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

규슈 (8) 규슈올레 히라도 코스, 홍법대사의 사이쿄지에서 가와치 고개까지

모산재 2015. 3. 9. 16:30

 

엊저녁 일찍 잠에 빠져든 때문인지 깜깜한 새벽에 잠이 깨었다.

 

규슈의 가장 서쪽 히라도라는 이역의 섬 호텔 다다미 방에서 "남의 나라" "육첩방"에서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던 윤동주가 떠올라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바로 70년 전 이곳 후쿠오카의 형무소에서 이름 모를 주사를 맞다 28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한 윤동주, 바로 9일 전이 그의 70주기였고 그의 삶과 시들이 꼬리를 물고 생각나는 것이다. 

 

 

아직 날이 샐 무렵, 3층에 있는 온천탕에 가서 잠시 몸을 담궜다.

 

 

방으로 돌아와 창문을 연다. 

 

간밤에 비라도 내린 게 아닐까 싶게 축축하고 흐린 풍경이다.

 

 

 

규슈 본섬과 히라도 섬 사이에 해협처럼 펼쳐지는 바다...

 

왼쪽으로 높은 산 봉우리에 히라도성이 바다를 굽어보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규슈 본섬이 길게 늘어선 풍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히라도 성 너머 쪽에 히라도 시내 중심가가 있다.

 

 

 

 

아침식사도 가이세키로 먹은 뒤 배낭을 메고 호텔을 나선다. 숙소 히라도와키가와(平戶脇川) 호텔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잠시 바로 앞에 있는 작은 항구를 구경하고 들어온다.

 

 

 

규슈올레 히라도 코스를 걷기 위해 버스는 8시에 호텔을 나섰다.  

 

 

히라도시는 규슈의 북서쪽 끝에 자리잡은 히라도 섬 북부 해안에 자리잡고 있다. 1550년 포르투갈 상선이 입항하고 개항하여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과 교역한 일본 최초의 국제 항구다. 대외무역의 중심지로서 크게 번영하였으며 지금도 이국적인 문화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아름다운 항구이다.

 

하지만 에도 막부의 쇄국 정책이 실시되고 1934년 유일한 무역상대국인 네덜란드인의 집단 거류지로 나가시마의 인공섬 데지마()가 조성되고 네덜란드의 상무관이 설치되면서 무역의 중심지는 나가사키가 대신하게 되었다.

 

 

히라도 위치

 

 

 

히라도 코스는 나가사키현에서는 처음으로 선택된 올레길이라는데, 2013년 2월에 개시하였다니 올해로 꼭 3년차에 접어든다.

이 코스에 대해 '규슈올레, 규슈관광추진기구' 홈페이지에서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정갈한 히라도항에서 보이는 바다는 투명하고, 정박한 배들과 항구를 내려다보고 있는 언덕 위의 건물들은 새침한 소녀처럼 예쁘다. 히라도는 이미 1500년부터 포루투갈, 네덜란드 등과의 상업적인 교역을 시작한 곳으로 ‘서쪽의 도읍’이라 불릴 만큼 풍요로운 과거를 지녔다. 다리로 연결되어 더 이상 섬이 아닌 현재의 히라도는 일본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서양의 정취를 풍기는 곳으로 카메라가 쉴 틈이 없다.

 

항구에서 시작한 코스는 마을 뒤편 언덕을 거슬러 천천히 오르면 사이카이 국립공원의 깊은 숲을 만나고 약 30ha의 광대한 초원을 지나 제주의 오름을 꼭 닮은 봉긋한 언덕의 정상 가와치토오게(川内峠)에 서게 된다. 잠시 숨을 멈추고 싶을 만큼 장대한 다도해의 풍광이 360도로 휘돌아 펼쳐진다. 언덕 위의 청량하고 거친 바람에 마음껏 몸과 마음을 내버려 두었다가 다시 마을로 내려오는 길에선 오래된 카톨릭 교회(平戸ザビエル記念教会)를 지나고, 이어지는 언덕길에선 꼭 뒤돌아 보아야 한다. 일본 전통 절의 지붕 누각 위로 교회의 첨탑이 하나의 프레임 안에서 보이는 합성장면 같은 순간이 따라오고 있었다.

