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만 여행

동티베트(21) 시닝 황중현, 총카파와 십만 사자후불상의 타얼스 사원

모산재 2014. 11. 5. 17:07

 

2014년 8월 1일 금요일 오후. 시닝시 황중현

 

 

 

 

11시 30분 경, 구이더 지질공원을 떠나 타얼스(塔尔寺) 사원으로 출발.

 

12시 30분 경, 황중현(湟中縣) 상신장진(上新庄鎭)에서 점심을 먹는다. 다진 고기와 납작면으로 만든 육말면편(肉末面片)이라는 국수. 청해성의 면맛은 다소 거친 편인데, 그나마 납작국수가 먹기엔 편하다.

 

 

 

식사 후 30여 분쯤 걸려 2시 무렵 타얼스에 도착한다. 타얼스의 위치는 시닝에서 남서쪽으로 25km 떨어진 황중현 루사얼진(魯沙尔鎮). 루사얼은 바로 '황수(湟水)의 중류'를 뜻하는 '황중(湟中)'을 가리키는 티베트 말이다.

 

타얼스 장의원(藏醫院)이 있는 출구 쪽에는 포장마차가 가득 들어서 정신 사나운 시장바닥 풍경을 보이고 있다. 지나치게 관광지화되어 실망스럽다는 이야기가 실감되는 순간이다.

 

 

 

 

 

정문은 출구로부터 좀 더 들어간 곳에 있다.

 

나지막한 봉우리들에 안겨 있는 타얼스, 사방으로 꽃잎처럼 부드러운 곡선으로 봉긋 솟아 있는 산의 이름은 연화산(蓮花山)이다.

 

 

 

 

 

타얼스(塔尔寺)는 총카파(1357-1419) 로잔타크파(罗桑扎巴)의 출생지에 세운 칭하이 최대의 티베트 사원으로 겔룩파 6대 사원의 하나에 속한다[※ 6대 사원은 시짱의 가단스(噶丹寺), 드레풍스(哲蚌寺), 세라스(色拉寺), 타시룬포스(扎什伦布寺), 샤허의 라부렁스(拉卜楞寺)].

 

타얼스가 티베트 불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높은가는 3~5세, 7세, 13~14세 달라이라마를 비롯하여 6세, 9세, 10세 판첸라마가 모두 타얼스에서 종교 활동을 한 적이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사원에 청 강희제는 '净上津梁' 편액,건륭제는 '梵宗寺'와 대금와사에 '梵教法幢'이란 편액을 보냈다. 

 

 

타얼스는 이름처럼 탑이 먼저 서고 나중에 사원이 세워져서 생긴 이름이다. 타얼스의 티베트어 명칭은 '쿰붐샨바린(贡本贤巴林)'으로,'십만 사자후불상의 미륵사(十万佛像寺)'를 뜻한다. '타얼(塔尔)'은 티베트어 '쿰붐(贡本, 또는 衮本)'으로 '십만 불상'을 뜻한다. 그래서 타얼사를 '쿰붐사원'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전설이 내려온다.

 

그가 태어난 뒤 배꼽 탯줄을 자른 자리에 한 그루 보리수(白旃檀树)가 자라나 십만 개의 잎이 각가 사자후불상(석가모니 탄생불)으로 현현하여 쿰분(衮本), 즉 십만 불상의 명칭이 유래하였다.

총카파가 시짱으로 간 6년 뒤 그의 모친 샹사아치에(香萨阿切)는 아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백발 한 묶음과 편지를 보내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지만 종카파는 어머니와 누이에게 자화상과 사자후불상 한 폭과 함께 "제가 태어난 곳에 십만 불상과 보리수로 태를 간직한 불탑을 세우면 제 모습을 본 듯할 것입니다."라고 쓴 편지를 보냈다. 이듬해인 1379년에 그 어머니는 신도들의 지원으로 탑을 세웠으니 이를 '취련탑(莲聚塔)'이라 부른다.

 

 

취련탑은 석가모니가 태어난 뒤 일곱 걸음을 걸어 '천상산천하 유아독존'이라는 사자후를 토할 때 걸음마다 연꽃이 떠올라 이를 기념하여 세운 탑을 가리킨다. 

