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

제주도 (3) 세계자연유산, 성산 일출봉

모산재 2014. 7. 9. 21:27

 

2014. 06. 22. 일

 

 

지난 가을에도 올랐던 성산 일출봉을 또 오른다. 김 선생이 아직 한번도 오른 적이 없다니 소원 들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까마득해 보이는 일출봉, 5천 년 전 바다 속에서 수중 폭발해 솟아난 오름이다. 해발 182m인 정상까지 속보로는 10분, 보통 걸음이라도 25분 정도면 충분히 오른다. 

 

 

주차장에서 일출봉을 바라보면 동암사(東巖寺)라는 절이 마치 출입문인 듯 버티고 있다. 일제시대 창건된 사찰이라는데 성산 주민들에게는 동짓날 팥죽 공양으로 기억되는 절이다.

 

 

 

 

 

예로부터 영주십경(瀛州十景)의 하나로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며, 2000년 천연기념물 제420호로 지정되었고, 2007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육지와 연결된 서쪽을 제외한 일출봉의 동·남·북쪽 외벽은 깎아내린 듯한 절벽으로 바다와 맞닿아 있다. 해식단애를 이루고 있는 봉우리의 모습이 거대한 성처럼 보여 '성산(城山)'이라 하고, 해돋이가 유명하여 '일출봉'이라 부른다. 본래 바다 위에 떠 있는 화산섬이었는데, 육지와 섬 사이에 모래와 자갈이 쌓이면서 육지와 연결되며 너비 500m, 길이 1.5km의 육계사주(陸繫沙洲)가 생겨났다. 그 사주로 섭지코지로 이어지는 도로가 생겼다.

 

 

 

 

 

작년부터 제주도는 가는 곳마다 중국인 여행자들이다. 공항에도 중국인 행렬, 중문에도 중국인 인파, 일출봉도 반 이상이 중국인으로 보인다.

 

 

돌아본 성산 풍경

 

 

 

 

 

 

일출봉의 서쪽은 고운 잔디가 자라는 넓은 언덕을 이루고 가파른 봉우리로 접어들면서 숲과 기암괴석이 어울린 사이로 계단으로 된 등산로가 나 있다.

 

 

 

 

 

 

 

등산로 중간 지점쯤 올랐을 때, 계단 위로 바위 기둥 하나가 나타난다. 이 바위를 '등경돌', 또는 '징경돌바위'라 부른다.

 

 

 

 

 

 

커다란 바위는 제주섬의 창조 여신인 설문대할망이 바느질을 하기 위해 불을 밝혔다는 '등경돌'이다.

 

 

 

 

설문대할망은 일출봉 분화구를 빨래 바구니로 삼고 우도를 빨랫돌로 하여 빨래를 하였다고 한다. 옷이 한 벌밖에 없어 날마다 빨래를 했는데, 밤에는 헤진 곳을 꿰매 입었는데, 이때 이 바위에 불을 밝혀 '등경돌'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전설도 전하는데, 고려 때 항몽 전쟁을 벌이던 삼별초 김통정 장군이 성산에 토성을 쌓을 때 그의 부인이 밤마다 불을 밝히고 바느질을 했는데, 부인이 불빛을 조금만 돋우어 달라고 하자 장군이 돌덩이 하나를 주워다가 그 위에 얹어주고 불을 밝히니 부인이 좋아했다고도 한다. 그 돌이 바로 등경돌이란다.

 

 

 

 

 

 

 

정상 아래 설치된 성산 전망대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화산암 벽에 낚시돌풀이 흰 꽃을 피우고 있다.

 

 

 

 

 

분화구 전망대로 들어서는 길

 

 

 

 

 

전망대 풍경

 

 

 

 

 

 

분화구는 풀밭이 펼쳐져 잔디구장을 연상시킨다. 분화구의 지름은 600m, 바닥면의 높이는 해발 90m라고 한다.

 

 

 

 

예로부터 성산리 주민들은 이곳에서 땔감을 구하고 초가지붕을 이는 띠를 거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소와 말을 기르는 방목지로 이용되었고 농사를 짓기도 했다고 한다. 해마다 분화구 내에 불을 놓아 나무는 거의 없고 억새와 띠가 가득 자라고 있다. 일출봉에는 73과 179속 220종의 육상식물이 서식한다고 한다.