 

항구 저편의 언덕 위로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히라도 성은 트레킹을 마치면 잠시 들러 보라고 우리를 부르는 것 같다. 오밀조밀 붙어 있는 이층의 상점가 거리에선 볼거리 먹거리 탐험에 바빠지다 보면 어느새 종점의 팔탕과 족탕에 이른다. 보통 일본의 마을과는 다른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마을과 장엄한 풍경이 어울어진 올레.

 

 

규슈올레 히라도 코스

 

출처 : 규슈관광추진기구 http://olle.welcomekyushu.or.kr/kyushuolle/

 

 

히라도항 교류광장 → 사이쿄지(最教寺奥之院) (1.2km) → 가와치토오게(川内峠) 인포메이션 센터 (4.7km) → 가와치토오게 캠프장 (6.8km) 

→ 히라도시 종합운동공원 (9.2km) → 아카사카(赤坂) 야구장 (9.7km) → 씨라이프 히라도 수영장 (10.1km) 

→ 히라도 사비에르 기념교회(11.2km) → 쇼주지(正宗寺),소요코 무덤(宗陽公の墓) (11.3km) → 400년 소철 → 마쓰우라 사료관

→ 히라도 네덜란드 상관(12.5km)→ 히라도온천 팔탕, 족탕 (13km)→ 히라도항 관광안내소

 

 

히라도 코스는 히라도항에서 출발하여 진언종을 연 홍법대사가 주석했던 사이쿄지를 지나 가와치고개를 넘어서 다시 히라도항으로 돌아오는 순환형 올레길이다. 그 길 속에서 히라도시의 속살들을 하나하나 만나게 될 것이다.

 

 

 

비가 올 듯한 날씨인데, 일기예보로는 오전에는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 한다. 안내를 맡아줄 봉사자가 나왔는데 나이 드신 분으로 유료봉사인 듯. 가이드가 2000엔을 지불했다고 한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사이쿄지(最教寺) 입구를 지나 옆 주차장에서 선다. 어쩐지 입구로 되돌아와서 지나갈 것 같지 않아서 차에서 내리자마자 부리나케 혼자 되내려온다. 

 

 

입구 양쪽에 돌기둥이 서 있는데, 돌이끼가 끼어 있어 알아보기 쉽지 않은 한문 글씨가 씌어 있다.

 

 

 

겨우겨우 읽어낸 글씨는 오른쪽 돌기둥에는 '弘法大師駐錫靈趾'(홍법대사 주석 영지), 왼쪽 돌기둥에는 '高野山談議所最敎寺'(고야산 담의소 최교사). 그러니까 사이쿄지는 일본 불교 진언종(眞言宗)을 창시한 홍법대사가 머물렀던 절이요, 고야산 담의소가 되었던 절이란 뜻일 터.

 

 

그런데 담의소(談議所)가 뭔지...?

 

일본어 사전에도 나와 있지 않는 말인데, 어느 글에서 '담의(談議)를 "불법의 법의(法義)를 담화하는 것"으로, "토론으로 이루어졌던 것이 민중에 설법한다는 의미로 법담(法談)이라고 하며 그 장소를 담의소 또는 단림(檀林)"이라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부처님의 말씀의 뜻을 설법하는 자리쯤 된다. 티베트불교에서 교리 토론을 벌이는 최라를 여는 경변림(辯經林), 또는 문사림(聞思林)에 해당하는 말인 듯 싶다. 결국 진언종의 학문소(学問所)라 할 수 있겠다. 그러고보니 홍법대사는 티베트 불교와 상통하는 밀교에 크게 영향을 받아 진언종을 창시하고 이를 일본에 전파한 분이지 않은가...

