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만 여행

운남 여행 (4) 따리, 얼하이의 남이섬 남조풍정도

모산재 2014. 6. 19. 14:21

 

오후 4시, 남조풍정도(南詔風情島) 1박 투어를 출발할 무렵 비가 그쳤다. 두 여대생이 우리 팀에 합류한다. 얼하이 호수 북쪽으로 돌아갈 무렵에는 제법 많이 갠 구름 사이로 밝은 햇살까지 비친다.

 

한 시간쯤 달려 솽랑진(雙廊鎭)의 강하이춘(康海村) 좁은 마을길을 지나자마자 남조풍정도가 건너다보이는 위지도(玉几岛) 선착장에 도착한다. 

 

 

 

 

 

 

 

남조풍정도는 얼하이 호의 동북쪽 호수가에 있는 작은 섬이다.

 

 

 

 

 

 

가평의 남이섬을 연상시키는 작은 섬 남조풍정도는 이름처럼 천 년 전 남조국의 풍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남조국 왕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발견하였는데, 나중 왕들의 휴양지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왕국이 사라지면서 섬은 바이족의 무덤이 되었는데 1997년에 중국 정부가 1억 위안을 들여 무덤을 모두 이장시키고 관광지로 단장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1박 투어는 넘버3가 독점하는 사업이라고 한다.

 

 

 

통통배를 타고 잠깐만 건너면 되는 거리. 바로 앞에 보이는 섬이 남조풍정도다.

 

 

 

 

 

저 건너편 맨 왼쪽, 반쯤 잘린 모습으로 보이는 건물이 공작춤으로 세계적 명성을 날리고 있는 '운남영상'의 연출자 양리핑(楊麗萍)의 별장이라고 한다. 양리핑의 고향은 아까 우리가 지나온 솽랑으로 바이족 출신이란다.

 

 

 

 

 

남조풍정도에 높이 솟은 이 하얀 건물은 '남조행궁(南詔行宮)'이라는 호텔.

 

이름처럼 남조국 왕의 여름철 피서 행궁인 셈인데, 중국 정부에서 지은 이 최고급 호텔은 돈 많은 관광객들을 위한 휴양 시설이 되었다. 

 

 

 

 

 

하지만 호텔은 거의 비어 있단다. 6시만 되면 경비원들만 남고 문을 닫는단다. 1인당 50위안씩 받는 남조풍정도의 입장료만으로도 호텔을 운영할 수 있어 손님 유치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이족 전통 양식으로 지어진 숙소에 여장을 풀고 남조풍정도를 한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벌거벗은 두 여인, 춤추는 여인상이라는데 글쎄...

 

 

 

 

 

 

동쪽 해안으로 돌아가니 넓은 마당에 연못이 있고, 거기에 독특한 조각상이 늘어서 있다.

 

이 조각상은 이곳 소수민족들의 여 시조인 사일모(沙壹母)와 그 아들들의 상이라고 한다.

 

 

 

 

 

이들에 대해서 기록해 놓은 것을 대강 번역해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사일(沙壹)은 애뢰산(哀牢山) 아래에 물고기를 잡는 여인으로, 전설에 따르면 그녀는 용의 화신인 물에 잠긴 나무에 닿아 감응하고 잉태하여 10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모두가 자라서 운남의 각 민족의 선조가 된다. 이로써 사일은 이족 백족 등의 창세 시조모로서 존숭받게 된다.

 

 

 

 

 

애뢰산(哀牢山)은 따리 남쪽 이족 태족 자치현에 있는 산이다. 사일(沙壹)로부터 따리 지역의 바이족과 이족 등의 민족이 비롯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사일(沙壹)에 대한 전설을 찾아보니 바이족의 전설이라고 한 것도 있고 이족의 전설이라 한 것도 있다. 어쨌든 따리를 지배한 남조국과 대리국이 이족과 바이족의 왕국이었던 점을 보면 두 민족 사이에 큰 거리가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위의 전설을 좀더 자세히 기록한 것을 보기로 하자.

 

 

뇌산(牢山)이라는 곳에 물고기를 잡는 사일(沙壹)이라는 여인이 살았다. 그녀가 언젠가 물속에서 물고기를 잡다가 물에 잠긴 나무에 닿았는데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더니 임신을 하고 말았다. 열 달이 되자 사내아이 열 명을 낳았다.

