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담양 (5) 담양호반에서 추월산과 금성산성을 바라보다

모산재 2015. 1. 13. 12:46

 

삼지내 마을을 돌아본 다음 담양호로 향한다.

 

추월산 기슭을 오르면서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담양호와 금성산성! 추월산터널 앞에서 차를 세우고 잠시 전망을 즐긴다.

 

 

추월산 산허리의 이 추월산 터널로부터 담양호를 끼고 가마골에 이르는 이 산간 호반 도로는 전망이 아름다워 드라이브 코스로 추천할 만하다.

 

 

 

 

 

터널 남동쪽으로 보이는 담양호와 댐.

 

댐 입구에 뾰족하게 솟은 부엉바위산이 보이고 , 왼쪽 끝으로는 멀리 금성산성과 강천산이 보인다. 댐 아래로 흘러내린 물이 담양읍을 지나게 된다.

 

 

 

 

 

담양호는 용추봉 가마골과 추월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만든 인공 호수로 1976년에 완공되었다. 

 

전남의 5대 명산인 추월산과 호남의 3대 산성인 금성산성, 그리고 영산강의 시원인 가마골 등 아름다운 경관과 어울려 있어 한번에 둘러보기에 좋은 여행지라 할 수 있다. 

 

 

 

 

 

당겨서 본 금성산성(金城山城).

 

산 너머 강천사 계곡 쪽은 섬진강 수계에 속한다.

 

 

 

 

전남 담양과 전북 순창의 경계를 이루는 금산산(603m)에 쌓은 호남의 3대 산성산성의 하나다. 사적 제353호로 지정된 금성산성은 삼국시대에 처음 축조되었고 조선 태종 때인 1409년에 개축하였다. 임진왜란 후 광해군 때 개수하고 내성을 쌓아 대장청(大將廳)을 건립하고 효종 때 병영기지로 규모를 갖추었다고 한다.

 

외성은 6,486m, 내성은 859m에 이르며 돌로 쌓았다. 동서남북에 각각 4개의 성문터가 있는데 통로 이외에는 사방이 30여m가 넘는 절벽으로 둘러싸여 통행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금성산의 주봉인 철마봉을 비롯하여 일대의 산지는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또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성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 되어 있으며 가운데는 분지여서 요새로는 완벽한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다.

 

내성 안에는 마을을 형성할 만한 넓은 땅이 있는데, 숙종 대에는 성내에 136호가 있었다고 한다. 성안에 곡식 1만 6천 섬이 들어갈 수 있는 군량미 창고가 있었으며 객사, 보국사 등 10여 동의 관아와 군사 시설이 있었다. 이런 특성으로 임진왜란 때는 남원성과 함께 의병의 거점이 되었고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는 치열한 싸움터가 되어 성안의 모든 시설이 불에 탔다.

 

1994년부터 2010년까지 성곽 복원 사업이 이루어졌다.

 

 

 

 

 

 

추월산터널을 지나면 이내 추월산 등산로 입구 담양호 국민관광지에 도착한다.

 

 

 

 

 

산성산과 이어지는 추월산(秋月山)도 높이 731m로 전남 담양과 전북 순창의 경계를 이루며 노령산맥의 중추가 되는 산이다. 전남의 5대 명산의 하나로 꼽히며 바위산의 봉우리가 달에 닿을 정도로 높이 솟아 추월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데, 담양에서 바라보면 스님이 누워있는 형상 같다고 해서 와불산(臥佛山)이라고도 부른다.

 

산 위에는 '가을 달처럼 둥글게 솟아 있는 바위'가 있는데 이를 추월바위라 하는데, 인접 면에 월산(月山), 마을로 중월(中月)리, 재월(齋月)리, 월계리 등 달과 관련된 지명이 흔한데 달을 바라보기 좋을 듯 높이 솟은 추월산과 연관된 지명으로 보인다.

 

추월산은 건너편 금성산성과 함께 임진왜란 때 치열한 격전지였으며, 동학 농민군이 마지막으로 항거했던 곳이라고 한다.

 

 

※ 추월산 등산 안내도

 

 

 

 

 

추월산 제 1, 2등산로 입구. 우뚝 솟은 바위 정상 중간에 보리암이란 암자가 있다.

 

 

 

 

 

나뭇가지에 가려진 부분에 보이는 보리암

 

 

 

 

 

담양호 서북쪽 월계리 쪽에는 호수를 건너는 목교가 설치되어 있다. 건너편 산은 '과녁바위산'이라는 재미있는 이름. 담양 호반을 따라 데크로 설치된 산책로가 있는데, 거리는 1 km에 좀 못 미쳐 보인다.

 

 

 

 

 

 

목교를 건너며 바라보는 남동쪽 금성산성

 

 

 

 

 

 

당겨본 금성산성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추월산

 

 

 

 

 

 

 

 

추월산 암봉, 천 길 절벽 위에 자리잡은 보리암(菩提庵)

 

 

 

 

 

멀리 보이는 건물은 대웅전과 요사채로, 암자에 걸맞지 않을 정도로 법당이 매우 크다고 한다. 1980년에 신도의 재정 지원과 미군 헬리콥터의 도움을 받아 지은 것이라 한다. 

 

바위 꼭대기에 가까운 절인데도 많은 샘물이 솟아나고 있는데, 이 샘은 부정을 타면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보리암은 백양사의 말사로 고려 신종 때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지눌(知訥) 스님이 지리산 상무주암(上無住庵)에 머물 때, 전국의 좋은 땅을 찾기 위해 나무로 세 마리의 매를 만들어 날려 보냈더니 한 마리는 순천 송광사터에, 또 한 마리는 장성 백양사터에, 나머지 한 마리는 추월산 보리암터에 앉아 이곳에 절을 짓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전하는 전설.

 

보리암에는 커다란 가마솥이 있는데, 순창에 살던 기생이 사람들을 동원하여 그 솥을 절 아래에 있는 굴까지 운반하였으나 절벽 때문에 더 이상 옮길 수 없어 애를 태웠는데, 이튿날 보니 불력(佛力)으로 솥이 절에 옮겨져 있었다고 한다.

 

보리암 바로 아래는 불운했던 의병장 김덕령 장군의 부인이 순절한 곳이라 한다. 임진왜란 때 부인 흥양이씨는 왜적에게 쫓기다 저 절벽에 몸을 던져 순절하였다. 절벽에는 1840년 담양부사 조철영이 순절을 기린 명문이 남아 있다 한다.

 

 

 

배풍등 붉은 열매들

 

 

 

 

 

 

호반으로 이어지는 호젓한 나무데크 산책로 

 

 

 

 

 

 

산책로는 호반이 왼쪽으로 꺾이는 곳에서 끝난다. 왼쪽 골짜기는 영산강의 상류로 가마골로 이어진다.

 

 

 

 

 

 

어느 좋은 봄날이나 가을날 한번쯤 시간을 내어 보리암을 거쳐 추월산 산행을 하고 이 호숫가 산책로를 거니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