 

 

 

법당 마당으로 들어서는 문의 양쪽 기둥에는 각각 '談議所 最敎寺(담의소 최교사)', '最敎寺 靈寶館'(최교사 영보관)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이 문을 통과하면서 보니 일행은 이곳에 머무르지 않고 앞마당을 지나 통과해 버린다. 뭐 그렇게 볼 것이 없는 절이란 말인가. 물론 미리 철저히 공부해 오지 않은 이상 판단할 수도 없으니 안내인이 이끄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나이에 아이들처럼 이것저것 알고 싶어하는 것이 별난 것일 터!

 

  

사이쿄지는 806년 홍법대사 구카이(弘法大師 空海)가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주석했던 고야산 중턱에 1607년 제26대 히라도 번주인 마츠라 시게노부(松浦鎮信)가 건립했다고 되어 있다. 사이쿄지 홈페이지(http://www3.ocn.ne.jp/~saikyoji/)에는 진언종 지산파(真言宗 智山派) 사원으로 산호(山号)는 우리말 발음 그대로 고야산(高野山, こうやさん)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홍법대사 구카이가 머물렀다는 고야산이 정말 이곳 히라도 사이쿄지가 있는 곳이란 말인가. 널리 알려진 고야산은 진언종 총본산 곤고부지(金剛峰寺)가 있는 오사카의 남쪽 와카야마현에 있는 산이다. 이곳으로부터 동쪽으로 천 리나 되는 먼 곳에 있는 그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 곳이다.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사이쿄지는 홍법대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하면서 처음 머물렀던 곳. 기록에는 밀교(密敎)의 의식으로 부동명왕(不動明王) 앞에서 불을 피워 재앙이나 악업(惡業)을 불태워 없애는 호마(이를 기념해서 후대에 세운 절이 아닐까 싶다. 홍법대사가 입적한 와카야마의 고야산 산문 이름을 딴 것이 아닐까 싶다.

 

 

 

여기서 잠시, 진언종의 창시자 홍법대사 구카이에 대해 잠시 알아보고 가자.

 

 

홍법대사 구카이(空海 774~835)

 

대학 재학중 유교 경전을 공부하다 재가 불교자로부터 허공장구문지법(虛空藏求聞持法)을 백만 번 외면 모든 가르침의 참뜻을 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체득을 위해 시코쿠(四國) 각지에서 수행에 힘쓴다. 구카이가 수행한 불교는 율령국가 체제를 수립해간 불교가 아니라 스스로 깨달음을 통해 높은 경지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795년 토다이지(東大寺)에서 수계(受戒)하여 구우카이(空海)라 하고, 804년 견당사(遣唐使)를 따라 당으로 건너간다. 청룡사의 혜과(惠果)로부터 밀교를 배워 806년 귀국. 816년 고야산(高野山)의 땅을 하사 받았으며, 823년에는 도지(東寺)를 하사 받아 진언 도장으로 이용하였다. 진언종이 공인된 835년에 고야산에서 사망하였다. 일본 서도(書道)의 시조로도 존숭되고 다양한 치수사업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 사상은 금강(金剛)ㆍ태장(胎藏)의 양부에 만다라를 종합한 스승 혜과(惠果)의 뒤를 이어 밀교의 사상적 집대성을 이룩한 것에 특징이 있다. 존재의 본체는 6大(땅ㆍ물ㆍ불ㆍ바람ㆍ하늘ㆍ지식)이며 우리들을 포함한 일체의 존재는 절대부처의 세계와 차별이 없다. 그것을 감각적으로 표상한 것이 만다라이며 만다라를 통하여 우리들의 신체(身)ㆍ언어(語)ㆍ의지(意)의 3개 기능이 부처의 그것(3밀)과 합치하면 즉신성불(卽神成仏)이 성립한다고 한다.

