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청송 주왕산 (1) 유쾌한 먹자거리 지나 단풍에 묻힌 대전사

모산재 2012. 11. 20. 20:34

 

토요일, 아침인데도 주왕산은 입구에서부터 사람들로 북적인다.

 

 

가로수 느티나무에도 단풍빛이 들기 시작했다. 가을 기운이 넘실거리는 주왕산...

 

 

 

 

 

 

아침 식사를 하지 못하고 바로 찾아온 길이라 입구 식당에서비빔밥을 시켜 먹는다. 얼큰한 된장국이 푸짐하여 대만족이다.

 

 

 

주왕산의 상징이라 할 기암(旗巖) 봉우리가 멀리 시야에 들어온다.

 

 

 

 

 

골짜기로부터 능선까지 가득 번지고 있는 단풍빛...

 

단풍을 기대하고 찾은 것은 아니었지만 무뎌진 가슴에 살짝 일어나는 설렘...

 

 

 

 

 

주왕산에서 흘러내리는 이 물을 주방천이라한다. 십리쯤 흘러내리면 청송 읍내를 가로지르는 용전천과 만나 안동 임하댐을 지나 마침내 낙동강으로 흘러들게 된다.

 

 

 

 

 

수 년 전 빗방울 듣는 한여름날 찾았던 때와는 다른 산뜻함과 명랑함이 넘친다.

 

게다가 대전사에 이를 때까지 길 양쪽으로 늘어선 가게의 호객이 즐겁기만 하다.

 

주차장에서부터는 품질 좋고 값싼 청송 꿀사과들로 넘쳐나더니 가게마다 먹을 것들을 내 놓고 시식 잔치를 벌인다. 막걸리도 종이컵 가득 부어 따라 주고...

 

 

 

 

막걸리를 마시고 나면 산나물전도 안주로 시식이다.

 

 

 

 

 

온갖 약초를 넣은 동동주는 거의 보약 수준이다.

 

 

 

 

 

이렇게 몇 집에서 몇 잔을 마시고 나니 마음도 넉넉해지는 느낌이다.

 

공짜로 먹어서가 아니라 편하게 먹어서다. 소매를 붙들며 부담을 주지 않고 시식대에 먹을 것을 차려 놓아 두었으니 그저 먹으면 된다. 기웃거리면 드시라고 잔부터 내민다. 마치 잔치집에서 먹는 음식처럼 편안하다. 어느 집에서는 생수를 쌓아놓고 가져 가란다. 그러니 나중에 돌아나올 때 마음에 들었던 한 집에서 한잔해야지 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이런 호객이라면  참 즐겁지 아니한가!

 

오늘 산행이 어떨지는 몰라도 나 같은 얼치기 산객에게는 이런 산행이면 이미 80%는 만족이다.

 

 

산에서 나는 약초와 버섯들도 눈길을 끈다.

 

 

 

 

다른 곳에서처럼 봉지에 들어 있는 것들이 아니라 많은 물량을 내놓아 신선하고 값도 그리 비싸보이지 않아 구매욕도 슬쩍 드는 것이다. 직거래장터나 다름없다. 집 근처에 이런 시장이 있었다면 지갑을 자주 열었을 것 같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보니 대전사에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대전사 앞에 도착하니 길이 목책으로 가로막혔다.

 

 

 

 

 

상가를 지나오면서 흥겨워졌던 마음이 일순간에 잡친다. 참 언짢은 장면이다. 부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산을 찾는 선남선녀들을 길 가운데서 가로막고 주머니를 강제로 터는 현장이다.

 

문화재에 관심이 있는 나 같은 사람이야 문화재 관람료를 낼 용의가 있지만, 그러나 저리 길을 막고서 내라고 하니 정말 싫다.

 

지나가는 사람 막지 말고 관람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만 돈을 받아라. 제발 스님들이시여. 그러지 않으면 당신들은 날강도들이다. 1km 가까이 떨어진 골짜기에 있는 천은사가 지리산 성삼재 오르는 도로를 가로막고 문화재관람료를 강탈하는 사태나, 설악산 신흥사에서 설악산 찾는 사람들 가로막고 주머니 터는 일은 참으로 자비를 실천해야 할 불자들이 저지를 일은 아닌 듯하다. 

 

 

 

그래도 착하기만한 사람들은 돈을 내고 경내로 들어선다.

 

아름다운 기암(旗巖)을 배경으로 서 있는 대전사는 사람 단풍으로 물들었다.

