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창녕 화왕산 (4) 관룡산 지나 화왕산성 억새꽃 평원으로

모산재 2015. 11. 5. 22:35

 

 

관룡산-화왕산 등산 안내도 

 

 

 

 

 

용선대를 지나 관룡산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 능선의 급경사 구간에 얼마간 암릉길이 이어집니다.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솟아 있는 능선을 한동안 오르다보니 평탄한 솔밭길이 나타나 잠시 가쁜 숨을 고릅니다. 그리고 이내 정상을 향해 가파른 오르막길로 접어듭니다.

 

 

 

 

정상이 멀지 않은 곳, 조망 바위에 올라 잠시 땀을 식히며 관룡산에서 구룡산으로 이어지는 병풍바위를 감상합니다.

 

 

 

 

남쪽 멀리 우뚝 솟은 산은 영취산(738m)일까요?

 

 

 

 

용선대를 출발한 지 30여 분만에 관룡산 정상(754m)에 도착합니다.

 

 

 

 

 

정상 부근 숲속 곳곳에 산객들이 자리를 잡고 점심 식사를 하고... 하지만 화왕산성에 가서 먹기로 하고 그냥 통과~.

 

 

 

 

관룡산 정상에서 화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평탄한 내리막길, 걷기에 아주 편안하고 기분 좋은 길입니다.

 

 

등산로 주변에 고사리가 흔하게 보여 포자를 찾아보는데, 이상하게도 포자를 단 고사리는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민둥산에서부터 시작된 고사리 포자 찾기는 계속 실패입니다.

 

 

20여 분 걷자 관룡산과 화왕산의 접점인 옥천삼거리에 닿습니다.

 

이곳에서부터 화왕산 동문까지는 널찍한 임도로 이어져 있어 등산이라기보다는 산책하는 기분이어서 마음조차 홀가분해집니다.

 

 

 

 

 

그런데  맞은편에서 한 무리의 산악자전거 행렬이 마구 달려오는 바람에 흙먼지를 고스란히 마십니다. 속도라도 줄여서 지나가는 배려를 기대했는데... 자전거를 밀쳐서 넘어뜨리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인간들!

 

 

 

 

고개를 넘어서자 멀리 화왕산성이 모습을 드러내고, 이내 허준 드라마세트장에 도착합니다.

 

 

 

 

따뜻한 가을 햇살을 받고 꽃을 피운 개나리

 

 

 

 

허준 드라마 세트장

 

 

 

 

 

드라마 세트장 앞에서 바라본 화왕산성

 

 

 

 

줌인해 본 화왕산성 남쪽 정상 배바위(756.8m)

 

 

 

저 남쪽의 바위봉우리를 보니 끔찍한 사건이 떠오릅니다. 2009년 정월 대보름날 화왕산성 억새 태우기 행사에서 거센 불길이 사람들을 덮치면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된 사건... 텔레비전에 많이 비추어졌던 바위로 기억됩니다.

 

 

 

 

 

비녀골풀 종류

 

 

 

 

개미탑

 

 

 

 

개수염 종류

 

 

 

 

관룡산 정상에서부터 40여 분만에 화왕산 동문에 도착합니다.

 

 

 

 

울산도깨비바늘

 

 

 

 

화왕산성 성곽을 경계로 그 바깥은 자연 혼합림 지역, 안쪽은 드넓은 억새평원이 일대 장관을 이루며 펼쳐집니다.

 

 

성곽의 북쪽, 왼쪽으로 보이는 화왕산 정상(757m)

 

 

 

 

 

 

성곽 위에 올라 한쪽에 자리를 잡고 성광이 풍광을 감상하며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지나온 관룡산 정상(754m), 멀리 보이는 영취산 정상(740m)

 

 

 

동쪽으로 보이는 허준 드라마 세트장

 

 

 

 

 

화왕산(火旺山, 757m)은 창녕읍의 진산(鎭山)으로 창녕군에서 가장 높은 산입니다. '불기운이 왕성하다'는 뜻의 산 이름은 '불뫼'라는 고유명에서 한자어로 정착된 듯한데, '비사벌' 또는 '빛벌'로 불리는 창녕이란 지명과 일맥상통합니다.

