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보물 497호 양양오색리삼층석탑, 오색석사 인법당

모산재 2015. 6. 21. 17:50

 

설악산 흘림골 주전골 여행의 끝머리에서 오색석사(五色石寺)에 이르렀다.

 

오색약수터에서 1km 쯤 상류, 계곡 옆 비교적 넓은 터에 자리잡은 오색석사는 주민들이 '성국사터(城國寺)'로 불러온 작은 절터에 최근에 법당을 조성한 절인데,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 하나가 자리잡고 있다. 

 

 

주민들은 성국사터(城國寺址)라 하지만 근거는 확실하지 않고, 기록에 남아 있는 오색석사라는 절 이름이 오색리의 지명과 관련되어 원래의 절 이름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에 지은 법당 이름은 인법당(因法堂), 보물 제497호로 지정된 석탑의 공식 명칭은 '양양오색리삼층석탑'.

 

 

 

 

삼층석탑은 한눈에 보아도 석가탑의 계보를 이은 양식인데, 상륜부는 모두 사라지고 없다. 원래 완전히 무너져 있던 것을 1971년에 복원하였다 한다.

 

 

 

 

 

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두고 있는 형태로, 2층과 3층 탑신이 1층 탑신에 비해 크게 낮아 석가탑에서 볼 수 있는 비례미와 상승미가 다소 떨어져 보인다.

 

탑의 모습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싶었는데, 기록을 보니 이 절을 창건한 이는 바로 설악의 동쪽 진전사를 창건한 도의선사다. 통일신라 헌덕왕(809~825) 때의 승려이니 이 탑도 아마 그 때 지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탑의 높이는 4.1m.

 

2층기단과 지붕돌의 얇은 낙수면 등에서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삼층석탑과 좀 떨어진 곳에는 사라진 도 다른 탑 부재의 일부가 남아 있다. 

 

 

 

 

 

오색석사는 옛날 오색령을 넘나들던 나그네들에게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와 일제 강점기까지 '현곡사'란 이름으로 불려왔는데 성국사란 이름은 어느 교수가 지었다고 전한다.

 

 

인법당()은 큰 법당이 없는 절에서 승려가 머무르는 곳에 불상을 함께 봉안한 전각이나 승방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신라 말 선문구산(禪門九山)의 하나인 가지산파의 개산조(開山祖) 도의(道義)가 창건하고, 성주산파(聖住山派)의 개산조인 무염(無染)도 이 절에서 출가하였다는 기록이 전하며, 그 뒤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후원에 다섯 가지 색깔로 꽃이 피는 나무가 있어서 절 이름을 오색사라 하고 지명을 오색리라 하였으며, 절 아래에 있는 약수도 오색약수라 하였다고 한다.

 

 

 

인법당 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