 

종래의 나라(奈良) 불교가 기본적으로 국가의 지배하에 있었던 것에 대해 구우카이는 그 밀교적 주술력에 의해 국가로부터의 상대적 독립을 달성하여 후에 사원 세력을 강화하는 기초를 만들었다. 그의 진언종은 마음과 육체의 합일을 강조하고 현세에서의 이익을 강조하여 당시 귀족들의 환영을 받았다. 또한 그 초인적 카리스마성 때문에 후세에 다양한 전설이 생겼으며 그 신앙은 대사 신앙으로서 서민들 사이에 확산되었다.

 

속성(俗姓)은 좌백(佐伯)으로 신라인 후손 가문이라고 하며 어머니 역시 신라인 아도(阿刀)씨 가문이라고 한다.

 

 

법당 마당으로 들어서니 정면 왼쪽으로 본당 모습이 자리잡고 있다.

 

 

 

본당은 2003년(平成 15年)에 크게 개수된 것이라고 한다. 본당 내에는 허공장보살상(虚空蔵菩薩像)을 모셨다고 하는데, 일행들이 사라진지라 들어가볼 여유가 없어 이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안타깝게도 이렇게 작은 사진밖에  보이지 않는다. 

 

출처 :http://www3.ocn.ne.jp/~saikyoji/

 

 

허공장보살은 밀교(密敎)에서 신앙의 대상이 된 보살로 허공과 같이 광대무변한 지혜와 복덕을 갖추고 있는 보살이다. 홍법대사의 법명인 고카이(空海)와 일맥상통하는 이름의 보살이다.

 

태장계(胎藏界) 만다라에서 허공장원(院)의 중심불이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오른손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칼을, 왼손에는 복덕을 상징하는 연꽃이나 여의보주(如意寶珠)를 잡고, 머리에는 오지보관(五智寶冠)을 쓰고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왼쪽으로 보이는 전각아이젠묘오(愛染明王)를 모신 아이젠도(愛染堂). 이름 그대로 '사랑이 물드는 불당'으로 세 눈 여섯 팔을 갖고 분노하는 모습으로 애욕을 지배하는 애염명왕을 모시고 있다.

 

 

 

진언 밀교에서 애염명왕은 금강살타의 화신인데 일본에서는 남녀간의 인연의 신앙에서, 나아가서 이 명왕을 신앙하면 미모가 된다고 믿었으며 근세에 와서는 연애의 본존으로 발전해서 특히 창녀의 수호신도 되었다고...

 

 

왼쪽으로 보이는 건물은 영보관(靈寶館), 1989년(昭和 54年) 세워진 건물로 사이쿄지의 보물을 전시하는 곳이다.

 

 

 

안내판에는 히라도번의 확립자인 마츠우라 시게노부(松浦鎭信)가 기증한 불열반도(佛涅槃圖)를 중심으로 불상, 회화, 경전, 판본 및 민속자료를 전시하고 있다고...

 그런데, 그 아래에는 불열반도(佛涅槃圖)와 불두(佛頭)가 '조선에서 온 것임(朝鮮招來)'을, 특히 불열반도는 중요문화재로 괄호 속에 표기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나중에 찾아보니 불열반도(絹本著色仏涅槃図)는 비단에 그린 것으로 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일본의 문헌에는 "조선 이왕조의 것으로 해외에 있어서 열반도의 형식을 아는 데 매우 중요한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출처 :http://www3.ocn.ne.jp/~saikyoji/

 

 

그리고 초라하게 보이는 석상이 있어 살펴보니, "쇼토쿠태자(聖德太子)"라고 새겨져 있다. 그 앞에는 싱싱한 꽃가지 바쳐져 있는데, 이곳에 웬 쇼토쿠태자상일까... 그리고 어찌 이리도 위엄이 보이지 않는 상일까.

 

 

 

궁금하고 의문이 드는 것들이 많은데, 뭔지 좀 알아보고 싶은데,  봉사를 나온 안내인은 잠시도 머무르지 않고 일행을 끌고 이미 사라져 버렸다.

