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창녕 화왕산 (2) 소박한 돌담 산문으로 들어서는 아름다운 관룡사

모산재 2015. 11. 2. 21:12

 

푸근하고 정감 넘치는 표정을 한 장승 한 쌍을 만나본 다음 관룡사로 향합니다이내 임도는 제법 울울하게 그늘을 드리운 소나무 숲으로 들어섭니다. 산사가 가까워졌음을 직감합다.

 

 

☞ 관룡사 석장승 => http://blog.daum.net/kheenn/15857766

 

 

 

 

 

 

소나무 터널을 지나자 문득 환하게 열리는 푸른 하늘과 넓은 주자장! 바로 그곳에 그림처럼 자리잡은 관룡사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관룡사는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늘서서 있는 '창녕의 금강산', 관룡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관룡사는 현재 양산 통도사의 말사이지만, 삼국 시기인 신라 진평왕 5년(583)에 증법국사(證法國師)가 창건하여 8대 사찰의 하나였다고 합니다. '관룡사(觀龍寺)'라는 이름은 원효(또는 증법국사)가 제자 송파와 함께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다 갑자기 연못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다 합니다.

 

 

또한 척판구중(擲板救衆)의 전설이 있는 천성산 홍롱사와 마찬가지로 원효대사가 당나라에서 온 제자 1천여 명을 데리고 화엄경을 설법한 곳으로 전하기도 합니다. (척판구중 전설과 홍롱사 => http://blog.daum.net/kheenn)

 

 

임진왜란 때 대부분 당우가 소실되어 1617년(광해군 9)에 재건하고 숙종 30년(1704) 홍수로 금당 등이 유실되어 숙종 38년(1712)에 중건하고 1749년(영조 25)에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원래의 누문이었던 원음각과 그 앞에 누문 형식으로 새로 세운 범종루가 관룡산을 배경으로 멋진 그림을 이루었습니다.

 

 

 

 

그리 작지 않은 관룡사지만 일주문이 따로 없습니다.

 

저 아래쪽 방금 지나왔던 돌장승이 사찰의 경계를 나타내긴 했지만 문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바로 언덕 위에 자리잡은 절집들을 성곽처럼 둘러싸고 있는 돌담에 장대석 두 개를 걸치고 기와지붕을 얹은 앙증맞은 산문이  높은 돌계단 위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산문이 바로 실질적인 일주문의 역할을 한다고 봐도 될 듯합니다.

 

 

 

 

 

후덕한 돌장승과 눈맞춤하고 올라와서 다시 이 소박하고 정감어린 산문을 올려다보는 이 감격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엄숙한 사원을 방문한다기보다는 이전에 살고 있었던 집이 아닌가 싶게 고향집으로 들어가는 편안한 느낌입니다.

 

계단을 뛰어올라가면 어머니가 버선발로 나와 "니가 오나!"하고 반길 듯한 느낌...

 

 

 

 

 

돌담 문을 들어서면 절집 마당이 나올 줄 알았는데, 범종루 등 절집들은 여전히 돌담 안과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고, 길은 돌담 바깥과 언덕 아래를 지나 동쪽으로 굽이지며 이어집니다.

 

 

 

 

동쪽 마당에 이르러 비로소 천왕문을 만나 경내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천왕문은 돌담의 산문과 거의 수직 방향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천왕문을 들어서자마자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2층 누문이었던 원음각 옆마당을 지나 계단 위에 자리잡은 대웅전이 나타납니다. 

 

 

 

창녕에서 가장 큰 절 관룡사의 전각 배치는 참으로 오밀조밀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으로 눈에 들어섭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칠성각 서쪽에는 명부전이 자리잡고, 맞은편에는 원음각과 약사전, 절마당 동서에는 요사채가 마주하고 있는 구도입니다.  

 

 

 

 

대웅전 보물 제212호

 

 

 

 

1965년 보수공사 때 어칸 마루도리에서 발견된 상량문 등에 따르면 대웅전은 태종 원년(1401)에 창건되어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17(광해군 9년)에 중건하였고, 1704년 대홍수로 유실된 것을 1712(숙종38년)에 중건하고 영조 25년(1749)에 중창하였다 합니다.

 

정면과 측면이 모두 3칸인 다포식 팔작지붕집으로 정면 가운데 칸은 사분합 띠살문이고 나머지는 이분합 격자문을 달았습니다.

 

 

 

법당 내부는 빈 공간이 조금도 없을 만큼 아름답고 정교한 조각과 단청으로 가득 차 있으며 보존 상태도 매우 좋습니다. 

 

불단 위에는 석가모니불 양쪽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가 앉아 있습니다.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보물  제1730호

 

출처 : 문화재청

 

 

 

 

이 불상은 대좌 밑쪽에 묵서를 통해 1629년(인조 7)에 불상 조성을 시작해서 그 다음해(1630년) 5월에 완성되었음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조각에는 현진(玄眞) 등 8인이 참여하였는데 현진은 17세기 초에 함양 상령대보살상, 구례 천은사의 목조보살상, 보은 법주사 소조아미타여래삼불상 조성에 참여한 분으로 이 불상은 비교적 현진의 말년에 제작한 상이라고 합니다.

 

석가여래상은 높이가 150cm 정도이고 양쪽의 불상120cm 정도의 크기인데, 모두 얼굴형이 네모지고 코가 높고 크며 입과 턱 사이의 간격이 좁은 편이어서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한 표정을 보입니다. 옷주름 처리가 단순하고 결가부좌한 다리부분의 폭이 짧아 위엄이 좀 떨어지는 모습입니다.

