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국립중앙박물관의 금동불상,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모산재 2012. 3. 1. 11:45

 

국립중앙박물관 3층 조각 공예관은 불상 등 불교조각과 공예품, 도자기 등 국가대표급 문화재를 대거 전시하고 있다.

 

 

사진의 왼쪽 3층 전시실이 조각공예관이고 오른쪽 3층 전시실은 아시아관이다.

 

 

 

 

 

 

 

 

 

이 중 국보 제78호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비롯한 주요 금동불상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조명이 어두운데다 불상이 너무 작아 사진 찍기가 어려웠는데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문화재청 자료를 쓰기로 한다.

 

 

 

 

 

 

■ 금동연가7년명여래입상  국보 제119호 / 삼국시대(6세기 후반, 고구려)

 

 

 

 

 

옛 신라 지역인 경남 의령에서 발견된 6세기 후반의 고구려 불상이다. 광배(光背) 뒷면에 남아있는 글에 따르면, 연가 7년 기미년(539년추정) 평양 동사(東寺)의 승려들이 천불(千佛)을 만들어 세상에 널리 퍼뜨리고자 만들었던 불상 가운데 29번째 것으로, 전체 높이는 16.2㎝이다.

 

 

 

 

 

 

■ 양평 신화리 금동여래입상   국보 제186호 / 삼국시대(6~7세기, 신라)

 

 

 

 

 

1976년 경기도 양평군 신화리에서 농지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된 높이 30㎝의 불상이다. 대좌와 광배가 사라졌다. 묵직하고 단순한 원통형의 몸체, 간결한 U자형의 주름은 수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당시 신라가 점령하고 있던 한강 유역에서 출토되었으므로 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국보 제78호 / 삼국시대(6세기 중엽)

 

 

 

 

 

한국적 불상형을 최초로 조형시킨 보살상이자 삼국시대에 걸쳐 크게 유행한 금동반가사유상의 최초의 것이다. 당당하지만 쭉 곧고 늘씬한 모습이어서 중국 북위 말 이래의 우아하고 귀족적인 형태미를 능숙하게 표현하고 있다. 1912년에 일본인이 입수하여 조선총독부에 기증했던 것을 1916년 총독부박물관으로 옮겨 놓았던 것이다. 높이는 80㎝이다. 6세기 중엽이나 그 직후의 작품으로 생각된다.

 

 

 

 

 

 

■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국보 제83호 / 삼국시대 후기(7세기)

 

출처 : 문화재청

 

 

 

국내에서는 가장 큰 금동반가사유상으로 높이가 93.5㎝이다. 1920년대에 경주에서 발견되었다고 전하나 근거가 없으며, 머리에 산 모양의 관을 쓰고 있어서 '삼산반가사유상'으로도 불린다. 잔잔한 미소에서 느껴지는 반가상의 자비로움은 우수한 종교 조각으로서의 숭고미를 더해준다. 국보 제78호인 금동미륵보살반가상보다 연대가 내려와 삼국시대 후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 서울 삼양동 금동관음보살입상   국보 제127호 / 삼국시대(7세기 전반)

 

 

출처 : 문화재청

 

 

 

1967년 서울시 도봉구 삼양동에서 발견된 높이 20.7㎝의 보살상이다. 머리에는 삼산관을 쓰고 있고, 양감 있는 얼굴은 원만해 보이며 입가에는 엷은 미소를 짓고 있다. 대좌의 연꽃무늬 꽃잎은 끝이 뾰족하여 보살상의 부드러움과 대비된다. 삼산관에 작은 부처가 새겨진 점과 정병을 들고 있는 점으로 관음보살로 보이며, 살진 얼굴과 신체, U자형으로 늘어진 옷 등으로 보아 만든 시기는 7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 후기에 크게 유행했던 관음신앙의 단면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국보 제80호 / 통일신라(7세기 후반)

 

 

 

출처 : 문화재청

 

 

 

경주구황리삼층석탑(국보 제37호)에 안치된 사리함 속에서 발견된 높이 14㎝의 순금 불상으로 대좌와 광배를 모두 갖추고 있다. 갸름한 얼굴은 양감이 있고 자비롭다. 눈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으며, 콧날은 날카롭고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 있다. 머리와 신체의 적당한 비례, 옷주름의 형태 등으로 통일신라 초기 새로운 양식의 불상으로 보인다. 사리함에 새겨진 글을 통해 692년에 탑을 건립할 때 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   국보 제79호 / 통일신라(8세기 초)

 

 

출처 : 문화재청

 

 

 

1934년 경주구황리 삼층석탑(국보 제37호)을 해체·복원할 때 나온 사리함에서 금제여래입상(국보 제80호)과 함께 발견되었다. 사리함에 새겨진 글에 의하면 성덕왕 5년(706)에 사리함 속에 순금으로 된 아미타상을 넣었다고 하는데 이 불상이 아닌가 추측된다. 크기 12.2㎝. 미소 띤 얼굴에 뚜렷한 이목구비와 균형잡힌 몸매를 지녀 더욱 위엄있게 보인다. 손 모양이나 옷주름, 양감이 강조된 표현 등에서 8세기 초 불상의 양식과 성격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 금동약사여래입상   보물 제328호 / 통일신라(8세기 전후)

 

 

 

 

 

높이 29㎝의 자그마한 금동불로, 광배와 대좌는 없어졌지만 비교적 잘 보존된 약사여래입상이다. 높다란 머리묶음과 얼굴 표정 등이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제28호)과 비슷하여 8세기 전후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 석조지장보살좌상   보물 제1327호 / 조선시대(중종 9년, 1515년)

 

 

 

 

 

조선시대 불교조각품으로는 드문 소형 석조상으로 머리에 두건을 쓴 지장보살이 바위 형태의 대좌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전체 높이가 33.4㎝ 정도의 작은 불상으로 몸체는 두껍게 도금이 되어 있고 대좌는 붉은 빛이 도는 칠을 하였다. 바위 형태의 대좌 뒷면에는 이 불상 조성 배경과 중종 9년(1515)이라는 제작 연대가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