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

규슈 (13) 후쿠오카, 구시다 신사(櫛田神社)와 을미사변과 기온야마가사 / 일본 창세신화

모산재 2015. 3. 18. 21:54

 

규슈 여행 마지막 밤의 숙소는 후쿠오카의 하카타역 건너편에 있는 하카타컴포트호텔(Comfort Hotel Hakata). 

 

이미 저녁 9시에 가까워진 시간이지만 그냥 보내기엔 아까워 배낭을 내려 놓자마자 바로 거리 구경에 나섰다. 출발하기 전 호텔 방에 비치된 후쿠오카 안내 지도에서 가장 번화해 보이는 나카강(那珂川) 강변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하카타역 역사

 

 

 

 

 

하카타 역 건너편에서 '하카다 역전통(はかた駅前通り)'이라는 큰 도로를 따라 나카강과 여의도 같은 섬인 나카스(中洲)를 향해 걷는다. 

 

 

 

호텔 뒤편 골목의 일본 중식 체인점 '교자노 오쇼(餃子の王将)'

 

 

 

 

 

10여분쯤 걸으니 사거리에 구름다리가 나타나고 후쿠오카중앙은행이 보인다. 이곳이 기온마치니시(祇園町西).

 

나중에야 안 것이지만 직진하면 바로 나카스로 이어지는데, 방향이 헷갈려 오른쪽 길로 접어 들어 길 건너편 골목으로 들어선다.  

 

 

 

 

 

건너편 붉은 벽의 '가네야(がね屋)'라는 가게 골목으로 접어든다.

 

 

 

 

 

골목으로 들어서자 '博多祇園山笠(하카타 기온 야마카사)'라는 글씨 아래에 '博多川端通(하카타 가와바타도리)'이라고 쓰인 아케이드형 상가가 나타난다.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이곳이 바로 나카스가와바타(中洲川端)로 나카스 지역의 동쪽에 있는 대형 아케이드 상가다. 하카타 리버레인과 연결되어 있는 전통적인 쇼핑 번화가라고 한다. 특히 이곳은 가와바타 단팥죽이 유명하다고 한다.

 

 

 

이 상가로 들어서기 전에 오른편으로 공원이 있는 듯하여 들어서보니 신사가 자리잡고 있다.

 

'구시다신사(櫛田神社)'라는 이름의 신사.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돌아보면서 뭔가 예사롭지 않은 느낌이 있었는데, 이 글을 포스팅하려고 자료를 찾아보면서 보통 신사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잠시만 살펴보고 나카강과 나카스 쪽으로 가려했던 것인데, 여기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실제로는 뒷문으로 들어가서 앞문 쪽으로 나왔지만, 편의상 순서를 바꾸어서 올려본다. 

 

 

 

 

 

구시다 신사(櫛田神社)는 작지만 아주 오래된 신사다. 헤이안시대, 다이라노 기요모리라는 사람이 신의 계시를 받고 757년에 세웠다고 한다. 

 

내부에는 불로장생과 상업 번성의 신을 봉안하고 있는데, 구시다 신사는 오쿠시다상(お櫛田さん)'이라는 애칭으로 불릴 정도로 하카타의 수호신으로 시민에게 사랑을 받는 곳이라 한다. 

 

현재 신사의 건축물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뜻에 따라 후쿠오카의 초대 번주(藩主)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가 개축한 것이라 한다. 

 

 

 

 

 

신사의 본전...

 

카라하후 양식의 카라몬(唐門)에서 사무라이의 살기가 느껴지는 투구 모양의 근엄한 양식을 보인다. 지어진 연대로 보아 모모야마(桃山) 양식일 것이다.

 

 

 

 

 

본전 입구에는 굵은 동아줄, 시메나와(しめ繩, 注連繩)가 걸려 있다. 이 동아줄은 세속적인 영역과 신성한 영역을 구분하는 동시에 부정한 것의 출입을 금하는 금줄의 역할을 하는 종교적 장치다.

 

 

신사 앞마당에는 '영천학우물(靈泉鶴井戶)'이란 이름이 우물이 보인다. 한 모금 마시면 자신의 불로장수, 두 모금 마시면 가족의 불로장수, 세 모금 마시면 친척과 친구의 불로장수가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제신(祭神)은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오하타누시노 미코토(大幡大神,櫛田大神), 아마테라스 오카미(天照大神), 스사노오노 미코토(素盞嗚大神,須佐之男命).

