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라오스, 베트남

베트남(4) 세계문화유산 호이안 옛마을, 풍흥고가와 내원교

모산재 2015. 1. 23. 12:16

 

12시 호텔에서 호이안(會安)을 향해 출발한다.

 

 

호이안은 다낭에서 남쪽으로 약 30km 떨어진 투본강 하구에 위치하며 옛날에는 '바닷가 항구'라는 뜻의 '하이포'라고 하였다. 16세기 중엽 이래 인도·포르투갈·프랑스·중국·일본 등 여러 나라 상선이 드나들며 무역도시로 번성하였다. 도자기 거래가 주류를 이루었으며 일본인 마을이 생겨날 정도로 일본과 교역이 잦았다.

 

하지만 지금은 일본인 마을의 흔적은 내원교라는 다리만 남아 있을 뿐이고 호이안의 도시 외관은 대부분 중국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호이안 옛마을은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호이안 가는 길, 남쪽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넓고 아름다운 백사장 해안선을 따라 수없이 많은 리조트들이 늘어서 있다. 다낭에서 호이안까지 30km나 되는 해안선은 작은 굴곡조차 없이 곧게 벋어 있다. 이렇게 대단한 해안선이 있을까. 이 해변은 포브스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6대 해변 중 하나라고 한다.

 

 

차창으로 보이는 해변 리조트, 크라운 플라자. 오행산 부근의 논느억해변은 특히 고급 리조트들이 몰려 있다.

 

 

 

 

 

 

그리고 이내 호이안에 도착.

 

 

 

점심식사를 위해 레바츄엔(LE BA TRUYEN) 레스토랑으로 들어선다.

 

일본식 전통 가옥에 넓은 정원을 가진 이 레스토랑은 호이안의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

 

 

 

 

호이안의 3대 요리로 반바오박(Banh Bao Vac, 새우만두), 까오라우(Cao Lau, 볶음면), 호안탄(Hoanh Thanh)을 드는데, 그 중 두 가지를 맛볼 수 있었다.

 

 

 

 

바로 앞에 있는 국수가 그 하나로 카오라우(Cao Lau)라 부른다. 쫄깃하고 담백한 국수에 돼지고기와 각종 야채(향채, 콩나물, 숙주, 양파) 등을 함께 섞어서 먹는 일종의 비빔국수로 국물을 약간 넣고 베트남 생선 발효장인 느억맘을 가미하여 먹으면 뒷맛조차 개운하다.

 

 

그리고 '반 바오박'은 얇은 쌀만두피로 새우살 속을 채운 것인데, 그 모습이 흰 장미꽃이 핀 듯하여 '화이트 로즈'라는 애칭으로 널리 불리는 음식이다. 

 

나머지 하나, 호안탄은 완탕으로 다진 돼지고기와 새우살을 피에 싸서 튀긴 것인데, 토마토와 양파로 만든 소스를 얹어서 먹는 음식이다. 

 

이 외에도 튀긴 생선(볼락?)과 바나나 잎에 싸서 찐 떡인 반꼼(banh com) 등 몇 가지 요리가 더 나온다.

 

 

 

 

뒷맛이 개운한 남국의 음식을 배불리 먹고 세계문화유산인 호이안 구 시가지 산책에 나선다.

 

서쪽 매표소로부터 들어서면서 시작되는 응우옌 티 민 카이(Nguyen Thi Minh Khai) 거리는 일본인 거주지로 알려져 있다. 당시 호이안에 거주하던 일본인은 1천 명쯤 되었다 하는데, 현재 일본풍 가옥의 거의 보이지 않는다.

 

 

 

 

 

거리 양쪽으로는 다양한 가게들이 늘어 서 있다.

 

 

 

 

 

대나무 뿌리처럼 보니는 소재로 조각한 인물상이 눈길을 끈다. 

 

 

 

 

뿌리만 보고 대나무인 줄 알았는데, 속이 빈 대나무라면 저런 입체 조각이 불가능할 것. 야자나무 뿌리일까...?

 

 

 

 

 

아트 갤러리가 유난히 많다. 베트남의 풍광과 표정을 나타낸 그림들이 볼 만하다.

