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만 여행

동티베트(23) 청해호 호반길을 따라 차카염호 가는 길

모산재 2014. 11. 10. 20:11

 

2014년 8월 2일 토요일, 청해호

 

 

 

 

문성공주의 옛 이야기가 서린 일월산을 넘어 버스는 청해호를 향해 내려서며 옛 티베트 땅으로 들어섰다.

 

 

일월산에서 청해호를 향해 흘러내리는 물을 '도창하(倒淌河)'라고 하는데, 당나라의 궁궐도 고향도 잊어버리자고 일월보경을 깨뜨린 다음 가마를 버리고 말을 타고 일월산을 내려가던 문성공주가 하염없이 흘린 눈물이 도창하가 되어 거울 같은 청해호를 이루었다는 전설이 떠오르는데, 아쉽게도 도창하라는 물이 어디에 있는지 사방을 둘러보아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한 시간 가까이 지나 청해호에 거의 다다를 무렵 유채꽃이 피어 있는 곳에서 잠시 내려서 휴식을 취한다.

 

노란 색감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이런 천편일률의 풍경에 그리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편인데, 여인들은 아이들마냥 유채꽃 풍경 속에서 자신을 잊고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청해성의 들판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꽃...

 

유채밭에는 석죽과로 보이는 이 하얀 꽃들이 흔하게 보인다.

 

 

 

 

 

 

10여 분 정도 더 달리자 청해호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청해호의 동쪽, 멀리로 아스라히 푸른 호수가 보이고 노란 모래언덕이 보인다. 청해호의 동쪽은 사막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G109 도로는 청해호와 멀리 떨어진 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평원으로 벋어 있어 호수는 푸른 띠처럼 보일 뿐이다. 

 

 

한동안 이어지는 노란 유채밭, 청해호의 푸른 빛깔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청해호 유념(留念)' 관광 상품으로서 톡톡한 구실을 하고 있다.

 

 

 

 

 

 

 

승마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차창으로 바라보며 나는 또 청해호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목숨들이 죽어갔던 역사를 떠올린다.

 

 

송첸캄포 이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선비족 모용씨가 세운 토욕혼(吐谷渾)의 땅, 하지만 당 태종의 친딸 홍화공주의 부마가 된 토욕혼이 당나라에 기울자 송첸캄포는 토욕혼을 정벌하고 이로부터 청해성 지역은 티베트 강역으로 굳어지게 된다.

 

그럼에도 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 이후 당과 토번이 수십만 대군을 동원해 수 차례 비극적인 전쟁을 벌였던 곳...

 

 

669년 토번 왕가의 멸절을 선언한 당 고종이 보낸 10만 대군의 설인귀는 청해호 남산 너머 대비천(大非川) 골짜기에서 가르통첸의 아들인 가르친링에게 궤멸당하고 설인귀와 소정방(고구려 , 백제를 멸망시킨 장본인들)은 사로잡혀 훈계를 듣고 풀려나는 치욕을 당한다. 

 

그리고 당나라는 678년 18만 대군을 다시 보냈지만 이곳 청해호 부근 승풍령(承風嶺)에서 또다시 가르친링에게 전멸에 가까운 궤멸을 당하고 만다. 총사령관 이경현은 흑치상지의 500 결사대의 도움으로 겨우 포위를 뚫고 탈출할 수 있었다.

 

다시 11년이 지난 689년 겨울 고종 사후 권력을 차지한 측천무후는 10만 대군을 보내 토번이 장악하고 있던 안서4진(구자 ·우전 ·카슈가르 ·카라샤르)을 치게 했지만 얼어붙은 인식가(寅識迦)강에서 가르친링의 습격을 받아 대패하고 후퇴하던 중 병사들은 혹한에 얼어죽는다. 

 

692년 왕효걸이 이끄는 30만 당군이 가르친링의 아우 가르다고리가 이끄는 토번군을 대파하여 처음이자 마지막 승리를 거두고 안서4진을 회복한다. 그러나 698년 가르친링이 3만의 군사를 일으켜 이듬해 소라한산(素羅汗山)에서 혈전 끝에 당군 40만을 전멸시키다시피하는 놀라운 승리를 거둔다. 이 전쟁으로 당나라는 다시는 토번을 어쩌지 못하고 토번은 더욱 강성한 대국이 되었다.

