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천태종 총본산, 단양 소백산 구인사 (2)

모산재 2012. 6. 12. 00:29

 

대법당 옆 축대 위에 서서 구름다리 위쪽으로 층계를 이루며 많은 전각들이 들어서 있는 경내 풍경을 바라본다.

 

이 땅의 사찰과는 너무도 다른 풍경이 낯설기만 하면서도 호기심이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대법당 바로 위에는 관음보살을 모신 관음전과 스님들의 식당인 도향당(度香堂)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관음전을 들러보기로 한다.

 

 

 

 

 

관음전의 관음보살상은 금동상이 아닌 석질로 된 상이다. 확인해보니 비취옥관세음보살상 이란다.

 

미얀마에서 구입해온 비취옥으로 2007년 7월에 조성을 시작하여 2008년 5월에 봉안된 불상이다. 방콕의 왓 프라께우의 에메랄드 불상을 떠올리게 한다. 비취옥으로 불상을 조성한 뜻은 비취옥이 예부터 건강, 다복, 무병장수 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불상의 높이는 1m 60cm이고 무게는 1t이라 한다.

 

 

 

 

 

관음전 건너편에는 삼보당이 자라잡고 있다.

 

아래 사진에서 계단으로 연결된 건물인데, 대법당에서 구름다리로 바로 건너갈 수 있다.

 

 

 

 

 

 

즐비한 장독대는 이 공간이 먹는 일과 관계된 공간임을 짐작하게 하는데, 바로 마당 위쪽에 부엌과 식당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삼보당으로 건너가 안을 들여다보니 신도들이 큰절을 올리고 있다. 바로 구인사의 조사인 상월조사의 존상이 모셔져 있다.

 

 

 

 

 

이곳은 종단 스님들이 모여 큰스님을 모시고 회의나 스님 안거를 주재하기도 하는 곳이라고 한다. 겨울 신도 안거가 끝난 후 스님들의 안거가 시작된단다.

 

 

관음전 윗 축단에 3층 건물인 향적당(香積堂)이 자리잡고 있다.

 

절에서는 부엌을 향적대(香積台)라고도 하는데, '좋은 향기가 모였다'는 뜻의 향적당은 사찰의 부엌과 식당이다. 1층은 비구니들이 공양을 짓는 부엌이고 2~ 3층은 식당.

 

관음전과 삼보전에 즐비하게 놓인 장독대가 눈에 들어온다. 수만 포기를 김장하는 모습이 장관이라더니 참으로 대단하다.

 

 

향적당 앞에서 바라보는 관음전과 삼보전

 

 

 

 

 

 

향적당을 지나면 길은 광명전으로 이어진다.

 

 

 

 

 

향적당에서 시작된 긴 계단길이 끝나는 지점, 까마득한 계단 위에 광명전(광명전)이 버티고 서서 방문자를 굽어본다. 구인사에서 가장 큰 6층 규모의 건물이다.

 

 

 

 

 

이 자리에는 불자들의 수행공간으로 1979년 48칸 규모로 건립된 광명당이 있던 자리. 공간이 협소하여 2003년부터 7년여의 불사를 마치고 2010년 완공하였다고 한다.

지하2층·지상4층 규모인데, 지상 1·2층은 옛 이름 그대로 광명당 현판이, 3·4층은 광명전 현판이 걸려 있다.

 

 

 

 

 

조사전 오르기 전, 한동안 석축을 바라보다 광명당 안으로 들어선다.

 

 

 

 

 

조사전으로 오르는 길은 광명전 오른쪽으로 나 있지만 사람들은 광명전 안 엘리베이터를 통해 오른다.

 

7층으로 오르면 바로 조사전 앞 넓은 마당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3층 전각이 나타난다. 상월조사를 봉안한 대조사전이다.

 

 

 

 

 

 

금계포란형의 지세라더니 과연 대조사전은 구인사의 최고 명당임에 틀림없다.

 

초파일을 일주일 정도 앞에 두고 행사 준비에 바쁘다.

 

 

 

 

 

 

 

3층 목조 건물 대조사전의 높이는 27m. 법주사 팔상전의 높이가 22.7 m이니 그보다도 더 높다.

 

인사 최고의 명당에는 주불인 석가모니불이 아니라 구인사의 중창조인 상월조사를 모셨다. 석가모니를 모신 대법당은 복합건물인 5층 콘크리트 건물인데, 조사전은 목재로 지은 전통 양식의 금빛 찬란한 3층 전각이다.

 

여느 절에서 조사전은 중심 영역인 대법당에서 떨어진 곳에 작은 규모가 짓는데 구인사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곳 대조사전이 구인사의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이런 전각 배치를 한 것인지 기존의 불교 관념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인도에서 구해왔다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법당 앞 3층석탑에 모신 것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다.

 

 

 

 

 

 

 

조사전 내부는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한다.

 

 

 

 

 

조사전 마당 한쪽 벽에는 수많은 모습의 관음보살상을 새긴 부조상이 늘어서 있어 눈길을 끈다.

 

 

 

 

 

 

 

 

 

대조사전 오른쪽 솔숲으로 가는 오솔길이 있는데 표지판에 적멸궁이라 적어 놓았다.

 

사리탑 외에도 또 부처님 사리를 모신 것인가 싶어 적멸궁을 가 보기로 한다.

 

 

 

적멸궁 찾아가는 산길에서 돌아본 대조사전 옆 모습

 

 

 

 

 

가파른 산비탈을 가로지르는 산길은 호젓한데 시멘트로 포장된 것이 좀 거슬린다.

 

그런데 능선길로 올라섰는데도 적멸궁까지는 얼마나 걸리는지 알 수 없는데, 마침 적멸궁을 돌아보고 내려오는 이들에게 물으니, 적멸궁은 모르겠고 무덤이 하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적멸궁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 아니라 무덤이라는 것. 실망하고 바로 발길을 돌리고 만다.

 

그런데 무덤이라니? 나중에야 그 무덤의 주인공이 바로 상월조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상월조사는 화장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 이곳에 자신의 무덤 자리를 봐 두었고 그곳에 묻히게 된 것이다.

 

 

내려오면서 보니 때 이르게 산목련 한 송이가 환하게 피었다.

 

나무에서 피는 순백의 연꽃, 부처님의 말씀 한 송이 피어나고 있지 않은가.