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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만 여행

운남 여행 (13) 더친, 비래사(페이라이스)와 매리설산의 일몰

by 모산재 2014. 6. 30.

 

백마설산(白馬雪山=白芒雪山) 고개를 넘어서자 더친으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이다.

 

얼마쯤 달리다 보니 서쪽 멀리 아까 보지 못했던 설산이 저녁 햇살을 배경으로 환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매리설산(梅里雪山)이라는 걸 직감한다. 옥룡설산이나 백마설산과는 느낌부터 다르다. 

 

 

환호성을 지르며 카메라를 차창에다 대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차는 멈춰선다. 매리설산 전망대에 이른 것이다. 

 

 

 

 

 

 

운남에서 가장 높다는 매리설산(梅里雪山), 최고봉 카와보그봉(卡瓦博格峰)은 해발 6,740m라고 한다.

 

구름에 덮여 있는 봉우리로부터 만년설이 빙하가 되어 흘러내린 모습이 이 먼 곳에서도 또렷이 보일 정도로 장관이다. 티베트인들이 일생에 한번은 반드시 다녀오고 싶어하는 성지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6000m 급 봉우리만 13개나 된다는 매리설산, 펄럭이는 다르촉(경전을 적은 천)과 하닥(소원을 비는 백색의 긴 천) 너머로 보이는 설산은 보고 또 보아도 신비롭기만 하다.

 

 

 

 

 

 

설산과 빙하에만 정신을 팔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로 그 아래 고원에 앉은 마을 풍경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가.

 

저 곳에 비래사(飛來寺, 페이라이스)가 있고 고개로 넘어가는 곳에 우리 숙소가 있음을 좀 있다가 확인하게 된다.

 

 

 

 

 

 

 

 

전망대에서 산모퉁이를 돌아가자 드디어 더친(德欽)마을!

 

까마득한 골짜기 속에 설산처럼 하얗게 앉은 더친의 풍경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구리와 철의 광산 마을이라는 게 실감나지 않고 동화 속 신비의 마을 같은 느낌이다.

 

 

 

 

 

거의 수직으로 깎아지른 산허리는 아득히 먼 옛적 지각 변동으로 생겼을 것이 틀림없는 바위 틈 사이로 빠져들고 있었다. 멀리 희미한 녹색으로 뒤덮인 계곡의 밑바닥은 보는 이의 눈을 황홀하게 했다…. 만약 거기에 사람이 살고 있다면, 그곳은 평화로운 은총으로 가득 찬 땅이리라.

 

 

제임스 힐튼의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그리고 있는 샹그릴라의 모습과 너무도 닮은 더친. 여행을 다녀온 다음, 나는 샹그릴라로 개명된 중뎬이 아니라 더친을 샹그릴라로 떠올릴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더친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급경사를 이룬 산의 허리로 나 있다. 천길 낭떠러지를 굽이굽이 돌아 난 도로를 기사는 속도를 줄이는 법도 없이 고속도로처럼 달린다. 모퉁이에서 마주 오는 차를 만나도 별 거침이 없는데, 낭떠러지 쪽으로 앉은 사람들은 모퉁이를 돌 때마다 머리카락이 쭈볏 선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천길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다가 매리설산을 올려다 보기를 반복한다.

 

 

 

 

 

골짜기를 따라 마을이 들어선 더친의 풍경은 정말 이색적이다.

 

 

 

 

 

 

더친의 옛 이름은 티베트어로 '아둔쯔(阿墩子)'였다고 하는데 '극락태평(極樂太平)'의 뜻을 지녔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더친이야말로 샹그릴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당나라 때만 해도 티베트 땅이었다고 하는데, 아둔쯔는 1935년에 '더친'이라는 중국명으로 바뀌었다.

 

 

더친 마을을 지나며 내려다본 풍경

 

 

 

 

백마설산에서 더친으로 들어왔던 길

 

 

 

 

도로 아래로 비래사가 있는 곳을 지나며 주변 들과 마을 풍경

 

 

 

 

 

더친 서쪽 매리설산이 바로 눈 앞에 펼쳐지는 능선 위에서 차는 멈춘다. 우리 숙소는 바로 그곳.

 

무사히 살아서 숙소에 도착한 것을 축하하며 홀에서 맥주 한 잔 나눈다. 

