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여행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국립고궁박물원.
대영박물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세계 4대 박물관 중 하나로 손꼽히며, 최근에는 연간 300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들이 찾을 정도란다.
지루할 정도로 거의 매일 비가 내린다는데, 하늘은 잔뜩 찌푸린 모습이지만 어쨌든 비가 오지 않아 다행이다.
박물원의 입구 패방 너머로 박물관 건물이 보인다. 패방 중앙에는 '천하위공(天下爲公)'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그렇다. "천하는 모든 이를 위한 것이다."
중화민국 81년에 세운 대형 청동솥. 전통적으로 솥은 왕권을 상징하는 것이니 네 발을 가진 솥발에서 중화민국의 기틀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뜻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앞마당에서 바라본 박물관 앞의 풍경
박물관 건물은 지상 4층의 중국 전통 궁전 양식으로 되어 있다.
이 박물관은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가 1924년 궁궐을 떠나면서 1925년 개관한 베이징 고궁 박물원을 모체로 하여 1965년 쑨원 탄생 100주년 기념일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국민당 정부는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면서 유물을 옮기기 시작해 1936년경 상하이를 거쳐 난징에 보관하였고, 전세가 악화되면서 쓰촨 등 후방으로 옮겼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한 뒤 난징으로 복귀하였던 것을 1949년 대륙 본토가 공산당 정권에 넘어가면서 타이완으로 옮기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후 고궁박물관은 장개석 총통과 함께 대만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잡았고, 질과 양에서 중국 최고 최대의 유물 집합처가 되었다.
고궁박물관은 송 왕조로부터 원, 명, 청의 역대 조정이 수집해온 방대한 황실 수장품을 주축으로 5천 년 중국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전시품 대부분 송나라 초기의 황실에 속했던 것으로 약 61만 점에 이른다.
베이징 고궁박물관에는 90만 점의 소장품이 있다고 하는데 그 질에 있어서 대만 고궁박물관에 견줄 것이 못된다고 한다. 상설 전시되는 유물만도 2만 점에 이르고, 소장품이 너무 많아 옥제품·도자기·회화·청동의 작품들은 3개월마다 한 번씩 교체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소장품 모두를 관람하려면 8년의 시간이 걸린단다,
박물관은 연중 무휴로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개방한다고 한다. 아쉽게도 귀중한 박물관의 유물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카메라를 맡긴다.
입장료는 10인 이상 단체 관람은 1인당 NTD 100원인데, 음성안내기 이용료 NTD 20원을 추가된다.
박물관 소장품은 2013년 기준 총 69만 6,295점이라고 하는데, 청대의 문서가 40만 점에 이르고 희귀 도서가 20만 권이나 되는 등 책과 문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현황은 다음과 같다. (고궁박물원 홈페이지 참조)
청동기 - 6,215점 | 회화 - 6,529점 |
도자기 - 25,545점 | 서예 - 3,644점 |
옥기 - 13,476점 | 법첩 - 490점 |
칠기 - 744점 | 자수 - 308점 |
칠보자기(법랑) - 2,520점 | 서화 부채 - 1,880점 |
소형 조각 - 660점 | 희귀도서 - 211,190 책 |
문구 - 2,379점 | 청대의 문서 - 386,862 책 |
화폐 - 6,953점 | 만주, 몽고, 티베트 언어 문서- 11,501 점 |
기타 - 12,970점 | 탁본 - 896점 |
섬유 - 1,533점 |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지만 진귀한 보물들 몇몇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사진 자료는 고궁박물원 홈페이지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얻은 것들이다.
● 육형석(肉形石) / 청
소동파(蘇東波)가 즐겨 먹었다는 뚱퍼러우(東波肉)와 너무도 닮은 이 육형석은 껍질, 지방, 고기의 삼중 구조로 되어 있어 그야말로 삼겹살돌이라 할 수 있다.
돌의 지질은 불투명 옥수(玉髓)로 층층이 퇴적된 흔적을 가지고 있는데, 천연석의 외형과 재질을 살려 가공하고 색을 입히는 교조(巧雕)라는 기법을 사용하여 창조한 것이라 한다.
● 진조장 조감란핵주 (陳組章雕橄纜核舟) / 청
18세기 청나라의 궁중 장인인 진조장이 중국 올리브인 감람 핵에다 조각한 배.
실제 크기는 길이 3.4cm, 높이 1.6cm로 손가락 두 마디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열매를 조각한 것인데, 배 속에 여덟 사람이 앉아 있고 양쪽에 달린 모두 8개의 문이 자유롭게 열린다. 게다가 배 밑에는 소동파의 '후적벽부' 전문 357자가 조각되어 있다고 한다.
● 취옥배추(翠玉白菜) / 청
원래 청말 광서제의 비인 근비가 거주하던 자금성 영화궁에 있던 것. 근비가 시집오면서 가져왔을 것으로 추정되는데(광서제의 왕비인 서비라고도 함), 잎이 푸른 배추는 집안이 청백(淸白)하다는 의미, 배추의 흰색은 신부의 순결을 의미, 다산을 상징하는 여치와 황충이라는 곤충 두 마리는 황실 자손의 번성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긴 것.
● 상아투화운룡문투구(象牙透花雲龍紋套球) / 청대
청나라 건륭제 시절의 유물로 상아를 가공하여 만든 노리개다. 3대에 걸쳐 완성했다고 전해지는 이 작품은 구경 11.7cm 공 속에 17겹의 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는데, 서로 붙어 있지 않아 자유롭게 회전하며, 원형 구멍이 일직선으로 맞춰진다고 한다.
● 궁락도(宮樂圖) / 오대
최근 대북의 고궁박물원 연구원들이 당말 송초 사이의 오대(五代,907-960)의 작품으로 감정하였고 당(唐)시대의 그림으로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열 명의 궁녀들은 모두 둥근 얼굴과 풍만한 몸으로 당 시대 미인의 전형이다. 탁자 중앙에는 비파를 연주하는 궁녀가 있고 그 옆으로 거문고 종류인 쟁 (古箏), 관악기인 생(笙), 피리(篥)를 부는 세 명의 궁녀가 화음을 맞추고 있으며, 왼쪽에는 박판(拍板)을 들고 박자를 보조하는 시녀가 서있다. 한가로운 시간에 음악을 즐기며 보내 는 당시 궁녀들의 놀이문화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둥근 부채를 들고 진지하게 음악을 감상하는 여인, 술을 마시는 여인의 모습은 은근하며 격조 있는 동양적인 관능미를 표출하고 있다.
● 당나라 안진경의 글 제질문고(祭姪文稿) / 당
안진경이 안사의 난 때 죽은 조카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글. 안진경은 집안이 가난하여 종이와 붓이 없어 담벽에다 황토로 연습하며 서예를 익혀 해서에 특히 뛰어났던 명필. 원나라의 선우추는 이 첩을 "천하제이행서(天下第二行書)"로 꼽았다고 한다 .(물론 제일행서는 왕희지...)
755년에 안사의 난이 발생했을 때 안진경은 사촌형 안고경과 연합하여 안녹산을 토벌하였는데 안고경 일문이 피살되었다. 안고경 부자의 시체를 찾았지만 안고경은 다리가 하나 잘리고 그 아들은 목만 돌아왔다. 비통에 빠진 안진경이 쓴 글이 <제질문고>로 비분한 심정을 가누지 못한 상태에서 쓴 글은 여러 군데 잘못 쓴 곳이 있고 덮어쓴 흔적이 있다. 감정의 기복이 글씨에도 표현되어 필봉 변환의 묘함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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