 

 

 

 

 

오하타누시는 이세신궁의 초대 대신주로 '오와쿠니고노미코토(大若子命)'라고도 한다. 아메노미나카누시노카미(天御中主神)의 19세 자손으로 후쿠리쿠(北陸) 지방의 괴물을 퇴치하였다. 스사노오는 태양신인 아마테라스의 동생으로 바다의 신이지 폭풍우의 신이며 '스가대신(須賀大神)', 또는 '기온대신(祇園大神)'으로도 불린다.

 

스사노오가 여덟 개의 머리를 가진 뱀을 퇴치하고 아내로 받아들인 여자가 구시나다히메(櫛名田姫)이다. 구시다는 구시나다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일본에는 구시나다히메를 제신으로 모시는 구시다신사가 몇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이곳 하카다의 구시다신사는 구시나다히메를 모시지 않으며, 다만 예전에는 모셨다는 설이 있다.

 

 

 

 

 

뒤편으로 돌아가니 뜰 한쪽 편에 독특한 형상으로 높다랗게 꾸민 가마가 놓여 있다. 검을 높게 든 인물상 등이 원색의 어둠 속에서 으시시한 느낌조차 든다. 

 

무엇인지 몰랐는데, 이것이 기온야마가사(祇園山笠) 마츠리 행사에서 사용하는 가마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행사가 바로 이 구시다신사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앞에는 화려한 무사 인형들을 배치하고

 

 

 

 

 

뒤에는 동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소재를 얻은 것들로 장식한다.

 

 

 

 

 

이 가마는 축제 기간인 7월 1일부터 15일 밤 12시까지 하카타 지역의 정해진 장소 14곳에 전시되는 것 중의 하나다.

 

그런데 이 가마는 전시용으로 만든 것으로 '가자리야마카사(飾り山笠)'라 부르며, 실제 행사에서 사용하는 가마는 '가키야마카사(かき山笠)'라 부르며, 따로 제작한다고 한다. 초기에는 높이가 15미터에 달했으나 오늘날에는 10미터 전후의 크기로 낮아졌다. 메이지 시대 말기에 이르러 야마카사가 너무 높아 전선에 걸리게 되자 장식용 높은 가마와 경주용 낮은 가마를 구분하여 만들게 됐다.

 

 

하카타 기온 야마카사(博多祇園山笠) 마츠리는 1241년에 처음 시작된 이후 800여 년 동안 이어져온 후쿠오카 지역의 최대 민속 축제라 한다. 남자들만 참가할 수 있어 '남자들의 마츠리'라 부른다고 한다.

 

이 가마 축제 행사는 당시 하카타에 역병이 돌자 조텐지(承天寺)를 연 쇼이치(聖一) 국사가 가마를 타고 길에 물을 뿌려 병을 물리친 것으로부터 비롯했다. 쇼이치가 탄 가마는 신을 모신 커다란 가마인 야마카사(山笠)가 되었다.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00여 년의 혼란스런 전국시대를 지나 일본을 통일하자, 하카타는 '나가레(流)'라고 하는 7개 자치조직으로 평성되었고, 이에 따라 각 나가레마다 야마카사를 제작해 참여하는 축제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축제의 피날레는 높이 15미터, 무게 1톤에 달하는 커다란 야마카사를 여러 사람들이 메고 약 5 km 코스를 달리는 오이야마(追い山)로, 행사 마지막 날인 7월 15일 새벽 4시 59분에 시작된다. 7개의 가마가 5분 간격으로 차례로 출발하여 속도를 겨룬다. 처음에는 야마카사를 메고 천천히 거리를 돌던 것이 1687년 경쟁 관계에 있던 두 마을 청년들이 지지 않으려고 빠르게 달린 것이 오이야마로 발전했다고 한다.

 

하카타 기온 야마카사에서 '기온'은 기원정사(祇園精舍)의 수호신인 우두천왕(牛頭天王)을 모시는 것에서 비롯되었는데 역병을 퇴치하는 신으로 스사노오노미코토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출처 : http://terms.naver.com/list.nhn?categoryId=42836

 

 

 

구시다신사에는 기온야마카사 행사 외에도 하카타오쿤치(博多おくんち)라는 가을 축제도 매년 10월 하순에 열린다고 한다.

