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라오스, 베트남

베트남(14) 후에 황궁, 오문 봉황루와 태화전

모산재 2015. 2. 3. 00:22

 

오늘도 가이드는 10시가 되어서 나타난다.

 

 

휴양 목적의 패키지 여행인 탓일까. 여섯 시에 눈을 떠서 아침 식사를 하고 10시까지 빈둥거려야 하는 일정이 계속되니 참으로 견디기 어렵다. 숙소가 시내라면 후에박물관 등 시내 구경이라도 할 것을...

 

하릴없이 필그리미지 빌리지를 한 바퀴 산책하며 시간을 보내다 약속 시간이 되어 숙소를 나섰다.

 

 

 

오늘은 '베트남의 경주'라 일컫는 후에의 명소, 응우옌 왕조의 왕도인 후에성(후에 황궁)과 황제능들을 돌아보는 날이다. 푸쑤언 다리(Cầu Phú Xuân)로 유유히 흐르는 흐엉강을 건너 좌회전하면 바로 황제들의 거소 후에성 앞에 도착한다.

 

 

 

 

 

후에는 흐엉강 북쪽으로 옛 후에 왕도 다이노이를 중심으로 전통적인 구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고 흐엉강 남쪽으로는 신 시가지가 자리잡고 있다.

분열되어 있던 베트남을 통일한 응우옌푹아인(阮福暎)이 지아롱 황제로 등극하며 응우옌 왕조를 열면서 후에 황성이 설계되고 1804년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자금성을 본떠 만들었다는데, 프랑스 루이 14세 시대의 요새 건축가 보방(Sébastien Le Prestre de Vauban, 1633-1707)의 양식에 따라 건설되었다고 한다. 30여 년 만인 1832년에야 완료되었다.

'다이노이(Ðại Nội 大內)'라 불리는 왕도는 흐엉강을 바라보며 건설되었는데 동남향이 되었다. 흐엉강의 물을 끌어들여 해자로 둘러싸인 왕도는 해자를 둘러싼 외성인 경성(京城 Kinh thành), 궁궐을 둘러싼 내성인 황성(皇城 Hoàng thành), 그리고 왕의 거주 공간인 자금성(紫禁城 Tu Cam thành)의 3중 구조로 되어 있다.

1802년부터 1945년에 이르기까지 약 143년간 베트남을 통치했던 응우옌 왕조의 황궁 역할을 했지만, 1880년에 프랑스 군대에 의해 주권을 빼앗기고 명맥을 유지하던 응우옌 왕조는 2차세계대전 막바지 프랑스를 쫓아낸 일본의 대리통치를 받다가 일본이 패망하고 호치민의 베트남민주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종말을 고한다.

하지만 식민지를 포기하지 못한 프랑스군이 개입하여 괴뢰정권을 만들고 1947년 이들과 격전으로 후에 황성의 주요 전각들이  불타버린다. 프랑스를 이어받은 미국에 의해 베트남은 분단되고 1968년 '구정대공세'로 남북 베트남의 격전지가 되면서 160개가 넘던 황성의 전각들은 겨우 10여 개만 살아남을 정도로 파괴되었다. 1993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이후 복원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최근의 복원 프로젝트는 2015년에 끝났다.

 

 

 

후에성의 한가운데 거대한 깃발탑이 건너다보이는 곳에서 전기자동차를 타고 후에 황궁 순례가 시작된다.

 

 

해자를 건너는 다리로 진입하자 정면에 광덕문(廣德門)이라 새겨진 성문이 나타난다. 광덕문은 동쪽의 예인문(禮仁門)과 짝을 이루는데, 현재 광덕문은 들어가는 문으로 예인문은 나가는 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해자를 건너면서 동쪽을 바라보니 깃발탑에 베트남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꼿꺼(Cột cờ)라고 부르는 깃발탑은 1807년 세워졌는데, 3층 기단의 높이는 16m란다. 베트남에서 가장 높은 깃발탑 위 40m 높이에서 깃발이 날리고 있다. 지아롱 황제 때 만들었지만 전쟁으로 파괴되었다가 1969년 현재의 모습으로 완공되었다 한다.

 

 

외성은 각 변이 2,235m인 정사각형 모양으로 성벽의 높이는 5m. 해자의 너비는 30m, 깊이는 4m라고 한다.

 

 

 

 

 

광덕문을 지나자 지아롱 황제 때 만들었다는 길이 5m, 무게 10톤이라는 거대한 대포들이 늘어서 있다. 이곳에는 5문, 동쪽 인의문 쪽에 4문이라는데 각각 동서남북과 오행 사상을 나타낸 것이라고...

 

 

 

깃발탑이 있는 성곽의 중앙으로 이동하자 보수공사 중인 거대한 누각이 나타난다. 바로 궁성의 남문인 오문(午門 Ngọ Môn)과 오봉루(五鳳樓 Lầu Ngũ Phụng)!

