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순창, '호남의 금강산' 강천산 계곡, 강천사

모산재 2015. 1. 15. 14:16

 

담양호를 돌아보고 나서 순창의 맛집이라는 새집식당에서 한정식으로 저녁을 먹고 어느 모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날 아침, 호남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강천산(剛泉山) 계곡과 강천사로 향한다. 강천산은 어제 담양호에서 바라보았던 금성산과 금성산성과 이어지며 전남 담양과 전북 순창의 경계를 이루는 노령산맥의 주봉을 이루고 있다. 겨울 강천산은 눈꽃 트레킹의 명소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순창에서 백산 고추장 단지를 지나 강천산 가는 길,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늘어선 아름다운 풍경 속을 지난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모습이 아쉬운데, 신록이나 단풍이 있는 계절 이 길을 드라이브한다면 분위기가 참 괜찮을 것 같다.

 

 

 

 

 

 

 

도로를 따라 길게 펼쳐진 강천제라는 호수를 지나자마자 좌회전하며 강천산길로 접어든다.

 

 

 

 

 

강천산 군립공원 매표소

 

 

 

 

 

 

강천산(剛泉山)은 그리 높지는 않은 산(584m)인데도 산세는 준수하다.

 

산성산(603m)과 광덕산(578m)이 연이어져 있는 산세가 용이 꼬리를 치며 승천하는 모습과 닮았다 하여 용천산(龍天山)이라 불리기도 했다는데, 깊은 계곡과 우뚝 솟은 기암 절벽이 어우러져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아름다운 산으로, 1981년에 전국 최초로 지정된 군립공원이라고 한다.

 

 

※ 강천산 군립공원 안내도

 

 

 

 

 

주요 산책로는 매표소 - 병풍폭포 - 강천사 - 구름다리 - 구장군폭포로 이어지는 구간으로 왕복 5㎞ 남짓한 거리. 계곡길은 비교적 넓고 평탄해서 편안한 편이다. 구장군폭포를 지나 금성산성을 오르는 것도 괜찮겠다.

 

 

매표소에서 처음 건너는 신선교에서 바라본 계곡

 

 

 

 

 

 

계곡의 물은 맑고 수량도 풍부하다. 강천산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아까 지나온 강천제에 머문 뒤 순창읍내를 지나 섬진강과 합류한다.

 

 

강천산 계곡은 음이온이 많기로 소문나 있다. 북동 방향으로 흘러내리는 계곡에는 볕이 많이 들지 않는 편인데 폭포가 여러 곳 있어서 음이온이 많이 발산되고 있다고 한다. 음이온은 혈액 속의 미네랄 성분인 칼슘, 나트륨, 칼륨 등의 이온화율을 상승시켜 혈액을 정화시킨다고 한다.

 

 

한 굽이 돌아가니 빙벽을 이룬 폭포가 나타난다. 오른쪽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에는 '병풍폭포'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병풍처럼 두른 저 절벽이 병풍바위란다.

 

 

도선교(道詵橋)에서 바라본 병풍폭포

 

 

 

 

 

 

 

 

 

 

 

 

 

계곡이 아닌 위치에 어인 폭포일까 했더니, 인공폭포란다. 그래도 다른 지역의 인공폭포에 비해서는 그리 어색하지 않고 자연미를 잘 살렸다는 느낌이다. 2003년에 조성되었다는데, 높이 40m, 너비 15m.

 

 

계곡 건너편으로는 2009년에 조성한 총길이 2.6㎞의 목재데크 산림욕장 길이 있다. 숲과 계곡의 청정한 산소와 음이온을 맘껏 느끼도록 만든 길이라는데, 추운 겨울이어선지 이용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고드름 빙벽

 

 

 

 

 

 

 

 

'소나무 그늘'도 없는데, 송음교(松蔭橋)라는 다리를 지나고...

 

 

 

 

 

 

다리를 건너자마자 계곡에 마주 보이는 암벽이 소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는 송음암(松蔭巖)이란다.

 

 

 

 

 

계곡에는 나무다리가 놓여 있고 송음암 아래 에는 5기의 사리탑이 있는 부도전이 있다.

