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들어본 산 이름, 운장산(雲長山)!
전북 전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산이라서 평야지대의 아담한 야산이려니 생각했는데, 지도를 보니 오지의 대명사 '무진장'의 한 고을인 진안에 있는 높이가 1000m를 훌쩍 넘는 고산(1125.8m)으로 금남정맥(지리 교과서식으로는 노령산맥)에 자리잡고 있다.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이라니 마음이 동해서 산행에 나섰다.
처음으로 만나는 익산 완주고속도로를 달리다 순두부로 유명하다는 화심 마을을 지나 북쪽 동상면 방향으로 접어드니 무진장의 깊고 험한 산지가 시작된다.
서울을 출발한 지 꼭 세 시간이 지나 사봉리 연동마을 조금 못 미친 한적한 등산로 입구에 도착한다.
오늘 코스는 연동마을에 시작하여 먼저 연석산을 넘고, 연석산과 운장산을 잇는 안장부의 능선 늦은목(만항재)을 지나 운장산을 넘어 내처사동에 이르는 9.50km의 등산로. 5시간쯤 걸린다고 한다.
※ 연석산-운장산 산행 지도(참조 : 네이버 지도)
연동 =>연석산 => 만항재 => 운장산 서봉(칠성대) => 운장대 => 운장산 동봉(상장봉) => 내처사동(약 9.5km, 5시간)
등산로 입구. 멀리 연석산 봉우리가 보인다.
연석산(硯石山·928m)은 이름 그대로 '벼루(硯)'를 만드는 돌'(石)'이 많이 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완주와 진안의 경계에 걸쳐 있는 산으로 서쪽은 완주군, 동쪽은 진안군이다. 서쪽 계곡의 물은 만경강으로 흘러들고 동쪽 계곡은 금강으로 흘러든다.
※ 연석산 등산 안내도
평탄한 농로로 접어들며 산행 시작. 계곡에 이르기까지 수백 m 이어진다.
연석산 정상까지는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을 듯...
연석산 정상의 높이는 다음과 네이버 지도에는 모두 960m로 표기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백과사전에서는 928m로 되어 있어 어느 쪽이 정확한 것인지 알 수 없다.
10여 분쯤 지나 산길로 접어들고...
커다란 암벽 아래로 난 길을 지난다.
등산로에 핀 좀가지꽃
뻐꾹나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은꿩의다리일까, 자주꿩의다리일까?
분포지역으로 보아 은꿩의다리(참꿩의다리)가 맞을 것이다.
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 10여 분 되는 곳에 '산지당(산제당)'이란 팻말이 보이는데, 산신에게 제를 올리는 곳.
산지당 주변에는 어느 각시가 베를 짰다는 베틀바위, 그 각시가 노동의 피로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목욕하였다는 각시소, 오랜 가뭄으로 물이 흐르는 소리조차 없는 계곡에 눈길이 가지 않는다.
꽃을 피우고 진 흔적만 남기고 있는 산갈퀴
남부지방에 자생한다는 희귀식물, 갈사초
산골무꽃이지 싶은 골무꽃
산중에서 만나는 이 뽕나무는 그냥 산뽕나무로 보면 될까...
산 중턱을 지나면서 사람주나무가 부쩍 자주 눈에 띈다.
꽃차례의 위쪽에는 희미한 수꽃, 아래쪽에는 세 갈래의 암술이 달린 암꽃이 자리잡고 있다.
해발 200m 정도에서 시작한 산길은 내리막길 한번 없이 정상을 향해 가파르게 이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차나무과의 노각나무 지대가 한동안 이어진다.
노각나무의 잎 모양이 노린재나무와 유난히 비슷해 보인다.
6월이면 새하얀 꽃을 피우는 계절인데, 아쉽게도 꽃봉오리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잎을 따라 긴 꽃줄기 끝에 꽃을 단 죽대가 흔하다.
흰씀바귀
정상 가까이에 오르자 햇빛을 확보한 풀밭이 보이기 시작한다.
올라선 봉우리는 연석산 정상 부근의 915m봉
그런데 이정표가 훼손되어 바닥에 내려져 있는데 연석산 정상을 왼쪽으로 표시해 놓았다.
바닥에 표시해 놓은 대로 왼쪽 능성길로 가다보니 아무래도 방향이 다른 것 같아 지도를 꺼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반대 방향이다.
누가 이런 장난을 쳤을까. 산행 초보자에게는 어쩌면 치명적일 수도 있는데...
함께온 일행과 되돌아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이정표를 원위치에 복원해서 방향을 바로 잡아 놓는다.
바로 이정표 뒤로 보이는 가까운 봉우리가 연석산 정상,
저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운장산 서봉(칠성대)과 운장대이다.
남쪽이라 미역줄나무꽃이 활짝 피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딱 한 송이만 꽃잎을 보인다.
