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만 여행

운남 여행 (3) 따리, 비 오는 고성에서 만난 남조국과 대리국의 흔적

모산재 2014. 6. 17. 21:30

 

밤 11시 따리행 기차를 탄다.

 

쿤밍-따리 간 기차는 오직 야간 열차뿐. 버스로는 4시간이 채 안 걸리는 거리를 기차로 밤을 새워 달리게 된다. 도착 예정 시간이 6시라니 7시간이 걸릴 만큼 느리게 운행되는 모양이다.

 

 

 

 

 

 

 

6인실 침대차. 마주보는 3층으로 된 침대칸. 나는 성수형과 1층, 병철 수현 형은 2층, 오 선생 부자는 3층...

 

3층 침대는 이렇게 앉을 수도 없이 좁다. 모델이 돼 준, 오 선생 아들내미 한울이.

 

 

 

 

 

기차가 출발하며 모두 자리에 누워 잠들다. 하루 내내 구향동굴과 석림을 다니느라고 피곤하기도 하거니와 비교적 짧은 기차 여행이라 술자리를 펼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듯하다.

 

 

 

여행 3일차(7월 22일)새벽.

 

화장실과 세수간을 오가는 분주한 발걸음 소리에 잠을 깬다. 차창 밖으로 우리 나라의 산과 같은 밋밋한 풍경이 이어진다. 아니 뭐 이래! 티벳에 가까워지면서 험준한 지형을 기대했는데, 그 기대는 배반 당한다. 그저 그런 밋밋한 산을 기차는 느릿느릿 기어 오르고 있다.

 

 

 

※ 운남 여행 여정(쿤밍-따리-리장-더친) / 구글 지도 인용

 

 

 

 

 

 

6시 도착 예정이었던 기차는 날이 훤히 밝은 아침 8시 무렵이 되어서야 따리역에 도착한다. 밖으로 나오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우기란다. 우산을 파는 사람들, 호객하는 묘족 아가씨들...

 

 

역에서 조금 내려가니 버스 정류장이다. 따리역은 바람이 많다는 얼하이 호수의 남쪽 따리 시가지가 있는 샤관(下關) 지역에 있어 얼하이호 동쪽에 있는 따리고성으로 가려면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한 아가씨와 한 아저씨가 승강이를 벌이고 있다.

 

   "차비 하라카이."

   "아저씨 됐다니까요."

 

결국 차비에 해당하는 지폐를 손에 쥐어주고야 만다. 대화는 상황을 보고 내가 상상한 것이지만 작은 인정을 주고받으며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이 보기에도 흐뭇하다. 어린 시절 우리 시골 동네에서 흔히 보았던 풍경 아닌가...

 

 

 

따리고성으로 가기 위해 8번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앞 전광판에는 "泰興市場 到了 請下車(태흥시장에 도착했으니 내리세요.)" 내릴 곳을 안내하고 시간과 온도(19도)까지 친절히 알려 주고 있다. 우리 나라에는 이런 시스템이 없던 때라 펵 신선한 모습이었다.

 

8번 버스는 얼하이 호수의 물이 란창강으로 흘러나가는 상류인 시얼허(西洱河)를 건넌다. 멀리 오른쪽으로 얼하이 호수가 보인다. 하지만 히말라야산맥의 끝이라는 동쪽의 창산(蒼山)은 비구름에 덮여 윤곽조차 알 수 없다. 다만 옥수수밭 너머로 산등성이에 민가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만 보일 뿐이다. 

 

 

배낭을 메고 넘버3 GH로 가는 길

 

 

 

 

 

 

9시 무렵 양인가(洋人街)에 위치한 문씨네 게스트하우스 '넘버3'에 도착. 된장찌개, 김치찌개에 소주 반주를 곁들이며 늦은 아침식사를 한다.

 

 

 

기차 여행의 노독을 풀며 쉬다가 11시경 따리고성 구경에 나선다.

 

따리는 따리 바이족 자치주의 주도, 바이족(白族)은 이름 그대로 흰 옷을 즐겨 입고 흰 벽의 집을 짓고 사는 민족... 지금은 중국 내 여러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로 전락했지만 바이족은 13세기 몽골에 함락되기 전까지만 해도 중원의 당·송에 당당히 맞섰던 남조국(南詔國)과 대리국(大理國)의 주인공들이다.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거리는 우산의 행렬. 날이 개었으면 좋으련만... 따리고성의 랜드마크라 할 오화루(五華樓)에 이른다. 

 

 

 

 

 

고성의 가옥들은 모두 상가로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거리 양쪽에는 수로가 있고 맑은 물이 콸콸 흘러내린다. 만년설이 덮인 창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이용해 따리의 거리는 아름다운 수로가 발달되어 있다.

 

 

 

 

 

지금의 오화루는 1998년에 중수한 것이라 한다. 1862년에 중수한 건물은 문화혁명 때 소실되었다 한다. 최초의 오화루는 1천 여 년 전인 856년, 남조국 소성왕 때 지었고 국빈관으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남조국(738∼902년)에 이어 들어선 대리국(937∼1253년)은 300년 동안 태평성대를 누리다가 몽골에 의해 멸망하게 되는데, 이곳 오화루는 바로 대리국의 마지막을 맞이한 역사의 현장이 되었던 곳이라 한다.

