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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만 여행

운남 여행 (7) 리장, 백사촌 백사벽화, 흑룡담(헤이룽탄) 공원

by 모산재 2014. 6. 25.

 

수허고성을 돌아보고 난 다음  백사 벽화로 유명한 백사(白沙乡) 마을로 향한다.

 

리장 고성에서 북쪽으로 10km 쯤 되는 곳, 수허고진에서는 3km 남짓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만년 설산인 옥룡설산이 환하게 바라보이는 백사(바이샤) 마을은 나시족 최초의 집거지로, 13세기 몽골 쿠빌라이 칸에 의해 멸망하기까지 나시족 왕국의 수도였다고 한다.

 

 

 

※ 리장-수허고성-백사마을 위치도

 

 

 

 

백사 마을 가는 길, 북쪽으로 곧게 벋어 있고 한적하여 자전거 여행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나시족은 당 시기에는 티베트와 남조의 지배를 받았고, 원·명 시대에는 나시족 수령이 토사로 임명되어 중국의 간접 지배를 받았다. 명대의 나시족 수령 목씨는 려강(지금의 진사 강) 지역 토관으로 임명되었지만, 청나라 때에는 직접 통치를 하는 지역이 되었다.

 

리장이 유명 관광지로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것과 달리 백사 마을은 원형이 잘 보존하고 있으며, 여자가 생계를 책임지고 남자는 가사나 육아를 전담하는 나시족의 모계사회 풍습이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백사벽화(白沙壁畵) 정문에 도착하였다.

 

 

 

 

정문 오른쪽 벽은 노란 바탕에 상형문자인 동파문자로 가득 채워져 있다.

 

 

 

들어가서 정면으로 유리전(琉璃殿)과 대보적궁(大寶積宮)이 나타나고 오른편으로 가면 문창궁(文昌宮)이다.

 

문창궁(文昌宮)은 700여 년 된 오래된 건물로 현재는 입구에 '목씨토사역사문화전(木氏土司歷史文化展)'이란 현판이 같이 걸려 있다. '토사'는 세습 족장을 의미하는데 바로 목(목)씨가 토사였고, 문창궁은 목부(木府)로 이어진 리장 토사 제도의 발상지인 셈이다.

 

  

 

 

 

명·청 시대(1385~1619)에 대보적궁(大寶積宮), 유리전(琉璃殿), 문창궁(文昌宮) 등 유서 깊은 15개 사찰이 건설되었는데, 현재 유명한 백사 벽화 200점 이상이 이곳에 전하고 있다.

 

 

대보적궁(大寶積宮)에는 여래회불도(如來會佛圖) 등 유명한 백사 벽화들이 보존되고 있다.

 

 

 

특히 여래회불도는 불교와 도교, 티베트 불교 등 서로 다른 종교가 하나의 회화 양식에 조화롭게 융합되어 있다고 한다.

 

 

 

 

백사벽화(白沙壁畵)는 명·청 시기(1385~1619)에 이 지역에 살던 둥바교(東巴敎) 화가들과 중앙 평야지대에서 온 도교 예술가, 티베트 지역의 라마교 화가 등이 그린 것으로 같은 시기에 건축된 대보적궁(大寶積宮), 유리전(琉璃殿) 등 유서 깊은 15개 사찰에서 보관·전시되고 있다.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려진 벽화는 모두 200점 이상인데, 이 중 55점은 상태가 양호하다.

벽화에는 부처 외에 관리, 범죄자, 여행객, 사형 집행인 등 일반인을 그린 100점 이상의 초상화가 포함되어 있다. 검은색, 은색, 암녹색, 금색, 붉은색 등 강렬한 색깔이 주조를 이루고,표현 기법이 생생하고 정확하여 예술적 가치가 높다.

 

그림 내용은 사냥, 고기잡이, 말타기, 옷감 짜기, 춤추기 등 일상생활을 표현한 것이 대부분이다. 달리는 말, 활짝 핀 꽃 그리고 삼림, 논밭, 화초와 새, 벌레 등도 있다.

 

 

백사벽화 입구 벽에 그려진 동파(둥바) 문자

 

 

 

녹음재생기를 앞에 두고 모여 있는 나시족 여인들. 아마도 관광객들에게 돈을 받고 나시족 전통 춤을 추는 모양이다.

 

 

 

모계사회인 이곳 나시족들은 중요한 일은 모두 여자들이 맡는다고 한다. 농사일은 말할 것도 없고 집 짓는 일, 다리를 놓는 일 등 힘든 일은 모두 여자들이 한다. 나시족 남자들이 할 일은 평생 세 가지라는데, 공부하기와 자손 퍼뜨리기, 그리고 양지쪽에서 햇볕 쪼이기란다. 나시족 남자 팔자가 상팔자인 듯하다. 

 

나시족은 교육 수준이 높다고 하는데, 나시족의 문맹률은 한족보다 낮고 학벌은 높다 한다. 운남성에서 대학 입시에 가산 점수를 받지 않는 세 민족 중의 하나란다.