200m 거리에 있는 연석산 정상에 도착하다. (이곳에는 높이가 928m 가 아닌 925m로 표기되어 있다.)
이정표 뒤로 보이는 운장산 서봉과 운장대
<산경표>에 따른 금남정맥은 서쪽의 평야지대와 동쪽의 산악지대를 나누며, 진안 주화산에서 출발해 이곳 연석산과 저 건너편에 우뚝 솟아 있는 운장산(1,126m)을 지나고 금산 대둔산과 공주 계룡산을 지나 부여 부소산에서 백마강을 만나며 그 맥을 다한다. 교과서식 지리에 따르면 덕유산, 내장산, 대둔산 등으로 이어지는 노령산맥의 분수령이 되는 산이다.
연석산 정상에서 운장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만항재. 우리말로는 늦은목으로 부른다.
두 산이 워낙 우뚝 솟은지라 연석산 정상에서는 만황재 능선이 보이지 않아, 마치 깊은 골짜기로 내려가서 다시 올라가야 하는 것처럼 아득하게 깊어 보인다.
건너편에 솟은 운장산을 바라보며 산죽밭 사이로 내려서는 길은 급경사를 이룬다.
배가 슬슬 고파와 내리막길 중간쯤 소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기로 한다.
지나가던 산객이 멀리 마이산이 보인다고 해서 보니
저 멀리 솟은 뾰족한 산 봉우리 옆으로 흐릿하지만 과연 마이산이 보인다.
진안의 남쪽, 수마이산(678m) 암마이산(685m) 두 귀가 쫑긋 솟아 있다.
흰 꽃이 만발한 산딸나무를 내려다보며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다 먹은 후 다시 운장산을 향하여 출발!
만항재(늦은목)는 남쪽의 정수궁마을과 북쪽의 검태마을을 이어주는 고개다.
만항재를 지나 다시 운장산을 향해 가파른 비탈을 오르며 만난 선백미꽃!
하지만 꽃이 제대로 달리지 못한 모양이다.
능선길에서 정금나무가 꽃을 피운 모습이 종종 보인다.
꽃이 깨알처럼 너무 작아서 담기가 쉽지 않다.
소나무 쉼터에서 바라본 운장산
대사초에 비해 잎이 가는, 지리대사초가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다.
마침 대사초가 곁에 자라고 있는 것이 보여 비교 버전을 찍어본다.
시들어 늘어져 버린 은분취.
오랜 가뭄에 등산로 주변 곳곳에서 죽어가는 풀과 나무들이 보인다.
시들어가는 은분취처럼 한여름처럼 무더운 날씨에 가파른 오르막길 산행이 퍽 힘겹게 느껴진다.
서봉(칠성대)에 가까워진 바위 위에서 바라본 봉곡저수지 방향의 골짜기 전경
일월비비추 군락
드디어 운장산 정상의 3봉 중 서봉인 칠성대(1120m)에 도착!
정상 표지석 주변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
'방 빼!'라는 소리에도 사진 찍느라 분주한 모습, 그래서 이런 묘한 사진을 얻었다.
운장산 정상의 봉우리는 상봉, 동봉, 서봉의 3개 봉우리가 거의 비슷한 높이로 솟아 있다.
운장산이란 산 이름은 칠성대 부근 오성대에서 은거하던 조선 선조 때 서인의 막후 실력자로 꼽히던 성리학자 송익필(1534~1599)의 자인 운장(雲長)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해진다. 송익필은 서출로 벼슬길에 나아가지는 못했는데, 그의 집안은 신사무옥(辛巳誣獄)과 기축옥사(己丑獄事) 등으로 노비와 양반을 오가는 영욕을 겪었으며, 정여립모반사건으로 일어난 기축옥사(己丑獄事)를 막후에서 조종한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 참고 => 송익필)
우람한 암봉으로 이루어진 서봉은 칠성봉 또는 독재봉으로 불리며, 북두칠성의 일곱 성군이 진안 운장산에 내려와서 암자에서 공부하던 선비들을 일깨워주고 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 운장산 칠성대(雲長山 七星臺) 전설 (출처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옛날에 진안 운장산 깊은 골짜기에 절이 하나 있었는데 절의 주지승이 산을 개간하여 농사를 지으며 불도를 닦고 있었다. 어느 날 산중에 일곱 청년이 손님으로 찾아왔는데 이들은 불공을 드리러 온 사람들도 아니고 불도를 배우러 온 사람들도 아니었다. 수려한 외모를 가진 일곱 청년들은 망태를 둘러매고 있었다. 일곱 청년은 주지승에게 요기를 시켜달라고 부탁하였다. 주지승이 자기 먹을 밥도 없다며 부탁을 냉정히 거절하자 이들은 산 위의 암자로 가서 과거 공부를 하는 선비들에게 밥을 달라고 간청하였다. 때마침 저녁밥을 준비하던 선비가 불공을 드린 후에 식사를 드릴 터이니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일곱 청년은 “배고픈 사람의 사정도 모르면서 무슨 벼슬을 한다고!”라고 화를 내면서 밥상을 지팡이로 내리쳤다. 선비가 놀라 뒤돌아보니 그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자신들이 공부하던 책도 없어져 버렸다.