 

 

 

 

 

송음암 아래에 있는 폭포. 아마도 천우폭포(天雨瀑布)인 듯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메타세쿼이아 길

 

 

 

 

 

 

극락교를 건너기 전 계곡의 암반과 소를 용소라 부르는데, 세상이 어지러우면 용이 울어댔다는 전설이 있다.

 

용소 건너편 강천산 정상에서 흘러내리는 물통골을 따라 200m쯤 오르면 약수폭포가 있는데 피부병 치료에 효험이 높아 예전에 여인들이 많이 찾았다고 한다. 폭포 아래에는 약수암이라는 암자가, 위로는 천우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한다.

 

 

 

극락교를 건너며 강천사 경내로 들어서게 된다.

 

 

 

 

 

강천사 일주문인 강천문(剛泉門)

 

 

 

 

 

 

강천사가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고 뾰족하게 솟은 신선봉(425m)이 보인다.

 

 

 

 

 

 

누가 쌓았을까... 계곡은 돌탑들로 가득하다. 

 

 

 

 

 

 

일주문은 있는데 인왕문도 천왕문도 없는 강천사. 

 

건너편 산에 사천왕 형상의 바위가 버티고 있다 하여 강천사에는 사천왕상을 조성하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경내는 전각 건물 다섯 채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관리를 하거나 꾸민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수수한 모습인데 조금 쓸쓸한 분위기가 감돈다.

 

대웅전 앞쪽으로 거리를 둔 뜰에는 오래된 작은 오층석탑 하나와 새로 조성한 두 개의 석등이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세워져 있고 무엇인지 알아보기 쉽지 않은 석조 부재들이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서 있다.

 

 

 

↑ 전각은 왼쪽에서 차례대로 대웅전, 염화실, 세심대

 

 

강천사(剛泉寺)는 선운사의 말사로 지금은 비구니 도량이라고 한다. 이 절은 비구승보다는 비구니가 더 많이 머물렀다고 하는데, 이는 이 절을 창건한 도선이 "머리카락과 수염이 없는 사람이 이어야 빈찰(貧刹)에서 부찰(富刹)로 바뀌고 정화가 된다."고 한 예언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신라 진성여왕 때인 887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고, 1316년 고려 충숙왕 때는 오층석탑과 12개 암자를 창건하여 천여 명의 승려들이 머물렀다니 사세가 대단한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건물들은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버렸고 1604에 재건하고 여러 차례 중수를 거치며 내려오던 것이 한국전쟁 때 또 모두 불타버렸다. 

백과사전 등의 기록에는 1959년에 첨성각을, 1977년 관음전을, 그리고 이듬해 보광전을 신축하였다고 하는데 현재 강천사에는 천성각돠 관음전이란 전각이 보이지 않는다.

 

 

옛 건축물이라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오층석탑(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2호)인데, 규모도 작은 탑이 심하게 파손되어 있어 보기에 민망하고 안쓰럽다. 

 

 

 

 

 

대웅전은 원래 보광전으로 유지되어 왔는데, 1992년 대웅전으로 바뀌었다 한다. 보광전은 일광변조보살과 월광변조보살이 협시하는 약사유리광여래를 모신 약사전이다.

 

 

 

 

 

 

삼존불상. 주불 석가모니불을 협시하고 있는 보살은 문수보살 보현보살이 아니라 지장보살과 관음보살로 보인다.

 

 

 

 

 

 

범종각이 없는 강천사. 대웅전과 염화실 사이의 노천 공간에 범종을 매달아 놓았다. 이렇게 눈비를 다 맞는 범종이 강천사 말고 또 있을까...

 

 

 

 

 

 

 

강천사 전각 건물은 일자로 늘어서 있다.

 

 

제일 안쪽부터 심우당, 대웅전, 염화실(주지실 겸 종무소), 세심대

 

 

 

 

 

그리고 마당에는 단청 없는 이층누각, 용화당이 덩그러니 서 있다.

 

 

 

 

 

 

그런데 의문 하나!

 

강천사에 대한 백과사전 등에는 "현존하는 문화재로는 대웅전 앞에 있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2호인 삼층석탑과 금강문(金剛門), 삼인대(三印臺) 등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금강문이라는 문화재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적지 않은 블러거들이 '금강문'이라고 올려 놓고 있는 것은 '강천문(剛泉門)'이라는 일주문을 잘못 읽은 것!