 

(이 모든 전투에서 놀라운 승리를 거둔 가르친링은 아마도 우리의 이순신에 비견할 만한 티베트의 영웅일 것이다. 하지만 가르친링과 그 일가족은 699년 송첸캄포의 증손자인 치둑송첸왕에 의해 반역죄가 씌워진다. 하지만 가르친링은 대항하지 않고 청해호 근처에서 2000여 명의 무사들과 집단으로 자결했다고 한다. 문성공주의 혼사를 성사시킨 가르통첸과 그 아들들, 티베트의 명문가 가르 가문이 이로써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티베트에선 찬보는 절대선으로 보고 치둑송첸이 악의 세력인 가르친링을 제거했다는 식으로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랑다르마왕을 끝으로 토번 왕조가 사라진 뒤에는 몽골의 지배를 주로 받았던 청해 땅, 하지만 변함없는 티베트인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곳이다.

 

 

 

 

 

 

칭하이호와 가장 가까워진 곳에서 마을을 만난다.

 

 

장족마을을 뒤로 숨기고 숙소와 식당들이 거리를 이룬 곳, 어느 초대형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메뉴는 밥에 샐러리, 감자, 양배추, 목이버섯 등의 볶음 요리...

 

 

 

 

 

 

칭하이호(青海湖)는 중국 최대의 호수이자 염호(鹽湖)이다. 수면 해발이 3,200m쯤이라고 하니 엄청난 고원 호수이다. 면적은 4,583㎢이니 제주도의 약 2.5배 크기다. 동서 너비는 105km, 호수 둘레는 360여 km, 최대 수심은 32.8m이다(이 수치들은 관측하는 시기에 따라 가변적이다). 호수에는 황어(黃魚)가 사는데 비늘이 없는 어종으로 보호종이라 한다. 

 

청해호라는 이름은 '푸른 바다'라는 뜻의 몽골어 '쿠쿠눠얼(庫庫諾爾)'에서 유래한 것이다. 북쪽은 다퉁산(大通山), 동쪽으로는 르웨산(日月山), 남쪽으로는 칭하이난산(青海南山), 서쪽은 샹피산(橡皮山) 등 사방 4개의 높은 산으로 둘러 싸여 있으며 이 산들은 모두 해발 3,600m에서 5,000m에 달한다. 모두 치렌산맥에 속하는 산이다. '치렌'은 몽골어로 '하늘'을 뜻한다고 하니, 치렌 산맥은 천산(天山) 산맥이요 칭하이호는 하늘호수인 셈이다. 하늘산 속에 형성된 호수는 북쪽에서 여러 하천이 흘러드나 나가는 하천이 없다. 연간 150mm로 강수량은 적은데 증발량이 많아 절로 균형을 이루는 모양인데, 물은 오로지 하늘로 증발했다 다시 호수로 돌아올 뿐이다.

 

호수 가운데 있는 바위섬인 해심산(海心山) 북쪽에서 토네이도와 닮은 용오름(龙吸水) 현상이 생겨 일대 장관을 보이기도 한단다.

 

 

 

몹시 더운 날씨...

 

점심을 먹은 뒤에 버스는 출발한다.

 

차창 너머 거리로 지나가는 나이 지긋한 두 티베트 여인, 그녀들의 복식이 눈길을 끈다. 사람들이 붐비는 큰거리는 한족들이 차지한 공간, 그곳으로 티베트 복식을 한 채 꼿꼿한 걸음걸이로 거리를 걷는 두 티베트 할머니의 모습은 여태 보았던 티베트 여인들과는 아주 다른 느낌이다.

 

 

 

 

 

 

출발한 지 30분쯤 지나 또 초원 한가운데서 쉬어간다. 가릴 것이 없는 초원에서 작열하는 태양을 피해 버스가 드리우는 그늘에서 후식 삼아 하미과를 먹으며...

