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

인도 (4) 뉴델리 국립박물관의 힌두교 예술 작품들

모산재 2015. 12. 18. 09:38

 

인도 (4) 뉴델리, 인도국립박물관의 힌두교 예술작품들

 

 

제2일 2012년 01월 03일(화) 오후

 

 

 

 

점심 식사로 탄두리치킨과 라시 등 인도 전통 음식을 맛본 뒤 뉴델리국립박물관으로 향한다. 

 

 

박물관의 위치는 인디아게이트에서 서쪽으로 약 km 거리. 

 

박물관은 5시까지 열린다고 하는데, 늦은 점심으로 이미 3시에 가까워진 시각이라 박물관을 돌아보기에 다소 빠듯하다. 

 

시내는 여전히 스모그가 자욱한데 온갖 종류의 차량들이 무질서하게 섞여서 달리는 도로는 심각한 체증을 보이고 있다. 4차선 도로에 차들은 5차선을 이루며 주행하고 있다.

 

 

 

 

 

 

 

박물관에 도착했을 때는 3시 30분이 지나고 있었다.

 

 

총을 멘 군인이 지키고 있는 박물관 입구. 박물관 건물은 한눈에 보아도 낡아 보인다.

 

 

 

 

 

 

확인해 보니 현재의 뉴델리국립박물관은 1960년 12월에 개관되었다고 하니 50년이 넘었다. 1947년 런던에서 개최된 인도 미술전의 전시 작품을 기초로 소장품을 점차 늘려가면서 현재 약 20만 점에 달하는 컬렉션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3층으로 된 박물관.

 

1층은 모헨조다로 등 인더스문명의 유물로부터 마우리아왕조, 쿠샨왕조, 굽타왕조 등 각 왕조별로 간다라 등 불교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고, 2층은 무굴제국, 라지푸트의 세밀화, 무굴제국의 문서, 슈타인이 가져온 중앙아시아와 둔황의 유물, 아잔타 석굴 벽화 등의 모본이 전시되고 있다. 3층은 화폐와 공예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공간은 컴컴하게 불을 끈 채 미분류된 조각품들이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박물관 건물 둘레와 중정에도 각 시대의 조각상들이 늘어서 있다. 

 

 

 

박물관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왼쪽 입구에 바퀴가 달린 거대한 목공예품을 만난다. 이름은 사원마차. 바퀴가 달린 것으로 보면 알 수 있듯 이동하는 사원이다.

 

 

 

사원마차(Temple Chariot)  / 19세기, 인도 남부 타밀나두

 

 

 

 

팔각형으로 만들어진 이 사원수레는 비슈누신에게 바쳐진 것으로 Pasupati Achari 부자에 의해 조각되었다. 인도 남부 축제 때 대부분의 사원에서 사용되는데 신자들이 수레사원을 거리로 끌고 간다고 한다. 사원의 개창을 기념하거나 왕의 안녕을 빌거나 족장의 생일, 왕자의 탄생이나 결혼, 또는 점성술과 관련된 행성의 합을 축하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신에게 경의를 표하며 노래하고 춤을 춘다고 한다.

 

 

 

신자(Devotee) / 10세기, 인도 남부

 

 

 

사자를 탄 현자(Rishi) / 촐라 왕조 11세기, 타밀 나두

 

 

 

 

촐라 왕조는 9~13세기 남인도 타밀족의 왕조로 민주적인 정치 제도와고대 아테네와 비견되는 문화유산을 남겼다.

 

 

 

4면 비슈누 / 중세 시기, 북인도

 

 

 

 

브라흐마, 시바와 함께 힌두교 3주신의 하나로 힌두 신들 가운데 가장 자비로우며, 세상을 구제하는 수호신으로 여러 형태로 현현하여 불교의 화신불 개념을 낳은 신이다. 배우자는 부와 행운의 여신 락슈미(Lakshmi)이다. 네 개의 팔에는 각각 방망이, 소라고둥, 연꽃, 원반을 들고 있다. '가루다(Garuda)'라는 이름의 금시조(金翅鳥)를 타고 다닌다.