 

약 1,200년 전부터 가을철 추수를 감사하는 행사로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축제로 미코시(神輿)를 선두로 하여 어린이들과 무사, 브라스밴드, 미스 규슈 및 미스 일본으로 선발된 여성들의 행렬 등이 펼쳐진다고 한다. 그 중 전통의상을 입고 사자탈을 쓰고 사자춤을 추는 행렬이 인기가 높다고 한다.

 

 

기온 야마카사를 보관하는 건물 뒤편에는 현 지정 천연기념물인 부부 은행나무가 보인다. 밑둥이 붙은 한 쌍의 나무로 수령 천 년이 넘었다 한다. 

 

 

 

 

벽 주변에는 바위돌들을 모아 놓은 것이 보이는데, 역시 현 지정 문화재로 '역석(力石)'이라 부른다. 스모 선수들이 바위를 들어올려 힘자랑을 하고 신사에 바친 것이다. 돌 위에는 스모선수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힘돌은 천여 년 전 여몽연합군이 규슈를 침공할 당시 군함의 닻으로 썼다고 알려진 바윗돌이 전해진 것이라고 한다. 

 

 

구시다신사의 후문

 

 

 

 

 

 

그런데 바로 구시다신사에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비극의 역사를 자극하는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바로 지금으로부터 꼭 120년 전인 1895년 을미년, 명성황후를 시해했다고 하는 일본 낭인의 히젠토(肥前刀)가 신사 내의 하카타 역사관에 보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을미사변 100주년 되던 해 한일관계 전문 사학자인 최서면 원장이 이 사실을 추적하여 공개한 현장이 바로 이곳일 줄을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도 한동안 모르고 있다가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된 것!

 

주권국의 궁궐에 난입하여 왕비를 무참히 살해한 극악무도한 살인범의 범죄 증거물이 압수되기는커녕 무슨 전공 기념품이나 되는 것처럼 봉납하여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사진 속의 칼은 명성황후 침전에 난입한 3명의 왜인 중 한 명인 토 가츠아키(藤勝顯)의 칼이다. 칼집에는 "한순간에 번개처럼 늙은 여우를 베었다"(一瞬電光刺老狐).'라는 글을 새겨 놓았다. 이 칼은 시해범 토 가츠아키가 13년 뒤 1908년에 기증했다고 하며 신사 측 문서에는 "황후를 이 칼로 베었다"고 적혀 있다고 한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미우라 일본 공사의 주도로 일본군 수비대와 48명의 낭인들은 이두황, 우범선이 지휘한 조선 훈련대원과 함께 서대문을 지나 경복궁을 습격한다. 작전명은 '여우사냥', 그 '여우'는 조선의 국모, 명성황후였다. 일본인 낭인들은 궐 안을 샅샅이 뒤지며 닥치는 대로 궁녀들을 죽였고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시신을 뒷산에서 불태웠다. 일본인 낭인들은 체포돼 일본에서 재판을 받았지만 모두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고 만다.

 

이 칼의 주인공 토 가츠아키는 당시 황후 침전에 난입한 세 사람 중 하나로, 나카무라 다테오가 곤녕합(坤寧閤)에 숨어 있던 명성황후를 발견하여 넘어뜨리고 처음 칼을 대었고, 곧 이어 달려온 토 가츠아키가 두 번째로 칼을 대어 절명시켰다고 한다. 데라자키 다이키치란 낭인이 절명시켰다고도 한다.

 

 

그런데 1908년, 명성황후를 살해한 가츠아키가 '13년간 후회와 고통 속에 살다가' "황후가 숨질 때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다. 꼭 공양하고 싶다. 그러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면서 셋신잉(節信院)이란 사원을 찾아가 명성황후를 형상화한 관음상을 바쳤는데, 히젠도의 기증은 살생한 칼을 보관할 수 없으니 거절해서 구시다신사로 보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이야기에 어떤 언론은 "양심의 가책"이니 "참회와 화해의 상징"이니 하는 어이없는 뉴스를 보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토 카츠아키는 명성황후를 두번째로 베어 마지막 숨을 끊었노라고 자랑하고 다녔을 뿐만 아니라, "한순간에 번개처럼 늙은 여우를 베었다"는 문구를 새긴 그 칼을 자랑처럼 신사에 맡기려는 발상에서 그의 '후회와 고통"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기만적인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시간은 어느덧 60갑자가 두번이나 굴러 또 다시 을미년이 찾아왔다.

 

일본 열도에는 아베를 비롯한 극우파들의 제국주의적 욕망이 다시 언제 화산으로 터져나올지 모르는 마그마처럼 끓어오르고 있는 듯하다.