 

다른 기록에 보니 높이 8m, 너비 4m의 자연암석으로 금강문은 1316년 강천사를 중창한 덕현이 절 주위의 경치가 금강산과 비슷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 되어 있는데, 그래서 샅샅이 찾다보니 이건 문화재가 아니라 강천산 입구 옥호봉이라는 봉우리를 오르는 길목, 투구봉 지나면서 만나는 구멍 뚫린 바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강천사를 소개하는 거의 모든 글에서 문화재로 소개하고 있다니 이런 망발도 없는 듯하다. 

 

 

 

강천사 계곡 건너편에는 작은 비각 건물이 하나 보인다. '삼인대(三印臺)'라 부르는 비각이다.

 

 

 

 

 

 

 

이 비각 안에 '삼인대비'가 있으니, 이 비에 대한 이야기는 중종반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종 반정을 주도한 박원종 등 반정 공신들은 반정에 반대한 신수근 일파를 숙청하였는데, 중종비 신씨가 신수근의 딸이라 후환을 없애기 위해 신씨를 폐비시키고 새 왕비 장경왕후를 맞아들인다, 하지만 장경왕후가 10년 만에 사망하였고, 이 소식이 전해지자 순창군수 김정, 담양부사 박상, 무안현감 유옥 등 세 사람이 비밀리에 이곳 강천산 계곡에 모여서 과거 억울하게 폐위된 신씨를 복위시키기로 하고 각자의 관인을 나뭇가지에 걸어 맹세하고 상소를 올리기로 결의하였다.

 

바로 이곳은 이 세 사람이 소나무 가지에 관인을 걸어놓고 맹세한 곳이니, 1744년에 이곳 선비들이 발기하여 비를 세워 삼인대>(三印臺)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강천사를 지나면 계곡 가에 서 있는 커다란 모과나무 한 그루를 만나게 된다.

 

 

 

 

 

 

 

강천사 고승이 심었다고 하는 수령 300여 년의,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모과나무라 한다. 높이 13m, 둘레 3.1m로 지금도 꽃을 피우고 향기를 뽐내며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강천사를 지나 '십장생교'라는 다리를 건너기 전 구름다리로 건너는 산책로가 오른쪽 강천산 언덕으로 나 있다.

 

 

 

 

 

 

구름다리를 건너 신선봉으로 오르게 된다.

 

 

 

 

 

 

 

 

강천산 기슭의 용머리폭포

 

용이 승천하는 형상이라서 용천산이라 부르기도 했다는 강천산,  천 년을 살다 승천하지 못해 피를 토하고 쓰러져간 용의 머리 핏자국이 남아있다는 전설이 서린 폭포다.

 

 

 

 

 

계곡을 따라 오르면 구장군폭포와 강천호수가 나타나고 그 위로 금성산성이 있다.

 

 

 

 

 

구름다리의 높이는 50m, 너비는 1m, 길이 76m라 한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구장군폭포와 강천호수에까지는 가지 못하고 말았다.

 

 

구장군폭포는 120여 m 높이의 웅장한 쌍폭포로 남성 폭포와 여성 폭포로 되어 있어 풍수 전문가들이 음양의 조화를 이룬 명소라고 극찬하는 곳이란다.

마한 시대 혈맹으로 맺어진 아홉 명의 장수가 전장에서 패한 후 이곳에 이르러 자결하려하다 죽음을 각오하고 비장한 결의를 세워 다시 전장에 나가 승리를 얻었다는 전설이 담겨 있는 폭포다.

 

 

 

 

 

 

원래 마른 폭포라 장마철에만 폭포수가 쏟아진다는데, 지금은 인공적으로 물을 끌어올려 흘려보낸다고 한다. 

 

 

 

발길을 돌려 내려오는 길, 영하의 기온에도 푸르름을 지켜내는 벼과의 식물. 산기장인가 싶기도 한데,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도선교를 되건너며 따스한 볕이 든 병풍폭포를 다시 한번 더 지켜보다 강천산계곡을 벗어난다. 

 

 

 

 

 

 

 

 

강천산을 나와서 옥과의 어느 한우 식당으로 가서 점심으로 한우 고기를 먹었다. 점심 식사 후 마지막 여정인 무등산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