 

 

 

 

 

다행히 이곳 박물관에서는 사진 찍는 것이 허용되었다. 물론 사진 촬영비는 따로 받는다.

 

1시간 30분도 안 되는 시간에 박물관의 소장품들을 찬찬히 돌아보는 것이 불가능하여 무엇인지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그저 눈이 끌리는 대로 사진을 찍었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 보니 참 어렵다. 

 

 

 

라이언 캐피털 (Lion capital)

 

 

 

 

정면 모습

 

 

 

 

라이언 캐피털의 원형은 사라나트의 아소카왕의 석주 기둥머리 네 마리 사자상 조각인 Lion Capital of Ashoka로 바로 인도의 공식 휘장이기도 하다. 이 사자상은 두 마리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Lion Capital of Ashoka

 

 

 

비슈누와 락슈미 / 찬델라(Chandella) 왕조

 

 

 

 

찬델라 왕조는 9세기~14세기 초기,달의 신인 찬드라의 후손이라 믿는 라지푸트족의 한 갈래로 카주라호에 수도를 정하고 수많은 사원 예술 작품을 남기고 있다.

 

 

 

파르바티 / 프라티하라(Pratihara) 왕조 11세기, 히마찰 프라데시

 

시바신의 배우자

 

 

 

 

프라티하라 왕조는 9~11세기 초, 훈족과 함께 북인도에 침입한 라지푸트족의 한 부족인 구르자라족이 우자인을 근거로 번영한왕조이다.

 

 

 

 

사라스와띠(Saraswati) / 12세기 차우한 왕조, 라자스탄

 

학문과 음악, 예술의 여신

 

 

 

 

차우한은 라지푸트 세력으로 동부 라자스탄과 델리의 남동부에서 프라티하라의 속국으로 출발하여 아랍의 침입을 저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후에 차우한은 프라티하라로부터 독립하였다.

 

 

 

문설주 / 10세기 찬델라 왕조, 인도 중북부 마디아프라데시

 

 

 

 

 

술과 춤, 음악을 즐기는 연인 / 굽타왕조 5세기, 우타르프라데시

 

 

 

 

굽타왕조는 320년부터 550년경까지 북인도를 통일 ·지배한 왕조로 불교 예술이 절정을 이루며고전 인도 문화의 최성기에 해당한다. 굽타 시대 이후 불교예술은 퇴조하고 힌두교 예술이 발전한다.

 

 

 

 

시바와 파르바티가 새겨진 인방(lintel) / ?

 

 

 

 

 

 

 

시바와 파르바티 / 프라티하라왕조 9~10세기, 인도 북부)

 

 

 

 

 

카르티케야(Kārttikeya) / 촐라왕조 12세기, 인도 남부

 

 

 

 

시바신의 아들로 전쟁의 신이다. 쿠마라(Kumara)로 불리기도 한다. 2대 서사시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에서 신군을 지휘하고 마군(魔軍)을 퇴치하는 군신으로 공작새를 타고 있다.

 

 

 

비슈누 / 팔라왕조(?) 11세기

 

 

 

 

 

Vanugopala 플루트를 연주하는 크리슈나 / 12세기, 인도 남부

 

 

 

 

크리슈나는 비슈누 신의 여덟 번째 화신으로 모든 화신의 근원이자 절대 인격신의 본래 형상으로 간주되며, 검푸른 피부의 아름다운 남성으로 묘사된다.