 

 

일행을 따라잡기 위하여 서둘러 뒤편 계단을 통하여 이어지는 숲길로 향한다.

 

 

 

계단을 오르니 다홍색 천을 두른 불상들이 길 양쪽으로 도열해 있다.

 

이 석상들로 보아 사이쿄지의 법당이 또 있다는 이야기다. 과연 이 길은 오쿠노인(奥の院)이라는 또 하나의 법당으로 이어지는 참도(参道)였다.

 

사이쿄지 홈페이지에는 이를 "에도시대 말에 조성된 시코쿠(四国) 88 개소 영지(靈場)의 석불이 늘어서 있다. 대사 신앙의 성행한 모습을 엿보게 한다."고 기록해 놓았는데, 규슈에 웬 시코쿠 88개소 영지일까... 위키피디어 일본판에는 '규슈 88개소 영장 77번'이라고 적어 놓았다.

 

 

 

 

이 불상들은 '지장보살', 일존인들은 친근하게 '오지조사마(お地蔵様)라 부른다고 한다. 특히 다홍색 천을 두르고 있는 지장보살은 미즈꼬지조(水子地藏 )라고 하는데, 중절로 지웠거나 사산한 아이들의 극락왕생을 비는 뜻이라고 한다. 앞에 두른 천은 턱받이를 상징하며 아기를 아카짱(赤ちゃん)이라 부르는 데서 붉은 색 천을 두른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렇게 태어나지 못하고 죽은 아기가 이렇게 많다는 말일까...

 

 

 

지장보살들이 늘어서 참도를 지나면 수십 계단이 있는 가파른 언덕이 기다린다. 계단을 올라서니 과연 커다란 삼층대탑과 전각이 나타난다. 

 

 

 

오쿠노인(奥之院)이라는 이름의 전각은 홍법대사를 모시는 곳, 1609년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안내판에는 "규슈 88개소 영장 77번"이라고 적혀 있는 걸로 보아 규슈에도 시코쿠처럼 진언종 사찰이 88개가 있는 모양이다. 본존은 홍법대사로 약사여래와 성관음, 부동명왕을 함께 모시고 있다고 되어 있다.

 

 

 

 

 

법당 안 본존으로 모신 홍법대사 좌상은 교토에서 만들어 배로 싣고 왔다고 한다. 오쿠노인은 사이쿄지에서 홍법대사 신앙의 중심 구실을 해온 전각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오쿠노인 법당 앞에는 석조 대일여래좌상이 자리잡고 있다.

 

 

 

대일여래(大日如來)는 밀교(密敎) 진언종(眞言宗)의 본존으로 밀교 이전의 비로자나불을 가리킨다.

 

대승경전 <범망경(梵網經)>과 <화엄경(華嚴經)> 등에서는 비로자나를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의 중심을 이루는 광대한 세계관의 주체라고 말한다. '대일'은 '위대한 광휘'를 뜻하며 실재했던 불타인 석가모니불과는 달리 대일여래는 우주적 통일 원리를 인격화한 것으로 지혜 그 자체와 그것의 무한한 활동을 의미한다.

 

 

 

 

 

3층대탑은 홍법대사 1150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1989년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가장 큰 탑으로 꼽힌다고...

 

 

대탑 3층은 3층은 '웅건열반전(雄健涅槃殿)'으로 진혼 도량, 2층은 묵화수려전(墨華秀麗殿)으로 일류 서예가의 전시실, 1층은 명왕위력전(明王威力殿 )으로 기원 도량, 지하는 태장계(胎蔵界,밀교에서 대일여래의 자비의 면을 나타내는 법문) 廻りができる

 

 

매년 입춘 전날인 절분(2월3일)에는 이곳에서 아기의 울음 소리로 재앙을 내쫓는 '코나키즈모(子泣き相撲)'라는 독특한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한쪽에 서 있는 '수행대사(修行大師)'의 입상. 진언종 사찰에 흔히 보이는 '수행대사'가 구체적 인물상인 상징적인 인물상인지 모르겠다. 

