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백담사 영시암, 오세암 지나 마등령 삼거리까지

모산재 2015. 9. 10. 22:36

 

이른 아침 출발하여 용대리에 도착하여 백담사행 셔틀버스를 탑니다.

 

 

17년만에 찾은 백담사는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셔틀버스를 타고 백담사까지 백담계곡을 따라 가는 길은 셔틀버스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도로 그대로이고, 아래로 반석과 기암이 어우러진 계곡은 아름답습니다.

 

 

 

주차장에 내려 백담사를 잠시 들렀다 가기로 합니다.

 

 

 

영실천을 앞에 두고 동쪽을 바라보는 백담사

 

 

 

 

 

 

백담사 앞 영실천 계곡은 17년 전 모습 그대로 돌탑들로 가득합니다.

 

 

 

 

 

 

'님의 침묵과 함께하는 템플스테이' 안내문이 적힌 불이문

 

 

 

 

 

 

 

 

주법당 극락전 마당에는 종무소인 화엄실과 법화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만해기념관이 보인다. 왼쪽 끝은 만해당, 오른쪽 앞 건물은 범종루

 

 

 

 

 

 

매월당 김시습의 시비가 눈길을 끕니다.

 

 

 

 

 

 '저물 무렵'으로 번역되어 있는 '만의(晩意)'라는 한시...

 

萬壑千峰外     천 봉우리 만 골짜기 너머로

孤雲獨鳥還     외로운 구름 밑 새가 돌아오누나

此年居是寺     올해는 이 절에서 머문다지만

來歲向何處     다음해는 어디로 떠나갈꺼나

風息松窓靜     바람 자니 창 밖 소나무는 고요하고

香鎖禪室閑     향 스러져 선방은 한적하구나

此生吾已斷     이승의 삶 이미 끊어버렸으니

棲迹水雲間     머문 흔적 물과 구름 사이 남아 있으리

 

 

잠시 계유정난 이후 현실에 절망한 매월당의 마음이 되어 생각에 잠겨보다 백담사를 떠납니다.

 

 

 

 

만해교육관과 만해적선당 앞으로 나와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 영시암으로 향하는 등산로로 접어듭니다. 

 

 

 

 

 

 

영시암까지(3.5km) 영실천변을 따라  평탄하게 나 있는 고즈넉한 숲길

 

 

 

 

 

길섶에는 용수염으로 보이는 풀들이 열매를 달고 있는 모습이 흔하게 보입니다.

 

 

 

 

 

 

10여 분쯤 걷자 나타나는 백담 탐방안내소

 

 

 

 

 

 

계속 이어지는 평탄한 숲길

 

 

 

 

 

 

줄곧 남쪽으로 이어지던 계곡길이 산모퉁이를 돌며 동쪽으로 향하는 곳, 바로 그 모퉁이에서 바위를 휘돌아 흐르는 여울물이 눈길을 붙듭니다. 바로 황장폭포(黃腸瀑布)입니다.  

 

 

 

 

 

 

 

이름은 폭포지만 와폭(臥瀑)으로 보기에도 낮은, 그저 물살이 힘차게 흘러내리는 여울처럼 보일 분인데 폭포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래서 '여울'이라는 뜻으로 황'장뢰(黃腸瀨)'라 부르기도 하며, 물소리가 나지 않는다 하여 '조용한 폭포'라고도 부른답니다.

 

 

 

 

 

 

 

 

 

폭포 이름이 하필 황장폭포(黃腸瀑布)인 이유는 무엇일까? 

 

황장(黃腸)은 바로 황장목, 속이 누런 금강소나무를 가리키는 말... 아마도 이 지역이 궁궐 건축에 쓰일 황장목을 보호하기 위한 봉산(封山)이 있어 유래된 이름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작은 계곡을 건너며 만나는 작고 아름다운 소(沼) 하나 

 

 

 

 

 

 

영시암 가는 길은 계속 영실천을 거슬러 오르는 평탄한 길입니다.

 

 

 

 

 

까실숙부쟁이가 꽃을 피웠으니 가을이 가까워졌다는 뜻!

 

 

 

 

 

유치원 아이들처럼 작고 귀여운 고깔먹물버섯들~.