 

 

 

시바와 파르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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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슈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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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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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 여신 / 찬델라 왕조 10세기

 

 

 

 

 

 

 

 

2층에는 아잔타 석굴 벽화를 모사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아잔타 17호굴 왕과 비 모사 작품

 

 

 

 

 

아잔타 1호굴 왕과 비 모사 작품

 

 

 

 

 

아잔타 2호굴 마야부인 모사 작품

 

 

 

 

 

아잔타 1번 석굴의 파담파니(Padampani)보살 부인 모사 작품

 

 

 

 

 

비슈누

 

 

 

 

 

락슈미 / 팔라왕조 9세기, 비하르

 

 

 

 

비슈누신의 배우자로 행운과 부를 상징하는 여신이다. 락슈미는 연꽃의 여신을 뜻하는 ‘파드마Padma’ ‘카말라Kamala’ 길상천(吉祥天)이라고 한다. 두 마리의 코끼리가 략슈미의 좌우에서 물을 뿌리고 있는 도상은 ‘가자-락슈미Gaja-Laksmi’라고 부른다.

 

 

 

태양신, 수리야 / 11세기, 인도 중부

 

 

 

 

 

Yali(Vyala )/ 13세기, 오릿사

 

 

 

 

Yali는 힌두사원의 기둥 조각에서 사자나 코끼리, 말의 형상의 일부분으로 표현되는 신화적 동물이다.

 

 

 

시바와 파르바티 / 10세기

 

 

 

 

 

 

박물관 원형 중정

 

 

 

 

 

비슈누 / 팔라바 왕조 7~8세기, 인도 남부

 

 

 

 

 

사자 석주 Lion pillar / 팔라바 왕조 7세기, 인도 남부

 

 

 

 

 

비슈누

 

 

 

 

 

사자 석주 Lion pillar / 7세기, 인도 남부

 

 

 

 

 

사자 석주?

 

 

 

 

 

공작새를 탄 전쟁의 신, 카르티케야(Kārttike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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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심하 (Narasimha) / 19세기, 인도북부

 

 

 

 

나라심하는 비슈누의 화신으로 사자의 모습을 한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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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 / 11세기

 

 

 

 

라마는 비슈누신의 7번째 화신(化身)이며,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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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두라이 비란(Madurai Veeran) / 19세기 인도 남부

 

 

 

 

마두라이 비란은 17세기 인도 남부 타밀나두의 마두라이를 수호한 전사. 무투 쿠마란(Muthu Kumaran)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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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에 박물관이 닫힌다고 하여 수박 겉 핥기 식으로 허겁지겁 한 바퀴 돌고 밖으로 나오니 해가 졌는지 어슴프레하다.

 

이제 인디아게이트를 돌아보고 저녁 식사를 한 뒤 저녁 8시 10분 발 카주라호 기차를 타러 가야 한다.

 

 

 

 

 

※ 인도 미술

 

그 대부분이 인도 고유의 불교·자이나교·힌두교 및 외래 이슬람교를 바탕으로 한 종교미술이다. 강한 종교성과 독특한 관능성이 특색이며, 아시아 각지 미술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고대에는 불교가 조형활동을 주도하였고, 힌두교 미술은 고대 말기부터 점차 성하여 중세 전기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자이나교는 고대·중세를 통해 소규모의 독자적 미술을 전개했다. 중세 후기에는 이슬람교 보급으로 종래의 것과는 다른 종교건축물을 세웠다. 조각은 석조가 대부분이며, 그 밖에 소토(塑土)·테라코타·청동을 사용했다. 벽화는 극히 한정되며 중세 후기 세밀화가 성행했다. 건축 재료는 돌이 주종이며 그 밖에 벽돌도 이용되었다. 인도 고유의 3종교에서 사원은 부조·벽화로 장식하였다. 즉 인도미술에 있어서 건축·조각·회화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선사시대
인도미술의 역사는  BC 2350년 ~  1700년 무렵 인더스문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대표적인 도시 모헨조다로·하라파에서는 질서정연한 도시계획하에 공공건물과 일반 주택을 벽돌로 만들었으며, 하수도도 완비되었으나 신전·궁전·왕묘 등은 보이지 않는다. 돌·청동의 조각은 많지 않으며 도시유적에서만 출토되었는데, 소형이지만 세련된 기법을 구사했으며 매우 사실적인 작품도 있다. 한편 테라코타조각이나 토우(土偶)는 넓게 분포하며 소박한 작풍을 나타낸다. 인더스문명의 지표인 인장(印章)은 주로 동석제(凍石製)이며, 해독이 안 된 문자, 소와 1각수(一角獸), 그 밖의 동물, 수신(樹神) 등이 새겨져 있다. 인더스문명은 후에 힌두문화에 계승되었다.

