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31일 목요일 오후. 구이더(贵德)
한나절이 훌쩍 지난 오후, 구이더(贵德) 숙소 온천빈관에 도착하자 바로 짐을 내린다. 별다른 일정이 없어서 바로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모두들 숙소에 배낭을 내려 두고 일행이 온천욕을 하러 가는 사이 나는 홀로 황하 구경에 나서기로 하는데, 현옥, 예주 두 분도 따라나선다.
숙소 건너편 미루나무 숲속, 무슨 박람횐가를 끝낸 지 한 주쯤 되었다는 광장이 온통 쓰레기 더미를 이루고 있다. 그 곁 숲을 지나 황하로 가는 길 숲속 빈터에도 쓰레기가 널려 있다. 지저분함이 인도에 온 듯한 느낌...
공터 한가운데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어서 보니 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 뜨거운 온천수란다. 그런데 그 주변에도 쓰레기가 워낙 널려 있어 그 좋은 자연 온천수에조차 손을 담그기 꺼려진다.
황하 하안 언덕은 미루나무 숲을 이루었고 그 사이로 산책길도 잘 정비하여 놓았다. 강변 숲속 곳곳에는 사람들이 모여 앉아 음식과 과일들을 먹으며 휴식을 즐기고 있다. 다만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버려져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리 넓지 않은 황하는 비교적 빠르게 흘러내리고 물빛은 하늘빛으로 푸르고 맑다.
'백년하청(百年河淸)'이라는 고사성어를 낳은 황하는 '누런 흙탕물'로만 알고 있었고 또 그런 황하만 봤는데, 오늘 퉁런에서 이곳 구이더에 오면서 보았던 황하에 대한 그런 통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다.
天下黃河貴德淸!(천하황하귀덕청)
천하의 황하도 귀덕에서는 푸르다네!
이곳 귀덕에서 광고 표어처럼 쓰는 말이다.
멀리 하류 쪽으로 거대한 금빛 마니차(전경륜)가 보여 티베트 사원일까 싶어 가 보기로 한다.
강길을 따라 가니 '경륜광장(經輪廣場)'이란 이름의 광장이 나타난다.
사원인 줄 알았는데, 들어서보니 분위기가 사원이 아니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중화복운륜(中華福運輪)'이라 새긴 표지비가 서 있다.
그러니까 티베트를 상징하는 불교사원의 마니차를 '중화'의 '복(福)' 과 '운(運)'을 비는 문화관광 상품으로 개발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문화 관광 상품에 그치지 않고 소수민족의 저항을 무력화하고 중화주의로 융합하려는 정치적 상품이기도 한 것이다!
이 대형 마니차 2012년 4월에 조성되었는데, 세계 최대 마니차(轉經輪)로 기네스북 등록되었음을 알리는 기네스북 증서까지 새겨 놓았다. 전체 높이 42m 중 연꽃좌대 높이 15m, 경통 높이 26.285m, 지름 10m. 경통 무게는 200톤에 이른다. (※ 지금까지 세계 최대의 마니차는 샹그릴라 중뎬 구산공원(龜山公園)에 있는 높이 21m, 무게 60톤의 마니차였다.)
황하의 전망도 즐길 겸 이 마니차를 보려고 입구로 되나와 입장권을 사려고 했더니 시간이 지나서 안 된단다.
더 이상 볼 것이 없어 돌아나온다.
마니차의 모습은 중국 사이트에서 빌려온 것으로 감상하기로 한다. (자세한 내용은 http://www.qhhngd.gov.cn/html/5494/411709.html 참조)
이상 출처 : http://fv7027.blog.hexun.com.tw/95606461_d.html
경통 바깥에는 윗부분에는 팔존불상, 가운데에는 길상팔보(吉祥八寶), 아랫부분에는 십육존불모(16尊佛母)를 새겨 놓았다.
이 마니차의 특징적인 면은 탑 기단 1층에 황하 물을 끌어들여 마니경문을 서서히 돌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중화문명을 상징하는 황하의 물로 티베트를 상징하는 경전을 돌린다는 것, 과히 중화주의 사상을 최고로 구현한 대 티베트 최고의 정치상품이라 할 만하다.
란저우 황하에서도 보았던 박주가리과의 풀, 가는털백미
황하청대교(黃河淸大橋. 처음에는 '황하대교'로 잘못 알았는데, 역시 푸른 황하를 강조한 이름이다.)를 목표로 이동하는데 도로 건너편에 '미나사(乜那寺)'라는 작은 표지석이 있어 좁은 길을 따라 들어서니 습지가 나타난다.