 

 

 

 

 

노란 유채밭과 눈부시게 푸른 하늘과 흰 구름,

 

그리고 타르쵸와 유목민들의 천막들...

 

 

 

 

 

 

 

한낮의 땡볕 아래 늠름히 서 있는 티베트견, '사자견'이라고도 하는 장오(藏獒)...

 

그리고 흐드러지게 핀 감숙송이풀...

 

 

 

 

 

눈양지꽃으로 보이는, 이곳 중국에서는 '궐마(蕨麻)'라 불리는 꽃...

 

 

 

 

 

그리고 또 한 시간도 채 못 달려 세번째로 쉬어간다.

 

아직도 청해호는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이곳은 그야말로 하얀 양떼와 검은 야크떼들이 반상의 바둑돌처럼 초원을 점점이 점령하고 있다.

 

 

 

 

 

 

 

 

 

참으로 평화로운 풍경 아닌가!

 

그러나 이런 평화로움은 잠시 지나가는 풍경일 뿐일 것이다.

 

 

수십만을 동원한 수차례의 대 토번 전쟁이 연전연패로 이어지며 당나라의 권위는 실추될 대로 실추되었을 것이다. 문성공주, 금성공주를 보내며 토번을 다독이려 했던 당나라는 무력을 내세우고서는 더 큰 치욕을 맛보아야 했다.

 

 

763년에 썼다는 '경급(警急)'이란 두보의 시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8구로 된 시의 후 4구가 내 눈길을 끌었다.

 

和親知拙計(화친지졸계)   화친이 졸책임을 알겠고

公主漫無歸(공주만무귀)   공주는 돌아올 줄 모르는구나.

青海今誰得(청해금수득)   청해 땅을 지금 누가 얻었나

西戎實飽飛(서융실포비)   서융(서쪽 오랑캐)은 배부르면 날아가 버리는데...

 

여기서 말하는 공주는 640년과 707년에 각각 티베트 찬보에게 시집간  당태종의 양녀 문성공주와 당중종의 양녀 금성공주를 가리킨다. 화친을 위해 보낸 공주를 채가더니 결국 청해 땅까지 집어삼킨 토번을 "배부르면 날아가 버리는구나."라고 한탄하고 있다. 

 

 

두보보다 조금 앞서 왕창령(698~757)은 '종군행(從軍行)'이란 시에서 청해호를 넘어 돈황과 옥문관까지 확장한 토번에 대한 심회를 노래하였다.

 

靑海長雲暗雪山(청해장운암설산)   청해의 긴 구름이 설산에 그림자를 드리웠는데

孤城遙望玉門關(고성요망옥문관)   외딴 성에서 멀리 옥문관을 바라보네.

黃沙百戰穿金甲(황사백전천금갑)   수없는 사막 전투에 갑옷은 해졌지만

不破樓蘭終不還(불파누란종불환)   오랑캐를 물리치지 않고는 끝내 돌아가지 않으리

 

여기서 '누란(樓蘭)'은 '오랑캐'를 뜻하고 '오랑캐'는 물론 토번일 것이다.

 

※ 누란은 로프놀 호수 주변에 있었던 왕국으로, 한 무제가 대완국과 통하려 하자 누란국이 가로막고 한나라 사절을 공격하니 한 소제(昭帝) 때 부개자(傅介子)를 보내어 누란왕을 쳐서 죽였음을 <한서>가 전하고 있는데, 이를 고사로 ‘樓蘭斬未還(누란왕을 베어 아직 돌아오지 못하네.)’, ‘不斬樓蘭未擬還(누란을 베지 않고는 돌아오지 않으리.)’ 와 같은 시구로 표현되면서 '누란'은 '오랑캐'를 상징하는 시어가 된 듯하다.

 

 

 

당이 티베트에 이렇게 커다란 수모를 당한 것은 아무래도 고구려와 백제를 함락시키는 데 힘을 소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이 티베트는 세력을 키워 청해호를 북서쪽 치렌산맥을 넘어 돈황과 옥문관까지 차지하였던 것이다. 왕창령은 안서사진을 두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토번국과의 전쟁에 종군하였고, 청해호 건너편 설산과 옥문관 쪽을 바라보며 토번국을 물리치겠다는 다짐을 이 시에 담은 것이다.

