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화순 운주사 (2) 못 생긴 부처님, 키만 큰 탑 속에 보물이 셋

모산재 2014. 2. 2. 21:08

 

운주사 골짜기에 눈발은 점점 굵어집니다.

 

 

일주문 안쪽 건너편 들 한켠에 모아둔 불상들 속에 아기부처를 만난 다음 다시 일주문으로 이어지는 동선으로 되돌아옵니다. 본당 전각에 이르는 이 동선을 따라 특이한 양식의 석조물, 운주사의 보물 셋이 차례로 나타납니다.

 

 

 

눈발 속으로 우뚝 솟은 9층 석탑과 암벽에 기대선 장승처럼 되는 대로 다듬어 세운 불상이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섭니다.

 

 

키만 껑충 높아 불안정해 보이는 이 탑을 운주사구층석탑이라 부르는데, 운주사가 가지고 있는 세 보물 중 하나로 보물 제79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높이가 10.7m, 운주사에서 가장 높은 이 탑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지대석이자 아래층 기단으로 너럭바위 같은 커다란 자연석을 쓴 것이지요.

 

 

 

 

 

탑의 각 몸돌에는 면마다 2중으로 마름모꼴을 새기고 그 안에 꽃무늬를 둔 것은 다른 사찰에서 볼 수 없고 운주사 석탑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양식입니다.

 

그 외에 지붕돌 밑면에 받침이 없고 각 면에 새긴 장식도 다른 곳에서 보기 드문 지방적인 특징을 드러내는데, 이런 점으로 이 탑이 고려시대의 것임을 짐작케 합니다.

 

 

 

 


이 탑은 원나라(몽골)의 양식에 영향을 받은 고려탑의 모양과 비교적 많이 닮아 있습니다. 석탑과 석불들이 대개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여 운주사가 창건된 시기도 삼국시대말이나 고려초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9층석탑 바로 옆 암벽에 기대어 되는 대로 만들어진 듯한 석불상들이 여럿 서 있고, 암벽 위에는 막돌을 쌓은 듯한 '거지탑'이라 부르는 5층석탑 하나가 서 있습니다.

 

 

 

 

 

석탑이든 석불이든 전문 예술가들의 솜씨와는 많이 멀어 보입니다. 그냥 이 지방 사람들이 다 모여서 연장을 들고 제각기 멋대로 만들어서 전시해 놓은 듯 수수한 작품들입니다. 그래서 운주사의 석불과 석탑들을 극히 지방적이고 민중적이라 말합니다.

 

 

 

 

 

 

 

돌장승을 연상시키는 이런 석불들은 오른쪽 암벽을 따라 안쪽으로 계속 이어지며 모습을 드러냅니니다.  

 

 

 

 

 

 

 

비슷한 양식을 가진 7층탑 두 기가 모습을 드러내며 경내의 전각들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돌아서서 두 기의 7층석탑과 9층석탑을 바라본 풍경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7층 석탑과 경내 전각 사이에 바로 운주사의 보물 셋 중 나머지 두 보물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다른 사찰에서 본 적이 없는,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는 두 개의 석조물!

 

 

 

 

 

그 하나를 운주사석조불감이라 부르는데, 보물 797호입니다.

 

 

 

 

'불감(佛龕)'이란 불상을 모시는 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직사각형 모양으로 벽을 판돌로 막아둔 감실 안에는 특이하게도 등을 맞댄 두 개의 불상이 모셔 놓았습니다.

 

역시 여느 절에서 볼 수 있는 상호와는 거리가 먼 못난이 불상입니다. 비할 바 없이 당당하기는 하지요.

 

 

 

 

석조 불감을 이렇게 크게 만든 것이나 등을 서로 맞댄 두 불상을 모신 것은 매우 특이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보물은 호빵을 쌓아 놓은 듯한 독특한 탑인데, 이를 운주사원형다층석탑이라 부르며 보물 79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현재 6층만 남아 있지만 원래는 더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이 탑은 우리 나라에서는 그 예가 드문 모습으로, 이 또한 고려시대에 다양하게 나타난 지방적 양식의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운주사는 법당 앞에 1탑이나 3탑을 세우는 전통적 양식을 모두 깨뜨리고 그저 되는 대로 마치 장난을 쳐놓은 듯 탑과 부처를 전시해 놓은 듯합니다. 어찌보면 엄숙한 사찰이라기보다는 아마추어 예술가들이 만든 석탑과 석불 작품의 전시장 같은 느낌을 줍니다. 도대체 운주사는 왜 이런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된 걸까요.

 

 

운주사는 도선국사가 세웠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운주사 창건에 대해  <조선사찰자료>라는 문서는 다음처럼 말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지형은 떠가는 배와 같으니 태백산, 금강산은 그 뱃머리요, 월출산과 한라산은 그 배꼬리이다. 부안의 변산은 그 키이며, 영남의 지리산은 그 삿대이고, 능주의 운주는 그 뱃구레(船腹)이다. 배가 물 위에 뜨려면 물건으로 그 뱃구레를 눌러 주고 앞뒤에 키와 삿대가 있어 그 가는 것을 어거해야 그런 연후에 솟구쳐 엎어지는 것을 면하고 돌아올 수 있다. 이에 사탑과 불상을 건립하여 그것을 진압하게 되었다. 특히 운주사 아래로 서리서리 구부러져 내려와 솟구친 곳에 따로 천불천탑을 설치해 놓은 것은 그것으로 뱃구레를 채우려는 것이고 금강산과 월출산에 더욱 정성을 들여 절을 지은 것도 그것으로써 머리와 꼬리를 무겁게 하려는 것이었다.  -최완수 <명찰 순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