그리고 습지 너머 언덕 숲속에 솟아 있는 아름다운 백탑 하나!
습지를 가로지르는 잔교가 설치되어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아름다운 5층 백탑!
이 탑을 미나보탑(乜那寶塔)이라 부르는데, 귀덕고성의 서쪽 황하의 남쪽 언덕에 우뚝 솟아 황하를 굽어보는 탑과 주변 풍광의 조화가 아름다워 '귀덕 제일경'으로 불린다고 한다.
도착하고 보니 사원의 뒤쪽에서 접근한 것을 알게 되었다.
탑이 워낙 깨끗하여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 아닐까 했는데, 나중에 정보를 찾아 보고서야 그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어쨌거나 외벽이나 마니차, 조각 등은 새로 꾸민 것으로 보인다.
1층 외벽 좌우로 두 쌍의 부조석상이 아름다워 모두 담아 보았다.
송첸캄포(松赞干布, 617~650)
티베트를 통일하고 불교를 받아들여 숭상함. 당 태종 양녀 문성공주와 결혼함
탄미·상포자(呑弥 · 桑布扎)
송첸캄포의 7현신의 한 사람으로 장문(藏文)을 창조한 언어학자이자 번역가이다.
사방에는 마니차, 한 바퀴 코라를 돈다.
아소카왕(阿育王,재위 BC 268 추정~BC 232)
인도 마우리아 왕조 제 3대 왕. 인도 남부를 제외한 인도 전역을 통일함. 불교의 자비와 불살생, 비폭력을 통치의 기본으로 선언하고 그 실천을 강조하는 내용을 새긴 석주와 성지 순례를 기념하는 불탑을 세웠다.
대신 거얼(大臣·格尔)
누굴까...? '거얼'이란 이름이 아마도 송첸캄포의 재상으로 송첸캄포와 문성공주의 결혼을 성사시키고 티베트 통일에 큰 공을 세운 가르통첸(禄东赞, ? ~ 667)을 가리키는 듯하다.
치송데첸(赤松德贊,742~797)
인도승 산티락시타와 파드마삼바바를 초청하여 불교를 국교화하고 삼예사원을 조성하는 등 티베트 불교의 전성기를 이룸
샤카반디다(萨迦班智达)
샤카파 5조 중 제4조. 본명은 貢噶堅參. 몽고(원)으로부터 티베트 자치권을 확보하여 티베트가 정교일치 체제로 가는 초석을 닦음
치축데첸(赤祖德赞·热巴巾,재위 815-841)
이 탑을 세운 티베트 8대 찬보. 숭불정책으로 본교를 믿던 귀족들에 의해 목이 꺾여 암살되고, 뒤를 이어 본교도인 그의 형 랑다르마가 왕이 되어 대대적인 폐불정책이 이루어진다.
녜치찬푸(聂赤赞普)
기원 전 2세기, 천신의 아들이라는 전설 속의 티베트 초대 왕
아쉽게도 문이 닫혀 있어 내부로 들어가보지 못했다.
바라보니 2층에도 같은 형식의 조각이 보인다.
5층탑의 높이는 약 30m, 5층 불감 속에는 백색의 천안천수불(千眼千手佛)을 봉안하였다고 한다.
9세기에 불교를 숭상한 제 41세 찬보(통일티베트 8세) 치축데첸(赤祖德赞, 재위 815-841)이 이곳에 북정(北征) 왔을 때 한장교계인 이곳에 이 탑을 세우고 변발머리를 넣어두었다 한다. (속칭으로 '러파진 热巴巾'이라 불리는데 '긴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라는 뜻으로,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다음에 승려들이 그 머리카락을 밟고 가게 할 만큼 승려들에게 존경심을 표했다고 하는 데서 붙은 별명이다. 820년 경부터 당, 위구르에 대대적으로 맹공을 취하고 승리해서 유리한 고지를 점거함. 그 이후로 양국과 화친해 외교관계를 증진시킴.지나친 숭불정책으로 본교를 믿던 귀족들에 의해 목이 꺾여 암살되고 본교도인 그의 형 랑다르마가 왕이 되어 대대적인 폐불정책이 이루어진다.) 1806년에 중건하고 꼭대기에 도금을 하였는데, 그 조형이 북경 북해공원 라마탑과 비슷하여 '청해제일탑'으로 불린다.