 

 

 

 

 

왜천궁으로 보이는 산형과의 풀을 만납니다.

 

 

 

 

 

 

 

큰잎갈퀴, 갈고리네잎갈퀴 사이에서 논란 되는 갈퀴류

 

 

 

 

 

새며느리밥풀꽃이 한창입니다.

 

 

 

 

 

 

영시암까지 가는 길, 딱 중간쯤 왔습니다.

 

 

 

 

 

 

비교적 큰 사잇계곡을 건너고...

 

 

 

 

 

이곳 다람쥐는 사람들과 아주 친한 듯 손짓하니 쪼르르 달려와 만져도 그냥 있습니다.

 

도시락 외에는 먹일 만한 것이 없어 그냥 떠나니 괜히 미안합니다.

 

 

 

 

 

나래새로 보이는 풀들이 흔합니다.

 

 

 

 

 

힘차게 솟아나는 이 버섯은 누구일까요?

 

 

 

 

 

다시 갈고리네잎갈퀴, 네잎갈퀴 사이에서 고민하게 만드는 갈퀴류...

 

 

 

 

 

 

거의 한 시간이 가까워진 무렵에야 영시암이 눈 앞에 나타납니다.

 

 

 

 

 

 

 

 

영시암으로 들어서고...

 

 

 

 

 

17년 전엔 불당 하나 뎅그러니 있었던 것 같은데... 규모가 엄청 커졌습니다.

 

 

 

 

 

범종각 뒤로 보이는 비로전.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입니다.

 

 

 

 

 

그 앞에는 '영시암(永矢庵)'이라 새긴 현판이 걸린 요사채. 현판 글씨는 여초 김응현이 쓴 것입니다.

 

 

 

 

 

영시암은 조선 후기의 선비인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선생으로부터 비롯된 암자입니다.

 

숙종 15년(1689) 후궁 장옥정을 희빈으로, 아들을 원자로 책봉하자  이를 비판하는 송시열 등 서인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하는 기사환국으로 영의정 김수항이 사사되는 일이 일어나자 아들 김창흡은 속세와 인연을 끊고 이곳에 암자를 세웁니다. 

 

그가 남긴 시에는 이 때의 심경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吾生苦無樂    내 생애 괴롭고 즐거움이 없으니

於世百不甚    이 세상 모든 일이 견디기 어렵네

投老雪山中    늙어서 설악산에 몸을 던지려

成是永矢庵    여기에 영시암을 지었네

 

 

삼연은 형 창집 ·창협과 함께 은거하며 후에 관직이 내려졌으나 모두 사양하고 평생 학문에만 전념하였는데, 설악산에 은거하던 시절은 '설악일기(雪岳日記)'로 남아 있습니다.  

 

영시암이란 이름은 '영원을 향해 쏜 화살'이라는 뜻이니, 명리에 얽매이는 속세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삼연 선생의 비장한 마음을 담은 이름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시암을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인 오르막길 등산로가 시작됩니다.

 

 

영시암을 지나 3~4분쯤 오르면 오세암으로 가는 길(왼쪽)과 봉정암으로 가는 길(오른쪽 직진)의 갈림길이 나타납니다.

 

 

 

 

 

 

탐방로 안내

 

 

 

 

 

 

오세암길로 접어들며 돌아본 갈림길 모습

 

 

 

 

 

 

마등령으로 가는 길은 계곡을 거슬러 오릅니다.

 

 

 

 

 

단풍취는 꽃이 벌써 끝물인 듯합니다.

 

 

 

 

 

또 만나게 된 다람쥐. 먹을 걸 달라는지 주변을 맴돌며 자주 멈춰서서 포즈를 취합니다.

 

 

 

 

 

 

 

 

 

 

 

쥐털이슬 꽃도 한창이군요~.

 

 

 

 

 

참나물 꽃도 지천으로 피었습니다.

 

 

 

 

 

무당버섯

 

 

 

 

 

좁은잎배풍등은 잎이 좁은 것은 물론 꽃이 보랏빛이어서 배풍등과는 구별됩니다.

 

 

 

 

 

이건 또 무슨 버섯인지...

 

 

 

 

 

2회 삼출겹잎, 곧 하나의 잎이 9개의 작은잎으로 갈라졌으니 노루참나물로 봐야겠지요. 

