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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

제주도(9) 비극적 근대사의 현장 관덕정, 관덕정 벽화

by 모산재 2014. 11. 28.

 

제주시 삼도1동, 예전 제주목 관아가 있었던 제주시 중심가에는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자 보물 제322호로  지정된 관덕정(觀德亭)이 자리잡고 있다.

 

 

네 귀퉁이에서 위엄 넘치는 돌하르방이 지키고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이 하르방은 제주읍성의 성문 밖에 있었던 것을 영조 30년(1754)에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관덕정의 늠름한 위용에 흠집을 내려는 듯 도로가 스치듯 지나가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이중 기단 위에 정면 5칸 측면 4칸인 팔작지붕집인 이 건물은 1448년(세종 30년)에 제주목사 신숙청이 병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지은 것으로 1480년에 중수되었고 여러차례 중수와 개축을 거쳤다.

 

 

그런데 1924년 일본이 보수하면서 15척이나 되는 곡선의 처마를 2척이나 줄이며 전통적인 멋은 사라졌고, 1969년에 대대적으로 해체 보수하면서 문을 달고 흰 페인트칠을 하여 관덕정의 위용이 크게 훼손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2003년부터 2006년까지 관덕정을 전면 해체하는 중수 공사로 일제가 훼손한 곡선 처마를 원형 그대로 복원했으며, 관덕정 내부의 8점 벽화와 단청도 복원하였다.

 

 

 

관덕정이란 이름은 "사자소이관성덕야(射者所以觀盛德也)"라는 말에서 따온 것으로 "활을 쏘는 것은 높고 훌륭한 덕을 보는 것이다"는 무예의 정신을 담고 있다.

 

 

 

 

 

관덕정에는 순탄하지 못했던 제주의 역사가 아로새겨져 있다. 특히 근대에 이르러 관덕정 앞 광장은 '제주 역사의 앞마당'이라고 할 정도로 격랑의 역사를 겪었다.

 

1901년의 신축성교난의 지도자 이재수는 바로 이 관덕정 광장에서 효수되었다. 1947년 2월 10일에 제주 시내 중학교 학생들이 이곳에 모여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양과자를 먹지 말자."는 시위를 벌였고, 1949년 6월 사살된 4.3항쟁 유격대 사령관 이덕구의 효수된 머리가 전봇대에 매달려졌다.

 

 

관덕정도 해방 후 어지러운 역사 속에서 1948년 9월에 제주도 임시도청으로, 1952년도에는 도의회 의사당과 북제주군청의 임시청사로, 그리고 1956년에는 미공보원 상설 문화원으로 사용되는 순탄치 못한 역정을 거쳐야 했다. 1959년에는 국보 제478호로 지정되었다가 1963년 보물 제322호로 재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관덕정 현판

 

관덕정에는 '관덕정(觀德亭)', '호남제일정(湖南第一亭)', '탐라형승(耽羅形勝) 등 세 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안평대군이 처음 썼던 '관덕정(觀德亭)' 현판은 불에 타 사라지고 지금 걸려 있는 현판은 선조 때 영의정이자 한음 이덕형의 장인인 이산해가 쓴 것이다.

 

 

'탐라형승(耽羅形勝)'은 중앙 천정 서쪽에 동쪽을 향하여 걸려있는 편액으로 1778년~1781년 재임한 방어사 김영수의 글씨, 그리고 '호남제일정(湖南第一亭)'은 1882년 방어사 박선양이 중수하면서 쓴 글씨라고 한다.

 

 

 

● 건물 내부 벽화

 

관덕정의 대들보 아래 창방에는 흐릿한 벽화가 남아 있다. 모두 일곱 점인 벽화는 제주도에서 발견되는 하나밖에 없는 벽화로 작자미상이나 상당히 격조 높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관덕정 벽화 모음

(아래 벽화 그림 출처 : '제주목관아' 홈페이지)

 


* 취과양주귤만헌(醉過楊洲橘滿軒) : 양주자사를 지낸 두목(杜牧)이 귤을 던지는 여인의 교태에도 아랑곳 않고 교자(轎子)를 타고 지나가는 장면이다.

 

 

* 상산사호(商山四皓) : 진시황 때에 난리를 피하여 산시성(陝西省) 상산(商山)에 들어가서 숨은 동원공, 기리계, 하황공, 각리 선생을 이르며 수염과 눈썹까지 희어 사호(四皓)라 함. 바둑을 두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 적벽대첩도(赤壁大捷圖) : 손권과 유비 연합군이 연환계로 적벽강에서 조조군을 화공으로 격파하여 크게 이기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 대수렵도(大狩獵圖) : 화면의 왼쪽은 창을 든 기마의 병사에게 쫓기고 있는 호랑이, 멧돼지 등을 그렸고, 오른쪽엔 그 뒤를 쫓는 기병들을 그렸다. 좌측 먼 산등성이와 우측 우거진 빽빽한 수풀을 건너 산 넘어 창 자루가 죽 벌여 서 있다. 의상과 장비로 보면 관원들이 수렵하는 그림이다.

 

 

* 십장생도(十長生圖) : 해, 소나무, 물, 학, 영지와 왼쪽 그림에서 사슴, 영지, 거북, 바위, 구름, 대나무 등을 그렸다.

 

 

 

이 외에도 진나라 왕 자영의 투항을 받고 함양을 먼저 점령한 유방이 항우에게 초청된 홍문(鴻門)의 연회에서 죽임을 당할 뻔한 위기를 넘기는 장면을 그린 '홍문연(鴻門宴)', 10만 적군을 앞에 두고 태연하게 거문고를 타서 적군을 물리치는 제갈공명을 그린 '공명탄금도(孔明彈琴圖)'가 그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