 

 

요새를 이룬 지형을 이용해 쌓은 산성이라 성벽이 그리 높지 않고 아담합니다. 남북 양쪽으로 우뚝 솟은 봉우리가 능선을 이루고 그 사이는 펑퍼짐한 언덕을 이른 모양이 말안장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성벽은 동문 등 낮은 곳에서는 높지만 절벽과 다름없는 남북 능선쪽으로 갈수록 낮아집니다. 성의 둘레는 2,700m쯤이라고 합니다.

 

성을 처음 쌓은 게 언제인지는 확실치 않은데, 이 고장 사람들은 진한 12소국 또는 6가야의 하나인 비화가야 때로 본다고 합니다. 

 

 

 

 

 

화왕산성에는 커다란 네모꼴의 연지가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세종실록' 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성 안에 샘이 아홉, 못이 셋 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지금은 아홉 개의 샘은 찾을 길이 없고 못은 이렇게 또렷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연지는 창녕 조씨 득성(得姓)과 관련된 전설을 아래와 같이 <창녕현읍지(昌寧縣邑誌)>에 남기고 있습니다. 

 

 

신라 때 한림(翰林) 벼슬을 하던 이광옥(李光玉)에게 예향(禮香)이란 딸이 있었다. 그녀가 뱃병을 앓았는데 만 가지 약이 소용없었다. 어떤 사람이 이르길 "화왕산의 못이 영험하니 만약 거기서 재계하고 기도하면 효험을 보리라." 했다. 그 말대로 기도를 하는데 문득 구름과 안개가 앞을 가려 예향이 간 곳을 알 수 없더니, 이윽고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풀리며 못 속에서 솟아올랐다. 뒷날 병은 나았고 수태까지 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겨드랑이 밑에  '조(曺)'라는 글자가 있었다.

 

 어느 날 밤 한 사나이가 나타나 "그대는 이 아이의 아비를 알겠는가? 옥영(玉瑛)이 그 이름이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무릇 옥영은 신룡(神龍)의 아들이다. 광옥이 이런 연유를 임금께 아뢰니 예향의 아들에게 '조'씨 성을 하사했다. 용과 예향 사이의 아들 계룡(繼龍)은 나중에 자라서 진평왕의 사위가 되었으며 창성군(昌城君)에 봉해졌다.

 

 

이 전설을 뒷받침하는 듯이 연지 부근 동문 가까운 언덕에는 1897년에 세운 '창녕조씨 득성지지비(得姓之地碑)'가 세워져 있습니다.

 

 

 

 

 

점심을 먹은 뒤 성길을 따라 북쪽 능선 쪽으로 이동~. 화왕산성 전경을 굽어보며 감상합니다. 건너편 배바위 정상(756.8m)은 화왕산 정상(756.6m)보다 높이가 20cm 높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용담

 

 

 

 

화왕산은 가을에는 은빛으로 출렁이는 억새꽃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지만, 봄에는 불꽃처럼 피어나는 진달래꽃으로 상춘객들을 불러들인다고 합니다.  

 

 

 

 

 

북쪽 능선길 아름다운 억새밭 풍경과 우뚝 솟은 화왕산 정상

 

 

 

 

 

 

 

화왕산 정상으로 오르며 돌아본 능선 풍경

 

 

 

 

화왕산성 전경

 

 

 

 

 

 

화왕산성 북쪽 능선. 성곽 바깥은 접근하기 어려운 가파른 암벽을 이루고 있다.