 

 

 

 

 

늘푸른 나무가 가로수를 이루고 고생창연한 옛집과 담 위에는 덩굴풀과 덩굴나무들이 덮고 있는 풍경이 여행자의 마음을 넉넉하게 한다.

 

 

 

 

 

 

거리 정면에 내원교(來遠橋)가 시야에 들어서고, 그 왼편에 2층 발코니가 아름다운 목조가옥, 풍흥(豊興)고가가 나타난다.

 

 

맞은편에는 관광객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는 거리의 화가...

 

 

 

 

 

풍흥고가는 1780년에 중국 무역상이 지은 집으로 베트남, 중국, 일본의 건축 양식이 혼합된 목조가옥이다. 향, 향신료, 종이, 소금, 실크, 계피, 유리 등을 팔던 상점이라 한다.

 

 

 

 

 

아름다운 장식이 있는 기둥과 병풍으로 두른 벽이 눈에 띈다. 2층 천정과 바닥은 목재로 되어 있다. 내부는 80개의 나무 기둥이 받치고 있다고 한다.

 

 

 

 

 

2층 마루바닥에는 격자 창 구조물이 있는데, 홍수 때 2층으로 물품을 올리기 위한 공간으로 만든 것이라 한다. 투본강이 가끔씩 범람하여 아래층이 물에 잠긴다고 한다.

 

 

 

 

2층 한쪽 벽면에 마련된 사당. 베트남의 가정과 가게엔 이런 사당 공간이 있다.

 

 

 

 

 

풍흥고가는 8대째 후손이 살고 있는 집이라 한다. 지금은 실크제품 전시장으로 이용되고, 수공예 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풍흥고가를 지나면 작은 샛강을 건너는 내원교(來遠橋)가 앞을 가로막는다.

 

 

 

 

 

목조 지붕이 있는 특이한 이 다리는 1593년 호이안의 일본인들이 세웠으며, 건너편 중국인거리로부터 일본인 정착지로 들어서는 입구 역할을 하여 '일본교'라고도 불린다. 

 

1593년이라면 임진왜란으로 조선 백성들이 신음하던 바로 그 시기니 참으로 만감이 교차한다.

 

 

 

 

다리 중간에는 1719년에 조성되었다는 사당이 자리잡고 있는데, 날씨를 관장하는 신, 천후(天后) 신을 모시고 있다 한다.

 

 

 

 

건물 내부에는 다리 건설과 관련된 비가 양쪽으로 마주 보고 있는데, 기부자로 보이는 이름은 대부분 일본인이 아닌 듯...

 

 

 

 

다리 양쪽의 출입구에는 각각 원숭이와 개를 새긴 조각상이 있는데, 이를 두고 견원지간(犬猿之間) 같은 일본과 중국의 관계를 나타낸다고 해석하기도 하고 다리 공사가 원숭이 해에 시작해서 개 해에 끝났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하기도 한다. 진실이 무언지...

 

 

 

 

16세기에 1천여 명이나 벅적이던 일본 상인들은 도쿠가와 이에마쓰가 쇄국정책의 일환으로 해외 무역을 금지하면서 1639년부터 급격하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내원교는 7차례에 걸쳐 재건축을 하면서 처음에는 일본 건축 양식이었지만 점차 중국풍으로 변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어쨌거나 지금 내원교는 호이안을 상징하는 건축물이 되었고 웨딩 사진 촬영의 단골 장소가 된 듯 이곳에서 신혼부부들이 사진 촬영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다리를 건너면 중국인들이 거주하던 거리로 광조회관, 복건회관, 경부회관, 조주회관 등 중국인 화교들의 향우회 건물 공간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내원교 아래쪽으로 내려서니 바로 투본강의 샛강이 나타난다. 

 

맞은편 삼각주로 연결되는 다리가 있는 풍경, 내원교와 함께 호이안의 아름다운 야경을 이루는 곳이다.

 

 

 

 

 

 

하지만 일행이 이미 젠푸거리로 이동을 한지라 나도 되돌아서서 서둘러 젠푸거리로 향한다.

 

 

 

 

 

※ 호이안 옛마을 안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