 

 

 

 

원음전에서 바라본 동쪽 요사채와 칠성각

 

 

 

 

칠성각(七星閣)

 

 

 

칠성각에는 도교에서 유래한 칠성신을 모시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재물과 재능을 주고 아이들의 수명을 늘려주며 비를 내려 풍년이 들게 해주는 민간신앙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전각 안에 모셔져 있는 탱화는 칠여래를 표현하는 칠성탱화와는 달라 보입니다. 용을 타고 용들의 호위를 받고 있는 이 인물은 누구일까요...?

 

 

 

 

 

칠성각 뒤편의 응진전과 산령각

 

 

 

 

대웅전 맞은편의 원음각(圓音閣) 문화재 자료 140호

 

 

 

원음각은 원래 대웅전으로 오르는 누문으로 세워졌으며 위층은 불구(佛具)를 보관하고 설법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는 아래층을 벽으로 막아 스님들의 공부방으로 쓰고 있고 위층은 법당 마당 높이와 같은 우물마루를 놓아 절을 찾는 사람들이 차를 마시며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두었습니다. 

 

이 건물은 1634(인조 12년)에 세웠는데 1704년 대홍수로 훼손된 것을 영조 39년(1763)에 고쳐 지었다고 합니다. 건물이 대웅전의 중심축에서 서쪽으로 살짝 비켜선 배치를 보이는 것이 특이합니다.

 

 

 

서쪽 요사채와 명부전

 

 

 

 

명부전

 

 

 

 

주존인 목조지장보살좌상을 비롯 좌우의 도명존자상과 무독귀왕상, 시왕상 등 명부전 존상은 모두 1652(효종3년)에 응혜(應惠), 계찬(戒贊) 등 9명의 조각승에 의해 조성되어 봉안되었음이 무독귀왕입상과 제8평등대왕상에서 나온 원문에 의해 밝혀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존상들은 모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7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찰에 대해 사전에 별 공부없이 찾는 바람에 주요 문화재가 있는 한 군데를 빠뜨리고 마는 실수를 범하고 맙니다.

 

관룡사는 대웅전(보물 512호), 목조석가여래 삼불좌상(보물  제1730호), 약사전(보물 제146호), 석조여래좌상(보물 519호),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295호) 등 5개의 보물을 간직한 절입니다.

 

하지만 화왕산을 올라야 하는 부담감에 바쁘게 돌아보느라 서쪽 마당 모퉁이 쪽에 돌아 앉은 아주 작은 전각인 약사전의 존재를 놓치고 만 것입니다.

 

 

아쉽지만 놓쳐버린 약사전과 그 안에 모셔진 석불좌상과 그 앞마당에 자리잡은 삼층석탑은 자료들을 통해 공부하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약사전 보물 제146호

 

 

출처 : 문화재청

 

 

 

약사전은 임진왜란 때 불타지 않고 유일하게 보전된 관룡사 전각입니다. 조선 전기의 건물로 추정하며, 건물 안에는 중생의 병을 고쳐 준다는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는데, 건물과 불상이 모두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앞면 1칸·옆면 1칸의 주심포 양식의 맞배지붕집으로 매우 작은 불당인데, 지붕이 아주 길게 뻗어 나왔는데도 무게와 균형을 잘 이루고 있습니다.

 

독특하게도 전각 내부의 벽에는 문인화 계통의 사군자도와 화초도가 그려져 있어 눈길을 끕니다.

 

출처 : 위키백과

 

 

출처 : http://www.shilla.or.kr/gboard/bbs/board.php?bo_table=gallery&wr_id=191&page=110&page=110

 

 

 

관룡사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519호

 

 

출처 : 문화재청

 

 

머리에 표현된 반달 모양과 형식화된 세부표현 기법 등에서 관룡사 서쪽 능선에 있는 통일신하시대의 용선대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95호)을 고려시대(13~14세기) 이 지역 장인이 본떠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입니다.

 

 

 

약사전 삼층석탑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호

 

출처 : http://uriul.or.kr/board/40008

 

 

약사전 앞마당에 조성된 삼층석탑으로 탑의 규모도 아주 작고 각 부분의 양식이 간략해진 모습이 고려 전기에 만든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탑신부 지붕돌이 파손이 심한 편이며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한 개씩의 돌로 쌓아 올렸습니다. 지붕돌은 밑면 받침이 3단으로 간략화되어 있습니다. 

 

 

 

10월 중순을 넘어 해가 많이 짧아졌는데, 화왕산 산행 시간에 쫓겨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문화재를 돌아볼 수밖에 없는 처지...

 

걸린 시간을 확인해 보니 겨우 15분!  좀 심했던 것 같습니다.

 

대신 이렇게 사진을 들여다보며 조각 그림 맞추듯 공부하는 것으로 부실했던 '체험 학습'을 보완해 봅니다. 

 

 

 

 

이제 화왕산으로 오르는 코스로 접어듭니다.

 

이 코스는 관룡사의 또 하나의 보물인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을 서쪽 능선부에서 만나는 길이기도 합니다.

 

 

 

 

산길로 접어드는 곳에서 잠시 뒤돌아서서 관룡사와 관룡산 전경을 감상합니다.

 

 

 

 

 

 

관룡사 전각 배치도

 

출처 : 답사여행의 길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