이 일곱 청년은 북두칠성의 일곱 성군으로, 운장산 암자에서 공부하는 선비들이 장차 벼슬길로 나가 나라의 큰 동량이 될 만한 하여 선비들의 재질을 한번 시험하려고 내려간 것이었다. 그러나 일곱 성군은 선비들에게 실망하여 그들을 혼내주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선비들은 그 후 자신들의 부족함을 깨닫고 벼슬의 꿈도 버린 채 불도를 닦는 수도승이 되었다. 그리고 북두칠성의 일곱 성군이 내려와서 선비들을 일깨워준 곳을 칠성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칠성대에서 되돌아본 연석산과 만항재(늦은목) 능선
만항재 북쪽 계곡 전경
칠성대 남쪽의 조망바위
서봉인 칠성대에서 바라본 오른쪽의 상봉(운장대)과 왼쪽의 동봉(삼장봉) 전경
바로 앞에 보이는 바위가 상여바위
상봉(운장대)로 가는 길에 서 있는 이정표
상여바위에서 되돌아본 칠성대 바위
상여바위에서 상봉(운장대)으로 이어지는 능선
뒤돌아본 칠성대와 전망바위
실청사초 종류. 지리실청사초일까...?
석축을 쌓은 모습이 보인다. 석성의 흔적일까.
암벽에 뿌리를 내린 자주꿩의다리
늦은 꽃을 피우고 있는 조릿대
운장상의 상봉인 운장대 아래에 설치된 기지국
상봉 운장대(1126m)에 도착!
운장대에서 동봉(삼장봉) 가는 길
운장대에서 바라본 동봉(삼장봉)
아직도 꽃이 남아 있어 반가운 산앵도나무
참빗살나무도 꽃을 피우고 있다.
삼장봉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산성(석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흐드러지게 꽃을 피운 말발도리
남쪽 방향의 풍경
동봉(삼장봉)으로 오르는 암벽길
운장산의 마지막 봉우리이자 최고봉인 삼장봉(1133m)에 도착!
무슨 영문인지 운장산의 높이를 기록한 문헌은 모두 1126m로 되어 있다.
최고봉인 삼장봉의 높이 1133m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이유가 뭘까?
삼장봉(동봉)에서 돌아본 운장대(상봉)와 칠성대(서봉) 전경
남쪽 골짜기 전경
숲그늘의 아름다운 여인의 머릿결보다 더 싱그럽고 고운 사초들~.
상봉에서 북쪽의 내처사동으로 내려서는 능선길은 별 묘미가 없는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두 발길을 중력에 맡기며 빠르게 하산하여 내처사동 계곡에 이른다.
심한 가뭄으로 계곡의 물은 흐름을 멈췄지만 사람의 발길이 잦지 않은 탓에 비교적 깨끗하고 서늘하다.
아직도 고광나무가 하얀 꽃이 피어 있는 내처사동 마을길로 들어서며 기나긴 연석산, 운장산 산행은 모두 끝났다.
닭들이 뜰에서 평화롭게 모이를 쪼고 있는 풍경이 정겹다.
송어횟집이란 간판이 있는 집에 간이매점을 겸한 휴게소가 있어 시원한 병맥주를 마시며 등반의 피로를 씻는다.
내처사동이라고 해서 '내처사'란 절이 있었냐고 청년의 나이로 보이는 주인에게 물었더니, 그냥 동네 이름일 뿐이란다.
옛날 산속으로 숨어든 처사들이 살았던 곳이라서 내처사동인데, 가까운 곳에 외처사동도 있다는 거다.
운장산을 끼고 만들어진 주차장.
주차장 한쪽 간이 매대에서 머위 등의 나물을 팔고 있는 동네 아주머니와 할머니들...
외처사동 하류 금강수계에는 운일암(雲日岩)·반일암(半日岩)이라는 대불천(大佛川) 계곡이 있다고 한다. 족두리 바위·천렵 바위·대불 바위·삼형제바위 등 기암괴석이 즐비하고 계곡은 물이 맑고 시원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예전에는 따로 길이 없어 오로지 하늘과 돌과 나무와 오가는 구름뿐이어서 운일암이라 하고, 깎아지른 암벽과 숲에 쌓여서 햇빛이 반나절 밖에 비치지 않아 반일암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부여의 낙화암까지 뚫려 있다고 전하는 용소도 있다는데, 언제 한번 찾아 보고 싶은 계곡이다.
※ 연석산, 운장산 등산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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