고대 초기
BC 1500년을 중심으로 아리아인이 침입하여 인도문화의 형성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아리아인이 전한 브라만교는 신전이나 신상(神像)을 필요로 하지 않았으므로 불교가 일어나는 BC 6~BC 5세기 무렵까지의 인도미술의 역사는 자료상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없다. BC 3세기 마우리아왕조 아소카왕 무렵부터는 조형 활동이 본격화되었다. 왕은 인도 각지에 불탑(stupa)과 기둥머리에 동물을 새긴 돌기둥을 세웠다. 석조기법은 고대 페르시아에서 전파되었는데, 사르나트에서 출토된 4마리가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사자기둥머리가 대표적이다. 수호신상 또한 이 무렵부터 제작되었고, 그 밖에 테라코타로 조각한 작품도 적지 않다. BC 2세기에는 석재로 불탑을 세우고 불교적 주제를 부조로 새겼다. 불탑은 석가모니의 유골을 모시는 분묘로서, 본체인 반구형(半球形)의 복발(覆鉢) 주위에 울타리를 두르고 정면 또는 사방에 탑문을 세웠다. 그 울타리나 탑문에는 석가모니 전기, 본생담 불교설화나 동식물무늬 등을 부조했는데, BC 2세기 말에 세워진 산치(Sanchi) 제2탑의 울타리, BC 1세기 초에 세워진 바르후트탑의 탑문과 울타리, BC 1세기 말에 세워진 보드가야대정사(大精舍)의 울타리 등을 거쳐 1세기 초에 세워진 산치 제1탑의 탑문에 이르러서는 정점에 이르렀다. 서인도의 데칸고원 북단에는 BC 2~AD 2세기에 걸쳐 많은 불교석굴사원을 만들었다. 석굴사원은 깊숙한 곳에 불탑을 안치하는 사당굴(祠堂窟)과 승원굴(僧院窟)로 형성되었다. 바자·아잔타·칼레 등에 있는 석굴사원이 유명하다. 이들 전기시대의 석굴은 간소한 목조 건축형식이며, 부조나 회화 장식이 적다. 아잔타 제9·10굴에 있는 그림은 기원 전후에 그려진 불교회화 최고(最古)의 유품이다. 고대 초기의 불교미술은 석가모니의 모습을 표현하지 않았다. 즉, 불전도(佛傳圖)의 부조에서도 윤보(輪寶)·대좌(臺座)·족적(足跡)·산개(傘蓋)·보리수(菩提樹) 등으로 석가모니의 존재를 시사했을 뿐이다.