 

 

 

리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리장고성의 북쪽 2km 거리에 있는 헤이룽탄 공원(黑龍潭公園)에 들렀다.

 

입장료가 60 위안, 너무 비싸다.

 

 

 

헤이룽탄은 위취안(玉泉)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려 이곳을 위취안 공원이라고도 한다. 위취안공원이라는 이름은 청 건륭제가 친필로 '玉泉龍神'이라 이름을 하사한 데서 유래했다 한다. 상산영천(象山靈泉)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헤이룽탄은 호수의 맑은 물에 비친 옥룡설산(玉龍雪山)과 하늘이 아름다운 풍경을 이룬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오늘은 어렴풋한 윤곽조차 보이지 않는다. 구름에 가려진 모양이다.

 

 

왼쪽 물 가운데 있는 정자는 일문정(一文亭), 오른쪽 3층 정자는 득월루(得月樓), 그 오른쪽 다리는 오공교(五孔橋)라 부른다. 다리의 정식 이름은 쇄취교(鎖翠橋)인 모양이다.

 

 

 

옥천(玉泉)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오늘 본 물은 썩은 것처럼 탁하고 물거품이 둥둥 떠다닌다. 다행히 짙푸른 상산(象山)의 숲이 물 빛깔을 가려주니 사진으로는 아름답게 보인다.

 

이 물이 옥하(玉河)라는 내를 이루어 리장고성의 수로로 흘러든다. 옥룡설산에서 흘러내린 물은 리장의 주요 수원이 되었으며, 옥하는 수백의 물줄기로 갈라져 리장의 고성 마을의 곳곳을 흐른다.

 

 

 

 

원래 이곳은 나시족이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라 한다. 공원은 청나라의 건륭제 때(1737년)에 건설하기 시작하였고 광서제 때 재건하였다. 원래 이름은 옥천용왕묘(玉泉龙王庙)였다고 한다.

 

아름다운 호수와 울창한 상산자락이 잘 어울린 흑룡담 공원은 리장 사람들이 즐겨 찾는 쉼터인 듯. 특히 남자들은 곳곳에 모여 앉아 장기와 바둑을 두고 마작이나 카드 놀이를 하며 여유를 즐기고 있다.

 

 

만수정(萬壽亭). 흑룡담 전경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곳 중의 하나다.

 

 

 

"복은 금사강처럼, 목숨은 옥룡산처럼(福如金沙江 壽如玉龍山)"이라고 써 놓은 구절이 눈길을 끈다.

 

  

 

이렇게 인연이 영원하기를 비는 마음들...

 

 

 

득월루(得月楼). 원래 명조때 지어졌으나 현재 건물은 1950년에 소실된 후 1963년에 복원한 것이다.

 

 

  

 

만수정과 마주보는 위치에 있고 득월루와 연결되어 있는 모란원(牧丹苑)

 

 

 

아름다운 꽃을 피운 나도사프란

 

 

 

 

흑룡담 공원의 북쪽에는 나시동파문화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원시 종교를 체험하러 들어가는 듯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해탈림 (解脱林)이란 전각 벽의 동파문. (해탈림은 목씨 왕의 종교 활동 장소로 사용되었던 높이 10m 2층 건물로서 지금은 동파예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3,6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한족의 갑골문자와도 견줄 수 있는 오래된 상형문자이며, 현재 사용되는 유일한 상형문자다. 

 

 

 

이곳은 무슨 공간일까? 그리고 큰북은 동바 무당이 사용하는 악기들일까...

 

 

 

 

 

목씨 왕에 의하여 명나라(1601년) 때 지어진 건물 둘.

 

하나는 3층 8각형 누각으로 현재 동파박물관으로 쓰이며 지붕 차양이 마치 5마리의 봉황이 날아오르는 듯한 오봉루(五凤楼), 다른 하나는 목씨 왕의 종교 활동 장소로 사용되었던 높이 10m  2층 건물로서 지금은 동파예술관으로 사용되는 해탈림(解脱林).

 

 

 

헤이룽탄 공원을 마지막으로 자전거 투어는 모두 끝났다. 강렬한 햇살을 받으며 자외선에 노출되며 자전거 여행을 한 탓인지 얼굴과 팔이 빨갛게 익었고, 팔목 부분엔 수포까지 돋았다.

 

 

리장고성으로 돌아와 사쿠리하우스에서 차량 투어 동료들 만난다. 조개매운탕에 맥주 저녁 한 잔 하는 것으로 식사를 대신한다.

 

사쿠라하우스 저녁 풍경

 

 

오늘도 어김없이 밤이 되자 빗방울이 떨어지며 고성은 비에 젖는다.

 

저녁 10시 넘은 시간, 모두가 참여한 가운데 엊저녁에 먹었던 샹빠러우에서 회기애애한 분위기로 맥주를 마시다. 끝나고 오 선생이 우리 방으로 찾아와 새벽 3시반까지 소주를 마시며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