 

 

 

 

 

 

 

화왕산성 연지. 동문 성벽과의 사이에 보이는 '창녕조씨 득성지비' 자리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맞닿은 서쪽 성곽

 

 

 

 

화왕산성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의병장 홍의장군() 곽재우가 왜병을 대적한 무대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강직한 성품의 곽재우는 바른 말로 조정과 갈등을 겪었는데, 정유재란을 앞두고 경상좌도 방어사에 기용되어 화왕산성으로 병력을 이동시켜 전주로 향하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5만여 왜병을 유격전으로 저지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전투와 관련하여 사실이라기보다는 전설에 가까운 재미 있는 이야기들이 전합니다.

 

홍의장군은 왜병의 산성 공격에 대비해 성벽 위에 새끼줄을 치고 물 먹인 베를 걸어놓은 뒤 기병들을 배회하게 하였는데, 왜적들은 성 안에 복병이 많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돌아서 쪽으로 들어왔다. 그곳에는 이상한 궤짝이 잔뜩 널려 있었는데 아군의 군량미로 생각하고 뚜껑을 열었더니 벌떼가 쏟아져나와 왜군의 대오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이 때를 기다려 곽장군은 복병을 풀어 왜군을 무찔렀다. 

 

이튿날 새벽녘에 왜군은 다시 공격해왔다. 홍의장군은 여러 장수들에게 자기와 똑같은 전투복을 입게 한 뒤 산성 이곳저곳에 매복시키고 왜병이 몰려들자 폭약이 든 궤짝들을 왜군들 쪽으로 던지도록 했는데, 왜군들은 벌떼가 든 궤짝으로 알고 불을 질렀다. 곳곳에서 화약상자가 폭발하고  여러 명의 홍의장군이 함성을 지르며 공격하니 왜군들은 혼비백산하여 대오가 무너지고 말았다.

 

 

 

하지만 화왕산성을 지켜내고 얼마 뒤 8월 곽재우는 계모가 세상을 떠나자 삼년상을 핑계로 모든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은둔해 버립니다. 선조와 맞지 않았고 선조의 눈밖에 났던 그는 임진왜란의 전공을 전혀 인정받지 못했고 노년에 광해군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 은둔 생활을 합니다. 

 

 

 

 

 

서북쪽 능선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화왕산 정상(758m)

 

 

 

 

 

 

정상 표지석을 보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좁은 정상. 기념 사진 찍으려고 줄을 서 있는 모습

 

 

 

 

정상에서 돌아보는 성곽 북쪽 능선

 

 

 

 

서쪽으로 보이는 창녕읍

 

 

 

 

패랭이꽃

 

 

 

 

성곽의 서쪽, 서문 주변 풍경

 

 

 

 

서문 안에 벌어진 좌판

 

 

 

 

화왕산성 북쪽 성곽을 돌며 정상을 밟아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서문을 통하여 하산합니다.

 

 

 

 

급경사를 이룬 자하골 골짜기 하산길에는 '환장고개'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창녕읍에서 화왕산성으로 오르는 최단 코스로 워낙 급경사라 내려가는 길임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사뭇 조심스럽습니다. 하물며 거꾸로 올라오려면 참으로 '환장'할 고갯길일 듯합니다.

 

 

 

네 개로 갈라지는 누린내풀 열매

 

 

 

 

4여 분 걸려 자하골 골짜기에 자리잡은 화왕산장에 도착합니다.

 

 

 

20여 년 전에 환경교육 강연차 머문 적이 있는 산장. 저녁 무렵 창녕에서 택시를 타고 왔던 기억으로는 꽤 높은 곳으로 오른다 싶었던 곳인데 지금 보니 골짜기 입구에 자리잡고 있어 잠시 혼란을 느낍니다. 아래서 접근할 때와 위에서 내려올 때 느끼는 감각의 차이에서 오는 듯합니다.

 

 

 

마침내 창녕읍의 주차장에 도착, 화왕산 산행을 성공적으로 마감합니다. 

 

견고한 요새를 이룬 화왕산성 동쪽 암벽, 예사롭지 않은 산세에 끌려 한동안 바라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