 

 

 

 

 

고개를 넘어선 곳에서 만나는 커다란 버섯

 

 

 

 

 

이건 산갈퀴로 볼까요.

 

 

 

 

 

용수염으로 보입니다.

 

 

 

 

 

병조희풀

 

 

 

 

 

선갈퀴는 열매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능선을 넘어 작은 골짜기를 가로지르는 길, 오세암 1.1km 이정표

 

 

 

 

 

 

깔딱고개 오르막길로 접어드는 곳, 0.6km 남았다는 이정표 곁에는 장정 세 사람 쯤 되어야 안을 수 있는 아름드리 전나무가 서 있습니다.

 

 

 

 

 

그런 아름드리 전나무를 또 만납니다.

 

 

 

 

 

두메고들빼기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만난 울퉁불퉁한 나무 하나. 

 

정체가 무엇일까 올려다보다 특이한 점을 발견하고 깜짝 놀랍니다.

 

 

 

 

 

세상에!

 

나무의 몸통에 나 있는 잎사귀와 까마득한 꼭대기에 자라고 있는 가지의 잎 모양이 다른 게 아니겠습니까.

 

 

 

 

 

몸통의 잎사귀는 달걀형 홑잎인데

 

 

 

 

 

그 위의 줄기 잎은 이렇게 여러 개의 작은 잎이 마주난 깃꼴겹잎입니다.

 

 

 

 

 

 

 

줄기와 잎 모양을 봐서 몸통의 나무는 아마도 개박달나무가 아닌가 싶고, 줄기 꼭대기에 뿌리를 내린 나무는 마가나무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이 나무는 개박달나무 꼭대기 큰 가지가 부러져 나간 자리에 마가나무 씨앗이 자리를 잡고 싹이 터서 뿌리를 내리며 자라난 것입니다.

 

두 나무가 땅에 뿌리를 박고 자라나서 줄기아 가지가 하나가 된 것을 연리목, 또는 연리지라 하지만 이런 나무는 뭐라 불러야 할까요.

 

어미 마가목 입장에서 보면 마치 뻐꾸기가 탁란한 듯한 모양새입니다. 어미 개박달나무는 언제까지 저 새끼 마가목을 기를 수 있을까요?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던 분들께 이 나무를 보여 주고서야 다시 가던 길을 계속합니다.

 

 

물봉선

 

 

 

 

 

 

오세암에 이르기 직전의 마지막 깔딱고갯길입니다.

 

 

 

 

 

 

고갯마루에서 잠시 시원한 숲바람에 땀을 식히고 오세암으로 향합니다.

 

 

 

 

 

 

 

 

5분쯤 능선 허리를 돌아가니 오세암이 드디어 모습을 보입니다.

 

 

 

 

 

643년 선덕여왕 때 관음암(觀音庵)으로 창건되었고 조선 명종 때(1548년)에 보우(普雨)가 중건하였으며, 인조(1643년) 때 중건되면서 오세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매월당 김시습이 머리를 깎고 출가한 암자이기도 하고, 1920년대 만해 한용운이 이곳에 머물기도 한 유서 깊은 암자입니다.

 

 

 

 

 

산여뀌

 

 

 

 

 

동자꽃 전설이 서려 있는 암자 오세암!

 

어느 겨울, 탁발을 나섰던 스님을 기다리던 동자승, 폭설로 길이 막혀 이듬해 봄에야 스님이 돌아왔지만

동자승은 마을을 바라보며 애타게 기다리던 자세 그대로 싸늘하게 식은 몸이 되어 있었습니다.

동자승이 죽은 자리에서 주황색 아름다운 꽃이 피어났으니 이것이 바로 동자꽃이랍니다.

 

정채봉의 '오세암'이란 동화로 꾸며진 애잔한 전설입니다.

 

 

 

 

 

관음전 앞에는 큰금계국 노란 꽃들이 가득 피어 있습니다. 금계국 대신에 동자꽃을 심어두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관음전을 돌아가면 멀리 뒤편으로 오세암 본전이 나타나고, 관음전과의 사이에 자리잡은 작은 동자전이 보입니다.

 

 

 

 

 

동자꽃 전설의 동자를 모신 동자전(童子殿)입니다.