 

 

 

'금이만원'이라는 표석이 있는 이 공간은 또 무엇인지... 

 

 

 

 

사이쿄지 뒤 산 언덕을 돌아오르니 큰  편의점과 함께 넓은 길이 나타난다.

 

이로부터 한동안 산을 만날 때까지 마을을 끼고 걷는 아스팔트길이 이어진다.

 

 

 

민가 곳곳에 수선화가 만발하였다...

 

 

 

지나가는 길 민가의 담장에는 '고려정(高麗町 고라이마치)'이라는 마을 이름이 붙어 있다.

 

 

 

이 마을이 분명 조선인과 관련이 있을 듯한데, 이를 물어볼 가이드와 안내인은 이미 멀리 사라지고 없다. 올레길 안내문에도 아무런 언급이 없고...

 

나중에 이 글을 쓰면서 겨우 알아낸 사실은 이 고려정이 히라도의 26대 영주 마쓰라 시게노부(松浦鎭信)에 의해 경남 웅천(창원시 진해)에서 끌려간 조선 사기장 종차관(從次貫), 거관(巨關·고세키), 나카자토 에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려할머니 등 세 가문의 조선 도공들의 첫 정착지라고 한다. 이들이 나중 미카와치에 정착해 아리타 도자기보다 더 우수했다는 히라도 미카와치 도자기를 생산했다고 한다.

 

이 부분은 올레길을 찾는 한국인들을 위해 꼭 알려져야 할 내용이라 생각된다. 

 

 

 

 

아스팔트길이 다시 산을 만나 고갯길로 접어든다. 

 

 

 

입구에는 우리의 당집이 자리잡듯이 신사가 자리잡고 있고...

 

 

 

길가에는 왜제비꽃, 자주광대나물과 비슷한 꿀풀과의 꽃, 꽃받이 등 야생화가 피어 있다.

 

 

 

 

 

고갯길 중간, 민가를 앞에 둔 곳에서 길은 숲속으로 들어선다.   

 

 

 

관상수를 심어 놓은 울타리를 따라 나 있는 길은 좁은 물고랑을 이루고 있는데, 파란 이끼가 살짝 얹혀 있어 몹시 미끄럽다.

 

얼마쯤 들어서자 갑자기 코끝에 향기가 진동한다. 두리번거리며 향기의 정체를 찾으니 울타리 너머에 서향나무가 가득 심어져 있는데 꽃이 활짝 피었다. 향기가 천리를 간다는 꽃이다.

 

 

 

그 길을 벗어나자 다시 넓어지는 삼나무 숲길...

 

 

 

숲을 빠져나가는 곳, 깔끔한 주택 울타리에 "히라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한글 환영사가 마름모 쪽지로 걸려 있다.

 

 

 

그 밑에는 히라도 올레를 상징하는 도안이 들어간 기념품을 테이블 위 바구니에 담아 놓았다. 모두들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것을 하나씩 골라든다. 작은 것이지만 기분이 좋다.

 

 

 

이 곳을 지나서 다시 아스팔트길 따라 한참을 걷다 삼나무 편백나무가 가득 들어선 숲속길로 들어선다. 숲속에서 경계가 흐려지고 올레 리본이 달린 것이 분명치 않아서 뒤에 처져서 오는 사람을 챙기다 길이 아닌 곳으로 먼저 간 일행을 놓치기도 하였다.   

 

 

그 길을 무사히 벗어나자 다시 아스팔트길, 오른쪽길로 접어들고...

 

 

 

그리고 이내 아스팔트길을 내려서며 잘 다듬어진 아름다운 숲속 산책로로 들어선다.

 

가와치토오게(川内峠)로 오르는 작은 산책길, 이 길은 에도시대부터 조성된 주요도로로 에도번주의 신사참배, 또는 이곳을 오가는 상인들이 주로 이용했던 주요도로였다.