 

"을미적을미적 하다가 병신되리..."

 

 

 

 

 

 

 

 

 

 

※ 일본의 창세신화(건국신화)

태초에는 광활하고 기름기 많은 혼돈의 바다밖에 없었다. 이 혼돈의 바다에 온갖 요소들이 뒤섞여 있었다. 하늘에서 이 바다를 내다 보던 세 신령이 세상을 창조하기로 결정했다. 신령들은 이자나기(イザナミ)와 이자나미(イザナミ)를 비롯해 많은 남신과 여신들을 만들어 냈다.

신령들은 이자나기에게 세상을 창조하라며 보석으로 장식된 마법의 창을 주었다. 이자나기가 창을 바다속에 넣고 휘휘 돌렸다. 이자나기가 혼돈의 바다에서 창을 꺼내 보니, 창 끝에 바닷물 몇 방울이 응결되어 있었다. 그 방울들은 도로 바다 속으로 떨어져 오오야시마(おおやしま)가 되었다. 이것이 현재의 일본 열도가 된다. 

그리고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다른 섬들을 낳는데 이것이 혼슈, 시코쿠, 규슈등 의 다른 섬들을 이루었다. 그후 이자나기(いざなぎ)와 이자나미(いざなみ)는 여러 신들을 낳는데 화(火)신을 낳던 중 이자나미가 죽게된다. 이자나미는 죽어서 요미노쿠니(死見の國)에 가게 되는데 이자나미의 죽음을 슬퍼한 이자나기는 이자나미를 찾아 요미노쿠니까지 찾아가 요미노쿠니를 다스리는 신과 요미노쿠니를 빠져나가는 좁고 긴 터널을 이자나미의 얼굴을 보지 않고 빠져나간다는 조건으로 이자나미를 데려나오게 되지만 터널을 다 빠져나오기 전에 이자나미는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만다. 그후 이자나미는 다시 요미노쿠니로 돌아가게 되고 거기서 죽음의 신이 된다. 

이자나기는 슬픔을 견디지 못해 바닷가를 거닐던 중 왼쪽 눈에서는 아마테라스가, 오른쪽 눈에서는 쯔키유미가 코에서는 스사노오가 태어난다. 그 중 코에서 태어난 스사노오는 자라면서 다카마가하라(高天原)에서 방탕한 생활을 한다. 이를 보다 못한 누나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天てらす大神)는 스사노오에게 일본을 통치할 것을 약속받지만 그 후로도 스사노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계속 방탕한 생활을 하자 아마테라스는 화가 나서 동굴로 숨어버린다. 

태양의 신이 숨어버리자 세상은 암흑으로 덮히고 다른 신들이 스사노오를 추방하고 아마테라스를 동굴에서 나오게 한다. 스사노오는 이즈모노쿠니(出雲國)로 내려가 사람들을 괴롭히던 머리가 8개 달린 큰뱀을 죽이고 뱀의 제물이 되려다가 목숨을 건진 구시나다히메(櫛名田比賣)와 결혼하고 이즈모에 머문다. 그 자손인 ‘오쿠니누시노미코토(大國主命)’가 형들을 쳐부수고 나라를 세운다.

그러나 지상의 세계는 자기 자손들의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아마테라스오미카미’는 사자를 보내 나라를 양보할 것을 요구한다. ‘오쿠니누시노미코토’는 처음 저항하지만 결국 굴복해 나라를 내준다. 아마테라스오미카미의 자손인 니니기노미코토(瓊瓊杵尊)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다. 스사노오는 지금의 시마네현인 이즈모(出雲)국의 조상신이었는데, 이즈모국은 훗날 아마테라스의 자손인 야마토국에 병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중 돌연히 스사노오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자 타가마노하라에서 천손인 호호니니기가 5부신과 함께 강림해서 그 땅을 다스리고, 그를 천황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초대 천황은 137년, 10대 천황이 168년 간 장수한다.

옛날 일본인은 세계를 신들이 사는 다카마가하라(高天原)와 인간과 생물들이 사는 나캇쿠니(中っ國), 그리고 악령이 사는 요미노쿠니(死見の國)로 나뉘어 있다고 생각했다. 일본인은 다른 나라와는 달리 특이한 생사관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사람들은 죽어서 다카마가하라나 요미노쿠니로는 갈 수 없는 것이 그것이다. 일본의 신화에서는 사람은 다만 나카노쿠니에서 태어나고 죽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