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만 여행

실크로드(4) 쿠처, 키질가하봉수대

모산재 2014. 7. 20. 22:32

 

츠르타그산을 가로질러 쿠처로 향하는 길, 너른 쿠처강은 강인지 물기 하나 없이 말라 있는 모습이다.

 

 

 

 

 

 

어느덧 넓은 사막의 평원으로 들어서는가 싶었는데, 멀리 무덤이 보인다.

 

대부분의 무덤은 그냥 흙무더기 봉분에 비석이 세워진 모습인데, 긴 가옥의 형태를 지닌 독특한 무덤들도 보인다. 빈자와 부자의 무덤이 다른 모양이다.

 

 

 

 

 

 

그리고 금방 키질가하봉수대(克孜尔尕哈烽燧)에 이르렀다.

 

 

키질가하봉수대는 쿠처의 북쪽 오아시스 지대의 외곽인 쿠처강 언덕에 있다. 1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곳이다.

 

 

 

 

 

 

'커쯔얼가하(克孜尔尕哈)'는 고대 돌궐어로써 '붉은 색의 초소(红色的哨卡)'를 의미하는데, 황토로 쌓아올려 붙은 이름인 듯하다.

 

봉수대는 약 2,000여 년 전 한나라 때 지은 것으로 서역을 통치할 때 연락을 담당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였다. 당시에는 이 봉화대에 불을 붙이면 다음 봉화로 계속 이어져 수도 장안까지 연결되었다.

 


높이 약 15m의 규모로 밑부분이 6m,  4m 크기의 긴네모꼴이며 위로 올라갈수록 점차 면적이 줄어드는 모습이다. 바람이 센 곳이라 바람과 비에 침식되어 봉화대 남쪽이 움푹 패여 있다.

 

 

 

 

 

 

2000여 년의 비바람 속에서도 이렇게 의연하게 그 모습이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하다.

 

 

이 봉수대에는 다음과 같은 믿어지지 않는 슬픈 전설이 전하고 있다.

 

구자국 왕에게 아름다운 공주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점술사가 와서 공주가 백일 안에 죽을 운명이라고 예언한다. 왕은 공주를 보호하기 위해 이 봉수대 속에 숨겨 놓고 공주에게 나오지 못하도록 신신당부를 한다. 그렇게 99일이 흘러 하루만 남겨 놓은 날, 공주는 마지막 식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사과를 먹는다. 그런데 사과를 베어무는 순간 사과 속에 있던 전갈이 공주를 물고 공주는 쓰러지고 만다. 공주의 시신을 안고 통곡하던 왕은 봉수대 위로 올라가 몸을 던지고 말았다.

 

 

 

 

 

봉수대 아래로는 쿠차강이 흐른다. 하지만 강물은 모두 말라버리고 하얀 소금기만 흔적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이런 강이면 와디라 부를 수 있겠다.

 

 

 

 

 

봉수대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정도 걸어가면 키질가하석굴이 있다. 당나라 때의석굴 유적지로 모두 46개의 동굴이 있다.

 

 

 

 

 

 

쿠처는 고대에 구자(龜玆)왕국이 있던 곳, 중국 사서에 기원전 1,2세기부터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한나라 때 인구 8만여 명에 군사 2만을 보유한 서역 36개국 중 9대국의 하나였다.

 

한나라와 관계를 중시하여 한나라 공주와 정략 결혼한 구자왕은 후한 혼란기를 틈타 다시 일어난 흉노에 기대어 한을 배반하였고 이에 후한의 화제는 73년에 반초를 파견하여 서역 전역을 평정하고 구자를 복속시킨다.

 

2세기 이후 구자국은 중국의 정치 군사적 간섭에서 벗어나 실크로드의 중심지로서 동서 교역을 통해 번영을 이룩하였다. 당나라에는 서돌궐에 복속하였으나 648년 당나라에 패하여 안서도호부가 설치되고 고선지 장군의 서역 정벌 본거지가 되었다.

 

 

 

 

※ 쿠처 가하봉수대 위치 안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