 

처음에는 탑만 몇 개 있었는데 1560년에야 사원이 생겨 타얼사라 부르게 되었다. 수백 년 세월 속에 오늘날은 대금와전, 소금와전, 대경당, 미륵전, 구간전(九間殿) 등 불전 52채 여의보탑, 태평탑 등 수많은 건축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사원 경내로 들어서자 만나는 사원 광장.

 

사원 안의 사람들의 움직임도 라부렁스나 랑무스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확실히 다르다. 이곳은 구부정한 허리로 마니차를 돌리며 코라를 돌거나 흙바닥에 오체투지하는 티베탄들의 메마른 얼굴보다는 색색의 파라솔을 들고 선글라스를 낀 여인들의 모습이 풍경을 이루고 있다.

 

 

 

 

 

 

광장 오른쪽으로 타얼스 사원의 랜드마크로 널리 알려진 8기의 초르텐이 보인다.

 

탑의 이름은 팔보여의탑(八宝如意塔)!

 

 

 

 

 

우툰스에서 보았던 '해탈팔존불탑'과 같은 것으로, 석가모니의 일생을 8가지로 상징화한 팔상탑이라 할 수 있다.  

 

1. 취련탑(聚蓮塔)-석가모니가 태어났을 때 일곱 걸음를 걸을 때 걸음마다 떠오르는 연꽃을 밟고 지난 것을 기려 표현한 석가 탄생탑

2. 복마탑(伏魔塔=菩提塔)-보리수하에서 깨달음을 얻고 성불한 것을 기려 세운 탑

3. 법륜탑(法輪塔=吉祥塔)-녹야원 바라나시에서의 초전법륜과 5비구에게 사성체 법의를 강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탑

4. 신변탑(神變塔)-사위성 기원정사에서 신통력을 발휘하여 외도(外道)를 물리친 것을 기린 탑

5. 천강탑(天降塔=降凡塔)-석가모니가 도솔천에 올라 마야부인을 위해 설법한 뒤 가사성(迦師城)에 강림한 것을 기린 탑

6. 화합탑(和合塔=息诤塔)-데바닷타의 종파 분열을 승단 화해를로 이끈 것을 기념하는 탑

7. 존승탑(尊勝塔)=승리(胜利塔)-일체의 마귀를 물리친 것을 기린 탑

8. 열반탑(涅槃塔)-80세에 구시나성에서 열반한 것을 기려 세운 탑

 

 

이 취련탑은 앞에서 전설로 전해진 총카파 어머니가 세운 취련탑은 아닌 듯하다. 현재의 탑은 1776년에 세운 것으로 8기의 크기와 모양이 비슷하다. 높이 6.4m, 하단 둘레 9.4m.

 

 

 

팔보여의탑 가까이 있는 호법신전(護法神殿). '소금와사(小金瓦寺)'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전각이다.

 

 

 

 

 

내부로 들어서니 회랑으로 이어진 건물 모양이 口자 모양을 이루고 있다.

 

이 전각은 1692년에 지었고, 1809년 금동기와로 바꾸면서 소금와전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1826년에 동서 양랑(两廊)을 확장하였다. 한장(汉藏) 양식이 결합된 건축물이다.

 

 

 

 

 

전각 내에는 생소한 이름의 호법신상인 오용명왕(五勇明王을 모시고 있는데 신왕(身王), 어왕(语王), 의왕(意王), 지혜왕(智慧王), 공덕왕(功德王)이 그것이다. 

 

그리고 2층 회랑에는 들소, 양, 곰, 원숭이 등 온갖 짐승의 박제가 전시되어 있는데, 원시적인 샤머니즘 신앙과 결합된 모습이 아마도 본교에서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동물들 중엔 3세 달라이 라마가 타고온 백마도 있다 한다.

 

 

 

 

 

호법전을 본 느낌은 불교 사원을 보았다기보다는 원시 부족들의 신전을 본 듯 기괴하다.  