 

 

 

 

정오에 태양을 바라보는 남문이라는 뜻을 가진 오문은 정면에 셋, 양쪽 누각 아래로 둘, 모두 5개의 문이 있다. 중앙문은 황제만 사용할 수 있었고, 양쪽 문은 만조백관들이, 그리고 맨 바깥의 문은 병사들이나 코끼리 말 등이 드나들었다 한다.

 

 

오봉루는 황제가 중요 행사나 의식을 거행했던 누대로, 마지막 황제 바오다이가 1945년 8월 호찌민 임시 혁명정부에 자리를 내주며 응우웬 왕조 시대가 끝났음을 선포한 역사의 현장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2대 민망 황제 때 창건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12대 카이딘 황제 때에 재건된 것이라고 한다.

 

 

수리되기 전의 오봉루(출처 : 위키백과)

 

 

 

 

 

오문으로부터 황궁 영역으로, 황궁 영역에는 다시 깊은 해자가 두르고 있다. 해자와 성벽의 둘레는 모두 2500여 m, 남북 길이 604m, 동서 길이 620m라고 한다.

 

 

 

오문을 지나니 방형의 커다란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보이고, 그 건너편에 태화전이 자리잡고 있다. 오봉루에 올라서 바라보는 황궁의 전망이 아름답다고 하는데 수리 공사중이라 오를 수 없으니 아쉬울 뿐이다.

 

 

오봉루에서 바라보는 태화루(출처 : 구글 검색)

 

 

 

 

연못을 가로지르는 이 다리를 중도교(中道橋)라 부른단다.

 

 

다리로 진입하는 곳에는 삼문 형식의 패방이 세워져 있는데, '정직탕평(正直蕩平)'이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 이곳에 영조 임금이 계셨던 게 아닌가 싶었다. 황궁의 삼문으로는 구조물이 작아 보이고 글씨도 평범해 보인다.

 

 

 

 

 

중도교 건너 태화전 입구에도 '고명유구(高明悠久)'라는 글씨가 씌어진 삼문 패방이 서 있다. '높고 밝은 기운이 유구하기를...'

 

 

패방 너머로 태화전 마당, 문무백관의 조례를 거행하는 대조원(大朝院) 양쪽으로 품계석이 일렬로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응우옌 왕조의 품계도 조선의 9품계와 같다.

 

 

 

 

대조원 앞뜰 양쪽에는 세워져 있는 동물상. 무슨 의미를 가진 조형물일까...? 수호상이라면 바같을 바라보며 지키고 있을 텐데 뒤를 보인 채 태화전을 향하고 있다.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 태화전을 모방하였다는 태화전(太和殿 điện Thái Hoà)은 황제의 공식 접견과 기념일, 대관식 등 황실 의례가 거행되었던 곳이다.

 

지아롱 황제 때인 1805년에 건설되어 1833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 때 심하게 파손되어 1970년 재건되었다.

 

 

 

 

정면 9칸의 황금빛 이층 지붕. 용마루는 이름처럼 용으로 장식되어 있다.

 

9칸이라지만 양쪽 두 칸은 처마 밑에 물려낸 툇간이라 실질적 규모는 7칸 건물이다. 자금성을 본뜬 것이라지만 웅장한 높이의 석조 기단에 11칸 이층 전각인 자금성 태화전과 규모로는 비교할 수 없을 듯...

 

 

 

 

태화전 출입구 정면

 

 

 

지붕의 장식들

 

 

 

용을 새긴 대리석 기둥

 

 

 

태화전은 80개의 두레기둥이 지붕을 받치고 있다 한다. 기둥에는 응우옌 왕조의 엠블렘인 황룡을 새기고 있다.

 

 

 

 

태화전 동쪽 처마 밑 공간은 전시실 기능을 하고 있다. 전시실에는 황제가 사용하던 옥쇄, 황제와 고관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있다.

 

 

황제들의 옥쇄

 

 

 

대조원 마당에서 문무백관들이 조례하는 모습

 

 

 

12대(1916-1925) 카이딘 황제와 중신들

 

 

 

대조원 마당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관리들

 

 

 

 

태화전 바로 뒤에는 황제의 집무실 근정전(勤政殿)이 있었으나 폭격으로 사라져 버렸고, 앞마당 양쪽으로 부속채인 '따부(左廡 Tả vu)', '후부(右廡 Hữu vu)'라는 전각 두 채가 남아 있어 전시실로 사용되고 있다.

 

 

좌무와 우무에는 각각 커다란 청동 대야가 하나씩 놓여 있어 눈길을 끈다. 안내문에는 무게는 각각 1489kg, 1500kg로 응웬푹왕 때(각각 1660년, 1662년)에 왕실의 군능과 만수무강을 위해 주조되었다고 되어 있다. 누군가가 역적 죄인들을 증살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진위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맞은 편 기단만 남은 곳이 근정전 터, 대형 옥쇄가 놓인 자리가 용상이 놓였던 곳이 아닐까 싶다.

