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의 아침은 마치 비가 오기라도 할 듯 흐리다. 짧은 여행 기간이었지만 매일 그랬다. 셋쨋날은 오후에 결국 비가 내리고 말았지만 다른 날들은 오전이 지나면서부터는 활짝 개었다.
가라츠에서 정남향에 자리잡은 다케오로 가는 길, 버스 차창으로 바라보이는 풍경은 비가 올 듯 흐릿하다. 차창으로 보이는 일본의 시골 풍경이 퍽이나 인상적이다.
집들은 대개 이층집들이 많고 산은 원시림처럼 울창하다. 마을을 지나는 개울은 맑고 강변에는 오염물질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주 간혹 비닐이 관목의 가지에 걸려 나풀거리긴 하지만 눈여겨 찾아봐야 보일 정도다. 깨끗하다!
약간 꾸물댄 팀이 있어서 아침 출발 시간이 예정보다 20여 분 늦어졌다.
가이드가 오늘 일정에 대해서 안내하면서 일본인들이 목숨 거는 세 가지를 말한다. 첫째가 시간 약속, 둘째가 청결, 셋째가 조용한 것이라고 한다. 과연 이 세 가지는 짧은 여행 시가에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오늘과 내일 규슈 올레 길을 걷게 되는데, 올레 가이드는 처음 해본다고 하는 가이드. 여행 출발 전에 백화점에 가서 무려 150만 원을 투자해서 아웃도어 복장을 긴급으로 갖추었단다. 그런데 아침에 입으려니 자켓 지퍼가 말을 듣지 않아 못 입었다고 속상해한다.
어제 올레길 안내 자원봉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긴급 수배했는데, 다행히 자원봉사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약속을 목숨처럼 아는 일본에서 사전 예약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 어제 오후에는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는데 오늘 아침 연락을 받은 자원봉사자 두 분이 시간을 나누어서 안내해 주시기로 했다는 기별이 왔단다. 어렵게 시간을 내 준 그 분들과 약속 시간에 늦을까봐 조바심이다.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시골 마을 풍경, 산과 들과 잘 어우러져 깨끗하고 아름답다.
한 시간쯤 걸려서 오전 자원봉사자가 운영하는 다케오온천물산관에 도착하여 점심도시락과 안내 팸플릿을 받는다.
그리고 다케오 코스의 출발점인 다케오온천역으로 향한다.
규슈올레는 제주도올레사무국의 자문을 받아 2012년 2월 4개코스(사가현 다케오 코스, 구마모토현 아마쿠사-이와지마 코스, 오이타현 오쿠분고 코스, 가고시마현 이부스키-가이몬 코스)가 열린 것을 시작으로 매년 2~4개 코스가 새롭게 열리며 올해 2월 에 새로 열린 아마쿠사-레이호쿠 코스까지 모두 15개 코스가 정비되어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다케오 올레는 규슈올레에서 2012년 봄에 가장 먼저 개척된 코스. 사가현에는 다케오 올레 외에 가라쓰(가라츠) 올레, 우레시노 올레가 마련돼 있다.
일본 철도(JR) 다케오온천역, 다케오올레의 출발점에 도착했다.
다케오온천역 내부에 있는 다케오시 관광안내소.
다케오 코스는 2012년 처음으로 생긴 올레길이다. 다케오온천역에서 시작하여 다케오 온천 누문에 이르는 14.5km의 길은 가장 일본적인 코스로 알려져 있는데 전형적인 일본 전원도시 풍경과 일본식 저수지, 일본식 절과 정원과 신사, 그리고 일본식 산행로를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출처 : http://www.welcome-saga.kr/travel/view.do?icode=I0315
다케오 온천역→ 다케오가와(武雄川)→ 시라이와 운동공원(白岩運動公園)(1.8km) → 키묘지(貴明寺)(3.2km)
→ 이케노우치 호수( 池ノ内)→ 펜션피크닉 앞 A,B코스 갈림길(4.8km)
→산악유보도(山岳遊歩道) → 정상(7.0km)→ A,B코스 합류점(7.2km) → 시라이와 운동장(白岩運動場)
→ 다케오시 문화회관(9.8km)→ 다케오신사 내 녹나무(武雄神社大楠)(10.6km)→ 츠카사키 녹나무(塚崎の大楠)
→ 다케오시청 앞(11.9km) → 나가사키 가도(長崎街道)→ 다케오온천 관광안내소
→ 사쿠라야마공원(桜山公園) 입구(13.3km)→다케오온천(武雄温泉) 누문(14.5km)
다케오온천역에서 출발하는 올레길은 다케오 시내를 가로질러 다케오천 방향으로 향한다.