 

 

후문으로 나와서 바라본 호법전 측면 모습

 

 

 

 

 

그리고 기수전(祈壽殿) !

 

'화사(花寺'), 또는 '장수불전'이라고도 하는 이 불전은 1717년, 달라이 라마 7세(格桑嘉措,1708~1757)의 장수와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 한다.

 

 

 

 

 

녹색 유리벽돌로 꾸민 담장이 아름답다. 

 

'화사(花寺)'라는 이름은 달라이라마가 처음 불상을 모시는 개광(开光) 불사를 할 때 한 줌의 길상미(吉祥米)를 뿌리자 하늘 가득 꽃비가 되어 떨어져 내렸다고 하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아담한 정원을 가지고 있으며 전각 내에는 정중앙에 문수 보현보살과 가섭 아난이 협시한 석가모니불상,  16나한, 4대금강을 모시고 있다.

 

정원 가운데 총카파의 어머니가 물을 질 때 기대어 쉬었다 하는 작은 바위가 하나 있다. 뜰에는 보리수나무라고 하는 전단수(旃檀树)가 여러 그루 자라고 있다.

 

 

 

대금와전으로 향하며 뒤돌아본 기수원,

그 옆마당에는 태평탑(太平塔) 또는 시륜탑(时轮塔)이라 불리는 초르텐이 서 있다.

 

 

 

 

 

​9세 판첸라마가 1935년에 승속대중에게 대관정법(大灌顶法)을 강의한 데 인연을 두고 1942년 9세 판첸라마가 장수 기원과 사계 평안을 위해 남긴 유원으로 세웠다. 타얼사 최대의 탑이다.

 

 

 

 

이곳은 인경원(印經院) 정문.

 

 

날씨가 너무 더워 담장이 드리워준 그늘에서 쉬고 있는 여행 동료들...

 

 

 

 

 

들여다 보니 젊은 스님 둘이 앉아서 그림 같은 것을 찍어내고 있다.

 

이름 그대로 이곳은 각종 경전 등의 저작물을 인쇄하는 곳이다. 1827년에 세워진 건물이다.

 

 

 

 

인경원을 지나 대금와전으로 가는 길.

 

바로 앞의 흰 벽의 긴 건물이 경로원이다.

 

 

 

 

 

타얼스 경로원. 사원에 노스님들이 많아 이 분들의 거소로 쓰는 듯하다.

 

 

 

 

 

경로원을 지나니 대경당(大经堂) 입구...

 

 

 

 

 

1606년에 티베트식으로 세웠는데, 타얼스의 최대 규모의 건축물이다. 168개의 큰 기둥으로 된 대형 경당으로 천여 명의 라마들이 좌선하고 경문을 읽을 수 있다.

 

회랑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경당을 향해 오체투지의 자세로 절을 하고 있다.

 

 

대경당 내부. 대경당 기단에서 바라본 2층 회랑의 모습

 

 

 

 

 

경당 내부는 천여 명의 승려들이 앉아 경전을 염송할 수 있을 정도로 넓다. 

 

 

대들보의 처마는 생동감 있는 꽃문양으로 장식되어 있고, 전내(殿内)의 큰 기둥은 용, 봉황, 구름이 그려진 티베트 융단으로 싸여 있다.

 

 

 

 

 

불전에 장식된 퇴수(堆绣), 벽화, 수유화(酥油花)를 '타얼스 삼절(三絶)'이라고 한다. 퇴수(두이슈)는 각양각색으로 염색한 섬유를 잘라내어 각종 불상, 인물, 화초, 짐승 등을 표현하고 있다. 양털 혹은 솜과 같은 소재를 안에 넣어 천에 수를 놓기도 한다.

 

 

 

진귀한 대형 퇴수괘불(堆绣挂佛)...

 

 

 

 

 

자수불(刺绣佛)

 

 

 

 

 

오색 깃발과 천화(天花)로 천장이 장식되어 있다.

 

 

무슨 불상일까...?

 

 

 

 

 

네 벽에는 정교한 작은 도금 동불상 천 존이 모셔져 있다.