탑 속에는 물을 피하는 보주 1과가 들어 있어 천백 년 동안 황하가 도도히 동류하며 침식하였지만 미나탑이 있는 하안은 조금도 침식되지 않았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상류 서쪽 모래톱 구간을 지나며 황하가 남쪽을 침식하여 거대한 궁(弓)형을 만들었는데 맹수가 공격을 받아 북쪽으로 향하는 것 같은데, 사람들은 이를 보주의 신적 위력이라 말한다.
미나탑 옆에는 2층 전각인 대경당이 있다.
대경당도 문이 닫혀 있다.
청 강희제 연간에 이 대경당이 조성되면서 미나보탑만 있던 이곳이 미나사라는 사원이 되었다. 번창할 때 30여 인의 승려가 있었다고 한다.
남동쪽으로 나 있는 미나사 진입로
미나사는 구이더에서 풍경이 가장 좋은 사원이라고 한다. 다만 장불사(长佛寺)는 산세에 기대어 뿜어내는 기품이 좋다고 한다.
미나사를 지나면 금방 환하청대교(黄河清大桥)로 이어질 줄 알았는데 뜻밖에 높은 언덕이 가로막고 있다.
한참을 왔다가다 하다가 이것이 구이더고성(贵德古城 )의 흔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방형의 고성은 명나라 홍무13년(1380년)에 처음 건설되었으며, 만력 18년에 중수되었다고 한다.
성터를 지나니 시민들의 휴식터인 광장이 조성되어 있고 주변에는 각종 예술 관련 건물들과 고급 식당이 들어서 있다.
그리고 성의 동쪽에는 옥황각(玉皇阁)이라는 고건축물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 또한 문이 닫혀 있어 아쉽게도 내부를 구경할 수 없었다.
살문 틈으로 겨우 들여다본 내부 모습. 뒤쪽에 있는 옥황각은 맨 위층만 모습을 보일 뿐이다.
옥황각은 도교, 불교, 유교가 하나로 융합된 문화재라 한다.
허인진(河阴镇)에 위치하며, 문창묘(文昌庙)와 더불어 현존하는 명청(明淸) 시기 감숙성과 청해성의 대표적인 고건축물이다. 명나라 만력제 때인 1589년에 시작하여 1592년까지 4년 공사 끝에 조성하였다고 한다. 건축물은 옥황각만수관(玉皇阁万寿观), 문묘(文庙), 대불사(大佛寺), 관악묘(关岳庙), 성황묘(城隍庙), 이형원(梨馨园), 그리고 귀덕고성을 포함한다. 청나라 동치제 때인 1867년 구이더 지역 회족이 봉기하면서 파괴되었고, 현재의 건축물은 광서제 때 중건된 것이라 한다.
옥황각만 다른 자료를 통해 구경하기로 하자
남문으로 향하는 거리는 상가를 이루고 있다.
남문의 이름은 '문계문(文啟門)'. '글을 여는 문'이라... 이곳이 '문(文)'을 숭상하는 선비들의 고장쯤 되었던 것일까.
남문 바깥은 시장이다.
인간선과(人間仙果)라는 이 과일, '인삼과(人參果)'라고도 하는데 가지과의 열매다.
무슨 맛이 날까, 호기심에 샀던 것을 나중에 먹어보니 뜻밖에 맛이 달고 괜찮았다.
그런데 이곳에서 갑자기 카메라가 탈이 났다. 갑자기 줌 기능이 고장나 버렸다. 경통과 겉도는 걸 보니 아마도 고정 핀이 부러진 모양이다.
황하청대교(黃河淸大橋)까지 갔으면 했으나 저녁 약속 시간이 빠듯이 다가와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간다.
저녁 식사 후에 호텔 1층 중앙 홀에서 여행 후 처음으로 모두가 참여하는 모임을 가졌다. 호텔 측에서 테이블을 모으지 못하게 하는 해프닝 속에서 자기 소개를 한 후 끼리끼리 앉아 맥주를 마시며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다 잠자리에 들었다.
'중국, 대만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티베트(21) 시닝 황중현, 총카파와 십만 사자후불상의 타얼스 사원 (0) | 2014.11.05 |
---|---|
동티베트(20) 구이더 국가지질공원, 아슈궁칠채봉총 단하지모 (0) | 2014.11.03 |
동티베트(18) 퉁런에서 '푸른 황하'를 따라 구이더 가는 길 (0) | 2014.10.28 |
동티베트(17) 퉁런 우툰스, 러궁예술의 진수 탕카의 아름다움 (0) | 2014.10.25 |
동티베트(16) 퉁런 우툰스 사원, 아름답고 장엄한 천수관음상과 미륵불상 (0) | 2014.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