후일 물에 잠긴 나무가 용이 되어 물 위로 나왔다. 홀연히 용이 말하는 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려왔다. "당신이 나를 위해 아이들을 낳았는데 그 아이들이 모두 어디에 있소?" 아이 아홉은 용을 보자 놀라 달아났고 막내만이 가지 않고 용의 등에 올라타니 용이 그 아이를 핥아 주었다. 그 지역의 방언으로 등에 올라타는 것을 '구륭(九隆)'이라고 하는데 이것으로 그 아이의 이름을 삼았다. 장성한 후 형들이 모두 구륭이 아버지가 핥아 주어서 똑똑하다고 여겨 왕으로 추대하였다. 그 후 뇌산 기슭의 한 부부가 딸 열 명을 낳자 구륭 형제가 모두 데려다 아내로 삼았고 이로부터 점점 자손이 늘어났다.

 

 

사일의 아들들은 각기 10개의 종족이 되었다. 중국의 소수 민족들은 이족과 백족으로부터 퍼져나간 종족들로 모두가 한 형제며 공통의 조상을 두었다는 것이 된다.

 

 

사일모(沙壹母) 상 뒤에는 수렵, 어업 등의 특징을 표현한 열 명의 아들들의 모습을 새겨 놓았다.

 

 

 

 

 

사일모상 뒤편 언덕을 오르니 거대한 관음입상이 나타난다.

 

 

 

 

 

상체는 옷을 벗고 하체는 옷을 입은 독특한 관음 입상은 따리에서 나는 백옥판 269개로 만들었다는데 높이가 17.56m라고 한다.

 

관음상이 있는 남조풍정도의 가장 높은 자리 광장에는 '운남복성(云南福星)'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다. '운남에 복을 주는 별'이라..., 아마도 이 관음상을 가리키는 말인 듯하다.

 

 

도대체 이 관음상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하고 자료를 찾다보니, 마침 어느 교수가 쓴 글이 있어 그대로 인용해 보기로 한다.

 

 

남조국 시기에 윈난의 불교 중에 밀교(密敎) 형식을 띤 것을 '아자리(阿吒力)'교라 불렀다. '아자리'라는 말은 '도를 베푸는 자'란 뜻으로 밀교 승려를 뜻한다. 남조가 6조를 통일한 후, 불교가 크게 번성하였는데 승려를 국사(國師)로 봉해 조정 일에 참여케 했다. 남조가 당 왕조와 왕래하는 중에 중원의 밀종(密宗)이 윈난 지역에 들어왔고 또한 대량의 밀교 경전이 따리에 전해졌다. 이렇게 한족 지역에서 흘러들어온 밀교와 인도에서 들여온 밀교가 서로 융합하여 윈난 밀교인 아자리교가 형성된 것이다. 이 밀교 세력은 토착 세력과의 투쟁과 융화를 반복하면서 현지에서 후계자를 길러내 밀교의 토착 승려(土僧) 집단인 아자리를 형성시킨 것이다.

아자리교에서는 아추오어이에(阿嵯耶)관음을 숭배한다. 아추오어이에는 따리 지역에 경전을 전해주고 도를 베푼 윈난 특유의 범승(梵僧)의 화신이다. 그녀의 형상은 중국 내지 불교사찰의 관음형상과 다른 점이 많다. 예를 들면 서있는 자세와 체형 및 상반신을 드러낸 것이라거나 맨발인 점, 머리에 연꽃관(蓮花寶冠)을 쓴 것이 다르다. 연꽃관 가운데는 불상이 조각되어 있기도 하다. 속칭 “세요관음(細腰觀音)” 혹은 “윈난관음(云南觀音)”이라 부른다.  <
출처 : http://blog.daum.net/khpark21/193>

 

 

이 아차야(阿嵯耶)관음과 아자리교가 따리국이 수립된 후 왕실에서 가장 신봉하는 종교가 된다. 아차야관음을 운남복성이라고 부르므로 결국 이 광장은 아차야관음을 기리는 광장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바이족에겐 관음 신앙이 강한 듯하다. 얼하이 동부의 작은 섬 소보타(小普陀)는 관음이 따리에 둑을 만들 때 수면 위에 진해대인(镇海大印)을 떨어뜨려 작은 섬이 되었는 전설이 있고 이를 기려 섬에 관음각을 세웠다고 한다.

