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화순 운주사 (3) 대웅전과 지장전

모산재 2014. 2. 2. 21:23

 

'구름 머무는 절'이라는 뜻을 가진 운주사(雲住寺)는 송광사의 말사로 '배가 가는 절'이라는 뜻의 '운주사(運舟寺)'로 불리기도 합니다. 

 

 

운주사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 때의 고승 운주화상이 돌을 날라다 주는 신령스러운 거북의 도움을 받아 창건하였다는 설, 마고할미가 세웠다는 설 등 전설에서부터 몽골 침략 때 황룡사가 불타자 무신정권이 몽골을 물리치기 위해 급히 세웠다는 설, 고려 양식과는 다른 불상과 탑 등에 착안해 몽골군들이 삼별초를 정벌하기 위한 군사 주둔지로 세웠다는 설 등 여러 설이 전해지지만,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는 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도선국사는 우리 국토의 형세를 배가 가는 형세로 파악하고 배의 중간 허리에 해당하는 호남이 영남보다 산이 적어 배가 기울 것을 염려하여 이곳에 하룻밤 사이에 각 1천 개의 불상과 불탑을 조성하였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만든 와불을 일으켜 세우려 했는데 새벽닭이 우는 바람에 미완성으로 남게 됐다는 전설까지 전해집니다.

 

 

일제말기까지만 해도 석불 213기와 석탑 30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석탑 17기, 석불 80여기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종무소로 쓰이는 보제루(普濟樓)를 지나면 법당 마당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현재 보이는 운주사 전각들은 모두 일제시대에 조성된 것이라 문화재적 가치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운주사는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소실되고 파괴되어 폐사로 남아 있다 1918년에 16명의 신도들의 시주로 중건하였다고 합니다.

 

 

주요 전각으로 대웅전과 지장전이 같은 높이의 기단 위에 나란히 배치되어 있습니다.

 

 

 

 

 

절마당에는 퇴락한 4층석탑 하나가 있는데, 분황사지 전탑을 닮은 신라 탑 양식을 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띕니다. 목조 기와지붕 양식이 아닌 계단식 지붕 형태를 보여주는 점이 그렇습니다.

 

4층만 남아있으나 원래는  7층쯤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탑을 건립할 때 거대한 이무기가 감고 올라가자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벌하였는데 그때 이렇게 파손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대웅전입니다. 정면 3칸, 측년3칸의 다포계팔작지붕집으로 비교적 화려한 모습입니다.

 

 

 

 

 

 

 

대웅전 안에는 여느 절과는 달리 삼존불이 아닌 석가여래불만 모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불탱화로 영축산(靈鷲山)에서의 석가모니의 설법 장면을 그린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를 봉안하고 있습니다.

 

 

 

 

 

대웅전 측면 일부 

 

 

 

 

 

그리고 지장전입니다.

 

흔히는 명부전, 시왕전이라고도 부르는 전각으로 망자들을 위한 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익공계 맞배지붕집입니다.

 

 

 

 

지장전 안에는 지장보살을 무독귀왕, 도명존자가 협시하고, 그 주위에는 목조 천불상을 봉안하였습니다. 보통 명부전과는 달리 시왕(十王)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법당 마당 주위로는 종각과 요사채와 승방이 두르고 있습니다.

 

 

 

 

 

 

현재 운주사에는 비구니들이 수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법당을 지나 불사바위라는  절 뒤의 바위 언덕에 올라 운주사 골짜기 전경을 조망할 차례입니다.

 

 

 

 

 

 

※ 운주사 안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