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라오스, 베트남

베트남(15) 후에 황성의 세조묘, 연수궁, 열시당, 태평루

모산재 2015. 2. 5. 12:14

 

황제의 집무실도 거소도 모두 폐허가 된 황궁 영역, 그나마 온전히 남은 태화전을 돌아보고 우리의 종묘에 해당하는 세묘(世廟)로 향한다. 세묘는 세조묘라고도 하는데, 황궁의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후에 황성의 제례 영역은 태화전 동서 쪽에 배치되어 있다.

 

동쪽에는 태묘(太廟)와 조묘(肇廟)가 있다. 태묘는 레왕조 시기 베트남 중남부를 지배했던 꽝남국의 응우옌호앙으로부터 응우옌푹투안까지 응우옌 왕들을 사당이며, 조묘는 꽝남국 시조 응우옌호앙의 부친 응우옌 낌을 모신 사당이라고 한다.

 

그리고 황성의 서쪽에는 응우옌 왕조의 역대 황제들의 위패를 모신 세묘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세묘 뒤편에는 시조인 지아롱 황제의 부모를 모신 흥묘(興廟)가 자리잡고 있다.

 

 

 

세묘로 가기 위해서는 '월영(月英)'이라 적힌 삼문을 지나야 한다. (동쪽으로는 '일정(日精)'이라는 패방이 있다.)

 

 

 

 

 

서쪽 끝에 이르면 세묘의 정문인 묘문(廟門)에 도착한다.

 

 

 

 

 

묘문을 지나면 현림각(顯臨閣 Hiển Lâm Các)

 

 

 

 

 

떠받들어 주는 명신이 없는 황제가 있겠는가...!

 

현림각은 응우옌 왕조에 공헌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1824년 민망 황제의 명으로 지어졌다. 1층은 5칸, 2층은 3칸, 3층은 1칸으로 된 피라미드 형태의 3층 누각이 높이는 17m. 후에의 궁궐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이는 왕조를 영예롭게 한 선조들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민망 황제가 이보다 더 높은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공표했다 한다.

 

 

 

현림각을 지나면 바로 세묘가 나타난다.

 

 

 

 

 

현림각 기단 바로 앞에는 대형 청동 세발솥이 길게 늘어서 있다.

 

세어 보니 모두 아홉! 그야말로 구정(九鼎)이다. 옛날 중국 하나라의 우 임금이 구주(九州)에서 금을 거두어 주조했다는 구정처럼 2개의 손잡이와 3개의 발이 달렸다. 천자(天子)에게 전해져 천하를 상징한다는 구정...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세묘의 세발솥도 구정(九鼎)이다. 왕조의 정통성과 부동성을 상징하는 점에서 같은 구정이겠지만, 이 구정은 세묘에 모신 응우옌 왕조의 아홉 황제를 각각 나타낸 것이라 한다.

 

한가운데에 놓인 솥은 응우옌 왕조의 창업주 지아롱 황제의 것으로 규모가 가장 크다. 1835년 민망 황제 때에 주조되었으며 높이 2.3m에 무게는 2톤이 넘는다. 아홉 개 솥에는 각각 고정(高鼎), 인정(仁鼎), 장정(鄣鼎), 영정(英鼎), 의정(議鼎), 순정(顺鼎), 선정(宣鼎), 유정(諭鼎), 현정(玄鼎)이라고 명명되어 있다.

 

 

세묘 앞 정중앙엔 대형 향로가 놓여 있다.

 

 

 

 

도자기 조각으로 장식한 기단 앞면

 

 

 

 

'세조묘(世祖廟)' 현판

 

 

 

 

 

내부에는 각 황제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는데 가장 가운데는 창업주 지아롱 황제와 두 황후, 다음으로는 좌우로 번갈아가며 다음 왕들과 왕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그러나 재위 기간이 며칠 또는 몇 개월로 짧았던 황제들, 방탕한 생활을 하다 프랑스로 망명한 마지막 황제 바오다이의 신위는 없다.

 

 

 

 

 

동쪽에는 전시 공간이 있는데, 왕가에서 사용하던 각종 기물들, 담배파이프와 찻잔, 그리고 와인 잔과 그릇 및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세묘의 서문, 숭성문(崇成文)

 

 

 

 

 

세묘 뒤편에는 지아롱 황제의 부모를 모신 사당인 흥묘(興廟)가 있지만 지나친다.

 

 

독우문(篤祐門)을 지나고...

 

 

 

 

 

학의 형상을 한 정원수

 

 

 

 

 

응상문(應祥門)으로 나선다.