 

분화구 서쪽 바위 틈에는 '생이물'이라는 샘이 있는데, '생이'(참새 같이 작은 새를 일컫는 제주말)들이나 먹을 정도라고 물이 적게 난다고 한다.

 

 

 

 

세어볼 수 없지만 분화구 둘레에는 99개의 봉우리가 둘러 서 있다고 한다. 원래는 100개의 바위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어느 날 중국에서 온 한 스님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너희를 괴롭히는 맹수를 없애줄 테니 "대국동물 대왕입도"라고 외치라고 했다.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하자, 맹수들이 백번째 바위로 모여들었다. 스님이 불경을 외운 후 "‘너희들이 살기 좋은 곳으로 가라."고 외치니 그 순간 맹수들과 함께 백번째 바위가 사라졌다. 그 후부터는 호랑이 같은 맹수도 나지 않고 왕도 인물도 나지 않는 땅이 되어버렸다.

 

 

 

 

 

언제 만들어졌는지 내려가는 길이 따로 목재데크로 조성되었다.

 

 

 

 

 

 

계단 너머로 털마삭줄 꽃이 보인다.

 

 

 

 

 

멀리 일출봉과 육지가 이어지는 사주를 '터진목'이라 부른다. 예전에는 간만의 조수차에 의해 길이 물에 잠기기도 하고 열리기도 하여 '터진목'이라 불렀는데, 1940년 초 도로가 생기면서부터는 물에 잠기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터진목에는 비극적인 역사의 상처가 남아 있다. 4·3항쟁 당시 서북청년단에 의해 끌려 온 성산, 구좌 지역 주민 450여 명이 혹독한 고민과 취조를 당하다 터진목 현장에서 192명이 총살당했다. 터진목 학살터에는 2010년 위령비를 세우고 추모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우도를 바라보면서 내려오는 길, 일출봉 북쪽 해안에는 우묵하게 들어앉은 공간이 나타난다. 이곳을 '우뭇개'라 부른다.

 

 

 

 

이 움푹하게 들어간 우뭇개에서도 '멜(멸치) 널어지듯' 오조리 주민 30여 명이 학살되었다고 한다. 고기잡이용으로 가지고 있던 다이나마이트로 자신들을 죽이려 했다는 억지스런 이유로 서청들에 의해 총살당했다고 한다. 

 

 

 

 

 

 

가까이 다가서자 확성기를 통하여 '이어도 사나~'라는 제주도 잠녀들의 노랫소리가 시끄럽게 울려퍼진다. 예전에는 못 보았던 풍경이다. 한국인, 중국인 관광객들이 둘러선 가운데 잠녀들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물질하는 모습까지 보여 주는 모양이다.

 

 

 

 

관광 사업도 중요하지만 비극의 역사가 묻혀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성산의 어느 식당에서 갈치조림을 먹고 난 뒤에 일출봉을 옆에서 담아 보았다.

 

 

 

 

 

 

정말이지 일출봉은 그 자체가 난공불락의 요새다. 이렇게 완벽한 철옹성이 있을까.

 

태평양 전쟁 때인 일본군은 일출봉 해안 절벽에 약 2년에 걸쳐 24개의 굴을 팠다. 높이 3~5m 넓이 3m 길이 10~50m 정도로, 서너 개의 입구를 통해 하나로 통하도록 해놓은 굴도 있다고 한다. 일본군은 굴 속에 폭탄과 어뢰를 가득 실은 쾌속정까지 위장하여 감춰놓고 마지막 일전에 대비했지만, 제대로 사용해보지 못하고 패전했다.

 

이 인공굴들은 잠녀의 탈의장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일출봉은 3면이 바닷물에 의한 침식작용을 받아 암석만 남은 돌산으로, 화산 지질 및 지층 구조를 단면으로 볼 수 있어 지리학 및 지질학계의 중요한 연구 대상 지역이 되고 있다. 이 점은 세계자연유산의 중요한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