 

남조국 시절 당 현종이 보낸 10만 대군을 얼하이 호수에 수장시킨 대리국은 창산을 넘어온 쿠빌라이의 몽골군에 속수무책으로 함락되고 만다. 1253년, 따리국왕은 이곳 오화루에서 쿠빌라이칸에게 항복하였다고 하며, 이후 몽골은 우화루를 군사 주둔지로 썼다고 한다.

 

 

 

 

 

오화루 사방으로는 아담한 연못과 함께 2층 정자들이 들어서 있어 매우 아름답다. 우화루 남쪽 동서로 난 작은 도로를 수경가(水景街)라 하는데, 그 중앙에는 '옥천선지(玉泉仙池)'라는 아름다운 수로가 있다. 사람들이 붐벼 우리는 곧장 남문으로 향한다. 

 

북문과 남문을 연결하는 따리고성의 중심 거리를 부흥로(復興路)라 부른다. 부흥로 가운데 있는 우화루에서 남문까지는 지척.

 

 

 

 

성 밖에서 본 남문

 

 

 

성 밖 한쪽에는 "문무 관원들이 이곳에 이르면 가마와 말에서 내리라."고 새겨 놓은 하마비가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끈다.

 

 

 

 

기념 촬영...

 

 

 

 

남문에 모신 수호신과 재신

 

 

 

 

 

남문에 올라 따리고성을 조망한다. 고성 안 북쪽인 오화루 방향.

 

 

 

 

멀리 서쪽으로 보이는 탑이 그 유명한 숭성사(崇聖寺)3탑인가 했는데, 그게 아님을 나중에야 확인한다. 숭성사 3탑은 우화루 너머 방향인 북쪽 성 밖에 있다.

 

이것은 숭성사 3탑 중 가장 높은 16층탑과 같은 모양인 일탑공원(一塔公園)의 탑이다. 3탑은 나중 소개하기로 하자.

 

 

 

 

 

 

짙은 비구름 때문에 창산과 얼하이 호수가 보이지 않아 아쉽다. 얼하이 호수는 고성의 동쪽에, 창산은 서쪽에 있다. 대리석 산지로 알려진 창산의 최고봉은 마룡봉(馬龍峰)으로 해발 4122m이다.

 

 

성벽 높이 8m인데 폭이 7m나 되는 성 위의 길은 자동차가 다녀도 될 만큼 충분히 넓다.

 

 

 

 

 

동쪽으로 이동하다 멀리 얼하이 호수가 보일 때쯤 해서 성을 내려선다.

 

 

 

 

 

 

 

넘버 3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점심을 컵라면으로 때운다.

 

 

 

 

 

 

 

숭성사(崇聖寺) 3탑은 미처 가보지 못해 병철 형이 바쁘게 다녀오며 찍은 사진으로 대신한다.

 

 

세 탑을 품고 있는 숭성사는 남조국(南詔國)에서 제10대 소성왕(昭成王) 권풍우(勸豊祐) 시기(824~859)인 남조국 후기에 건립되었으며 대리국의 불교를 번성케 한 요람이다. 대리국의 왕 9명이 왕위를 버리고 이 절에 들어와 주지를 맡았던 황가 사찰이었다.

 

당시의 이 절은 한 면이 3.5㎞씩이고, 건물이 3각 7루 9전(三閣七樓九殿)이며, 방이 890여 칸, 불상이 11,400여 개나 되는 동남아 최대 불교사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 폐허가 되고 3탑만 남아 있었는데,  현재의 사찰 전각들은 2005년에 복원된 것이다.

 

 

 

 

 

'천심탑(千尋塔)'으로도 불리는 중앙의 큰 탑은 높이 69.13m의 16층 사각탑으로 층마다 자리한 감실에 대리석으로 조각한 불상이 있다.  8세기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시안 대소안탑(大小雁塔)과 비슷한 전형적인 당대(唐代)의 건축 풍격을 보이고 있다.

 

 

 

 

천심탑 양쪽에 각각 서 있는 두 탑은 송대의 건축풍을 보인다. 높이 42.4m의 10층 팔각탑에는 불상, 연화, 화병 등이 새겨졌다. 두 탑을 조성한 시기는 당말 오대(唐末 五代) 시기로 추정한다

 

 

 

 

 

기중기가 없던 시절, 이렇게 높이 탑을 올리기 위해서는 같은 높이로 흙을 쌓아 올렸다 다시 허무는 공법을 사용하였다. 이 탑을 쌓기 위해 쌓은 토총의 경사로 길이는 5㎞에 달했다 고 한다.

 

 

 

 

마지막으로 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마차를 타고 얼하이호수 유람선 선착장까지 한 바퀴 돌아본다.

 

 

 

 

얼하이 호수 주변은 농경지가 한없이 펼쳐진다. 빗속에 접근하는 길은 한적하기만 하다.