 

 

 

 

 

 

대경당 뒤쪽에 타얼스의 주법당인 대금와전(大金瓦殿)이 자리잡고 있다.

 

오른쪽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계단 위 오른쪽으로 의고전(依诂殿 = 총카파전) 측면 난간 모습이 보이고...

 

 

 

 

 

 

대경당 건물에 막혀 보이지 않는 대금와전, 계단을 거의 올라서서야 왼쪽으로 측면 모습을 살짝 드러낸다.

 

오른쪽은 의고전, 정면 사이로 보이는 일부 보이는 전각이 석가모니불전이다. 좁은 마당에 들어서 있는 이 불전들을 사진으로 담을 수가 없다.

 

 

 

 

대금와전 안내판. 이 사원은 안내판이 그런 대로 잘 갖추어져 있는데, 한글 안내문도 나란히 있어 눈길을 끈다.

 

 

 

 

 

의고전 처마 밑에서 대금와전 측면 모습을 일부 담을 수 있기는 하지만, 좁은 마당에 들어선 가득 들어선 사람들이 시야를 가리기도 하거니와 마침 한낮 시간이라 방향이 역광이어서 찍을 수도 없다.

 

 

대금와전은 티베트어로는 '싸이얼둔칭모(塞尔顿庆莫)'라고 하는데, '금기와'라는 뜻이다. 1560년에 처음 축조되었으며, 사찰의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1711년에 지붕을 금으로 개조하였는데 황금 40kg, 백은 150kg을 들여 3층 2증 처마 형태로, 티베트족의 궁궐과 한족의 궁궐 양식을 접목시킨 모습이다.

 

 

 

본전 입구는 오체투지로 배례하는 사람들과 이를 구경하는 관광객들로 북새통이다.

 

 

 

 

 

내부로 들어서는 곳에는 총카파가 탄생하였다는 12m 높이의 대은탑(大银塔)이 있다.

 

 

 

 

최초의 이름이 연취보탑(莲聚宝塔)이라고 하는 이 탑은 '총카파기념탑'이라 부르기도 하는데,사진 촬영을 엄격히 규제하는 탓인지 사진을 구하기도 어렵다.

탑 높이는 12.5m이며, 탑 전체에 은(銀)을 입히고 보석을 장식하였다. 감실에 총카파상을 모시고 십 겹의 하닥(哈达: 티베트족 과 몽골족이 경의나 축하의 뜻으로 쓰는 흰색·황색·남색의 비단 수건)을 걸어 놓아 존귀함을 부각시켰다.

 

건물 내부에는 십만 불상과 보리수를 품은 보탑과 종카파 대사의 어릴 때 발자국이 찍힌 돌 등이 있다.

 

 

 

대금와전과 의고전 사이에 있는 석가모니불전

 

 

 

 

1604년에 세워졌으며 석가모니불과 함께 가섭과 아난상이 모셔져 있었는데, 1984년 화재로 석가모니불상이 훼손되었다 한다. 그런데 티베트 불교에서 동일한 불상을 한 불전에 두 번 모실 수 없어 미륵불로 바꾸어 모시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석가모니불전을 '하미륵불전'이라 부르기도 한다.

 

 

 

의고전(依诂殿)은 총카파를 모신 불전이다.

 

 

 

 

 

1594년에 세운 전각으로 불전 외부로는 회랑이 있다.타얼스에서 가장 크고 예술적 조형성이 빼어난 총카파 도금 동상이 모셔져 있다. 특히 광배의 장식이 정교한 아름다움을 준다.

 

 

 

 

 

 

대금와전을 지나면 미륵불전이다.

 

 

 

 

미륵불전은 1577년에 조성되었으며 타얼스의 정식 불전으로는 최초의 것이다.

 

2층 헐산정 한궁전식(两层歇山顶汉宫殿式) 건축이다. 불전 문지방 위에는 '불일중욱(佛日重旭)'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내부 가운데에는 미륵불 12세 등신좌상이 있는데, 그 안에는 여래사리와 총카파의 두발 등이 들어 있다.

 

 

 

미륵불전을 지나니 구간전(九间殿)!

