 

 

 

 

 

 

 

식사 후 잠시 산책을 즐기다 다시 오토릭샤를 잡아 타고 호텔로 돌아온다.

 

 

그리고 우리 방(221호)에 모여서 맥주, 소주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우택 형의 기행기 부분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 날의 마무리를 대신하기로 한다.

 

카주라호 마을에서 떨어진 라마다 호텔은 밤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숙소로 들어가 또 하루를 마무리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각자의 방으로 가서 샤워를 하고 정한 방에 다 함께 모인다. 그리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이야기는 불지피듯 서서히 타오른다. 무철도사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주워들고 불을 지피면 불은 따닥거리며 일어나기 시작한다. 처리 선생의 유우머는 불에 기름을 부은 듯 타오르게 하고 우리 방의 온도를 따뜻하게 덥힌다. 강은미 선생은 작은 장작을 틈틈이 집어넣어 신선생 유우머에 화답하고 하민영, 노혜경 선생의 젊고 고운 얼굴이 달처럼 발그레지면 오수현 선생 한 마디에 와르르 웃음이 불길이 되어 솟아오른다. 모산재의 날카로운 언어가 빛을 발할 때쯤이면 모두 상기된 얼굴에 웃음이 가득, 이야기가 꽃처럼 만발하면 빛나는 언어들이 불꽃놀이 하듯 쏟아져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