고대 중기
1세기 중기∼4세기 중기에는 불상이 출현했다. 파키스탄 북부, 오늘날의 페샤와르를 중심으로 한 간다라지방은 BC 2세기부터 인도그리스인·사카족·파르티아족·쿠샨족 등 이민족의 지배 아래 외래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지역이다. 이 지방의 조형활동은 그리스계 문물을 애호한 파르티아족에 의해 1세기 중기에 시작되었는데 비불교적인 주제를 다루었다. 쿠샨족은 중앙아시아 남부에서 인도아대륙 북서부를 영유하는 대제국을 구축하고, 로마세계와 교섭함으로써 인도불교사상과 서방의 조형기법을 융합시킨 간다라불교미술을 탄생시켰다. 1세기 말에는 불전도 부조로 석가모니를 새겼고 2세기 중기 카니슈카왕 때는 단독불상을 만들었다. 이 석조중심의 미술은 2세기 말 전성기를 맞이했으며, 3세기 중엽 쇠퇴했다. 4∼5세기에는 소토조각이 활발해졌으며, 그 유적은 타흐티바히를 비롯한 간다라지방 및 그 북쪽인 스와트지방, 동쪽 탁실라 등의 펀자브지방, 하다 등의 아프가니스탄 일부 지역에서 발견된다. 간다라미술은 인도문화와 헬레니즘·로마문화의 동서문화가 교류되어 이루어졌기 때문에 구체적·현실적인 표현을 좋아했고 석가모니의 사적을 세밀히 그린 많은 불전도부조를 제작했다. 인물의 용모나 복장은 서양적이며 잘 정리되어 있다. 한편, 같은 쿠샨왕조의 지배하에 있던 인도 북서부의 마투라에서는 2세기 초에 불상을 처음으로 만들었다. 그 작풍은 간다라미술과는 달리 육체의 힘을 강조한 야성적이고 관능적인 인도 전통에 근거한 것이었으며, 이후 인도 각지의 공방(工房)에 영향을 주었다. 마투라에서는 자이나교 미술이 발전되어 많은 조사상(祖師像)을 남겼지만 그 형태는 석가모니상과 비슷하다. 불교·자이나교를 불문하고 만들어진 풍요와 다산(多産)의 여신 야크시는 풍만한 육체를 과시한 전라의 여성상으로, 마투라조각에 영향을 주었다. 이란풍의 복장을 한 쿠샨왕조의 여러 왕과 전사상(戰士像)도 중요하다. 이 무렵 남인도에서는 사타바하나왕조가 우세하였으며, 1∼3세기에는 아마라바티 등에서 유연하고도 다양한 군상을 표현한 불교부조가 나왔다. 그 전통은 익슈바쿠왕조의 나가르주나콘다로 계승되었다.

고대 후기
320년 굽타왕조가 세워진 때부터 647년 하르샤왕 1대의 제국 붕괴 때까지 300여년은 인도 고전문화가 발달되고 조형미술의 고전양식이 완성된 시기이다. 불교미술에서는 불상을 제작했다. 그 가운데서도 마투라와 사르나트의 2대 공방에서는 정신세계를 표현한 불상을 만들었고, 3세기 말에 형식화되고 쇠퇴하였던 마투라조각은 5세기 초 다시 부활되었다. 눈을 반쯤 감은 모습에 침착함과 위엄성을 갖추었으며 양 어깨에 걸친 법의는 몸에 밀착시킨 유려한 양각선(陽刻線)으로 전면에 주름을 나타냈다. 5세기 말 사르나트에서는 몸에 밀착된 법의에 주름을 전혀 나타내지 않고 생기발랄하고 온화한 불상을 제작했다. 서인도에서는 5세기에 석굴이 다시 조영(造營)되었다. 8세기 무렵까지 아잔타·아우란가바드 등에서 전기에 이어 조영되었고, 바그·에로다에서도 새롭게 조영되었다. 그 뒤 승원굴은 불당을 갖추고, 내부는 부조와 벽화로 화려하고 장엄하게 장식되었다. 그 중에서 6세기 초의 아잔타 제1·2굴, 5세기 말의 제16·17굴에는 뛰어난 벽화가 많이 남아 있다. 벽화는 템페라화의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많은 색이 사용되지 않았지만 선명하고 빛깔의 대비가 아름다우며, 설화화(說話畵)와 동식물 무늬를 주제로 벽과 천장을 꾸미고 있다. 또한 이때 힌두교의 조형활동이 시작되어 다음 중세기 초의 성황을 예고했다. 대표적인 유구(遺構)는 5세기 초의 우다이기리석굴과 6세기 초 데오가르의 비슈누사원이며, 마투라에서도 출토되었다.