인구 6만의 작은 시골 도시인데다 높은 건물이 거의 없어서 그냥 전원마을처럼 느껴질 정도로 편안한 거리, 차량도 별로 없다. 무엇보다도 집들은 대문이 없고 길가에 바로 작은 정원이 이어져 있어 친근하게 느껴진다. 우리 나라의 집들은 이웃과 너무 단절하고 산다는 걸 느끼게 된다.
주황색 조랑말 올레 표시된 조끼를 입은 분이 바로 우리의 자원 봉사자, 다케오온천물산관 대표취체역 오와타리 도시히코(大渡利彦) 씨. 어제 갑자기 요청한 안내를 10시까지 맡아 주시기로 했다.
어느 새 주택가 거리를 지나 다케오 천변길로 들어섰다.
천변 언덕은 풀빛이 푸르고 노란 유채꽃이 만발하였는데, 멀리 다케오시를 상징하는 미후네야마(御船山)의 암봉이 시야에 들어선다.
후네(또는 부네)는 '배'를 뜻하는 일본어로 산의 모양이 배를 닮아서 생긴 이름이다. 해발 207m의 작은 산이지만 진안 마이산처럼 두 개의 암봉이 우뚝 솟아 오른 모양이 아름답고 이 지방의 학교 교가에도 인용되고 있다는 명산이다. 300 만 년 전 아리아케 해에서 융기하여 생긴 산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케오천을 건너 시라이와운동공원(白岩運動公園)으로 접어든다.
야구장을 왼쪽으로 끼고 있는 작은 산으로 된 공원은 숲이 울창하다.
공원으로 들어서는 길 입구에는 제주올레의 표지인 간세(조랑말) 표지판과 리본이 보인다. 리본 색깔 중 귤을 나타내는 주황색을 일본 신사의 토리 색깔인 다홍색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자원봉사로 우리를 안내하는 오와타리 히코씨
공원이 산길에서 내려다본 야구장
야구장을 끼고 걷는 공원의 산길
처음 보는 딸기나무. 규슈 전 지역에 이 종류만 유난히 눈에 띈다. 알고보니 제주도에도 분포하는 겨울딸기!
야노우라고분(矢ノ浦古墳) 공원의 정상 전망대 부근, 울창한 대나무숲에 둘러싸여 있다.
5세기 초 전방후원형 무덤으로 내부에 아이의 관을 포함하여 3개의 관이 들어 있다. 지방 호족 수장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사가현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는 나무. 무슨 나무일까? 규슈 올레길에서 자주 만난다. 알고보니 생강나무와 같은 녹나무과의 나무로 아오모지(青文字; Lindera citriodora)라는 일본 자생종이다.
시라이와 공원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타케오시 전경
전망대에서 너머쪽으로 내려서니 이내 기묘지(貴明寺) 사원이 뒷모습을 보이며 나타난다.
엉성하게 세운 종각에 달린 종은 뜻밖에 LPG 가스통이다.
종소리가 얼마나 오묘할까 싶은데, 누군가 쳐보려 했지만 만류하는 사람이 있어 그만 두었지만 참으로 궁금하긴 하다.
소박한 일주문, 불이문에는 임제종(臨濟宗) 선원임을 밝히고 있다.
임제종은 선종의 다섯 종파의 하나로 당나라의 승려 임제 의현(臨濟義玄 ?-867)에 의해 비롯되었다.
