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만 여행

운남 여행 (5) 시저우 바이족 민가, 저우청 염색 마을

모산재 2014. 6. 23. 18:17

 

남조풍정도를 떠나 곧장 시저우(喜洲) 바이족 민족촌을 찾는다. 

 


시저우는 운남에서 바이족(白族)들이 살고 있는 가장 큰 마을이다. 따리고성에서 북쪽으로 18km 지점, 얼하이 호수 북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시저우는 차마고도의 길목에 자리잡고 있어 상공업이 발달하였다고 한다. 20세기 초 시저우는 마을의 1/3이 상업에 종사할 정도였는데 상점이 186호, 행상이 236호가 있었다고 한다. 시저우방이라 불리는 상방(商幇)은 유생들이 참여할 정도였고, 이들의 상권은 운남을 벗어나 광저우, 우한, 상하이 등지까지 뻗치고 있었고 국경을 넘어 버마, 인도 지역까지 확장했다고 한다.

 

청나라 말기에 4대 희주상방(商幇)이 유명한데, 그 가운데 ‘영창상’은 보이차를 오늘날의 타차 모양(사발 모양)으로 만들어 쓰촨, 시짱(티벳) 등지에 팔아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영창상을 창립한 사람은 엄자진으로 이들이 살던 집을 ‘엄가대원’이라 불린다. 영창상이 한창 이름을 떨칠 무렵에는 3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저택이었다고 한다. 시저우를 찾는 사람들은 엄가대원을 단골 코스로 탐방한다.

 

 


우리가 방문한 바이족 민가는 엄가대원이 아닌 동안문 안의 민가들...  

 

 


 

바이족의 집은 3면으로 2층 집을 짓고 남은 한 쪽에는 높은 해받이벽을 세워 ㅁ자형의 마당을 둔 기본 짜임새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삼방일조벽(三坊一照壁)이라 한다. 

 

이 집도 그런 전통 양식을 갖추었지만 다소 퇴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층집인데다 폐쇄적인 집 구조여서 방이 어둡고 공간이 많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남쪽의 해받이벽의 흰색 회칠은 벗겨져 있고 기둥이나 벽체는 때가 많이 묻었다. 그래도 건물은 고급스러운 품격을 잘 갖추고 있다. 

 

처마 밑에는 일렬로 세밀 풍경화들이 그려져 있고, 벽에는 아름다운 대리석판들로 장식되어 있으며, 문과 보 등 목재에도 아름다운 조각들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마당의 우물


 

 

 

 

 

 

 

 


비슷한 짜임새를 가진 집들이 이어져 있다.

 

 

 

 


 

바이족 민가에는 삼방일조벽 외에 사합오천정(四合五天井) 양식도 있다. 삼방일조벽에서 조벽 대신 방이 하나 더 들어선 것을 사합원이라고 하는데, 사합오천정은 3칸짜리 방(坊) 네 개가 사합을 이루면, 네 귀퉁이에 또 하나의 작은 사각형 공간이 생기게 된다. 이 공간은 하늘을 향해 뚫려 있고 빗물이 모이는 곳이라 누각천정(漏角天井)이라 하는데, 모서리 네 개의 누각천정과 가운데 마당까지 합해 오천정이라 부른다. 모서리 천정의 벽면 역시 조벽처럼 장식을 하고 큰 화분을 놓아두거나 우물을 설치하기도 한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빗물을 밖으로 내보내는 배수로 역시 모서리 천정에 설치된다.

 

사합오천정 이외에도 가솔이 늘어나면 일진양원(一進兩院) 또는 일진사원(一進四院)으로 짓기도 한다. 삼방일조벽이나 사합오천정의 한 방향으로 두 개 또는 네 개를 이어짓고 대문으로부터 제일 안쪽까지 직선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낸 것이다. 이런 경우는 여섯 채가 하나로 모여 같은 하늘을 본다는 뜻으로 육합동천(六合同天)이라 부른다. 엄씨 민가는 이런 구조가 중첩되어 집안에 갇힌 정원이 무려 10여 개에 이르러 그냥 대원(大院)이라 부른다.

 

 

바이족 민가에는 삼도차(三道茶)라는 독특한 차 문화가 있다. 9세기 남조 시기부터 전해져 온 '핀차(品茶)' 예법인데, 삼도차는 차를 세번씩 마시는 것과 관련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첫 잔은 쓰다는 의미에서 '쿠차(苦茶)'라 부르고 둘째 잔은 달콤해서 '티앤차(甛茶)'라 하며, 세째 잔은 여운을 음미한다는 뜻에서 '후이웨이차(回味茶)'라 부른다. 마치 인생의 3단계를 음미하는 듯한 다도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전통 염색으로 유명한 저우청(周城) 마을.

 

저우청은 시저우에서 북쪽으로 8km 떨어져 있는 1500여 가구의 바이족의 마을로 10~13세기에는 대리국 황제들의 어화원(御花园)이었다고 한다. 마을에는 오래된 연극 무대와 번주먀오(本主庙), 원창궁(文昌宫) 등 오래된 건축물이 있다.

 

이 마을의 전통 염색은 홀치기 염색법인 '찰염(紮染)'으로 유명하다.

 

 

문양은 실로 단단히 묶은 부분에 표현되도록 하는데, 염색 통에 담그고 말린 후 풀게 되면 그곳에 독특한 무늬가 나타난다.

 


 

 

 

염료는 쪽의 일종으로 소염 살균 성분이 있는 식물인 '빤란(板藍)'의 뿌리에서 얻는다고 한다. 이 식물의 뿌리 '빤란건(板藍根)'은 중국에서 감기약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자란(紮染) 공정은 잘 묶은 옷감을 염색통에 담그기, 빨기, 실 풀기, 모양 갖추기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그 중 실을 감는 방법만도 26가지나 되고 꽃 무늬 도안은 1,180여 종이 되며, 제품 규격이 52종에 이른다고 한다. '복록수희(福祿壽禧)'와 관련된 것이 따리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새와 물고기와 곤충과 꽃을 소재로 삼은 도안도 인기를 끈다고 한다.

 

 

 


이 마을의 자란(紮染) 전통은 3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저우청의 많은 여인들은 자신의 집이나 공장에서 전통 염색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자신들이 염색하여 만든 이불보나 옷감이 '5기(五氣)'를 띤다고 자랑한다. 노인이 입으면 신기가 돌고(神氣), 중년층이 입으면 생기와 패기가 생기며(朝氣), 젊은이가 입으면 멋진 기운이 돌고(帥氣), 어린 소녀가 입으면 우아하고 고상해지며(秀氣), 외국인이 입으면 서양 분위기가 난다(洋氣)는 것이다. 

 

 

바이족 옷 가게의 옷과 모자

 

 

 

염색 공장을 견학하고 나오는 길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나무 아래에서는 시장이 열렸다.

 

 

 

 


잠시 시장 구경을 하고 난 다음 다음 일정을 위해 리장(麗江)으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