중세 전기
7세기 이후 불교는 점점 쇠퇴하고, 13세기까지인 중세 전기는 힌두교미술의 전성기였다. 불교미술은 8∼12세기 동인도를 지배한 팔라왕조의 비호 아래 날란다·부드가야·라트나기리 등에서 발전하였으나, 대부분의 기법은 쇠퇴하고 작풍은 형식화되었다. 한편, 밀교의 융성과 더불어 불상의 종류가 증가하고 다양해졌다. 인도에서의 불교는 이슬람교의 압박으로 12세기 말 무렵 멸망했지만, 팔라양식은 네팔·티베트·동남아시아로 전파되었다. 한편 힌두교미술은 남인도에서 6∼8세기에 번영한 찰루키아·팔라바·판디아의 3왕조시대 때 조형활동을 활발히 했다. 찰루키아왕조의 조각은 부드러운 살결에 충실하고 튼튼한 팔·다리를 표현하는 것이 특색이다. 바다미·아이홀레 등에 있는 석굴과 석적사원(石積寺院)에 남아 있다. 팔라바왕조의 조각은 부드러운 몸매의 동적인 군상을 훌륭하게 표현했으며, 칸치푸람·마하발리푸람에 대표적인 유구가 있다. 757년 찰루키아왕조를 무너뜨리고 독립한 라슈트다쿠타왕조는 엘로라와 엘레판타에 대규모의 석굴을 구축하고 박력 넘치는 남신(男神)과 풍만하고 요염한 여신 등을 부조하여 힌두교미술의 전성기를 이룩했다. 북인도에서는 여러 왕조가 분리, 독립했으며, 9세기 말∼12세기 전기 찬델라왕조의 카주라호, 8∼13세기 오리사지방의 부바네스와르, 12세기의 푸리, 13세기의 코나라크 등에 북인도 특유의 본전(本殿)이 높은 석적사원으로 조영되었다. 남인도 힌두교사원의 본전은 높지 않은 피라미드모양의 건물이었으나, 뒤에는 누문(樓門)의 높이와 크기를 겨루게 되었다. 이슬람교의 영향이 북인도보다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 활동은 오래 지속되었다. 9∼13세기 촐라왕조, 12∼14세기 호이살라왕조, 14∼16세기 비자야나가르왕국, 17세기 나야카세력 등에 의해 탄자부르·치담바람·스리랑감·마두라이 등의 사원이 건립되었다.

중세 후기
이슬람교가 인도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은 8세기 초기부터이며, 본격적인 이슬람교미술은 12세기 무렵에 시작되었다. 이슬람교는 우상을 부정했기 때문에 건축이 주류를 이루었고, 모스크와 묘묘(廟墓)가 중심이었다. 초기에는 전통적 인도건축양식의 영향이 강한 모스크를 세웠는데, 델리의 쿠트브모스크가 대표적이다. 후기에는 이란계의 건축기술이 도입되었다. 16세기 무굴왕조 때는 균제(均齊)와 통일을 특징으로 하는 돔과 아치의 인도이슬람 양식의 건축물을 세웠다. 델리의 후마윤묘, 아그라의 타지마할묘 등이 유명하다. 16∼19세기에는 세밀화가 유행했으며, 무굴회화와 라지푸트회화 등의 2파가 있었다. 무굴회화는 이란세밀화의 영향을 받은 이슬람궁정미술로서, 주제가 현실적이고 세속적이다. 라지푸트회화는 무사계급인 라지푸트족 사이에서 발달한 회화로서 서민적 색채가 강하며, 주로 힌두교신화를 주제로 했다.

근세
18세기 말 영국의 인도지배가 확립되면서 경제적 풍토가 철저히 파괴되어 인도의 전통문화는 완전히 쇠퇴했다. A. 타고르(1887∼1951)는 전통문화의 복귀를 외치고 회화운동을 벌였으며, R. 타고르(1861∼1941) 등의 벵골파 화가들이 배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