 

 

 

 

 

 

북쪽 요사채 뒤로는 장군봉.

 

 

 

 

 

 

대전사는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로 신라 문무왕 12년(672년)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주왕산과 함께 대전사에는 주왕의 전설이 담겨 있다고 하는데 이야기인즉...

 

 

주도(周鍍)라는 사람이 스스로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당나라에 쳐들어갔다가 크게 패하고 신라로 건너와 주왕산에 숨었다. 이에 당나라가 신라에 주왕을 없애달라고 부탁하자 마일성 장군 오형제를 보내 주왕의 무리를 죽였다고 한다. 그 뒤부터 주왕이 숨었던 산을 주왕산이라 하고, 절은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大典道君)의 이름을 따서 대전사라 하였다는 것이다. 절 이름은 나옹화상 혜근(惠勤)이 붙였다고 한다.

 

 

절 이름을 나옹이 지었다는 설 외에 고려 태조 12년(919년) 눌옹이 대전사를 중창할 때 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거기에다 대전사 건너편에 있는 백련암이란 이름은 주왕의 딸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하지만 중국 역사 속에서 주도라는 인물을 확인할 수도 없고 우리 역사에서도 이를 뒷받침할 만한 사실을 찾을 수 없으니 이야기는 전설을 넘어서지 못하는 듯하다.

 

사실과 부합되지 않으니 전설 속의 인물을 신라의 주원왕(周元王)으로 보는 설이 있다. 태종무열왕의 8대손인 김주원(金周元)은 김경신(뒤의 원성왕)에 밀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자 이곳 주왕산에서 수도를 하다가 명주(지금의 강릉)로 가서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보광전 앞마당에는 삼층석탑이 서 있다.

 

 

 

 

석탑은 대전사의 험난한 역사를 증거하는 듯 파편화된 부재들로 짜맞춰져 있는데, 그나마 대부분은 새로 다듬어 맞춘 부재로 채워져 있다.

 

 

 

 

원래 대전사 석탑은 '금강탑'이라는 이름의 쌍탑이었다는데, 완전히 파손된 채 일부 부재만 보광전 앞에 쌓여 있던 것인데, 2003년 문화재 전문위원에게 실측을 의뢰해 복원 작업을 한 것이라 한다. 원래 탑의 모양을 알 수 없는 일부 부재를 하나의 탑으로 짜맞춘 것이다 보니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통일신라 후기의 양식으로 보이는 사천왕상과 팔부신중의 일부가 정교하게 새겨진 상층기단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다.

 

 

삼층석탑 상층기단 사면에 새겨진 조각

 

 

 

 

 

 

 

조각의 수준이 상당한데, 파손되지 않고 원래의 탑이 남아 있었다면 상당한 평가를 받는 귀중한 문화재가 되었을 듯하다.

 

 

 

현재의 보광전(普光殿)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72년에 중창한 것이다. 이는 1976년 중수하면서 발견된 상량문에서 밝혀졌다고 한다.

 

 

 

 

 

보광전은 약간 흘림이 있는 두리기둥을 세워 구성된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집이다. 맞배지붕이지만 다포계로 되어 있는 점이 특징적인데, 조선 중기 이후 목조 건축양식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보광전 내부에는 석조여래삼존불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56호)이 모셔져 있다.

 

 

 

 

보광전 석조여래삼존불은 석가여래좌상으로 제화갈라보살, 미륵보살이 협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보광전(普光殿)

보통명사로서의 '보광전'은 약사유리광여래를 모신 법당을 일컫는 말이다. 동방유리광세계의 교주로서 흔히 역사여래, 약사불로 일컫는데 보광전을 약사전, 만월보전, 유리광전 등으로 부른다.

하지만 실제 사찰에서 보광전이 약사불을 모시는 전각으로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남원 실상사 보광전은 석가삼존불, 익산 숭림사 보광전은 삼세불, 남장사 보광전은 비로자나불, 분황사 보광전은 약사불, 곡성 도림사 보광전은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세 위의 불상이 전각에 비해서 너무 작아서 조화를 잃어버린 감이 있다.

 

 

 

 

몸에 비해 두상이 크고 목이 짧으며 원만하면서도 엄격해 보이는 상호, 두꺼운 법의에 구부린 어깨 등은 조선 중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주존인 석가여래의 대좌가 재미 있어 눈길을 끈다.

