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

규슈 (6) 아리타, 일본 도자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규슈도자문화관

모산재 2015. 3. 7. 10:17

 

다케오 올레 코스를 걸은 다음 바로 아리타(有田)로 이동하여 사가현립 규슈도자문화관을 찾았다.

 

 

임진왜란 때 이곳에 끌려와 일본 도자기의 비조가 된 이삼평(李參平)을 모신 도산신사(陶山神社)를 먼저 돌아보는 것이 순서상 맞겠지만 5시면 도자문화관이 문을 닫기 때문에 먼저 도자문화관으로 향한다.

 

 

사가현에는 일본의 3대 도자기 마을이 있는데, 아리타는 조선 도공들이 정주하여 일본 대표적인 전통 도자인 아리타야키(有田焼)를 탄생시킨 대표적인 도자마을이다. 내년이면 아리타야키 탄생 400년을 맞이한다고 한다. 아리타 외에도 지금도 50여 명의 자기공이 맥을 이어 중후한 멋의 다도 도자기를 생산하고 있는 가라쓰(唐津), 아리타에서 옮겨간 나베시마번의 어용 가마로 30여 가문에서 비밀스런 고급 도자의 맥을 잇고 있는 이마리(伊万里) 오지의 '신비의 도자마을' 오카와치야마를 든다.

 

 

사가현의 아리타에 있는 도자기 전문 박물관인 규수도자문화관은 아리타역 부근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이 도자문화관은 1980년 문을 열었다.

 

규슈의 옛 도자기만이 아니라 현대의 도자기도 함께 전시하고 있어 일본의 도예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에도시대의 아리타야끼(有田焼)를 수집한 시바타(柴田) 부부 소장품 등 중요문화재 2점을 포함해 약 1만 4000점의 도자기를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은 제1전시실부터 제5전시실까지 있다.

 

 

규슈도자기박물관 전시실 안내도(출처 : 안내팸플릿)

 

 

 

제1전시실은 일반 전시실과 다실로 구성되어 있고, 제2전시실은 규슈 각 현의 중요 문화재 및 현대 일본의 뛰어난 도예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제3전시실에서는 규슈 각지의 옛 도자기를 볼 수 있다. 사가 현의 고가라쓰야키(古唐津焼)를 비롯해 이마리야키(伊万里焼), 나베시마야키(鍋島焼), 나가사키현의 카메야마야키(亀山焼), 후쿠오카현의 다카토리야키(高取焼) 등을 소개하고 있다.

 

제4전시실은 간바라(蒲原) 소장품으로 17~18세기 유럽에 수출되어 왕후 귀족을 매료시킨 히젠(肥前) 도자기 101점을 소개하며, 지하에 있는 제5전시실은 시바타(柴田) 부부의 소장품 1만 311점 중에서 1,000점을 매년 순환하여 전시한다고 한다.

 

 

 

 

먼저 안내 팸플릿에 소개된 도자기부터 구경하기로 하자.

 

 

이마리-아리타 도자기는 일반적으로 고(古)이마리와 가키에몬, 나베시마 세가지 양식으로 구별되며, 화려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초기 이마리는 단순한 조선식 백자이며, 고(古)이마리는 아리타 백자로 바뀐 일본 최초의 백자였다.

 

이삼평에 의한 아리타 자기는 주로 청백의 대비를 사용한 반면에 가키에몬 양식은 후대에 사카이다 가키에몬(酒井田 右衛門)이 일본인의 기호에 맞춰 유약 위에 붉은색과 금색 등 다색 그림을 그려 넣는 기법으로 변화를 꾀한 독자적 아카에(赤繪) 자기를 완성시킨 것이다. 나베시마 양식은 황실이나 영주 등 귀족 전용고급품이다.

 

 

 

 

소메츠게(染付)는 청화(코발트) 안료로 하회(下繪, 유약 바르기 전의 밑그림) 기법으로 그린 것을 가리킨다. 이에 달리 붉은색, 금색등 다양한 안료로 상회(上繪, 완성된 기물 유약위의 그림) 기법으로 그린 것을 에츠케(繪付) 장식이라 한다. 이로에(色絵) 는색칠한 그림을 가리킨다.