 

정면 9칸 전각이라서 붙은 이름으로 보이는데, '문수보살전', '삼세불전'이라고도 한다.

 

 

 

 

구간전에는 석가모니불상이 있는데, 바로 '사자후불상'으로 총카파 어머니의 보리수(旃檀树)와 십만 불상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1592년 삼세불전(연등불전, 석가모니불전, 미륵불전)이 먼저 만들어졌고, 1734년에 현재의 9간전이 확장되어 세워졌다.한식경산정(汉式硬山顶)건축인데, 회랑의 기둥은 티베트식 붉은 8모기둥이다.

 

 

 

 

 

9간전 마당 남쪽으로는 2층 전각의 편지전(遍知殿)이 있다. 

 

 

 

 

편지전은 '3세 달라이라마 영탑전(三世达赖喇嘛灵塔殿)이라고도 부르는데, 달라이라마가 타얼사에 중대한 역할을 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590년에 조성하였다고 한다.

 

3세 달라이라마는 소남가쵸(索南嘉措, 1475∼1542)로 몽골의 알탄 칸 황제를 교화하여 달라이라마 칭호를 받고 달라이라마 제도를 확립하여 겔룩파의 전성기를 열었다. 역대 달라이라마 중 가장 위대하다고 평가를 받는다.

 

영탑은 대은탑과 비슷한 구조로 상부 감실에 달라이라마의 존상을 모셨다.

 

 

 

 

 

편지전 안내문

 

 

 

 

영탑 주위 불감 속에는 일천 존의 석가모니상을 두었다.

 

 

 

9간전을 지나 남쪽 언덕 높은 곳으로 시륜학원, 장경루, 밀종학원, 수유화관 등이 있는데 다 돌아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다. 아무래도 비슷비슷한 전각들을 배경지식 없이 다 돌아본다는 것은 흥미도 떨어지고 힘든 일이다.

 

 

머리 아프게 전각을 다 돌아보는 것은 포기하더라도 사원 둘레를 따라 코라를 한번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싶었지만 오후 3시쯤된 따가운 햇살 쨍쨍 내리쬐는 시간에 그러자고 제안할 용기는 없다.

 

 

그래도 퇴수(堆绣), 벽화(壁画)와 함께 타얼스 3절(三節)의 하나인 수유화(酥油花)는 구경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수유화는 야크나 양의 유지방인 수유(酥油)로 만든 예술작품으로 해마다 음력 정월 보름에는 수유화 등불놀이(酥油花灯会)가 열리며, 행사가 끝나고 나면 수유화관(酥油花館)이라는 상설 전시관에 전시한다고 한다.

 

 

이상 수유화 세 작품 출처 : 구글 검색)

 

 

 

 

나오는 길

 

 

 

 

출구는 이렇게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 진을 치고 몰려들고 있다. 

 

 

 

 

 

이 상인들은 아마도 대부분 티베트인들일 것이다. 윤회의 세계관 속에 내세를 위해 살던 티베트인들의 정신세계가 밀물처럼 밀려드는 자본의 유혹 앞에서 언제가지 지켜질 수 있을까. 사원을 관광상품화 하면서 티베트인들을 자본의 자장 속으로 끌어들이며 중국의 티베트 정책은 서서히 성공하는 듯 보인다. 그 뒤로 분신하는 승려들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듯하다.

 

 

 

 

 

※ 타얼스 안내도

 

 

 

 

 

 

3시 45분 타얼스 출발하여 30분쯤 달리자 시닝 시내로 진입한다.

 

4시 50분 시닝 경상가일반점(景翔假日飯店)에 도착하여 방을 배정(4012호실) 받고 씻은 뒤 휴식을 취한다. 객실이 깨끗하다.

 

 

 

 

 

6시 30분 3층 식당 룸에서 저녁 식사를 한다. 이번 여행 중 가장 깨끗하고 맛있는 식사. 고량주 마시며 오래도록 자리를 가짐.

 

 

8시 30분 현옥 샘 방에서 커피 초청. 홍식 님과 함께 갔다 일행들이 대부분 모여들어 두 시간 정도 정담을 나누다 잠자리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