 

 

 

 

 

 

그리고 숙소 앞에서 저마다 넋을 잃고 매리설산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다.

 

넓은 마당 끝에 조성한 13개의 하얀 라마불탑 쵸르텐은 아마도 메리설산 13봉을 표현한 듯하다.

 

 

 

 

 

 

매리설산 연봉들은 북쪽 부분은 '매리설산', 중간 부분은 '태자설산(太子雪山)', 남쪽 부분은 '벽라설산(碧羅雪山)'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6,000m급 봉우리가 13개가 있어 '태자십삼봉(太子十三峰)'이라고 부른다.

 

 

매리설산의 최고봉 카와보그봉(卡瓦博格峰)은 티베트어로 '설산의 신'을 뜻한다고 한다. 이곳 장족들은 이 산을 몹시 신성시하여 매년 티벳불교 신도들이 찾아와 적게는 7일, 길게는 반달 정도 산을 돌며(이를 '코라'라고 하는데, 신성한 장소 주변을 시계 방향으로 도는 티베트 불교 의식) 기도를 한다고 한다.

 

빙하는 매리설산의 산꼭대기에서 활 모양으로 아래까지 뻗어나가는데 길이는 11.7km이고, 너비는 500m나 된다고 한다. 매리설산의 원시림에는 흑곰, 금전표범, 작은 판다 등 야생동물 113종이 산다고 한다. 

매리설산은 처녀봉으로 사람의 발길을 허락한 적이 없다 한다. 1991년 1월 일본 교토대학 산악부가 주축이 된 일중 연합 등정대가 카와그보봉(6740m)을 오르다 눈사태를 만나 일본인 11명 중국인 6명 등 17명 대원이 몰사한 이후 중국정부가 등반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고 한다. 

 

 

 

비래사(飛來寺, 페이라이스)를 보러 나선다.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계절이 두 달이나 늦다.

 

밀밭, 감자밭에 둘러 싸인 아담한 라마 사찰은 뜻밖에 찾는 사람도 별로없이 고즈넉한 분위기다. 담장을 둘러 다르촉이 만국기처럼 나부끼고 모퉁이에 세워 놓는 깃대에는 룽다(風馬)가 펄럭인다.

 

 

 

 

 

왜 비래사일까?  석가모니불상이 티베트에서 날아와 이곳에 내려 앉아 이곳에 절을 지어 비래사라 하였다는 전설도 있고, 또 다음과 같은 창건 설화도 전하고 있다.

 

 

절 지을 터를 정하고 건축에 필요한 자재들을 미리 준비해서 절터에 모아 두었는데, 다음 날 인부들이 도착해 보니 자재들이 모두 위쪽 다른 장소로 옮겨 가 있었다고 한다. 아직 건축도 되지 않은 사찰이 스스로의 자리를 찾아 간 것이다. 설산을 관장하는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자재가 옮겨 간 장소에 절을 짓고 이름을 비래사라고 했다.

 

 

 

 

 

 

오 선생 부자

 

 

 

 

 

비래사에서는 바라본 더친 골짜기, 더친 마을은보이지 않는다.

 

 

 

 

건너편 구릉 풍경

 

 

 

 

 

매리설산 일몰을 보기 위해 돌아오는 길, 소를 몰고 돌아오는 장족 부자

 

 

 

 

 

8시 20분이 넘어서 일몰 시간, 무겁게 덮여 있던 구름이 거짓말처럼 깨끗이 사라졌다. 매리설산의 얼굴을 이렇게 깨끗하게 보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최고봉인 카와보그봉도 모습을 드러냈다. 중앙 긴 빙하를 거느리고 있는 뾰족한 봉우리가 카와그보봉이다.

 

설산을 닮은 13개의 쵸르텐이 인상적이다.

 

 

 

 

산신령의 왕비라는 전설이 있는 미녀봉

 

 

 

 

 

최고봉인 카와보그봉(6740m)

 

 

 

 

 

 

좀 더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뿐이다.

 

피곤이 몰려와 숙소로 들어가 잠시 선잠을 자다가 홀에서 일행들과 맥주를 마신다. 워낙 외진 곳이라 저녁에 갈 만한 곳이 없어 숙소 옆 바에서 술자리를 잠시 가지다 숙소로 돌아온다.

 

설산 아래  고요한 숙소에서 오랜만에 깊은 단잠에 푹 빠져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