 

 

 

 

 

하지만 정채봉의 동화는 어디까지나 창작된 전설일 뿐, 실제 전설은 동자꽃과 관련이 없는 실존 인물과 관련된 다른 전설입니다. 

 

오세암(五歲庵)에 얽인 실제의 전설은 아래와 같은 관음 영험 설화입니다.

 

1943년 인조 때 이 절을 중건한 설정(雪淨)은 고아가 된 형님의 아들을 이 절에 데려다 키우고 있었는데, 하루는 월동 준비 관계로 양양의 물치 장터로 떠나게 되었다. 이틀 동안 혼자 있을 네 살짜리 조카를 위해서 며칠 먹을 밥을 지어 놓고는, “이 밥을 먹고 저 어머니(법당 안의 관세음보살상)를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부르면 잘 보살펴 주실 것이다.”고 하는 말을 남기고 절을 떠났다.

장을 본 뒤 신흥사까지 왔는데 밤새 폭설이 내려 키가 넘도록 눈이 쌓였으므로 혼자 속을 태우다가 이듬해 3월에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법당 안에서 목탁소리가 은은히 들려 달려가 보니, 죽은 줄만 알았던 아이가 목탁을 치면서 가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고, 방 안은 훈훈한 기운과 함께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아이는 관세음보살이 밥을 주고 같이 자고 놀아 주었다고 하였다. 다섯 살의 동자가 관세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난 것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관음암을 오세암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바로 오세암 전설이 서려 있는 주법당인 오세암입니다.

 

 

 

 

 

고종 때인 1888년에 중건된 건물은 2층 법당으로 박달나무로 기둥을 세웠는데, 매끄럽기가 부드러운 명주옷으로 문질러도 결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건물은 한국전쟁으로 소실되고 현재의 건물은 그 이후 중건된 것이라 합니다.

 

 

 

 

 

 

마침 점심을 먹을 시간이라 절마당에서 점심 공양을 받는 산객들도 있습니다.

 

 

금강산도 식수경, 암자 뒤편 골짜기로 들어가 너럭바위에 앉아 점심을 먹기로 합니다. 골짜기 곳곳에 산객들이 식사를 하는 하고 있는데 스님 한 분이 산책을 나와 골짜기를 어지럽히지 않나 살펴보고 지나갑니다.

 

 

 

신흥사까지 총 15km나 되는 거리, 시간이 부족하지 않을까 싶어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 마등령으로 향하는 최고의 깔딱고개로 갈 길을 재촉합니다.

 

 

 

그물버섯류

 

 

 

 

 

수피에 큰  상처를 입고도 이름드리 거목으로 자란 잣나무

 

 

 

 

 

 

오르막길 풍경

 

 

 

 

 

곧게 자라는 성질이 있는 보통 피나무와는 좀 다른 모습

 

 

 

 

 

 

 

이 벼과의 풀은 실새풀일까...? 아님 산새풀일까...?

 

 

 

 

 

만주우드풀일까...

 

 

 

 

 

 

깔딱고개 중간 능선. 

 

아름드리 소나무가 서 있는 작은 암릉 봉우리에서 잠시 호흡을 고르며 주변 경관을 조망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 땀을 식혀주니 살 것 같습니다.

 

 

 

 

 

 

 

 

 

 

 

 

 

 

 

 

 

 

 

가지가 많이 벌어졌으니 그늘송이풀로 봐야 할까...

 

 

 

 

 

젖버섯처럼 보이는데, 갓을 잘라봐도 흰 유액이 나오지 않는다.

 

 

 

 

 

 

0.5km 남은 마지막 급경사 구간.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던 남자 분은 이 구간에서 많이 고통스러워합니다. 

 

 

 

 

 

새며느리밥풀

 

 

 

 

 

 

마침내 마등령 삼거리에 도착.

 

힘들어하던 분은 뒤로 쳐졌는데, 남은 시간에 여유가 없을 듯하여 기다리지 않고 바쁘게 갈 길을 갑니다.

 

 

 

풀솜대 열매

 

 

 

 

 

 

정상부의 능선은 숲그늘을 이루고 있는데 투구꽃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공룡능선의 장관이 펼쳐지는 마등령 삼거리, 개활지 전망대에 도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