 

 

 

 

 

해발 1,972m에 형성된 호수다. '귀 모양으로 생긴 바다'라고 해서 얼하이(洱海)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호수는 과연 바다 해(海) 자를 붙여도 좋을 정도로 넓다. 남북의 길이 45km 동서 폭 8km 정도에다 수심이 65m나 된다니 그냥 호수라고 부르기엔 미안할 정도로 크지 않은가.

 

창산의 3500m가 넘는 19봉 사이 18계곡의 물들은 모두 얼하이호로 흘러 들고, 얼하이의 물은 남단의 샤관(下關) 부근에서 란창강(瀾滄江)의 지류인 양비강(漾濞江)으로 흘러나간다.

 

 

아마 이곳이 용감(龍龕) 선착장이지 싶다. 

 

 

 

 

 

그리고 바이족 전통 양식으로 지었다는 천주당을 보러 간다. 1927년 프랑스 선교사가 지었다는데, 단청이 아주 화려하다. 

 

문화혁명 때 훼손되었다가 2000년에 복원되었다 한다. 

 

 

 

 

 

 

 

 

오후 4시, 얼하이 호수에 있는 작은 섬 남조풍정도로 출발한다. 

 

 

 

 

※ 따리(大理) 이야기

 

 

따리는 대리석이라는 명칭을 낳은 세계적인 대리석의 산지이며, 주로 바이족이 사는 인구 14만 정도의 작은 도시이다. 쿤밍의 북서쪽 약 260km 지점, 히말라야산맥의 동쪽 끝 4000 m를 넘는 창산(蒼山)을 등지고 동쪽으로 40km나 되는 얼하이(洱海) 호수를 바라보는 천연 요새에 자리잡고 있다. 해발고도 2,086m.

당나라 때에는 남조국(南詔國), 송나라 때에는 대리국(大理國)의 도읍지로 번창한 작은 도시다. 따리라는 이름은 대리국이 창건되면서 처음으로 사용된 이름이다. 대리국의 태조 단사평(段思平)이 938년 남조국을 계승한 대리국을 세울 때, "크게 다스려 나라를 부유하게 만든다(大治大理, 富國興邦)"는 뜻에서 대리(大理)라는 국호를 정하였고, 이는 나중에 얼하이 호수 주변의 바이족(白族) 주거지를 뜻하는 지명이 되었다.

따리는 시솽반나에서 푸얼을 지나 티벳으로 이어지는 차마고도의 교통 요지다. 푸얼에서 생산된 차는 마방에 의해 따리와 리장을 거쳐 티벳의 라싸로 가서티벳의 말과 교환되어 운남으로 돌아온다.

 

 

 

 

당 현종 때 남조국은 당나라의 침공을 받는다. 당시 당나라는 티벳을 견제하기 위해 남조국을 지원했는데, 남조국의 세력이 팽창하며 알력이 생기게 된다. 751년 선우중(鮮于仲)이 이끈 8만 당군이 남조국을 정벌에 나섰지만 대패하고, 754년 이밀(李密)의 10만 대군이 침공하였지만 대리국과 티벳의 연합군에 의해 얼하이 호수에 모두 수장 당하고 만다. 지금도 윈난성에는 ‘만인총(萬人冢)’이라고도 부르는 무덤이 전해진다. 당나라가 처절하게 패배한 이 전쟁을 현종의 연호를 따 '천보전쟁'이라 하는데, 이 전쟁의 경제적 배경을 차 무역을 둘러싼 쟁탈전으로 보기도 한다. 이 전쟁의 참상을 노래한 시로 백거이의 '신풍의 팔 부러진 늙은이(新豊折臂翁)'가 있는데, 이는 서역의 전쟁터로 끌려간 이들의 참상을 노래한 두보의 '병거행(兵車行)', 이백의 '전성남(戰城南)'과 비견되는 작품이다.

남조국(738∼902년)은 우리 나라의 통일신라, 대리국(937∼1253년)은 우리 나라의 고려 시대와 대체로 겹치는 시기이다. 이족(彛族)이 지배하던 남조국을 계승한 대리국은 백족(白族)이 주도하는 나라로 쿠빌라이의 침공으로 망할 때까지 300여 년 운남성과 미얀마 북부를 장악하고 태평성대를 누린다. 통치 기간 대리국은 22명의 왕이 재위했는데 그중 9명이 황가사찰인 숭성사(崇聖寺)로 출가해 승려가 될 정도로 불교가 융성했다.

청나라 말기에는 흑사병이 유행하였고, 1926년 큰 지진이 일어나는 등 잇달아 재화를 당하기도 하였다. 지금은 '풍화설월(風花雪月)'의 관광도시로 각광받고 있다. 얼하이 남쪽 하관의 바람, 온갖 꽃들이 만발하는 상관(따리)의 꽃, 창산(蒼山)의 만년설, 얼하이 호수의 달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펼쳐내는 남조대리국의 고도로...

 

 

 

 

 

※ 따리고성 안내도

 

 

출처 : 네이버카페 '운남하늘여행'

 

 

 

 

※ 따리 안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