 

 

 

다케오 올레길에서는 제대로 꽃이 피지 않았던 나무가 이곳에서는 환하게 꽃이 피었다. 꽃 모양이 비목나무를 연상시키는데 녹나무과의 나무가 아닐까 싶다.

 

 

 

파란 이끼가 덮인 숲속길, 발바닥에 닿는 감촉이 편안하고 좋다.  

 

 

 

이 길에는 시모카타 가도(下方街道)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늘푸른 이 나무가 자주 눈에 띈다.

 

 

 

그리고 마침내 가와치토오게라 불리는 가와치 고개(川内峠)의 안내 센터에 이르렀다.

 

 

 

가와치고개 안내도

 

 

 

 

완만하게 고도를 높이며 이어지는 가와치 고개 정상 부분은 까맣게 불탄 자리를 보이고 있다. 여름 내내 자란 은빛 갈대숲이 아름다운 경관을 보인다고 하는데, 2월에는 불을 질러 초원을 태운다고 한다. 봄에 새싹이 곱게 푸르게 돋아나게 하려고...

 

가와치 고개는 사이카이국립공원(西海国立公園)에 속해 있는데, 표고 200m 정도로 얕은 언덕이지만 바다를 바라보는 전망이 워낙 좋아 낮아보이지 않는다. 넓이 약 30ha 정도되는 드넓은 산정의 초원이다.

 

 

 

 

언덕의 높은 가장자리에는 요시이 이사무(吉井 勇, 1886~1960)라는 이의 노래비(歌碑)가 서 있다.

 

 

 

이 비석은 1957년 요시이 이사무와 교분이 깊었던 당시의 히라도 시장이 히라도이 모든 섬들을 찾아다니다 히라도 남부 쯔즈미 해변에서 그곳에 이 시를 발견하여 비를 세웠다고 한다.

 

비에는 가와치 고개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풍경을 읇었다는 시를 새겨 놓았다.

 

청산벽수라 감탄하며

 여행자인 나는

히라도를 가슴 깊이 바라본다.

 

 

 

  

요시이 이사무는 1909년 키타하라 하쿠슈(北原白秋)·키노시타 모쿠타로(木下杢太郞) 등과 단가(短歌) 잡지 <스바루>를 통하여 자연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이에 대항하여 향략적·퇴폐적인 미를 추구한 탐미파 시인이라고 한다.

 

 

 

오와타리(大渡) 장자(長者)의 전설이 서린 소금바위

 

 

 

 

정상 부근에서는 히라도 내해와 북서쪽의 후루에만(古江灣)의 아름다운 풍경이 보인다. 맑은 날엔 대마도까지 눈 안에 들어온다고 하는데... 북쪽인 저 먼 바다 쪽으로 이키섬과 그 너머로 쓰시마가 있을 것이다.

 

 

 

 

갑자기 매인지 뭔지가 한 마리 날아오르며 숲 위에서 낮게 선회비행을 한다.

 

 

 

가와치 고개를 오르며 뒤돌아본 풍경, 왼쪽은 후루에만(古江灣)

 

 

 

고개 아래 쪽에는 후루에만을 배경으로 가와치토오게 캠프장이 자리잡고 있다.

 

 

 

남쪽으로 보이는 바다

 

 

 

 

가와치 고개 정상에는 사이카이국립공원(西海国立公園) 지정 기념비가 서 있다.

 

 

 

 

남쪽으로 내려다본 센리가하마(千里ヶ浜) 해수욕장과 마루야마공원(丸山公園)의 해변...

 

 

 

남쪽 바다를 조망한 다음 이제 가와치 고개를 넘어서 다시 출발점인 히라도항을 향하여 돌아서면서 북쪽으로 내려서는 길로 접어든다.

 

 

 

규슈올레 히라도 코스 후반부  => http://blog.daum.net/kheenn/15856802

 

 

 

※ 히라도 코스 / 히라도성, 사이쿄지, 가와치 고개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