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

규슈 (11) 후쿠오카, 규슈 지역을 다스린 다자이후 정청 유적

모산재 2015. 3. 15. 20:13

 

수성(미즈끼) 유적을 돌아본 다음 다자이후 정청(다자이후 세이쵸 : 大宰府政廳) 유적으로 향하였다.

 

 

 

다자이후 정청은 7세기 후반, 규슈 지방의 지쿠젠 국(筑前国)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기관으로 고대 일본 규슈 지역의 도독(都督)인 다자이(大宰), 또는 다자이노소치(大宰帥)가 정무를 보았던 곳이다.

 

663년 백제 부흥군을 돕기 위해 파견한 수군이 백강전투에서 참패하고 쫓겨와 보복 침공이 두려워 방위선으로 미즈키(水城), 오노조(大野城) 등을 구축한 덴지(天和) 천황의 야마토(大和) 조정은 율령체제의 기초를 마련하고 규슈 지역에 방위와 외교의 거점으로 다자이후를 설립하였다.

 

 

 

다자이후 정청은 수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드넓은 정청의 폐허 위에 건물의 초석만 남아 있다.

 

 

 

다자이후 정청 입구

 

 

 

 

 

특별사적 다자이후 유적 안내문

 

 

 

 

 

다자이후 정청 유적 입구로 들어서자, 뒤편으로 정청을 감싸고 있는 시오지야마(四王寺山)가 그림처럼 보인다. 시오지야마는 바로 백제 유민들으 손으로 건설된 오노성(大野城) 유적이 있는 산이다.

 

저 산의 서쪽 자락 아래로 미즈끼(수성)이 이어지는 듯...

 

 

 

남문으로 오르는 계단

 

 

 

 

 

남문 유적 안내문

 

 

 

 

 

남문 유적 평면도와 복원 모형

 

 

 

 

 

정청이 있던 자리에는 넓은 터와 주춧돌만 남아 있을 뿐 건물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

 

 

 

 

 

정청의 총면적은 약 25만 4천m2. 

 

주된 건물로는 정청·학교, 세금을 보관하는 장사(藏司)·세사(稅司), 의료를 맡은 약사(藥司), 장인들이 모인 장사(匠司)·수리기장소(修理器仗所), 손님 접대를 맡은 객관(客館), 군사를 맡아보는 병마소(兵馬所), 주주사(主厨司), 선박을 맡은 주선소(主船所), 치안을 맡은 경고소(警固所), 오노(大野) 성의 관리를 맡은 대야성사(大野城司), 직물 염색을 맡은 공상염물소(貢上染物所), 종이를 만드는 작지(作紙) 등이 있었다고 하는데, 실제 확인된 유적은 적다.

 

 

 

회랑 유적

 

 

 

 

 

발굴한 전각 터

 

 

 

 

 

 

다자이후 정청 정전 유적

 

 

 

 

 

 

 

다자이후 정청 발굴 당시의 모습

 

 

출처 : 문화콘텐츠닷컴

 

 

 

다자이후 정청 정전 유적 안내도

 

 

 

 

 

다자이후 유구 배치도, 복원 건물 그림

 

 

 

 

 

다자이후 유적에서 출토된 귀면 기와 조각

 

 

 

 

 

다자이후비

 

 

 

 

 

 

정전 뒤편의 후전 유적

 

 

 

 

 

정전 유적 뒤편에서 바라본 다자이후 유적 풍경

 

 

 

 

 

 

다자이후(大宰府)는 663년 백강 전투 참패 후 규슈지역의 방위를 위해 현재의 위치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자이후는 나라 시대(710~794)에서 헤이안 시대(794~1185) 그리고 가마쿠라 시대(1185~1333)까지 일본의 군사적, 행정적 중심지로 기능하였고, '먼 곳의 조정'을 뜻하는 '도노 미카도' 이라고 불릴 정도로 권한이 컸다. 다자이후는 한국과 중국의 외교 사신을 영접하는 역할도 하였다. (다자이후가 고대 북규슈 왕조의 수도였다고 주장하는 규슈왕조설九州王朝説이 있지만 거의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다자이후의 장관을 다자이노소치(大宰帥)라고 하는데, 3위에 해당하는 다이나곤(大納言) 또는 주나곤(中納言)급의 정부 고관이 겸하고 있었지만 헤이안 시대에는 주로 친왕(親王)이 임명되었다. 이들은 실제로는 부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차석인 다자이곤노소치(大宰權帥)가 실무를 맡았다. 하지만 조정의 대신이 자이곤노소치로 좌천되었을 시에는 실무 권한은 없었다. 소치나 곤노소치의 임기는 5년이었다.

 

소치 및 곤노소치 아래에는 스케(貳)로 다이니(大貳)·쇼니(少貳)가 있었고, 죠(監)로 다이겐(大監)·쇼겐(少監)이 있었으며, 사칸(典)으로 다이텐(大典)·쇼텐(少典)이 있었다. 이밖에 주신(主神)·대판사(大判事)·대령사(大令史)·대공(大工)·사생(史生)·의사(醫師)·산사(算師) 등의 50인의 관인이 배치되어 실무를 맡았다.

 

 

헤이안 시대에 다자이후는 고위 관리의 유배지이기도 하였다. 이곳에 유배된 고관 중에는 스가와라 미치자네도 있었는데 그의 무덤에 다자이후 덴만궁을 세웠다.

 

 

 

1921년 다자이후는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1953년 특별 사적으로 승격되었다.

 

 

 

 

※ 다자이후 유적 안내도

 

 

 

출처 : http://www.dazaifutenmangu.or.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