 

 

 

 

 

응상문을 나서니 대비전인 연수궁으로 가기 위해 전기자동차가 기다리고 있다.

 

 

앞에 보이는 문은 황성의 서문인 창덕문(彰德門 Cửa Chương Đức). 동문인 현인문(顯仁門)과 모양이 닮은꼴이라 한다.

 

 

 

 

창덕문과 닮았다는 동문, 현인문(출처 :  順化皇城- 維基百科)

 

 

 

 

 

황성의 북서쪽, 세묘와 흥묘의 뒤편에 연수궁(延壽宮 Cung Diên Thọ)이 있다.

 

연수궁은 황제가 머무는 자금성의 바깥 영역에 자리잡고 있지만, 동쪽 문과 이어지는 길고 긴 장랑(長廊)을 통하여 긴밀히 자금성과 이어지고 있다.

 

연수궁으로 드나드는 문이 아름다워 보였는데, 전기자동차는 문을 통과하여 연수궁 안마당까지 직행해 버린다. 사진에 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연수궁은 태화전과 비슷한 양식으로 지은 건물인데, 정면 7칸으로 규모가 조금 작다.

 

 

 

 

연수궁은 황제의 할머니가 거주하는 대비전으로, 지아롱 황제 때인 1803년에 지어졌다. '연수(延壽)'란 말 그대로 '오래오래 살기'를 바라는 뜻이 들어 있다.

 

 

 

왼쪽의 이층 건물은 의료시설이 있었다고 들었던 듯...

 

 

 

 

내부 모습

 

 

 

 

 

동쪽 공간에는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는데,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가마를 탄 카이딘 황제(12대 황제로 친불파. 베트남 사람들이 매국노로 여기고 아주 싫어한다.)

 

 

 

 

프랑스 총독을 접견하는 대비

 

 

 

 

 

연수궁의 볼거리는 아름다운 후원인 듯...

 

 

 

 

연수궁 서쪽 마당

 

 

 

 

 

다시 전기자동차를 타고 간 곳은 왕립 극장인 열시당(閱是堂 Duyệt Thị Đường).

 

열시당의 위치는 자금성 영역으로 사라지고 없는 황제의 집무실, 근정전의 동편이다.

 

 

 

 

아담하고 작은 극장은 1826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이 곳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베트남의 전통적인 공연 예술로 중국의 경극과 비슷한 투엉(tuong)을 공연하거나 궁중무용과 냐냑(nhã nhạc)이라는 후에 지방의 궁중음악 등을 재현하여 공연을 한다고 한다. 오전 10시에 공연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다.

 

 

 

 

 

열시당 입구의 한쪽 공간에는 갤러리가 있다.

 

 

 

 

 

그리고 열시당 부근에 있는 태평루(太平樓 Thái Bình Lâu)란 건물을 따로 소개하기로 한다.

 

 

 

 

태평루는 개방되어 있는 곳이 아니어서 보지 못한 곳.

 

태평루는 왕실 도서관이자 황제의 독서실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자금성 영역에서 유일하게 파괴되지 않은 건물이다. 1821년 민만 황제의 의해 지어졌다. 도자기 조각 장식이 아름답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후에 황성 순례는 모두 끝났다.

 

 

그런데 아쉬움만 남는다. 적어도 한 나절은 봐야 할 이 넓은 황성을 꼭 한 시간만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후다닥 돌리는 바람에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지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없다. 사진 한 장 담고 돌아서면 가이드는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니 말이다. 함께 다녀야 하니 따로 보고 싶은 곳으로 갈 수도 없는 노릇... 폐허는 폐허대로 시간을 두고 보고 싶었는데 전혀 살펴볼 여유를 주지 않는다. 쉬엄쉬엄 다니며 음미하고 느끼도록 일정을 관리해 줄 수는 없는 걸까.

 

시간이 없어서 쫓긴다면 모르거니와 오전 10시까지 시간을 그냥 버려야했고 또 이 날 오후에도 저녁 식사 때까지 3시간이나 빈둥거려야 했으니...

 

어정쩡한 시간에 시작해서 후닥닥 해치우고 갈 데도 없는 외진 숙소에서 알아서 놀아라! 우리 나라 굴지의 여행사라는 하나투어가 이런 식으로 여행을 기획하고 있다는 게 참으로 실망스럽다.

 

 

 

 

※ 후에 황성(Hoàng thành Huế) 참고 자료 => 顺化皇城( Hoàng thành Hu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