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여주(驪州) 지명 유래 전설이 서린 마암(말바위)

모산재 2014. 11. 21. 20:32

 

여주 시내에서 신륵사를 가기 위해서는 여주대교를 건너야 한다.

 

여주대교를 건너기 전 오른쪽 강가로 내려서면 '말바위'라고 불리는 바위 절벽이 눈에 들어온다. 영월루 바로 아래에 있는 절벽으로 마암(馬巖)이라고도 한다.

 

 

말바위 앞 바위 위에는 강태공들이 푸른 여강에 낚싯줄을 드리우고 한가로이 세월을 낚고 있다. '마암어등(馬巖漁燈, 마암의 고기잡이 등불)이 여주 팔경의 하나라 하는데, 어등 아닌 낚시꾼 풍경인들 어떠리...

 

 

 

 

 

 

 

낚시꾼들이 서 있는 뒤쪽에 서 있는 바위 절벽이 바로 마암이다.

 

이 바위에는 황마(黃馬=구렁말)·여마(驪馬=가라말)가 승천하였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으며, 이로부터 여주의 옛 이름인 '황려(黃驪)'가 생겼고 황려가 '여흥(驪興)'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의 여주(驪州)로 변한 것이라 한다.

 

 

바위 위에는 커다란 글씨로 '마암(馬巖)'이라 새겨져 있다. 말의 형상을 닮은 바위라는데, 내 눈에는 두 개의 바위가 말발굽 같긴 하지만 말의 모습은 아무리해도 그려지지 않는다. 전설은 전설로 받아들여야 할 것을...

 

 

 

 

 

 

 

여주시사에 의하면, 마암에 얽힌 전설은 다음과 같다.

 

 

옛날(여주 지명 유래에 따르면 신라 경덕왕 때라고 한다) 한 어옹(漁翁)이 여강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낚싯대를 물에 담그고 물 건너편의 아름다운 경치에 마음을 빼앗기고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런데 멀리서 손짓하며 달려오는 한 여인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무척 다급한 듯 사공을 부르고 있었다. 마침 사공이 없던 터라 어옹은 낚시를 거두고 배에 올랐다. 강을 반쯤 건넜을 때 여인의 비명에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뒤쪽에서 험상궂은 사나이가 달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어옹이 재빠르게 건너가 그녀를 배에 태우려 할 때 뇌성벽력이 치며 바람이 불었다. 그와 함께 어디서인지 누런 말과 검은 말이 나타났다. 여인은 재빠르게 황마(黃馬)에 오르고 뒤이어 달려온 사나이는 여마(驪馬)에 올랐다.

하늘엔 자욱한 물보라가 일고 어옹은 흔들리는 배를 잡기에 여념이 없었다. 잠시 후 바람은 멎고 물결이 가라앉자 그 광경에 놀란 어옹이 말들이 떠난 자리를 바라보니 여인과 사나이는 보이지 않고 커다란 바위의 자태만이 우뚝 서 있을 뿐이었다. 이때부터 그 바위를 황마(黃馬)와 여마(驪馬)가 나왔다 하여 마암(馬巖)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이 고장의 지명도 황려(黃驪)라고 불렀다고 한다.

-http://history.yj21.net/

 

 

 

한편, 여주의 대표적 성씨인 여흥민씨(驪興閔氏)는 마암 바위의 구멍에서 시조가 탄생했다 하여 이를 '민가(閔家)바위'라 부른다고 한다.

 

 

 

 

 

 

안내판에는 여주의 가장 로래된 지명이 '골내근현(骨內斤縣)'으로 되어 있는데, '여주 지명 유래'에 따르면 이는 한자를 음차한 표기로 '골(骨)'은 누런색(黃)을 뜻하는 음이고 '내(內)'는 내(川)를 나타내는 음, '근(斤)'은 '촌(村)'을 나타내는 음으로 풀이하여 '굴내촌' 즉 '누런내 마을'을 뜻하는 말이라 한다. 

 

 

 

 

 

마암 주변에는 개부처손이 자라고 있다.

 

 

 

 

 

 

 

 

※ 여주 팔경 (출처 : 여주시청 홈페이지)

 

① 神勒暮鍾(신륵모종) - 신륵사에 울려 퍼지는 저녁 종소리

② 馬巖漁燈(마암어등) - 마암앞 강가에 고기잡이배의 등불 밝히는 풍경

③ 鶴洞暮煙(학동모연) - 강건너 학동에 저녁밥 짓는 연기

④ 燕灘歸帆(연탄귀범) - 제비여울에 돛단배 귀가하는 모습

⑤ 洋島落雁(양도낙안) - 양섬에 기러기떼 내리는 모습

⑥ 八藪長林(팔수장림) - 오학리 강변의 무성한 숲이 강에 비치는 전경

⑦ 二陵杜鵑(이릉두견) - 영릉과 녕릉에서 두견새 우는 소리

⑧ 婆娑過雨(파사과우) - 파사성에 여름철 소나기 스치는 광경

 

 

 

여주대교 건너편에서 바라본 영월루, 다리 아래로 보이는 마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