 

 

 

실제 도자 작품들의 일부를 감상해 보기로 한다.

 

 

 

통로에 전시된 작품

 

 

제 14대 이마에몽(今右衛門) 가문의 작품, 섬세하고 화려하다. 이마에몽은 가키에몽(枾右衛門), 겐에몽(源右衛門)과 함께 아리타 도자기의 3대 명문가로 꼽힌다.

 

 

 

 

 

 

제3전시실

 

 

 

 

 

 

 

 

 

제2전시실

 

섬세하고 아름다운 현대 작가들의 작품들이라 눈길을 끈다.

 

 

 

 

 

 

  

 

 

 

 

제4전시실

 

 

히전의 등요(登窯)

 

 

경사면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가마로 여러 칸으로 이어진 연방식 등요(連房式 登窯)를 말함. 아궁이에 불을 때면 연소한 열이 점차 높아져 다음 간으로 올라가 연소효과를 높인다. 기물()은 아궁이 다음 간부터 넣어 여러 칸으로 사용할 수 있다. 맨 뒤쪽 칸에 굴뚝을 세운다.

 

고요보다 구조가 복잡하고 경제적이며 열 효과가 좋아 대량의 도자기를 생산할 수 있다. 굴가마, 도는 오름가마라고도 하며, 중국에서는 용요(窯)라 한다.

 

 

화려한 이로에(色絵) 도자기

 

 

 

 

흐드러지게 핀 벚꽃 속에 네 미인의 모습을 화려하게 그린 큰 육각 항아리

 

 

 

간바라(蒲原) 소장품이 한쪽에 따로 특별 전시되고 있다.

 

17~18세기 유럽에 수출되어 왕후 귀족을 매료시킨 히젠(肥前) 도자기 101점이다.

 

 

 

 

 

 

 

이 도자기 중에는 'VOC'라 새겨진 것이 눈에 띄는데 이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를 가리키는 약어다.

 

 

 

일본의 도자기는 17세기 중반부터 1730년까지 70여 년 동안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통해 유럽 등지로 700만 개나 실려나갔다고 한다. 이마리항으로 나간 이 자기를 '이마리자기'라 불렸다. 

 

일본 도자기가 유럽인들의 눈길을 끈 것은 1644년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면서 해마다 20만 개나 되는 도자기를 수출하던 중국 제1의 도요지인 장시성 경덕진이 폐허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때 중국 동남부 지역을 거점으로 해상권을 쥐고 있던 정성공( 1624~1662)은 항청복명을 내세우고 난징을 공략하기도 하고 타이완을 점령하여 네덜란드 세력을 축출한다. 17세기 초 중국 도자기 열풍이 불던 시기에 근거지를 잃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중국 도자기 수입이 막혀버리자 아리타로 눈을 돌린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1641년에 나가사키 앞바다 데지마라는 섬에 세운 상관을 통해 1859년까지 아리타 도자기를 유럽으로 실어날랐다. 독일 작센지방의 아우구스트왕은 자신의 군사 600여 명을 베를린왕이 가진 중국 도자기127점과 맞바꿀 정도로 유럽의 왕족과 귀족들의 도자기 수집 열기는 달아 오르고 있었다. 17, 18세기 유럽에서 일본 도자기는 중국 도자기와 함께 최고 인기 도자기가 되었다.

 

 

 

메이지 시대 대형 화병 도자기

 

 

 

 

제5전시실(지하) -시바타 컬렉션

 

 

많은 도자기들이 전시되고 있는데, 작품들이 대개 소박한 청화자기 위주로 되어 있어 그리 눈길을 붙들지 못하였다. 역사적 안목으로 바라볼 능력이 없어서 대강만 둘러보고 나온다.

 

 

 

 

 

 

규슈도자문화관은 30여 분 정도 짧은 시간에 돌아보고 나와야 했다.

 

해가 기울어 가는 오후, 가까운 아리타 시내에 일본 도자의 시조 이삼평(李參平)을 모신 도산신사(陶山神社)를 둘러봐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