자기 자신이 곧 부처라는 확신에서 출발하여 절대적 관념이나 권위를 타파하고 일상 속에서 자신의 본성을 자각하는 주체적 자유의 실현을 강조하는 종파다. 우리 나라 선종도 태고보우(太古普愚)와 나옹혜근(懶翁 惠勤) 이후부터는 확실하게 임제종의 법통을 이어받았다.
일본에는 최초의 무신정권인 카마쿠라 막부 시대에 에이사이(榮西)가 처음 전파했다고 한다.
모자를 쓰고 있는 일본적인 석조불상들
기묘지는 1574년 제19대 다케오 영주인 고토 다카아키라(後蕂高明)가 세웠다고 한다. 선종(禪宗) 사찰인데 현재 주지는 전직 교사로 가업으로 이 절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마루에는 올레꾼들이 차를 마실 수 있도록 준비해 놓았다.
법당 앞마당은 물을 사용하지 않고 돌과 모래로 산수의 풍경을 표현하는 정원 양식인 가레산스이(枯山水) 정원이 자리잡고 있다. 무로마치 시대 선종 사원에서 만들어지고 발달했다는 양식인데, 교토 료안지(龍安寺)에서 보았던 정원과 비슷하다.
동쪽 언덕에서 바라본 기묘지 전경
절 마당에는 매화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기묘지를 지나면 전원주택 단지로 들어선다.
민가를 구경하는 재미가 괜찮다. 일본식 전통 기와집도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고 최근 유행한다는 땅콩집도 더러 보인다. 땅콩집은 한 필지에 두 세대가 마당을 공유하며 사는 집이다.
마을길을 따라 수로가 참 깨끗하게 잘 정비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저수지 둑방이 시야를 채운다.
바로 이케노우치호수(池ノ内)라는 호수로 오르는 계단...
이곳에서 우리를 안내해 주시는 자원봉사자가 바뀌었다. 다케오 시청 공무원으로 일을 하면서 다케오올레길을 개척하는 일을 담당했다는 분, 시라하마 사다노리(白濱 貞則) 씨.
현재는 다케오시교육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다는 인상이 아주 좋은 분이다. 터키 여행을 다녀온 뒤 어제 히라도 올레길을 걷고 와서 오늘 어머니와 밭을 매러 가기로 했는데 어제 긴급 연락을 받고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혼자 여기저기 여행을 다녀오느라 사모님이 대단히 뿔이 나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둑방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내려다본 타케오 주택가 풍경, 옹기종기 정답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그리고 인공호수 이케노우치호수(池ノ内)!
넓은 호수는 산과 마을 풍경을 거울처럼 담고 있다. 우리 나라 같았으면 가든이나 모텔이 가득 들어섰을 만한 곳인데, 각종 간판이 어지럽게 내걸려 있을 풍경인데...
호숫가엔 소수의 민가와 공공 헬스리조트인 다케오온천 보양촌(武雄温泉保養村)이 자리잡고 있어 풍경이 한적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길고 긴 호수변 길이 이어지고...
이케노우치호수가 끝나고 오른쪽 골짜기로 접어드는 곳에 보양촌관리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화장실도 가고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사가현립우주과학관을 바라보며 이케노우치 호수의 물을 공급하는 골짜기로 이어지는 길 걷는다.
매화의 종류를 잘 알지 못하지만 이 붉은 매화 꽃봉오리가 활짝 꽃잎을 펼치는 골짜기를 따라 반딧불이가 다슬기와 재첩을 숙주로 하여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물냉이가 아닐까 싶은 냉이가 뿌리를 내린 이 물속에 반딧불이는 중간 숙주인 다슬기나 달팽이 몸 속에서 이제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있을 것 같다.
이 골짜기에는 반딧불이가 많이 서식하고 있어서 다케오시에서는 5월말이면 반딧불이 축제를 벌인다고 한다. 상류에는 반딧불이 연못도 있어 좀 있다 만나게 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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