 

협시보살의 대좌는 연화좌인데, 석가여래의 대좌는 인형처럼 귀여운 세 마리의 사자상이 만세를 부르듯 두 발을 들어 올려 불상을 떠받친 특이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보광전에서 특히 주목할 곳은 내부 단청과 벽화다.

 

 

 

 

 

내부는 벽면마다 보살상을 그려 놓았는데,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상이 눈에 띠고, 대들보엔 호랑이 머리에 용의 몸을 한 상상의 동물이 그려져 있다.

 

 

 

 

천장엔 옴자나 만자를 가운데 그려넣은 연꽃을 비롯하여 화려하게 그려진 여러 도상들이 가득하다.

 

 

 

 

회화성이 돋보이는 빼어난 작품으로 건축 당시의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조선 중기 불교미술의 중요한 자료로서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1985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던 것이 2008년 보물 제1570호로 변경되었다.

 

 

 

보광전 동쪽에는 명부전이 자리잡고 있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근래에 지은 것이다.

 

안에는 금동 지장보살상을 모시고 좌우에 협시하는 석조 도명존자상와 무독귀왕상, 석조시왕상 을 두었다. 모두 최근에 조성한 것이다.

 

다만 지장탱화는 1806년에 제작된 것으로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468호로 지정되어 있다.

 

 

 

 

 

중앙에 지장보살상은 설법인을 하고 지장보살상 좌우에는 도명존자, 무독귀왕, 6대보살 등 천동·천녀가 등장하는데, 모두 8등신의 신체적 비례미를 보이고 있으며 가사 문양이 화려하고 필선이 세련되었다.

 

 

 

 

 

 

보광전 북서쪽에는 아직 단청도 입히지 않는 새 전각, 관음전이 서 있다.

 

 

 

 

 

 

내부에는 천수관음이 연화대좌 위에 두손을 모으고 앉아 있다.

 

 

 

 

 

 

 

 

대전사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 유정이 승군을 훈련한 곳이라고 한다. 보광전 내부에 는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유정에게 보냈다는 친필 서신을 목판으로 음각한 것이 보관되어 있다.

 

 

 

 

贈義僧將松雲大禪伯 行拂下               의승장  송운대선(사명대사)께
無意圖功利                                공명과 이익을 도모하려는 뜻 없어
傳心學道仙                                오로지 도선을 배우는 데 마음 쏟았네.
今聞王事急                                이제 국사가 급하다는 말을 듣고
摠攝下山顚                                총섭의 임무를 띠고 산을 내려 오셨구려.
天朝將 太子少傅 李如松 謹稿                    - 천자의 조정(명) 대장이자 태자소부(태자의 스승) 이여송이 삼가 초함

 

 

 

부속 암자로는 백련암과 주왕암이 있는데, 백련암은 대전사 건너편에 자리잡고 있으며 주왕의 딸 이름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주왕암은 주왕굴 가는 협곡에 자리잡고 있다.

 

 

 

보광전 북서쪽 끝에는 옛 스님의 부도 4기가 나란히 모셔진 부도전이 있다. 이 중에는 경월대사라는 당호가 보이는데 350여 년 전의 스님이다.

 

 

 

 

 

절 오른쪽 밭에는 우물을 메운 자리가 있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이 절에서는 부처에게 올리는 물을 매일 냇가까지 가서 길어오곤 하였다. 이를 귀찮게 여긴 승려들이 조선 중기에 앞뜰에 우물을 파고 그 물을 길어서 청수(淸水)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곧 불이 나서 전각이 불에 타고 말았다. 뒷날 한 도사가 와서 불이 난 이유를 설명하기를, 이 절의 지세는 배가 바다에 떠서 다니는 부선형(浮船形)인데 우물을 판 것은 마치 배 바닥에 구멍을 낸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다시 우물을 메웠다 한다.

 

 

이밖에 노루가 우물에 빠져 죽은 뒤 메웠다는 설도 있고, 이 물을 마신 승려들의 힘이 넘쳐 난폭해지는 바람에 인근 주민들의 원성이 많아지자 메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마당 한켠에서 '청송미인'이 따라주는 국화차를 마시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서울 번화가보다 더 붐비는 등산로... 호젓한 가을 분위기에 젖을 수 있기를 바랬는데, 그런 기대는 사치스런 것.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 한눈을 팔 수 없을 정도로 북적이는 사람들의 행렬을 따르면서도 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와 단풍 숲에서 스며나오는 청정한 기운에 압도되어 마음은 명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