 

 

관음상의 뒤편에는 붉은 돌에 수많은 인물상의 새긴 반월형 벽이 있다. 위의 글에 따르면 이 조각들은 아차야관음의 유래와 그가 행한 전설 등을 풀이한 것이라 한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숙소 모습

 

 

 

 

 

※ 남조풍정도 안내도

 

 

 

 

 

바다처럼 넓은 얼하이 호수 건너편, 창산은 구름에 덮여 있다.

 

 

 

 

 

한라산보다 높은 해발 1972m에 형성된 단층 호수 얼하이에는 3000여 종의 물고기가 서식한다고 한다. 하지만 낚시는 금지되고 있으며 일부 허가 받은 어부들에게 새우잡이만 허용된다고 한다.

 

 

 

구름 속에서 얼하이 호수의 일몰이 진행되고 있다.

 

 

 

 

 

 

섬을 한 바퀴 돌고 숙소로 내려가니 마당에는 저녁 식사가 푸짐하게 차려져 있다.

 

문씨 아저씨가 먹을 것으로 보이는 박스를 많이 챙겨 온다 싶었는데 돼지갈비에다 개고기, 상추와 고추, 마늘이 곁들여졌다. 자연스럽게 맥주, 양주 등 있는 술들이 다 나오고 술자리가 무르익는다.

 

 

병철 형은 어느 사이 흥에 겨워 자리 뒤의 흙벽 아래 앉아서 단소 가락을 뽑는다.

 

 

 

 

 

모닥불이 피워지고 모두들 자리를 들고 그 주위로 원을 그리며 둘러 앉는다.

 

오 선생은 흥에 겨워 문씨 아저씨를 끌어안고...

 

 

 

 

뭐 이런 식으로 기고만장한 분위기는 달아오르고...

 

 

 

 

 

요렇게 점잖게 선율을 감상하는 시간도 있었지만...

 

 

 

 

 

 

어찌 노래와 춤이 없겠는가..

 

밤이 깊어 대부분 잠자리에 들었지만 흥이 많은 사람들은 얼하이 호숫가로 나간다. 자러 가려던 두 여대생도 같이 가자고 하니 자리를 함께 한다.

 

 

대리맥주를 마시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무엇을 하고 더 보냈는지... 기억 나는 것보다는 기억나지 않는 것이 더 많다. 오 선생은 바로 옆 얼하이 물 속에 뛰어 들고, 흠뻑 젖은 오 선생을 위해 병철 형이 쿤밍의 거리에서 구입한 식탁보를 가지러 갔다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고...

 

 

 

 

 

자고 일어난 아침 병철형의 이마는 고르바쵸프의 이마를 닮은 상처가 나 있다. 그런 모습으로 천연덕스럽게 단소를 불고 있다. 그러고도 병철 형과 오 선생은 해장술이라며 아침부터 술잔을 든다.

 

아침식사는 시원한 새우탕 해장국이 나온다. 이게 거의 고정된 메뉴란다. 아마도 이곳을 찾는 한국인 여행자들의 모습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임을 알 수 있겠다.

 

 

 

 

10시 40분, 남조풍정도를 떠나다.

 

 

 

 

 

아기를 업고 있는 바이족 할머니

 

 

 

 

 

남조풍정도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

 

 

 

 

 

나오는 길, 솽랑진 강하이춘(康海村) 마을 길거리에는 시장이 섰다.

 

 

 

 

 

 

 

 

11시경 차는 출발하고 얼하이 호수를 벗어난다.

 

 

 

 

 

병철 형이 갑자기 꺽꺽한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한다.

 

"그런 설펀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경상도 발음이 사람들의 웃음을 불러 일으킨다. '슬픈 눈'이 '술 펀 눈'으로 들린다. 엊저녁 술이 덜 깬 듯한 목소리...

 

웃음을 머금은 목소리로 일행이 모두 그 다음 구절을 합창하기 시작한다.

 

가버린 날들이지만 잊혀지진 않을 거예요.
오늘처럼 비가 내리면은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가버린 날들이지만 잊혀지진 않을 거예요.

 

 

"차 안에서 할 일도 없는데, 계속해!"라고 누군가가 외친다.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라는 노래가 합창이 되어 차창을 넘어 얼하이 호수 주변의 들판으로 울려퍼진다.

 

생각나면 들러 봐요 조그만 길 모퉁이 찻집
아직도 흘러나오는 노래는 옛 향기겠지요.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가버린 날들이지만 잊혀지진 않을 거예요.

 

 

우리가 탄 차는 노래 속으로 남조풍정도 건너편에 있는 바이족 마을 시저우(喜州)를 향해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