 

 

 

 

서쪽에 자리잡은 우무

 

 

 

동쪽에 자리잡은 좌무

 

 

 

좌무에 전시된 왕실의 도자기와 사진들이 눈길을 끈다.

 

 

 

 

 

고위 관리(만다린)가 되기 위한 과거시험

 

 

 

중국처럼 자신을 '천자'로 일컬었던 베트남의 통치자들. 가운데가 카이딘 황제

 

 

 

응우옌왕조의 황제들 - 모리배와 수호자, 반란과 방조자

 

 

 

지아롱황제는 응우옌왕조의 창업주,

민망황제는 응우옌왕조의 전성기를 이끈 시인 황제,

뜨득황제는 시를 잘 쓰고 총명하였으나 자식이 없어 후계에 실패하고 프랑스의 침공을 받으며 식민지가 되는 단초를 마련했고,

함응이황제는 프랑스에 저항하다 알제리로 유배되었으며,

동카인은 프랑스의 인형 노릇하던 황제,

타인타이와 쥬이떤 황제 부자는 독립운동과 연루되어 아프리카 레위니옹섬으로 유배되었다.

카이딘은 자신의 영화를 위해 베트남을 배신하고 프랑스 지배자들과 결탁한 인물로 베트남인들이 증오하는 황제,

그의 아들 바오다이는 응우옌왕조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 응우옌왕조 황제 계보도

 

 

 

회랑

 

 

 

 

 

문무백관들의 조례를 거행하고 사신들을 영접하는 태화원만 온전할 뿐 황제의 집무실인 근정전과 거소인 건성궁 등 황궁 영역은 미군의 포격으로 대부분 폐허로 남아 있어 베트남의 비극적인 현대사를 새삼 일깨워 준다.

 

 

그러나 그 중 태평루(Thái Bình Lâu)는 비교적 온전한 채로 남아 있는데, 공개되어 있지 않아 검색 사진으로 감상해 본다. 

 

 

 

 

태평루는 왕실 도서관이자 국왕의 독서실로 민망 황제 때인 1821년에 지어졌다. 부근에는 왕실 극장(Teatro Real)이 자리잡고 있다. 현재 작은 음악 공연과 극장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도자기 조각으로 장식된 독특한 양식이 봉황루 발코니 장식과 비견된다.

 

 

 

대비전과 그 주변을 돌아보고 난 다음에 서쪽에 있는 세조묘(世祖廟)로 향한다. 세조묘는 우리 궁궐의 종묘와 같은 곳!

 

 

 

 

 

 

※ 후에성 안내도

 

 

 

※ 황성(Hoàng thành) 안내도

 

 

 

 

1. 오문(午門 Ngọ Môn) 2. 타이직호(太液湖 Hồ Thái Dịch) 3. 중도교(中道橋 Cầu Trung Đạo) 4. 대조원(大朝院 Sân Đại Triều)

5. 태화전(太和殿 Điện Thái Hoà)  6. 대궁문(大宮門 Đại Cung môn)  7. 따부(左廡 Tả vu), 후부(右廡 Hữu vu)

8. 근정전(勤政殿 Điện Cần Chánh)  8a. 무현전(武顯殿 Điện Võ Hiển)  8b. 문명전(文明殿 Điện Văn Minh)

9a. 정명전(貞明殿 Điện Trinh Minh)  9b. 광명전(光明殿 Điện Quang Minh)  10. 건성전(乾成殿 Điện Càn Thành)

11. 곤태전(坤泰殿 Điện Khôn Thái)  11a. 순휘원(顺徽院 Viện Thuận Huy) 11b. 양심원(養心院 Viện Dưỡng Tâm)  12. 건중루(建中樓 Lầu Kiến Trung)

13. 태평루(太平樓 Thái Bình Lâu) 14. 내원(内苑 Vườn Ngự Uyển) 15. 궤가원(几暇園 Vườn Cơ Hạ) 16. 내무부(內務部 Phủ Nội Vụ)

17. 조묘(肇廟 Triệu Miếu) 18. 태묘(太廟 Thái Miếu) 19. 장생궁(長生宮 Cung Trường Sanh) 20. 연수궁(延壽宮 Cung Diên Thọ)

21. 봉선전(奉先殿 Điện Phụng Tiên) 22. 흥묘(興廟 Hưng Miếu) 23. 세묘(世廟 Thế Miếu) 24. 구정(九鼎 Cửu Đỉnh) 25. 현림각(顯臨閣 Hiển Lâm Các)

26. 현인문(顯仁門 Cửa Hiển Nhơn)  27. 화평문(和平門 Cửa Hoà Bình)  28. 창덕문(彰德門 Cửa Chương Đức)

29. 어전문방(御前文房 Ngự Tiền Văn phòng)  30. 육원(六院 Lục Viện)  31. 명신전(明慎殿 Điện Minh Thậ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