 

 

어쨌든 청해는 역사적으로 한족보다는 티베트에게 더 가까웠던 땅이었음을 이 시들도 증명해 주는 게 아닌가 싶다.

 

 

 

 

 

 

 

 

아쉽게도 청해호는 이것으로 영영 이별하게 되었다.

 

 

사실 이번 여행을 떠날 때에는 청해호에 대한 판타지가 상당히 있었다. 2000년 처음 실크로드를 여행할 때 우루무치에서 시안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청해호가 그런 판타지를 가슴 속에 강렬하게 심어주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하얀 구름 사이로 눈부시게 푸른 얼굴을 보여 주었던 청해호!

 

그런 청해호를 그냥 이렇게 멀리서 스쳐 지나가고 말게 될 줄이야! 적어도 호수에 손이라도 담그고 그 넓은 푸른 호수를 가슴 가득 담고 떠날 기회는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저 멀리서 파란 띠처럼 보이는 풍경만 보고 갈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남산 너머 고속도로로 시닝으로 직행할 거라니, 다시 찾게 되기 쉽지 않을 것같아 참으로 아쉽기만 하다.

 

 

 

어느덧 청해호 수평선이 짧아지면서 흑마하향(黑马河乡)이란 곳에서 산길로 접어든다.

 

 

 

 

 

3시 45분쯤, 청해호를 벗어나자마자 산길로 접어든다.

 

정상에 도착해서 확인한 것이지만 이 산 이름은 샹피산(橡皮山).

 

 

 

 

 

 

차카염호(茶卡盐湖)로 넘어가는 109번 도로, 샹피산(橡皮山) 산허리를 깎아서 만든 길이 구불구불 고개를 향해 기어오른다.

 

'샹피(橡皮)'란 말은 글자 그대로는 "도토리 껍질'이라는 뜻인데, 중국어로 '고무', 또는 '지우개'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도로를 닦는 공사를 할 때 진흙이 너무 물러서 터를 다질 수가 없어서 이런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어쩐지 도로의 지반이 퍼슬하고 물러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4시에 가까워진 시각, 샹피산(橡皮山) 고개 정상(3817m)에 이르러 차는 멈추었다.

 

 

샹피산은 넓게 보면 치렌산맥의 한 지맥인 청해 남산(南山) 산계의 일부로 최고 해발은 4451m라고 한다.

 

 

 

 

 

 

이곳에서 우리는 종이 룽다 날리기라는 티베탄 의식을 마지막으로 거행한다.

 

 

 

 

 

 

 

그리고 청황백록적 오색 타르촉 룽다도 정성껏 매달았다.

 

 

 

 

 

우리 여행이 끝까지 건강하게 무사하게 행복하게 끝나길, 그리고 티베트인들의 염원이 티베트 땅 속에서 온전하게 실현되기를  빌고 또 빌었다.

 

 

 

 

 

 

샹피산(橡皮山)을 내려서자 대평원으로 접어들고 고속도로와 만난다.

 

 

왼쪽 멀리 우람한 등줄기를 흐릿한 하늘 아래 드러내고 있는 쿤룬산맥...

 

 

 

그리고 어느 새 길게 이어지는 하얀 호수 차카염호(茶卡盐湖)가 시야에 들어선다.

 

 

 

 

 

그저 작은 청해호쯤 되는 푸른 호수를 상상했는데 그게 아니다. 처음에는 하얀 선으로만 보이던 것이 바둑판 모양의 하얀 도형들이 시야에 들어선다. 염전이다. 그러니까 차카염호는 생명들이 어울린 호수라기보다는 소금을 채취하는 염전인 듯하다.

 

 

 

5시 30분, 차카(茶卡)에 도착한다. 먼저 숙소로 들어갈까 했으나 시간이 빠듯한 데다 비가 올 듯한 흐린 날씨라 서둘러 2km쯤 거리에 있는 차카염호로 직행한다.

 

 

 

 

 

 

※ 청해호, 일월산, 차카염호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